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龍 (1936 ~ 1985)
대만의 무협소설 작가. 고룡은 필명으로 본명은 웅요화(熊耀華)라고 한다. 김용, 양우생과 함께 신파무협소설의 거장으로 꼽힌다. 와룡생과 더불어 한국 창작무협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이다. 와룡생이 정파 - 사파를 구분짓는 세계관과 와룡생이라는 필명으로 많은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면 고룡은 그 밖의 다른 모든 요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한국 무협의 계보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고룡 - 야설록 - 서효원 - 용대운 - 좌백이라고 봐도 좋다. 특유의 시대를 파악하기 힘든 배경에 하드보일드한 분위기는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 설명
정확한 출생년도와 출생지는 이설이 있으나, 유년기를 홍콩에서 보내고 소년 시절 대만으로 이주했다.
본래 나름대로 넉넉한 형편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부모가 이혼하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정식 문단 데뷔는 고등학교 때였으며, 작품은 무협이 아닌 순문학이었다. 어렵사리 담강(淡江)대학에 진학해 외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졸업과 군제대 이후에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1960년 창궁신검(蒼穹神剣)을 시작으로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1] 그래서 초기에는 고룡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서 무협 소설 쓴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초기 작풍은 김용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정통 무협이었으나, 아무런 반향도 얻지 못하자 김용 외에도 와룡생, 제갈청운 등 유명작가의 작품을 대필하면서 암중모색을 거듭한 끝에 점점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1964년 완화세검록(浣花洗劍錄)을 시작으로 연이어 대작을 발표하면서 인기 작가로 거듭난 고룡은 스승을 구해서 서법을 배울만큼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죽을 때 까지 무협소설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갖고 무협 장르를 순문학과 동등한 평가를 받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절필을 선언하고 무협소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사실상 희미해져버린 김용과 달리 무협소설가들 사이에서 지금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호방한 성품에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고, 술을 목숨처럼 아끼고 좋아한 사람으로, '씀씀이가 헤퍼서 매일같이 친구를 초대하는 바람에 무협소설로 벌어들인 많은 돈이 거덜 날 지경'이었고 결혼과 이혼을 네 차례 거듭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결국 1977년, 간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1985년, 간경변으로 인한 동맥파열로 4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슬프게도 부인과 자식들 그리고 친구들 어느 누구도 곁을 지키지 않아서 장례식 때는 술 친구였던 동료 작가 예광[2]이 그를 기리며 무덤에 술을 부어줬다고 한다.
이름난 선비 집안에 태어나 풍부한 경륜을 쌓아왔던 김용, 양우생과 달리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 돈을 벌며 어렵게 성장했기 때문에 학식과 문장의 기교에 있어서는 두 사람에 미치지 못하지만, 대신 파란만장한 인생의 경험과 왕성한 탐구심 덕분에 작가로서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풍은 서양문학과 전통문학의 문체가 혼재된 기존 무협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고 김용도 "고룡이야말로 협객에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평가할만큼 고룡을 높게 평가하였다. "자신이 평생 읽은 책을 합치면 도서관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라고 자랑할 정도로 고룡은 김용 못지 않은 엄청난 독서광으로도 유명했다. 또한 김용이 쓴 작품에 영향을 준 작품들까지 날카롭게 분석할 정도로 문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생전에 많은 수필을 쓰며 탁월한 수준의 교양을 드러내보이기도 했다.
죽고 나서 저작권이 아주 개판이다(...) 중국의 저작권 인식이 개판인 것도 크지만 고룡의 작품은 인기가 대단하고, 여러 차례 미디어믹스가 됐기 때문에 금전적 가치가 큰데다, 고룡 자신이 판권이나 금전 관리에 별반 관심도 없었고 여자 관계가 워낙 복잡한 상태에서 갑자기 요절을 해버렸으니 싸움이 날 수 밖에... 초기에는 연인 등 세 명이 저작권을 주장하다가 딸내미에 서자를 자칭하는 작자까지 등장해서 지금까지 저작권 분쟁 중(...). 이런 영향으로 중국의 웹에선 고룡의 모든 작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에 나온 번역본도 전부 해적판이라고 한다. 당장 현지에서도 누가 주인인지 안 정해져서 정식으로 출판 계약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니 (...)
