도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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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검(刀劍)

날을 가진 전투용 날붙이를 통칭해서 부르는 낱말로 刀도는 한쪽으로만 날이 있는 칼이고, 劍검은 양날칼이지만 우리말에선 둘을 딱히 세세히 구분하지 않고모두 칼로 부르는 판국이며, 조선시대에서조차 도와 검의 개념을 혼용해서 썼다. 도건 검이건 걍 사람을 짜를수 있는 도구라면 다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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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②이 법에서 "도검"이라 함은 칼날의 길이가 15센티미터 이상 되는 칼·검·창·치도(雉刀)·비수등으로서 성질상 흉기로 쓰여지는 것칼날의 길이가 15센티미터 미만이라 할지라도 흉기로 사용될 위험성이 뚜렷이 있는 것중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것을 말한다.

총포ㆍ도검ㆍ화약류 등 단속법 시행령 제4조(도검) ①법 제2조제2항의 규정에 의한 도검의 종류는 다음 각호와 같다.
1. 월도
2. 장도
3. 단도
4. 검
5. 창
6. 치도
7. 비수
8. 재크나이프(칼날의 길이가 6센티미터이상의 것에 한한다)
9. 비출나이프(칼날의 길이가 5.5센티미터이상이고, 45도이상 자동으로 펴지는 장치가 있는 것에 한한다)
10. 그밖의 6센티미터이상의 칼날이 있는 것으로서 흉기로 사용될 위험성이 뚜렷이 있는 도검
②도검의 규격 및 형태는 별표 1과 같다.
③칼끝이 둥글고 날이 서있지 아니하여 흉기로 사용될 위험성이 없는 도검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도검으로 보지 아니한다.

자루가 짧고 칼날이 길며 상대를 베거나 찌르는 용도로 쓰이는 무기.

2 도검의 구조와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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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칼날(刀身, Blade)

도검의 핵심이자 알파이며 오메가인 부분. 도검의 위력의 근본인 절단과 관통을 담당하는 부위이다. 그 중요성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 이곳을 잘 갈아 날을 세워 놔야 잘 베인다.

2.1.1 퍼포먼스

칼날 제조에 관해서는 도검 제조에 관하여패턴 웰딩에 관해를 참조할 것.

청동기 시대의 도검은 절삭력과 내구도 모두 현대의 강철도검에 비하면 참담한 수준이었다. 경도는 록웰(Rockwell)기준으로 Hrc20이하의 매우 낮은 수준으로, 300계 스테인리스부엌칼조차 30정도의 경도를 가지는 것을 생각하면 과연 이것이 전투에 쓰였나 싶을 정도. 덕택에 초기에는 긴 장검조차 제작이 불가능했으며, 주석과 구리의 배합률을 조정해 부드러운 부분을 심재로, 단단한 부분을 칼날로 제조하여 비로소 장검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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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의 청동검 단면)

날을 날카롭게 세울 수도 있었고 종이 정도는 쉽게 자르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재료의 한계상 칼날이 쉽게 닳아 절삭력을 잃어버리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도검이 강철제로 바뀐 이후에도 경도는 금방 올라가지 않았는데, 강재의 탄소량이 균일하지 못하고 같은 칼날이라도 부위별로 탄소량이 높은 부분이 산재하여 경도를 평균적으로 높게 올리면 특정 부분이 과도하게 딱딱해져 부러지기 쉬운 취성이 증가, 멀쩡하게 쓰다가도 뚝 부러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나라의 직도나 한국, 일본의 환두대도 등은 쉽게 부러지는 경향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등변삼각형 단면이라는 구조적 취약성 이외에도 이러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실제 유물 도검들을 부위별로 찍어서 나온 경도 편차를 나타내는 그래프출처를 보아도 현대 도검에서 사용되는 강재인 6150, 5160, 1075 고탄소강의 경도 편차는 매우 적게 나오는데 비해, 아래의 실제 유물들의 경우 같은 칼날임에도 위치에 따른 경도 편차가 매우 심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시대가 올라갈수록 경도의 평균최대치가 증가하는 것이 위안.

이러한 이유로 중세 초기에는 저탄소강을 중심에, 고탄소강을 칼날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같은 열처리를 해도 칼날의 절삭력과 내구성을 한번에 얻고자 하였다.(일본도와 같은 원리) 강재의 품질이 균일화될수록 이러한 방식은 점차 사라지고 칼날 전체에 탄성을 주는 열처리를 통해 휘어도 부러지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신뢰성을 갖게 하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도검의 품질이 좋아진다. 다만 그만큼 경도를 희생하게 되면서 중세-르네상스 서양 도검은 경도가 평균 HRC38정도를 유지했다. 이러한 복합강재->단일강재로의 전환, 부분열처리->통열처리로의 전환은 일본과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테크트리였다.

일본은 끝끝내 접쇠와 복합강재, 부분열처리를 고수했는데, 이것은 특별히 놀랍고 대단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기술이라서가 아니라 일본의 제철 환경 자체가 매우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모래 형태의 사철(沙鐵)을 채취하여 이것을 전통 용광로인 타다라에서 재련, 녹아내린 쇠를 회수하는데 이것이 타마하가네(玉鋼)이다. 당연히 불순물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접쇠를 통해 불순물을 제거하게 되며, 탄소량도 불균일하다. 이것을 망치로 깨서 깨지는 성질을 보아 고탄소강과 저탄소강을 분류해서 쓰는데, 거의 눈대중으로 분류하는 것이라 강재 선별도 명백하지 않았다. 이런 시점에서 조금이나마 나은 퍼포먼스를 얻기 위해 강재를 차등배치하고 부분열처리를 가해서 칼날의 경도와 칼등의 연함을 동시에 얻고자 한 것이다. 중세 초기 유럽에서 쓰던 방식과 동일한데, 유럽은 강재의 품질이 올라가면서 그만둘 수 있었지만 일본은 끝까지 이 방식에서 정체되었다. 그렇다고 아주 튼튼한 것도 아니라서 전통일본도는 베다가 조금만 잘못해도 쉽게 휘고, 그 휘어진 것도 손으로 바로 잡을 수 있을 만큼 연했다.[1]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살상력이 낮은 것도 아니어서, 에스파냐/포르투갈 인들이 인디오를 학대하는 그림들을 보면 원주민의 팔다리를 뭉텅뭉텅 썰고, 아기를 거꾸로 매달아 일도양단을 함은 물론, 난징대학살에서 일본군 장교용 군도들은 대부분 전통일본도를 가져다 외장만 군도로 바꿔서 썼는데도 약하다는 묘사들이 무색하리만치 간편하게 목을 치는 사진들이 많이 존재한다. 오히려 현대 강재로 만든 도검들은 베는 느낌이 좀 미끄럽다는 평이 있고, 대장간에서 만든 조선낫이나 부엌칼 등이 훨씬 쩍쩍 달라붙으며 잘 잘린다는 증언들이 있는데, 오히려 불순물이나 불균일한 탄소량 등이 마이크로 써레이션[2]과 같은 작용을 하여 그렇다고 한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산업 혁명 이후 제강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우연에 의존해야 했던 희귀원소가 포함된 강재들을 마음대로 만들어 쓸 수 있게 되면서 도검의 품질이 수직상승하고 경도편차도 크게 줄어든다. 통열처리에 스프링탄성을 지니면서도 경도는 HRC53정도까지 올릴 수 있었고, 단일강재라도 부분열처리를 통해 일본도나 중세 초기 서양도검이 구현하고자 했던 칼날은 경도가 높아 잘 자르지만 칼등이 충격을 흡수하는 구조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상당히 주관적인 <베는 맛>을 제외하면, 절단 성능이나 칼날 유지력 등 모든 면에서 현대에 생산되는 도검들이 압도적이다. 일본도 면에서도 무라타도만철도, 95식 부사관도와 같은 현대 강재를 쓴 도검들은 튼튼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평가도 좋았다.

2.1.2 칼날의 디자인 요소와 변화

칼날의 디자인은 굉장히 다양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몇가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2.1.2.1 포르테&포이블(Forte&Foible)

칼날을 절반으로 나누어 가드 쪽 절반을 Forte, 칼끝 쪽 절반을 Foible이라고 한다.

원리적으로 포이블은 상대를 공격하며 절단과 관통을 맡는 부분이지만, 손에서 먼 만큼 버티는 힘이 약해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거나 흘리는 데에는 불리하다.
반면 포르테는 공격력이 거의 없는 반면 손에 가까워 강력한 베기를 정면으로 받아낼 수도 있고 상대와의 힘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다.
검술적으로 상대의 포이블을 나의 포르테로 밀어붙이거나 감아 제압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며, 상대의 공격은 모두 나의 포르테로 막고, 상대가 항상 나의 포이블의 안쪽에 위치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어떠한 종류의 도검이든 명칭은 달라도 반드시 존재하는 개념이다.

2.1.2.2 테이퍼(Taper)

테이퍼는 칼날의 폭이 변화하는 것을 말하며, 주로 칼날의 리캇소(Ricasso)에서 칼끝(Point)로 가면서 폭이 좁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파일 테이퍼(Profile Taper)는 칼날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며, 디스탈 테이퍼(Distal Taper)는 칼날의 두께가 얇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도검류는 무거운 칼날이 부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손잡이는 끝에 달려있기 때문에 컨트롤을 위해서는 무게중심이 가능한 한 손잡이 쪽에 있어야 했다. 폼멜이나 가드와 같은 요소가 중심을 잡아주기도 하지만, 이것에 의존해서는 POB가 후방으로 빠지는 만큼 무거워져야 했다. 따라서 무게를 유지하면서 밸런스를 잘 잡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칼날도 끝으로 갈 수록 좁아지고 얇아져야 아귀가 맞는다. 그러나 이 테이퍼가 도검의 전투성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느 종류의 테이퍼를 많이 줄 것인가 아닌가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랐다.

가령 바이킹 소드초기 이슬람 도검과 같은 종류는 베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디스탈 테이퍼는 잘 이루어져 있으나 프로파일 테이퍼는 잘 되어있지 않다. 끝으로 갈수록 폭이 별로 좁아지지 않는 것. 이것은 칼날이 넓을수록 엣지베벨을 좁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절삭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베기용 도검들은 대체적으로 날폭이 넓은 편이다.

그러나 롱소드바스타드 소드와 같은 도검은 15세기의 서양 갑옷의 중흥기를 맞아 체인메일이나 갑옷 틈새를 꿰뚫을 것이 중요하게 요구되었으므로 프로파일 테이퍼가 심하고, 디스탈 테이퍼가 크지 않다. 즉 두께는 별로 좁아지지 않는데 폭은 크게 좁아져 꼬챙이처럼 보이게 된다. 갑옷에는 베기가 통하지 않으므로 찌르기에서 관통력이 우수한 디자인을 채택한 것이다.[3]

세계의 어떠한 종류의 도검이든, 그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테이퍼는 항상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다만 쿠크리터키의 야타간(Yatagan), 인도의 소슨 파타와 같은 도검들은 끝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러한 종류는 컨트롤을 희생하면서까지 강력한 절삭력과 타격력을 추구한 경우이다.

2.1.2.3 엣지베벨(Edge bevel)

말 그대로 날각. 엣지베벨이란 칼날을 단면으로 잘랐을 때 칼날 꼭지점의 내각을 말한다.

이 내각이 좁을수록 절삭력이 뛰어난데, 각이 좁은 만큼 쉽게 파고들어가며 저항을 덜 받으며 절삭하기 때문이다. 테이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같은 두께라면 날폭이 넓을 수록 엣지각을 좁게 줄 수 있으므로 베기용 도검은 보통 포이블 부분의 날폭이 넓은 편이다. 또 마찬가지로 같은 폭이라면 두께가 얇을 수록 엣지각을 좁게 줄 수 있으므로 포이블은 포르테에 비해 두께가 얇은 것이 일반적.

따지자면 무조건 얇고 넓게 하면 궁극의 엣지각이 형성되지만,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도검들은 날손상이나 내구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적당한 두께와 폭을 선택하므로, 무조건적으로 엣지베벨을 좁게 할 수가 없다. 좁으면 좁은 만큼 손상률이 늘어나기 때문. 그대신 용도상 뛰어난 절삭력이 필요한 회칼이나 메스 등의 날붙이는 마음놓고 좁은 엣지각을 가진 디자인이다. 군용이 아닌 퍼포먼스용인 삼각도나 베기용 도검들도 비슷한 이유로 좁은 엣지각을 형성하는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4]

2.1.2.4 풀러(Fuller)

국내에서 흔히 혈조라고 부르는, 칼날에 푹 파인 부분.

사람을 베거나 찔렀을 때 살에 잡혀 진공 상태가 되므로 공기가 들어가 빼주기 위한 부분이라거나, 피를 많이 흐르게 해서 치명상을 입히기 위한 용도라든가 하는 다양한 낭설들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파는 것이며, 살상력과는 관계가 없다. 사실은 원재료 값을 아끼기도 할 겸,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이다.

바이킹 소드는 물론 일본도나 조선환도, 인도나 기타 지역의 도검 모두 혈조를 가진 도검과 그렇지 않은 도검이 있다. 혈조가 있는 도검은 가벼워 쓰기 편하지만 그만큼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상식. 혈조는 보통 1개만 파지만 2개, 심지어는 5개 이상이나 파놓은 도검들도 존재한다. 많이 파놓은 것은 대부분 디자인적인 포인트를 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2.1.2.5 곡률(Sori)

칼날이 휜 정도.

소리(Sori)란 일본에서 곡률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기준은 가드 바로 앞쪽의 리캇소와 칼끝을 평행한 땅 위에 놓았을 때 가장 깊게 들어간 부분의 땅과 칼등 사이의 높이를 잰다. 0cm부터 심하게는 7cm에 이르는 수준까지 존재한다. 곡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일본도는 보통 1~3cm정도에 불과하고, 세이버와 같은 기병용 도검은 0~7cm이상이며 특히 경기병들의 곡도는 무려 5cm정도의 곡률을 지닌다.

대중적으로 곧은 것보다 휜 칼이 합리적이고 우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론 꼭 그렇지는 않다.

휘어진 칼은 상대를 벨 때 휘어진 만큼 자신 쪽을 향해 미끄러지려는 성질이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Slice효과가 발생하며 결과적으로 당겨베기라는 현상이 발생하여[5] 보다 나은 절삭력을 가진다. 또, 고기동전투인 마상전투에서 휘어진 칼은 반작용 일부를 휘어진 칼날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흘릴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손에 전해지는 반동이 줄어들어 칼을 놓치거나 파손될 우려가 적어진다.

두번째로 휘어진 칼은 검압을 효과적으로 넘긴다. 검을 휘두를때 검압이라 하는 공기저항을 받게되는데 곡도는 이 검압을 효과적으로 넘길뿐만 아니라 더 오래 견딘다.

하지만 슬라이스 효과, 즉 검이 미끌어지는 만큼 검에 실린 힘이 분산되어 실질적인 파괴력은 더 떨어진다. 또, 곡률이 클수록 찌르기가 봉인된다.

곧은 칼은 이와는 반대로 보면 된다. 칼날의 길이만큼의 간합을 살릴 수 있고, 공격하는 시점이 빠르다. 그대신 반작용이 더 심한 감이 있어 고기동 마상전투에서 부적합하고, 당겨베기 현상의 발생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만큼 상대에게 가하는 타격력이 강하고, 도보 전투에서도 적합하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에서는 마상용의 곡도였던 타치가 전투환경의 변화에 따라 보다 휨이 적은 우치가타나에게 주력의 자리를 내주었고, 근대 유럽에서는 덩치와 힘으로 강력한 타격력을 발휘할 중기병[6]과 지상전을 수행할 용기병에게는 곧거나 휨이 적은 도검을, 고기동으로 추격전과 정찰전, 기동전에서 활약하는 경기병, 엽기병에게는 휨이 큰 곡도를 지급했다.

역으로 전방으로 휜 검들(대표적인게 쿠크리)도 있는데, 이들은 무게중심을 앞에 놓아 도끼와 같은 효과를 얻기위해 이런 형상을 취했다.

2.1.2.6 양날&외날(Double Edge&Single Edge)

역사적으로 초창기부터 전투용 도검은 양날을 채택하였는데, 청동기시대의 영 좋지 않은 엣지유지력 때문에 돌려 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추측된다.

철기 시대 이후 양날이냐 외날이냐의 선호는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군사문화에 의거하며, 이미 강철 사용으로 더이상 날을 뒤집어 쓸 필요가 없는 중세에도 양날도검이 다량 사용된 것은 각 문화권에서 도검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박혀 디자인의 변화에서 일정한 정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보통 양날은 검, 외날은 도 라고 알려져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그렇게 엄밀하게 따지지 않는다. 외날이라도 검이라 불리는 경우가 있으며 양날이라도 도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검술 측면에서, 기본적인 베기와 찌르기는 동일하다. 차이점은 전술. 양날은 상대의 무기에 검이 막히더라도 검을 비틀거나 그대로 타고들어가 뒷날로 밸 수 있다. 하지만 외날은 검을 거두고 다시 공격해야한다.

베기와 찌르기 성능에서 차이점이 극명하다. 우선 양날은 같은 너비와 두께라면 외날에 비해 엣지베벨이 크게 나온다. 가장 두꺼운 부분이 중심에 있기 때문. 따라서 외날에 비해 절삭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크다. 반대로 외날은 가장 두꺼운 부분이 한쪽 면에 치우쳐 이른바 칼등(Back)을 형성하므로, 그만큼 엣지베벨을 적게 줄 수 있어 같은 너비와 두께라면 외날이 더 뛰어난 절삭력을 가지게 된다. 대신 찌를 때에는 외날이 불리한데, 칼끝(Point)가 칼등 쪽에 있으므로 찌르는 힘이 균등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려 결과적으로 관통력 저하로 이어진다. 반대로 양날은 칼날의 중심에 가장 두꺼운 부분이 지나가며 칼끝도 중심에 있으므로 힘이 포인트로 집중되어 보다 뛰어난 관통력을 보인다.