2 작품의 특징
짧고 간결한 하드보일드풍 문체와, 강렬한 시각적 묘사가 특징이다. 덕분에 고룡 작품은 손쉽게 TV 드라마와 영화에 접목될 수 있었다. 그 중 초원 감독이 고룡의 작품을 가장 많이 영화로 만들었고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유성호접검과 백옥노호가 걸작으로 손꼽힌다. 백옥노호의 시나리오는 아예 고룡이 직접 집필했다. 추리무협이란 새로운 쟝르를 개척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대표작인 초류향이나 육소봉은 '당대의 고수이자 영리하기로 소문난 주인공이 무림의 괴사건을 풀어내는 옴니버스 스토리'이다. 보통 본격적인 영상매체 시대로 들어서는 문화적 흐름에 걸맞게 영화적인 기법을 많이 따랐다고 하지만, 이야기를 이루는 사건의 구성이나 전개는 되려 요재지이와 같은 중국전통기담물의 영향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정도로 주로 다루는 테마는 사나이의 우정. 강호의 정의나 애정 문제 따위는 아웃오브안중인 주인공이어도, 사나이 우정이 걸린 일에는 목숨 걸고 달려든다. 또한 상당수 무협소설은 성장소설 형식을 띄는 데에 반해, 고룡 작품은 시작부터 주인공의 사람 됨됨이와 무공이 이미 완성된 상태로 등장한다. 그가 그리는 남녀의 애정은 다른 작가들의 무협소설과 달리 상당히 냉소적인 색채가 강하고. 도리어 친구와의 우정에서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아마도 여성과의 관계에서 그다지 원만하지 못한 경험들을 맛보았고, 그런만큼 친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우정을 더욱 갈망했던 삶과 맞닿아 있다고 보여진다. 남녀간의 순진무구한 애정의 세계를 표현하기를 좋아하고, 친구간의 간담상조가 이상하리만큼 적었던 김용의 작품과는 판이하게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의 한 평론가는 김용의 작품에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동심의 세계가 있고, 고룡의 작품에는 세상의 갖은 어둠과 함정 사이를 걷는 어른들의 비정한 세계가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여느 무협작가와 달리 격투 장면을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3] 대신 반복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가, 결정적인 순간 터뜨려서 카타르시스를 끌어내는 기법이 능숙하다. 때문에 인상 깊은 시츄에이션은 많지만, 막상 유명한 무공이나 초식명 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사람이 죽고 살아남는 극한 결투의 상황임에도 전체적으로 상당히 건조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화려한 초식의 공방보다는 단판승을 추구하는 편이라서 그런지 암기에 대한 묘사가 풍부하고 평가도 후하다. 실제로 그의 수필집에서도 오늘날의 권총 등의 화기도 그 사용방식이 암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평하며, 오리지 암기로 천하에 이름을 남긴 사천당가야말로 독보적인 문파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암기 뿐 아니라 자객에 대한 묘사도 풍부한 편이며, 이는 후대에 수많은 자객물들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다정검객무정검의 주인공 이심환은 아예 '비도탈명'이라 불리는 암기의 달인이다.[4]
무협에 있어서 인정의 묘사와 통찰을 매우 중시하는 대표적인 작가로, 왕도려, 김용의 계보를 잇고 있다. 전개 스타일이나 설정 등등은 김용과 판이하게 달라서 얼핏 연결점을 찾기 어렵지만, 혈투보다 다양한 인간군상과 만나 겪는 희노애락을 치밀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보면 분명 김용의 사상적인 부분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다정검객무정검의 경우는 아예 무림지사보다 정 때문에 계속해서 방황하는 인간의 고뇌에 포커스를 둔 작품으로, 김용의 신조협려나 연성결의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
3 주요 작품 목록
고룡은 와룡생과 마찬가지로 위작 논란이 많은 작가이다. 대만과 국내에서 출판할 때 이름을 도용한 작품도 있지만, 고룡 자신이 남에게 시놉시스만 써주거나 공저한 작품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0년 이후엔 영화 극본과 스토리[5]을 쓰기도 했는데 그가 참여한 영화 작품을 소설로 만들어서(...) 출판한 경우도 있으니 주의. 따라서 여기에 모든 작품을 기술하진 않고, 유명한 작품만 골라 싣는다.