이러한 점 때문에 양자의 장점을 결합하고자 한 디자인이 있는데, 칼끝에서 1/3~1/4정도만 양날로 만든 펄스 엣지(False Edge)또는 킷사키모로하즈쿠리(切先兩刃造)이다. 다만 끝이 양날이다보니 결국 가장 절단을 많이 하는 컷팅파트의 절삭력이 양날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므로 결과적으로 양날을 쓰는 것과 큰 차이가 없게 되는 점이 있었다.

세이버에서 컷팅파트의 칼등을 없애 펄스 엣지처럼 만든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베기시 저항이 되는 칼등을 배제하여 부드럽게 가르고 지나가도록 신경쓴 경우. 다만 이 경우는 중앙의 두꺼운 부위가 걸림요소가 되지 않도록 해당 부분의 날 두께가 매우 얇게 만들어지며(2~3mm) 가장 두꺼운 부분도 칼날의 중심선이 아니라 칼등 쪽으로 지나가게 디자인한다.

흔히 외날은 칼등이 있어 내구성이 뛰어나지만 양날은 그렇지 못했다는 등의 인식이 있다. 구조적으로 볼때 분명히 그렇기는 하고 칼날 전체에 탄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정말로 그랬다. 그러나 칼날 전체에 탄성을 부여하는 열처리가 일반화된 이후로는 내구성 때문에 디자인을 바꿔야 할 만큼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특히 현대 기술로 만들어지는 도검들은 더욱 그렇다. 오히려 내구성은 강재와 열처리에 크게 영향받으며, 콜드 스틸社의 중국검은 대나무도 텅텅 잘라내고, 저질 중국제는 일본도 디자인이라도 칼등째로 휘어버린다. 양날과 외날의 선택은 군사문화적 정서와 기능적인 면이 훨씬 강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사용된 예는 양날검이 외날도보다 의외로 적다. 양쪽에 날이 서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실력이 아니면, 아니 실력이 정말 탑클래스 수준이 아니라면 사용자가 날에 베이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실력있는 기사들 그리고 귀족들의 필수품이자 상징적인 존재였으며, 높으신 분들의 장식품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전술적 유연함과 편리성 덕분에 이를 마련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가능하면 무장하려 하였다.

이례적으로 고대 이베리아 용병을 통해 로마 군단들이 사용하게 된 양날 검 글라디우스의 경우, 혼전에서 엄청난 능력을 보여줘 레기온의 힘을 상징하는 검이 되기도 했다. 물론, 당대 로마 군단은 한명 한명이 무시무시한 베테랑 전사들로 양날검을 잘 다룰만한 실력이 있어, 그만한 힘을 보인것이다.

고대부터 기병대가 발달한 몽골은 마상전투시 적의 몸을 스치듯 밸 수 있는 외날검을 선호했다. 그리고 근대 유럽 역시 기병대가 발달하면서 외날검을 채용하였다.

2.1.3 슴베(莖,なかご,Tang)

슴베란 칼날에서 자루에 들어가는 부분을 말한다.

도검의 내구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로써, 이 부분이 튼튼한가 부실한가에 따라 도검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나이프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슴베 형태가 존재하지만 전통도검에서는 슴베가 목제 그립 안에 완전히 숨겨지는 히든탱(Hidden Tang)방식을 채택하였다. 이것은 도검이 크고 받아내는 충격량도 많기 때문에 슴베를 완전히 감싸 충격량을 현격히 줄여주는 히든탱 방식이 아니면 도저히 장시간 다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슴베가 완전히 노출되고 양옆에 샌드위치처럼 목판을 붙인 풀탱(Full tang)방식이나, 아예 칼날과 손잡이를 하나의 쇠로 통짜로 뽑아낸 종류의 도검이 없는 것은 아니나, 소수이며 찾기도 쉽지 않다. 현대 나이프계에서 풀탱 나이프류에 대한 불평은 내구성은 엄청나지만 진동이 심하게 와 장시간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는데, 작은 나이프도 그정도이니 도검류는 매우 심했으리라 볼 수 있다. 실제 m1917커틀러스도 풀탱 구조인데, 장갑을 끼지 않으면 진동 때문에 손이 매우 쉽게 피로해지는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슴베 자체는 아예 열처리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Hrc30정도의 경도만 가지도록 열처리한다. 칼날에서 발생한 진동과 충격을 슴베에서 흡수해 줘야 하기 때문인데, 이곳이 칼날과 동일한 강도로 열처리되면 진동과 충격이 쌓이다가 가드 부근에서 부러지는 일이 생긴다. 윈들래스 스틸크래프트社의 도검이 그러한 문제가 가끔 발생하는 것으로 유명한 편. 이런 구조에도 불구하고 슴베가 휘어지지 않는 것은 가드와 그립이 횡력에 대응해 지지대가 되어주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며, 이 부분이 부실하여 틈새가 많을 경우 사용하다 보면 에누리 없이 휘어져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일본도환도, 롱소드등은 슴베가 넓고 두꺼운 편이지만 세이버같은 도검은 비교적 좁은 편인데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은 튼튼한 가드가 횡력을 잘 잡아주기 때문. 세이버의 슴베에 불만을 표하던 사람도 막상 써보면 튼튼함에 신뢰를 가지게 된다.

2.2 코등이(鍔,つば,Guard)[7]

가드는 칼날과 자루의 경계선을 구분해주는 요소이자, 사용자의 손을 보호해주는 부품이다. 가드는 대체적으로 10세기 이전까지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으며, 초창기에는 아예 없거나 거의 손이 칼날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걸림턱 용도 정도의 구실만을 하고 있었다. 이런 형태를 취하고 있었던 데에는 보조 무기로써의 도검의 위치와, 방패와 무기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환경이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11세기부터 크로스가드가 일반화되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때쯤 해서 가드가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유럽의 경우 가드가 검술에 끼친 영향은 대단해서, 중세 검술의 경우 오의 5기술중 즈베히하우는 크로스가드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을 정도이다. 굳이 검술적 측면이 아니더라도 전투중 칼날이 미끄러져 내려오는 현상은 매우 쉽게 발생하는데, 아무리 작은 가드라도 이런 상황에서 손을 거의 완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다. 메서(Messer)같은 도검은 가드 측면에 튀어나온 Nagel이라는 부분이 존재하며 메서 검술은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일본도의 쯔바를 이용하여 상대의 검을 밀어올리는 등의 활용도 존재.

가드는 유럽과 그 주변부에서는 16세기부터 복잡해지고 더 대형화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존재한다. 건틀렛을 잘 착용하지 않게 되어서 그렇다는 설이 있으나 15세기에도 롱소드 검술에서 평복검술은 갑옷을 착용하지 않았으며 크로스가드를 이용한 손 보호는 중요하게 다루어졌다는 점을 통해 별 설득력이 없다. 현재는 복잡한 힐트의 도입이 주로 레이피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사이드 소드와 같은 군용 베기&찌르기 도검류의 컴포지트 힐트의 도입은 레이피어의 경향을 뒤따라가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을 보아 찌르는 무기로써 항상 손이 전방에 나서는 레이피어의 특성상 군용도검의 베기에 손을 보호해야 할 이유가 더 컸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실제 항상 손을 전방으로 뻗은 상태로 유지하는 스페인식 데스트레자 검술에서 쓰는 레이피어의 힐트가 작은 방패처럼 빈틈이 없는 컵가드를 가지고 있는 점이 이러한 추정에 설득력을 더한다.

다만 동서양을 통틀어 검술적으로는 가드에 지나치게 의지하기보다는, 칼날의 Forte부분을 주로 써서 상대의 도검을 방어할 것을 강조한다. 가드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임을 강조하고 있다.

전술 외적으로는 도검의 밸런스를 맞추는 무게추 역할도 하나, 그만큼 도검의 전체 중량을 증가시키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립과 함께 슴베의 횡력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지만, 굳이 가드가 아니더라도 자루의 보강 금속부만으로도 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또 수는 적지만 가드가 없는 도검도 존재한다. 태국의 Dha같은 도검이 그 예.

2.3 자루(柄,つか,Grip)

도검의 컨트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현대의 도검&나이프 계열에서는 슴베에 끈만 감은 코드랩 그립 등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지만 전통도검에서는 자루를 완전히 감싸는 히든탱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자루의 기본 재료는 나무였으나, 나무만으로는 쉽게 부서지기 때문에 곧 다양한 보강책이 등장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자루의 앞뒤에 금속 링으로 만들어진 보강물을 끼워놓는 것. 일본도에서 후치&카시라라고 부르는 종류이며 전 세계 도검들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도검의 베기 시 위아래로 충격과 압력이 가해지는데, 단순 나무라면 결따라 곧바로 쪼개져 부서지게 된다. 이때 금속 링이 잡아줌으로써 나무가 버틸 수 있게 한다.

자루에 끈을 감는 것도 보강책 중 하나이다. 이를 병사(柄絲)라고 한다.
동남아 등지에서는 등나무 줄기를 감아 금속링 없이도 충분한 내구성을 실현했으며, 서양에서는 마끈을 감고 그 위에 얇은 가죽을 두름으로써 마찬가지로 금속링이 없이도 나무가 결따라 쪼개지는 현상을 막았다. 자루에 끈을 감는 것은 그립감을 향상시키고 손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의미도 있는데, 일본도의 츠카마키(柄卷き)는 후자의 의미가 더 강하다. 원래 손에서 안 빠져나가기 위해 감던 방식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공예의 범주에까지 속하게 된 것.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 도검에서는 아예 금속 끈을 칭칭 감아 손잡이를 덮어버리는 경향이 생겼으며, 소가죽이나 가오리가죽을 감고 그 위에 금속끈을 두르는 방식까지 등장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시대때 주로 반어피(바다표범 가죽)나 가오리 가죽을 감고 그 위에 삼끈을 감기도 했다.

튼튼한 가죽을 씌움으로써 보강하는 방식도 존재했다. 유럽에서는 소가죽을 씌우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는 가오리 가죽을 사용하는 경우도 늘어났고, 당태도(唐太刀)나 조선환도도 가오리 가죽을 통으로 싸서 보강하는 경우가 있었다. 극초기의 일본도, 즉 당양대도나 초기형 타치의 경우 가오리 가죽을 통으로 싸는 방식이 있었고, 당태도의 양식을 흉내낸 의식용의 시키다치(式太刀)도 가오리 가죽을 통으로 쌌다. 지금도 일본도 고급 손잡이의 기준 중 하나는 가오리 가죽을 옆에만 붙였는가, 통으로 쌌는가라고 한다. 내구성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

금속 판을 사용해 보강하는 방식도 존재했다. 세이버에서는 손잡이 등쪽을 덮는 금속 판(Backplate)을 배치함으로써 내구성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이 있었고, 간혹 자루 옆으로 내려오는 Ear부분이 있어 이 금속판 부분으로 핀을 관통시켜 내구성을 한층 더 높이기도 했다. 초기형 타치들도 금속판을 이용해 보강했으며, 자루의 위아래에 금속 판이 붙어 있어 백플레이트를 적용한 세이버보다 한술 더뜨는 보강 수준이었다.

극단적인 경우는 손잡이를 아예 금속으로 떠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근대 유럽의 포병도 같은 도검이나, 인도의 탈와르같은 경우가 대표적. 이 경우 내구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손잡이가 매우 무거워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양손으로 쓰느냐 한손으로 쓰느냐에 따라 손잡이의 형상이 달랐다. 양손으로 쓰는 도검은 딱히 손에 걸리는 부분 없이 평평한 손잡이를 가지고 있으나 한손으로 사용하는 도검은 반드시 손에 걸리는 부분이 존재한다. 폼멜이 있는 도검은 폼멜에 걸리도록 되어 있으며, 폼멜이 없는 세이버 같은 도검은 손잡이 자체가 휘어 있어서 손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아밍 소드는 물론 샴쉬르탈와르 같은 도검도 마찬가지. 다만 바스타드의 경우 중간쯤에 낮은 턱이 있는데, 이건 한손으로도 쓰고 양손으로도 쓰는 물건이라 그런 것.

칼을 잘 만드는 회사는 손잡이의 가공이 어설픈 경우가 없는데, 손잡이의 겉을 아무리 잘 만들었더라도 손잡이 내부가 슴베와 딱 맞게 만들어져 있지 않으면 결국 쉽게 파손되며 도검 전체의 내구성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가령 손잡이 안쪽이 슴베보다 넓다면 손잡이가 함께 받아줘야 할 충격을 제대로 흡수해주지 못해 슴베에 응력이 가해져 나중에 더 빨리 피로한계가 찾아옴은 물론, 핀이나 피닝 부위에 응력이 집중되어 손잡이의 내구도가 더 빨리 떨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해서 저가의 양산형 회사는 이 손잡이의 제조를 대충 해서 생기는 문제가 있다.

2.4 폼멜/퍼멀(Pommel/Pummel)

도검에서 자루 끝에 붙어있는 부품. 서양도검의 대표적인 요소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중동, 인도, 중국도검은 물론 조선환도에서도 간혹 보이는 부품.

도검을 제대로 휘둘러본적이 없는 사람들은 단순히 무게추라고 알고있는 경우가 많은데, 폼멜 = 무게추라고 하는것은 착각이다. 이건 언어문제가 아니라 영어권에서도 흔한 착각. 많은 칼에 달려있는 폼멜의 무게추로써의 역할은 있으나 마나 한 정도가 많다. 초창기의 폼멜의 기능은 손에서 칼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걸림턱 역할이었다. 전투중 칼을 휘두르다보면 손에서 땀도나고 손에서 힘이 빠지기도 하고, 애초에 칼은 손에 힘을 꽉주고 휘두르는게 아니라, 설계상 손잡이가 미끄러지기 쉬운 서양검은 폼멜의 걸림턱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유럽 11세기 무렵에 이 폼멜을 크고 아름답게 만들어서 무게추의 역할도 주는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양도검이 동양에 비해 대체적으로 긴 길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밸런스가 매우 뛰어난 것이 바로 이 폼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덕분이다. 무게추가 도검의 제어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게중심을 손잡이쪽으로 내려주기 때문이다. 무게중심이 손이 근접할수록 작은 힘으로도 손쉽게 칼을 조절할 수 있으며 '체감상' 검이 더 가벼워진듯한 느낌을 받을수 있다.[8]
물론 장점만 있는건 아니라, 칼날의 두께와 너비에 비해 무게가 무거워지고, 칼끝에 무게를 넣어 휘두르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서양검은 무거운 편이여서 이는 큰 단점이 아니었다.

거기에 갑옷입은 상대로 검을 뒤집어 칼날을 잡고 폼멜과 크로스가드로 후려 패는 방식도 강화 됐다

그 이후 16세기 후부터 가드가 대형화되면서, 여러가지 장식을 붙이는 것도 유행하여, 손잡이 자체가 무게추을 역할을 하게 되고, 칼날도 경량화되면서 반대로 폼멜은 다시 작아지고 가벼워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 손잡이가 무게추의 역할을 하니 무거운 폼멜을 유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다시 걸림턱의 역할만 하게 된다. 18세기를 넘기면 손을 감싸는 가드가 있어 칼이 빠져나갈 염려가 없는 세이버에는 애초부터 폼멜이 없는 경우도 많고, 스몰소드 계열의 군도에서도 형식적인 수준에 불과할 정도.

당연히 폼멜이 있어야만 좋은 칼이 나오는 것도 아니며, 일본도나 조선환도, 태국의 Dha와 같은 도검은 밸런스 포인트가 전방에 있기 쉬운 구조이지만 처음부터 양손 사용을 전제로 했고 손잡이가 길기 때문에 폼멜 역할을 일부 대신한다. 실제 Dha는 한손으로도 자유자재로 사용이 가능하다.

걸림턱의 역할도 없고 단순히 자루에 씌워서 보강하는 뚜껑같은 종류는 폼멜이 아니라 버트캡(Buttcap)이라고 부른다. 현대펜싱의 세이버 끝에 붙히는 캡의 경우는 아직도 폼멜이라고 부른다.

2.5 칼집(さや,Scabbard,Sheath)

칼날을 외부의 손상요인으로부터 보호하고 안전하게 패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 칼집은 도검에서는 거의 반드시 붙는 부분으로 생략되는 경우가 많은 다른 무기들과 비교해 도검류의 특징적인 요소로도 볼 수 있다.

본디 도검은 주력 무기가 아니며, 1차적으로 소지하는 ,,폴암 등의 장병기들을 사용할 수 없을 때[9] 비로소 꺼내드는 종류의 보조무기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날카롭게 날이 서 있으며, 돌이나 모래에 부딪칠 경우 아주 쉽게 날이 죽어버리므로 관리가 매우 까다롭다. 또 1차적으로 소지하는 무기를 우선적으로 들어야 하므로 따로 들고 다니기도 뭐하다. 그래서 칼집에 넣어 칼날과 사용자를 보호하고 허리에 패용하여 손을 쓰지 않고도 들고 다니도록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칼집은 크게 나누어 목제와 가죽제, 금속제로 나뉜다. 어느 하나의 재질만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다양한 복수의 재료를 복합해서 만들기도 한다. 가령 내부 코어는 나무로 만들고 겉에 가죽이나 금속제 외피를 씌우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나무만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습기의 침투 등을 막기 위해 최소한 옻칠이라도 하고 금속이나 끈, 뿔로 만든 링으로 보강하는 것이 일반적.