위작 일람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 이름(원제 연도)
- 대기영웅전(大旗英雄傳 1963)
- 완화세검록(浣花洗劍錄 1964) / 고룡 최초의 히트작. 국내에서는 완화세검으로 출판
- 명검풍류(名劍風流 1965) [6] / 참고로 국내에서 출판될때는 이미 개나 소나 고룡 책 찍고, 진본이나 위작이나 고룡 이름 달고 나오고 있어서, 아예 저자를 제갈청운으로 바꾸는 페이크를 썼다. 뭥미...
- 무림외사(武林外史 1966)[7]
- 절대쌍교(絶代雙驕 1966/ 고룡의 초기 대표작으로 초류향과 함께 대중소설로서의 재미가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인기도 높아서 영화, 만화, 드라마로도 여러차례 제작되었다. 무림외사의 주인공 심랑의 이름이 작중 언급된다.
- 초류향(楚留香) 시리즈 / 코난 도일 등의 서양 추리소설의 영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고룡의 작품들 가운데서 특히 인기가 높다.
- 초류향전기
- 혈해표향(血海飄香 1967)
- 대사막 (大沙漠 1968)
- 화미조 (畵眉鳥 1969)
- 초류향신전
- 차시환혼 (借屍還魂 1970)
- 편복전기 (蝙蝠傳奇 1971)
- 도화전기 (桃花傳奇 1972) [8]
- 신월전기 (新月傳奇 1978)
- 오야난화 (午夜蘭花 1979)
- 초류향전기
- 소이비도(小李飛刀) 시리즈 / 이심환(李尋歡)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정검객무정검에서 세계관이 공유되는 작품들로 다정검객무정검 -> 변성랑자 -> 구월응비 -> 천애명월도 ->비도우견비도 순으로 연대가 진행된다.
- 다정검객무정검(多情劍客無情劍 1968)[9] / 인정을 치밀하게 다루는 고룡의 스타일이 가장 강하게 반영된 작품으로, 그의 모든 작품들 가운데서 걸작으로 손꼽는 이들이 많다.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참고로 국내에서 처음 출판될 때 초류향 시리즈의 인기가 높아서 주인공 이름이 이심환(李尋歡)에서 '초류빈'으로 창씨개명(...)당했다. 이심환 뿐만 아니라 주요 등장 인물들의 이름도 강제개명 당했는데, 아비는 낭천으로, 임선아는 설소하 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 번역판은 개판으로 악명 높은데 결말 부분은 번역자가 원작에 없는 이야기를 자기가 창작해서 넣어버렸다. (...) 3년 후에 아비의 새 애인이 등장하고 창녀가 된 임선아와 아비가 대면하는 뒷부분은 모두 역자의 창작이다. 물론 원작에서 아비가 마침내 임선아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린 후 임선아가 창녀가 되었다고 암시하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참고로 구월응비에 임선아의 딸 상관소선[10][11]이 등장한다.[12]
- 변성랑자(邊城浪子 1972)
- 구월응비(九月鷹飛 1973)
- 천애명월도(天涯・明月・刀 1974)
- 비도우견비도(飛刀,又見飛刀 1981)
- 소십일랑(蕭十一郎 1969)
- 환락영웅(歡樂英雄 1971) /
- 유성호접검(流星・蝴蝶・劍 1971 / 1976년에 초원 감독이 영화화하였다. 고룡 작품을 영화한 인물 가운데 단연 초원 감독이 유명한데 특히 유성호접검(1976)은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극초반에 노출씬이 갑톡튀해서 깜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 칠종무기(七種武器) 시리즈 / 칠종무기이긴 하지만 정작 6번째 작품인 이별구에서 끝내버렸다. 1973년작 칠살수(七殺手)가 마지막 7번째 칠종무기로 분류되기도 한다.