전통적으로 칼집은 칼날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주로 목제와 가죽제, 또는 양자를 복합한 것을 선호했다. 다만 근대 유럽에서는 금속제 칼집을 주로 선호하였는데 주로 연철황동, 19세기 후반부터는 알루미늄도 사용되었다. 연철의 경우 뽑으면서 칼집에 칼날이 닿아 날이 죽을 우려도 있는데도 쓰인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칼집 자체의 내구성이 가장 뛰어나고 파편 등에서도 안전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내부에 가죽이나 나무 코어를 삽입한 경우는 많지 않고, 보통은 단순한 철제 주머니 형태였다. 알루미늄은 경금속이라 칼날 손상 우려가 낮고 가볍고 가공이 편했기 때문에 19세기 후반부터 일부 채용되기도 했다.[10]

사용자가 뽑기 전까지는 함부로 빠지지 않는 신뢰성도 요구되었으며, 각 칼집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요구를 충족했다.

서양도검은 하바키[11]와 같은 부품이 없는 대신 리캇소(날뿌리)쪽으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특성을 이용하여 완전히 들어갈 경우 꼭 맞물리게 만들었다. 저질 칼집은 이런 배려가 없기 때문에 마구 빠지는 것이 특징이다. 잘 만들수록 뒤집고 흔들어도 빠지지 않으면서 사용자가 발도하면 어렵지 않게 빠져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양산형인 철제 칼집에서는 입구 부분의 Throat라는 부품에 양쪽으로 판스프링이 붙어 있어서 칼을 수납하면 판스프링이 밀어 마찰력을 주어 쉽게 빠지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목제 코어가 있어 잡아주던가, 따로 잠금장치를 붙여 누르지 않는 이상 빠지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조선 환도는 하바키를 이용한 방식과 잠금장치를 이용한 방식이 둘다 존재했고 일본에서는 원래 하바키만을 사용했으나 서양도검의 영향을 받은 일본군도는 금속칼집에 잠금장치를 채용하기도 했다.

2.6 기타 자잘한 요소

  • 잠금장치 - 도검류가 칼집에서 쉽게 빠져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 도검들은 칼집 자체가 리캇소를 잡아 주거나 하바키를 이용하는 식으로 이런 경우에 대응하지만 아무래도 정식 잠금장치만큼의 신뢰성은 없다. 파손우려와 정비소요의 발생 및 비상시 발도의 방해가 되는 점 등에 의해 고대~근세 도검까지는 보기 힘들지만 특이하게도 조선의 환도에서는 비녀장이나 버튼식 잠금 장치가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근대에 들어서는 세이버에도 잠금 장치가 채택된 것들이 있었으며, 일본군도는 거의 모든 모델이 잠금장치를 채택했다. 특히 일본군도의 경우 환도의 비녀장이나 버튼식과 거의 동일한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
  • 소드노트(Sword knot) - 조선에서는 유소(流蘇), 일본군에서는 도소(刀紹)등으로 부른 피탈방지끈. 기병도에서 보통 쓰이는 것인데 칼자루에 연결하여 손목에 걸어 칼을 손에서 놓더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샴쉬르나 탈와르 등 한손으로 사용하는 도검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특히 근대유럽에서는 실용성에 더해 독자적인 문양과 디자인을 통해 계급과 소속을 구분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으며, 일본군도 이를 따라했다. 보통 상당히 긴 편인데 이것을 자루에 감아 정리해두는 방식도 제식으로 규정되어 있다. 근대 유럽적 개념을 갖지 않은 소드노트는 화려한 경우는 있어도 그렇게까지 빡빡하지는 않다. 단지 피탈방지끈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칼을 쓰다가 놓고 활이나 총을 쏘다가 다시 칼을 잡아채어 사용하는 등 기병에게는 멀티플레이를 위한 필수적인 부속이다.
  • 가죽 보호구(Leather protecter) - 도검류는 쉽게 녹슬거나 여기저기에 부딪쳐 손상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가죽제 보호도구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칼집을 가죽이나 털가죽으로 싸는 것. 화려하게 만들어진 칼집을 야전에서 험하게 굴려야 할 때 외장 보호용으로 주로 사용했다.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도가 특히 이 방면에서 압도적인 사용률을 보인다.
야전에서 비를 맞아 가드나 폼멜, 칼날이 녹스는 경우를 위한 보호품도 존재했는데 가장 특징적인 것이 서양도검에서 13~15세기에 존재했던 채프(Chappe)이다. 가드 위에 끼워져서 칼집 입구를 덮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주로 빗물이 칼집 입구의 틈으로 새어들어가 칼날을 녹슬게 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보호를 위해 가죽으로 손잡이를 덮는 종류의 물건도 있었다.

2.7 고정 방식과 장단점

도검의 고정 방식은 크게 나누어 다음 3종류로 나뉜다.

  • 피닝(Peening) - 폼멜이나 버트캡 뒤로 삐져나온 슴베를 망치로 두들겨 뭉개서 고정하는 것. 도검의 고정법 중에서 가장 튼튼한 것으로 정평이 난 방식이다. 진동에 의해 풀려버리는 나사식이나 사용하면서 조금씩 헐거워지기도 하는 핀 방식에 비해 어지간해서는 고정이 느슨해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한번 고정하면 개인이 분해해서 정비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손잡이가 파괴되어 교체가 필요할 때에는 리힐티드(Re-hilted)라는 대공사를 해야 하는 것이 단점이다. 자루가 어설프게 만들어졌을 경우 분해해서 보강해야 하는데 그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단점. 또 고정이 뒤에서만 되기 때문에 베기 등으로 칼날이 상하로 받는 충격과 압력을 본질적으로 대응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오래 쓰면 그립 속이 위아래로 확장되면서 결국 파괴되는 현상이 생긴다. 따라서 아예 조립할 때 그립 속에 접착제를 떡칠하여 보강하거나, 핀 방식을 병행한 복합 방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 핀(Pin) - 일본도나 조선환도, 세이버 등 세계적으로 다양한 도검에서 채택한 방식. 칼날을 자루에 완전히 끼워 고정한 다음, 드릴로 측면에서 관통시키고 핀을 끼워 고정한다. 핀 방식의 장점은 분해교체가 자유롭고 정비성이 좋다는 것이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쓰다 보면 진동 등에 의해 고정이 점점 헐거워진다. 손잡이나 핀이 조금씩 손상되면서 칼날이 앞으로 0.nmm단위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 일본도는 대나무못(메쿠기)를 핀으로 사용하는데, 이 경우 대나무못이 부러져 칼날이 전방사출되는 경우도 가끔 발생했다.대나무못은 똥이야, 똥이라고! 히히 칼날 발싸! 핀을 여러개 쓸수록 단점 보완이 되지만 좀 흉해지므로 보통 많아야 2개를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이버나 나이프 계통에서는 3~4개도 사용한다. 풀탱구조에서는 반드시 핀 방식으로 고정한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핀이 들어가는 부분에 철판을 대거나, 나사 혹은 피닝과의 복합 방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 나사(Nut) - 말 그대로 나사를 사용하는 것. 피닝처럼 자루 뒤쪽에서 들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핀처럼 옆에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볼트와 너트 구조가 확립된 15세기 이후에 등장한 방식으로써 피닝이 망치질을 하고 분해가 불가능한데 비해 손쉽게 조립이 가능하고 피닝만큼 튼튼하면서도 얼마든지 분해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닝과 핀 방식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였는데, 우선 나사는 도검의 진동에 의해 매우 쉽게 풀리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베기용 도검은 큰 진동이 발생하는데 여기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풀렸을 경우 그때그때 다시 조여 주어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실전에서 뛰어난 신뢰성을 가진 피닝과 핀 방식을 대체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며, 주로 베기용 도검보다는 스몰소드레이피어같은 찌르는 종류의 도검에 많이 사용되었다. 주로 슴베에 나사산을 내고 폼멜이 너트가 되는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현대와 같은 육각너트 같은 방식은 아니었다.
현대의 리프로덕션 도검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인데 생산이 용이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풀리는 문제는 그대로인데다가, 양손으로 사용하는 도검, 특히 롱소드일 경우 폼멜이 손잡이의 일부가 되는데, 폼멜에 가해지는 충격을 가는 나사봉이 이겨내지 못하고 부러지는 바람에 도검이 폐품이 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였다.[12] 따라서 현대 리프로덕션 도검에서는 슴베 자체를 폼멜 안으로 들어가게 연장하고 나사봉은 고정용 너트가 조여질 만큼만 짧게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 외에 한손도검에서는 풀리는 문제 빼고는 잘 쓰이는 편. 현대에서는 사용자들이 풀리는 문제를 록타이트 같은 고정용 본드를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적인 방식이 언급되어 있으니 굳이 말하자면, 사실 현대에는 슴베를 길게 빼고 칼자루 끝이나 폼멜 부분에 구멍 뚫어서 카라비너[13]나 케이블 자물쇠[14]만 걸어둬도 상관 없다. 나사처럼 풀릴 일이 없기 때문에 굳이 접착제를 발라줄 필요도 없고, 덕분에 손잡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교환하기도 용이하다. 그냥 잠금장치 풀고 쭉 빼면 그만이니까. 심지어 나사 구멍 정도 굵기의 와이어 케이블만 있어도 평생 안심이나 마찬가지. 현대의 기술로도 피닝 방식의 단점이 걱정된다면 아래 복합 방식을 응용해 중간에 핀이라도 박아주면 그만이다.
  • 복합 방식 - 핀이나 피닝 등 서로 다른 2가지 고정방식을 병행하는 것. 2가지 방식의 장점이 더 크게 드러나는 방식이며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도검은 매우 튼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환도나 세이버 계통에서 특히 많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p1796이나 일본군의 32식 등이 대표적인 복합 방식의 도검. p1796은 피닝과 핀을 병행했으며, 32식은 후방과 측면에 전용 나사를 사용한 방식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m1904나 프러시아의 m1856세이버도 같은 방식. 조선환도 중 일부는 피닝과 유소혈[15] 혹은 목정혈[16]을 복합해서 만들었는데 매우 튼튼하다.
  • 기타 - 인도 탈와르 같은 경우 철제 손잡이에 결합했는데, 슴베를 소금물에 적셔 손잡이에 결합하고 기다리면 녹이 슬어 팽창하여 꽉 맞물리게 된다. 피닝도 핀도 안 쓰기 때문에 매우 불안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신뢰성이 좋다고 한다.

3 검을 뜻하는 단어들

중국식으로 칼날이 한쪽으로 나 있으면 도이고 양쪽으로 있으면 검으로 분류하는 게 원칙이지만, 예외적으로 칼날의 방향과는 상관 없이 刀에 대비하여 손잡이가 짧고 날이 긴 칼도 검이라고 한다.[17] 한국은 양날, 외날 구분 없이 도와 검이란 한자를 섞어쓰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칼의 종류에 양날인 츠루기(剣)와 한쪽 날만 있는 카타나(刀)를 구별하며(원피스에서는 모두 카타나가 사용되었다.), 칼의 기술이나 종목, 정신 등 비 물질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에 대해서는 카타나를 사용하더라도 켄이라 말하며 剣의 한자를 사용한다.[18] 영어에서는 형상보다는 용도에 중점을 두어 사실상 전투용으로 사용되는 긴 칼은 모두 Sword라고 지칭한다. 카타나 역시 Samurai Sword라고 지칭하는 등. 다만 세이버나 카타나와 같이 외날의 긴 도검이 소개된 역사가 짧은 편에 속하고 도검이 신분의 상징으로 고착되면서 양날검=Sword로 굳어진 것이기에 소드라고 하면 양날검을 먼저 떠올린다. 짧은 칼의 경우 전투용으로 쓰이는 것은 Dagger, 도구로써 사용되는 것은 Knife라는 용어상의 구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지칭하고자 할 때엔 날붙이라는 의미에서 Blade나 Edged Weapon이라고 칭한다. 독일어에서는 마찬가지로 양날을 가진 검은 Schwert, 그 외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도구로서의 날붙이는 Messer라고 칭했는데 전투용으로 사용되기 위해 길이를 늘리고 대형화한 경우에는 Langen Messer나 Krieg Messer로 불렀고 그냥 메서라고 부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형상이 아닌 용도에 따라 기준을 두었기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刀에 대응하는 한 단어짜리 말을 찾기 힘들다. 굳이 대입시켜보자면 Knife, Messer 등은 刀, Sword, Schwert, Epee 등은 劍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확히 대응되지는 않다. 애초에 刀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도검류에서 한쪽에만 칼날이 나 있는 무기 뿐만 아니라 도검류의 날을 붙인 폴암까지 포함하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4 역사적 쓰임새

4.1 아시아

중국에서 창, 봉, 대포 등과 함께 주요 병장기로 사용되었다. 고대부터 오나라의 간장, 월나라의 풍호자, 초나라의 구치자 등 검을 만드는 장인들이 유명하였으며 실제로 왕들의 이름을 새긴 검들도 출토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다양한 길이의 청동검과 철제 검이 출토되고 있는데 철제 검은 상당히 긴 편인 80 ~ 140cm에 이르며 청동제 검도 70 ~ 100cm에 이르는 긴 칼이 상당히 많이 제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청동검도 대량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중국검의 특징은 칼등은 유연성, 칼날은 위력을 강조한다는 점인데 이는 청동검으로 쇠로 된 보호구를 가진 사람이나 말을 공격하기 위함이다.

물론 한나라 시대 이후 군대에서 사용하는 주요 병장기에서는 도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지만 강소성, 석강성, 안휘성, 호북성, 하남성 등은 강이나 호수 혹은 습지 등이 많은 지형이어서 전차나 기병이 다니기에 불편한 길이 많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보병이나 수군의 무장을 위하여 우수한 검이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한나라 이후 검이 몰락하게 된 원인은 흉노족 때문인데 기병끼리 싸울 경우 찌르는 것보다 베는 것이 더 쉽고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양날을 가진 칼은 칼날을 두껍게 만들기가 힘든데 당시 흉노족은 그런 기술이 전무했기 때문에 외날의 도를 만들어서 칼날을 두껍게 하면 흉노족이 사용하는 검을 쉽게 부러뜨릴 수 있었다고 한다. 실용성에 있어서는 도가 더 나았지만 그래도 문화적인 이유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참마검 같은 병기가 오랫동안 사용되게 된다. 한나라 이후 전쟁에서 사용되는 병기로의 검은 쇠퇴하였지만 한나라 이후 의장용으로 검을 사용하는 풍습은 남아서 대련용이나 행사용 검술은 계속 발전을 하게 되며 대략적인 움직임은 다음에서 볼 수 있다. 동영상1, 동영상2

일본에서는 고대에 양날검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후 독자적인 일본도를 발전시켜나갔다. 이렇게 외날인 도가 발전해가면서 일본에서 양날검은 점차 의례용의 신기로 발전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천황삼종신기칠지도[19]이다.

한국의 경우, 과거 청동기 시대에만 해도 다른 북방민족들 처럼 양날인 청동검을 썼으나, 이후 환두대도 같은 직선형 외날검이 유행하였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공성전/수성전이 많았기 때문에, 도검류보단 이 발달했다. 그래서 검은 보조무기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길이도 굉장히 짧았다. 고려 중기 이후 직선형 환두대도는 점점 사라지고 몽골 기병도의 영향을 받은 곡선형 환도가 주력 무기로 도입되었지만, 길이가 짧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근접전시 불리하다는 점 때문에 임진왜란때 일본도의 영향을 받아 잠깐 긴 칼이 등장하였으나 다시 활과 조총등을 쓰기 위하여 전장에서 쓰이는 것은 짧은 칼들로 돌아갔다.

중근동이나 인도와 같이 중세시대에 위세를 떨쳤던 지역들에서도 역시 강력한 검이 사용되었다. 특히 다마스커스강이라는 특수한 철강을 사용하여, 매우 우수한 품질의 검을 생산하였다. 다마스커스 소드라 불린 이 검들은 소재의 뛰어남 때문에 이가 빠지는 경우도 적었고, 날이 유연하여 잘 부러지지 않았다.

흔히 중동의 칼이라고 하면 신월도라고 불리는 곡률이 매우 큰 외날 도를 떠올리지만, 사실 아랍을 비롯한 중동지역에선 전통적으로 서양과 비슷한 직선형의 도검, 샤이프을 사용했다. 곡도의 도입은 몽골 침략 이후에 진행되었으며, 이때부터 이슬람의 도검이라고 하면 흔히 연상시킬 완만하게 휘어진 시미터샴쉬르, 킬리지, 탈와르 등이 나오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전통 도검을 만드는 장인들은 완벽하게 직선형의 양날검의 형상을 띈 도검을 만들며 이를 시미터 혹은 샤이프 라고 부른다. 사실 샴쉬르나 킬리지 같은 곡도를 가리키는 단어도, 해당 지역에서 '장검'을 의미하는 일반명사와 비슷해서 딱히 곡도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4.2 유럽

유럽은 아시아권과는 달리 양날검이 대세를 이루었다. 이는 아시아권에 비해 중무장을 중요시한 문화적 특성 때문이다. 초기 체인메일은 그 유연한 구조적 특성상 칼에 베이는 것은 막아도, 힘껏 때리면 충격 자체는 들어오고(이를 막기 위해 갬버슨을 밑에 걸치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그 충격에 체인이 끊어지는 일이 빈번했다. 그래서 검의 베기로도 갑옷을 상대하려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세 후기에 등장한 판금갑옷은 칼을 완벽하게 튕겨낸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판금으로 덮이지 않은 부위나 틈새를 노려서 찌르거나, 아예 둔기 등으로 두들겨 패는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시대가 흐를수록 칼날은 점점 좁아져서 찌르기에 특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검술도 이에 맞춰 변화해서, 하프소딩같은 갑옷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기술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처럼 이런 변화도 방어구가 도검을 압도하는 건 막지 못했다. 핼버드 같은 폴암레슬링이 발전했다.

보조 무기라는 관점에서 도검은 가장 뛰어난 휴대성과 조작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루기 간편했다. 저지력은 도끼나 철퇴같은 것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살상력이 뛰어난 편이고, 무게중심이 머리 쪽으로 치우친 도끼같은 무기들에 비해 무게중심이 가까이 있어서 훨씬 조작성이 높다.[20] 특히나 하프소딩이 발전한 이후로는 롱소드워해머처럼 응용하는 기법이 생겨나게 되었다.[1]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조 무기로 도검이 가장 선호되었다.