- 장생검(長生劍 1974)
- 공작령(孔雀翎 1974) - 대필 작품
- 벽옥도(碧玉刀 1974)
- 다정환(多情環 1974)
- 패왕창(覇王槍 1975)
- 이별구(離別鉤 1978)
- 삼소야적검(三少爺的劍 1975)
- 백옥노호(白玉老虎 1976) - 1977년에 초원 감독이 영화화. 유성호접검과 함께 초원이 감독한 고룡 원작 영화들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백옥노호는 고룡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이다.
- 원월만도(圓月彎刀 1976) / 건강상의 문재로 후반부는 사마자연이 대필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삼소야적검의 주인공 사효봉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또 그의 딸 사소옥이 악녀로 등장하여 삼소야적검과 시대배경을 공유하지만, 다정검객무정검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다정검객무정검의 등장인물인 용소운과 곽숭양의 후손이 직접 등장하기 때문에 다정검객무정검과도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평론가들이 분류하는 소이비도 계열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 육소봉(陸小鳳) 시리즈 /
- 육소봉전기 (陸小鳳傳奇 1976)
- 수화대도 (繡花大盜 1976)
- 결전전후 (決戰前後 1976)
- 은구도방 (銀鉤賭坊 1977)
- 유령산장 (幽靈山莊 1977)
- 봉무구천 (鳳舞九天 1978)
- 검신일소 (劍神一笑 1981)
- 영웅무루 (英雄無泪 1978) / 단권 18장 구성. 국내에는 정발된 번역본이 없고, 텍스트 번역파일과 원작 반영률이 좋은 만화책으로는 쉽게 구할 수 있다. 고룡 특유의 문체와 스토리를 담은 작품으로는 거의 최후의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13]. 역시 몇 번이나 고룡의 작품을 영화화한 초원 감독이 1980년에 영화화한다. 한국에서는 '구사일생'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오우삼의 84년작 영웅무루와 헷갈리는 경우도 많다[14].
- ↑ 엔딩자체는 강렬하지만 진짜로 '소드마스터 야마토'처럼 결말을 맺는것으로 유명하다.
내게 여동생이 있었던것 같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정말 소드마스터 야마토와 비교해서 보면 유사점이 한 두개가 아니다....이쪽이 원조? - ↑ 倪匡. 1935년생. 김용의 천룡팔부의 일부분을 대필한 것으로 유명한 홍콩의 작가. 홍콩의 아이작 아시모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다작을 했다. 김용, 작곡가 故 황점(黃霑), 미식가 채란(蔡瀾)과 함께 홍콩 4대 재자(香港四大才子)로 불린다. 엄청난 골초로도 유명하다. 하루에 5갑을 폈으며 심지어 양치질을 하면서 담배를 피는 습관까지 있었다고 한다.
- ↑ 오죽하면 가장 자세한 묘사 중 하나가 '검이 어느덧 뻗쳐나가 막 소리를 내고 있는 한 곳의 골절(骨節) 위를 찔렀다.' 일까....
- ↑ 작중 제일고수로 불려지던 상관금홍도 비도 한 방에 저승으로 갔다.
- ↑ 정인간도(情人看刀), 검기만천화만루(劍氣滿天花滿摟), 도혼(刀魂), 월야참(月夜斬) 등.
- ↑ 국내에서는 풍진기협으로 출판
- ↑ 국내에서는 애마애검으로 출판
- ↑ 국내에서는 신 초류향으로 출판
- ↑ 국내에서는 영웅도, 소이비도, 비도탈명 으로 출판
- ↑ 아버지는 상관금홍
- ↑ 고룡 월드 통틀어서 초류향의 수모음희, 절대쌍교의 요월궁주와 더불어 최고 여고수이자 먼치킨이다.
- ↑ 엄마가 고룡 월드 통틀어서 최악의 악녀였던지라 역시 악녀로 등장한다.
- ↑ 실제로 이후로 출판한 작품은 고룡이 쓴 것이 아닌 제자의 대필인 경우거나 고룡이 직접 썼음에도 특유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 ↑ '영웅무루(영웅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라는 말 자체가 중화권에서 꽤 흔히 쓰이는 말이기 때문에 동명의 작품이 있다고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