하지만 이런 검과 검술도 총의 시대에 들어선 퇴보하기 시작했다. 세이버브로드 소드, 레이피어, 행어 등의 한손검이 대세를 차지했다. 이런 한손검들은 어디까지나 화기를 보조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검술 자체의 구성적인 측면에서 브로드소드 검술이나 세이버 검술 같은 근세, 근대의 검술은 중세 검술보다 훨씬 단순화되고 퇴보했다. 레이피어 검술의 후계인 스몰소드 검술은 그런 퇴보가 두드러진 예제이며, 현대 펜싱은 그 퇴보한 스몰소드에서 더더욱 스포츠화하면서 실제 진검의 검술과는 동떨어진 형태로 퇴보한다.

더군다나 검술의 전투적인 효용은 의 전방에 장착하는 총검의 발명으로 완전히 정지된다. 총이 창, 검의 역할까지 하게 되자 다른 무장들은 전혀 필요 없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보조무기로서의 군용 검은 의미가 없어지면서 검으로 대표되는 냉병기의 시대는 저물고 만다.

4.3 현대

현재는 병기로서의 검은 거의(단검, 단도는 생존) 멸종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원래 검을 쓰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소총이나 대포 등 군사용 무기로서 칼보다 훨씬 유용하면서도 강력한 위력을 가진 병기들이 널린 현대전에는 검을 쓸 일이 거의 없다.[21]

최근의 전쟁 양상에서는 길고 무겁고 취급이 불편한 검은 사장되고 대신에 휴대가 간편하고 견고하며 다용도로 사용 가능한 나이프대거류의 무장만이 드물게 사용된다. 그마저도 주무장이 아닌 보조무기에 불과하며 초근거리에서의 전투, 또는 총검으로 하는 전투에는 이 정도 길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군용 대검은 대부분의 경우 외날인데, 칼등 쪽에 깡통 따개를 비롯하여 각종 도구로 쓸만한 부분이 붙어나오기 때문이다. 현대 군대에 남은 큰 칼은 정글도 정도.

따라서 무기로서의 실용성이 없어진 검이라 현재는 예술품이나 상징적인 의미로서 계속 명맥을 유지해오게 된다.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전투에서 검을 쓸일이 없다시피 하는 현대 군대이지만, 의장용으로는 여전히 세이버 같은 검을 쓰고 있으며, 한국도 장군으로 진급하면 지휘권을 준다는 의미로 직접 준/소장 때는 국방부 장관, 중장/대장 때는 대통령이 검을 건네준다. 80년도에 삼정도란 검을 만들어 이런 용도로 쓰다가 07년 이후부터 사인검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전통처럼 철제로 검을 만들었지만, 장군들이 관리를 잘 하지 않아 벌겋게 녹이 스는 경우가 많아 후에는 스테인리스강으로 지휘용 검을 만들어 준다.

5 도검과 다른 냉병기간 비교

문서 참고

6 도검의 장점, 한계점에 대한 고찰

문서 참고

7 도검의 개념과 명칭

  • POB/COG - Point of Balance / Center of gravity의 약자. 즉 무게중심이다. 무게중심은 보통 가드를 기준으로 몇cm떨어졌다를 기준으로 삼으며, POB:4"라면 가드에서 4인치 떨어진 지점에 무게중심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해당 지점에 펜 등을 대고 도검을 올리면 어느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수평을 유지하는 지점이 바로 무게중심 지점.
무게중심은 아주 중요한데 너무 칼끝으로 치우치면 베기의 위력이 대단해지지만 찌르기가 부정확해지고 컨트롤이 어려워진다. 같은 무게라도 제어하기가 매우 힘이 들게 되는 것. 반대로 가드 쪽으로 너무 치우치면 컨트롤하는데는 매우 큰 도움이 되지만 베기의 위력이 크게 추락하고 찌르기도 오히려 잘 안 맞게 된다.[22] 때문에 과연 어떠한 무게중심이 가장 알맞는가에 대한 관점이 다 다르고 도검의 무게중심도 종류에 따라 대부분 다르다.
중세 서양 도검들은 POB가 5인치 안쪽에 위치한 것을 이상적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전체길이가 130cm에 달하는 롱소드도 무게중심은 3~5인치에 이를 정도이다. 이는 한손도검인 아밍 소드도 동일. 르네상스 시대의 사이드 소드도 마찬가지였으나, 가드가 복잡하고 큰 경우 POB가 무려 2~3인치대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브로드소드도 거대한 바스켓힐트를 가져서 무게중심은 3~4인치 정도로 길이나 무게에 비해 컨트롤이 편하다. 레이피어스몰소드 같은 종류는 찌르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므로 역시 1~4인치 정도의 POB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이버는 폼멜이 없고 칼날이 길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POB가 5~7인치에 위치했으며, 이 점음 동종의 기병용 베기용 도검인 샴쉬르탈와르등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따라 베기 성능이 뛰어났으나 사이드 소드와 같은 신컨은 불가능했다. 대체적으로 베기 궤도를 따라 한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방식 또는 무게중심을 이용하여 방향을 바꾸는 요령으로 제어했다. 다만 근대 세이버의 경우는 칼날이 좁아지고 가드가 커지면서 무게중심이 5인치 안쪽으로 들어와 컨트롤이 매우 편한 축에 속했다.[23]
일본도는 천차만별이되 평균적으로 6인치대의 POB를 가진다. 비교적 짧은 날길이(26~30인치)를 가지고 날길이에 비해 손잡이가 긴(26~33cm)데도 불구하고 POB가 전반적으로 전방에 치우쳐 있다. 실제로 한손으로 쓰기는 쉽지 않은 편이라고 하나, 처음부터 양손으로 사용할 것을 전제로 디자인된 도검이기 때문에 큰 불만은 나오지는 않는다.
개중에는 어떤 게 좋은 무게중심이라느니 잡아보면 그 차이를 안다느니 하면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수치는 내놓지 않으면서 경력부심이 쩌는 양반들도 있는데, 어떤 무게중심이 맞는가는 각 도검들마다 평균이 틀리고 마스터들도 같은 도검을 쓰면서 견해가 다 달랐다. POB 9인치 같은 누가 봐도 밸런스막장인 물건이 아니라면 가장 명확하고 객관적인 POB 기준을 숙지하고 역사적으로 좋다고 여겨진 범주 내에서 각자에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택하는 것이 옳다.
  • COP - Center of Percussion의 약자. 도검으로 베었을 때 가장 강력한 베기 성능과 충격력을 내는 지점이며, 보통 칼끝에서 1/3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퍼포먼스상에서 의미를 가질 뿐 검술적 원리와는 상관이 없다. 시참을 전문으로 하는 유파나 단체에서 경험적으로 시참이 가장 잘 되는 부위인 COP지점을 본능적으로 찾아내서 이 부분으로 주로 베는데, 고류 검술 유파에서는 칼끝에서 3촌(9cm)부분만을 이용해서 베라고 가르친다. 충분히 거리를 벌리는 것이 맞고 시참 전문 유파에서 하는 대로 하면 그만큼 상대에게 접근하게 되므로 죽음을 자처한다는 것.[24]

8 도검의 패용법

도검을 패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 패용하기 - 칼을 차는 것을 편의삼아 패용한다고 통칭하지만 패용은 허리띠에 끈을 매달아 늘어트리듯이 차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벨트에 길고 짧은 끈을 매달아 칼날을 아래쪽으로, 자루가 비스듬히 위로 올라오게 차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일본의 타치는 수평으로 패용하고, 세이버는 자루가 거의 수직으로 서며 말에서 내리면 땅에 질질 끌리게 만들어놓는 등 방식이 다양했다.
벨트에서 끈이 내려오는 것은 주로 2개의 끈이 내려오는 것이 가장 많았지만 근대 프로이센이나 일본육군에서 채용한 1-hanger 방식도 있었고,[25] 롱소드나 군용 예식 스몰소드에서 채용했던 3-hanger 방식도 있었다.[26]
  • 보조 도구를 사용 - 허리띠와 연결되는 보조 도구를 사용하여 칼을 차는 것. 유럽에서는 프록(Frog)이라 불리는 가죽제 주머니 같은 것이 있어서, 여기에 칼집을 끼워 고정함으로써 착용이 가능했다. 수직으로 세우거나 비스듬하게 차는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일본의 타치다이(太刀帶)도 비슷한 종류이지만 이쪽은 수평으로 차게 되고 끈으로 칼집을 잡아준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환도 또한 띠돈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허리띠에 착용한다 또한 환도와 같이 동개 일습도 같이 착용한다. 이러한 보조 도구들은 걷거나 뛸 때 칼이 덜 요동치고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그 점이 오히려 독이 되어 발도시 칼집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 뻣뻣해서 불편하기 짝이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유럽에서는 커틀러스총검등의 비교적 짧은 도검들에 주로 사용되었다.
  • 어깨에 둘러메기 - 핸드백처럼 어깨에 매는 끈에 칼을 매달아 차는 것. Baldric이라 불리는 방식이며 주로 스코틀랜드 브로드소드가 이 스타일로 차는 것으로 유명하다. 허리띠를 풀고 칼을 슬링에서 빼야 하는 허리 패용법보다 간편하게 그냥 들어서 걸어놓기만 하면 끝.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근대 일본의 내전이었던 무진전쟁에서는 등에 메지 않으면 어깨에 둘러서 메는 식으로 카타나를 착용하고 다녔다. 일반 사족들은 천으로 묶어 메고 다녔지만 고급 사족들은 유럽에서 수입한 가죽제 Baldric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 때에는 카타나라도 칼날이 아래로 가게 착용했다.
  • 허리띠에 꽂기 - 주로 우치가타나가 유명하지만 의외로 19세기 시크교도들의 탈와르착용법이라든가 예니체리야타간의 패용법 등등 세계적으로 의외로 많이 보이는 착용법이다. 단검을 허리띠에 끼워 다니는 것은 문화권을 가리지 않을 정도. 별도의 장비가 필요없고 신속하게 착용 해제를 할 수 있어 간편하기에는 다른 방식보다 앞서지만 장검의 경우 칼이 수직으로 서버리려는 경향이 있고, 다른 방식보다 칼자루가 상체 쪽으로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매우 불편하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특히 손잡이가 긴 일본도류는 쥐약. 일본에서는 전근대 전쟁터에서는 끈이나 타치다이(太刀帶)같은 보조 용구를 써서 허리에 수평으로 패용하거나 갑옷의 쿠사즈리(스커트)밑으로 들어가게 끼워서 과도하게 올라오지 않도록 조치했으며, 근대 일본 내전에서는 천으로 묶어서 어깨에 둘러메거나, 등짝에 메는 방식으로 패용하였다.
  • 등짝에 메기 - 의외로 전근대에는 대중적이지 않은 방식이었고, 근대에 들어와서 오히려 많이 쓰였다. 흔히 닌자의 방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닌자가 닌자전용의 도검을 착용하거나 등에 맸다는 것은 현대 매스미디어가 확대재생산한 이미지일 뿐이며 역사적 근거가 없다.[27] 일본에서는 노다치와 같은 도검을 등에 차고 다녔다고는 하나 운반의 의미이며 빠른 발도와 납도와는 관계가 없었다. 롱소드나 카타나 등의 길이를 생각해보면, 등에 맨 상태에서는 아예 뽑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노다치는 폴암류에 해당한다. 즉 등짝에 메는 방식은 다른 무기가 많이 사용되어 도검에 중점을 둘 이유가 없는 환경에서 운반을 주목적으로 상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식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무진전쟁을 비롯한 근대 일본의 내전이나, 2차 대전항일대도와 같은 화력전 위주의 전쟁 형태에서 의외의 경우를 위해 도검을 소지하던 경우였다. 예외가 있는데 태국의 Dha같은 도검은 등에 메는 경우도 일반적이었다.
  • 소환하기 - 당연히 실존하지는 않는 패용법이며, 주로 판타지계나 능력자배틀물에서 나오는 방식. 마법으로 무기를 소환하거나 마력으로 도검을 구축하는 방식의 패용법. 주로 검을 그리기 귀찮거나 어반 판타지같이 도검을 대놓고 들고다닐 수 없는 배경설정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9 관련 항목

  1. 만철도,일본도항목 참조. 군도의 조법 1944년판 매뉴얼 3부에는 시참하다 휘어진 칼을 손으로 도로 펴는 요령도 기술되어 있고, 일본군 북지나방면군 군속으로 군도수리반을 이끌었던 나루세 칸지는 자신의 저서 「싸우는 일본도」등에서 쉽게 휘어지는 일본도들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2. 써레이션은 톱날을 의미한다. 빵칼이나 스테이크 나이프의 날을 연상하자.
  3. 물론 롱소드에도 날이 넓은 종류가 함께 존재했다.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말.
  4. 삼각도는 국내 검도단체에서 퍼포먼스용으로 만든 것으로, 날 전체가 이등변삼각형 단면을 가지고 엣지각을 극단적으로 좁게 주어 짚단을 베어도 제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는 무협지적 퍼포먼스를 시연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다. 베기용 도검으로 분류되는 것은 이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잘 베어지도록 프로파일 테이퍼가 적고 디스탈 테이퍼가 높은 편이다. 일본의 나카무라류도 비슷한 스타일의 칼을 쓴다. 시참전문 유파라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
  5. 이걸 무슨 기술인 양 국내에서는 신성시했는데, 원래는 곡도의 특성상 당연히 발생하는 현상이다.
  6. 덩치큰 말과 병사로 구성되었고, 갑옷은 입지 않았다.
  7. 우리나라 전통 검인 환도의 이 부품은 방패라고 한다.
  8.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면 극단적인 예로 망치를 상상해보자. 무게중심이 머리에 있는 망치는 조절하기가 힘들지만, 망치를 거꾸로 들면 무게중심이 밑으로 가게되면서 자유자재로 휘두를수 있을 것이다.
  9. 무기의 분실이나 파괴, 탈취는 물론, 지형적/환경적으로 장병기가 활약할 수 없는 경우 포함
  10. 완전채용되지 않은 이유는 비싸서... 은보다도 비쌌다던 19세기 초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철금속들은 항상 철보다 비싸다.
  11. 일본도 칼날 뿌리쪽에 붙어 있는 경금속 부분. 칼집 내부에 맞물려 잘 빠지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12. 루텔제품만 예외.
  13. 개당 500원도 안하는 알루미늄 4mm짜리조차 사람이 휘두르는 도검으로는 끊기 힘들다.
  14. 자물쇠나 자전거/보안 항목에서는 절단기만 있어도 쉽게 끊을 수 있는 호구 중의 상호구로 언급되었고 실제로도 그렇긴 하지만, 사람 손에 들린 칼자루 끝에 붙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물건이라면 케이블 자물쇠가 아니라 바인더 끈 하나만 묶어놔도 그걸 노리고 잘라내는 것은 거의 묘기에 가까운 경지다. 뭣하면 이탈방지끈처럼 손목에 걸고 사용해도 무방.
  15. 금속 파이프를 넣어 핀으로 쓴 것. 파이프 구멍을 통해 끈을 달거나 할 수도 있다.
  16. 일본도의 메쿠기(대나무못)구멍과 같다.
  17. 폴암의 일종인 삼첨양인도의 경우 날이 양쪽으로 서 있지만 손잡이가 길고 무거운 날이 달려있어 도로 분류한다.
  18. 즉, 요즈음 우리나라 장르소설에 검과 도를 구분하는 것은 일본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19. 이 중 칠지도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전해준 물건.
  20. 다만 다루기는 쉬워도 완벽하게 숙달하기 가장 어려운 무기 중 하나가 칼이기도 하다.
  21. 칼들고 돌격하는거랑, 총들고 잘 조준해서 쏘는것 중, 어느것이 더 유리한지는 이미 나와있다. 게다가 어느 한 영화에서도 이를 증명했다.
  22. 전자는 칼끝이 원하는 지점보다 밑으로 처지고, 후자는 원하는 지점보다 위로 올라가게 된다.
  23. 손목만으로 컨트롤이 가능했다. 자세한 개념은 세이버 검술참조.
  24. 직심영류 17대 종가인 아키요시 선생은 대나무 베기를 촬영한 영상에서 칼끝 세치로 대나무를 자유자재로 베는 모습과 함께 해당 원리를 직접 설명한 바도 있다.
  25. 고리가 칼집에 달랑 하나 달렸고, 벨트에서도 슬링이 하나만 내려온다. 엄청나게 흔들리고 난리날 것 같지만 실제론 2슬링을 쓰더라도 꽤 길게 내리기 때문에 요동치는 건 큰 차이가 없었다. 사실 원 행어가 등장한 것도 어차피 흔들리는데 굳이 링과 슬링을 2개나 달아 자원낭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구실이었다. 일본은 프로이센 유학파들이 돌아오면서 독일식 세이버의 개념도 함께 가지고 왔고, 이들이 군개혁을 주도하면서 프랑스식의 세이버도 독일식으로 바꿔치우는데 이것이 19식이다. 이때부터 일본도 패용고리가 1개밖에 없는 전통을 유지하게 된다. 다만 이것은 육군 한정. 일본해군은 끝까지 영국해군식의 투 행어 방식을 고집했다.
  26. 투 행어처럼 칼등쪽에 2개의 링이 있고, 앞부분 링 반대편에 제3의 링이 있다. 칼등쪽 2개의 링은 보통 세이버와 비슷하게 패용하지만, 3번째 링은 몸 앞쪽에서 3번째 슬링이 와서 고정하는 방식. 과도하게 흔들린다는 일반 패용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해준다. 중세 롱소드의 패용법 중에도 이런 방식이 있었다.
  27. 닌자는 오히려 첩보원에 가까우며 야행복이 아닌 일반 평범한 사람들처럼 꾸미고 다녔다. 현대적 닌자의 환상에 관해서는 인술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