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토바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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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대 덴노
81대82대83대
안토쿠 덴노고토바 덴노츠치미카도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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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鳥羽天皇
일본의 제82대 덴노.

1 생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겐지군에 쫓긴 헤이케 일족이 안도쿠 덴노와 삼종의 신기를 가지고 서일본으로 도망쳐버리자, 그 대신 즉위하게 된 덴노.

관동지방을 장악한 가마쿠라 막부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했으며, 아직 막부의 영향에 들어가지 않았던 서일본 일대
가마쿠라 막부의 제3대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암살되어, 미나모토 씨의 대가 끊기자 대립은 더욱 악화되어 고토바 덴노는 마침내 막부 토벌을 결의하게 된다.

고토바 덴노는 무사들을 모으고, 막부를 토벌하라는 교지를 내렸다. 이로서 막부는 역적이 되었으므로, 관동지방의 무사들도 덴노의 편에 서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미망인인 호조 마사코가 중심이 되어, 가마쿠라 막부는 세력을 수습하고 군대를 결집하여 반격을 시작했다.

결국 단 2개월만에 덴노군은 참패.[1][2] 고토바 덴노는 섬으로 유배되었으며 지금까지 덴노의 조정이 장악하고 있던 서일본 지역의 장원까지 모두 막부측에 빼앗기고, 조정은 완전히 막부에 예속되고 만다. 망했어요

2 칼덕후 덴노

일본도에 관심이 매우 깊은 칼덕후이기도 했다. 고토바 덴노는 전란중에 삼종신기의 하나인 신검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를 잃어버렸다는 점에 큰 죄책감을 가져[3][4] 일본도에 집착하게 되었다. 막부 타도가 한참이던 시기에 이름난 일본도 장인들을 초빙하여 명검의 제작을 주문하였는데, 이 때 만들어진 일본도들은 국화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키쿠이치몬지(菊一文字)라고 불린다. 뿐만 아니라 덴노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자신이 직접 제자가 되어 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가 만든 일본도에도 국화 문양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키쿠고사쿠(菊御作)라고 부른다. 일본 덴노가의 상징이 국화가 된 것은 이로부터 유래한다.

3 백인일수

백인일수
덴지 덴노지토 덴노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야마베노 아카히토사루마루노 다이후
오토모노 야카모치아베노 나카마로기센 법사오노노 코마치세미마루
오노노 다카무라승정 헨조요제이 덴노미나모토노 토오루고코 덴노
아리와라노 유키히라아리와라노 나리히라후지와라노 도시유키이세모토요시 친왕
소세이 법사훈야노 야스히데오에노 치사토스가와라노 미치자네후지와라노 사다카타
후지와라노 다다히라후지와라노 가네스케미나모토노 무네유키오시코치노 미쓰네미부노 다다미네
사카노우에노 고레노리하루미치노 쓰라키기노 도모노리후지와라노 오키카제기노 쓰라유키
기요하라노 후카야부훈야노 아사야스우콘미노모토노 히토시다이라노 가네모리
미부노 다다미기요하라노 모토스케후지와라노 아쓰타다후지와라노 아사타다후지와라노 고레타다
소네노 요시타다에교 법사미나모토노 시게유키오나카토미노 요시노부후지와라노 요시타카
후지와라노 사네카타후지와라노 미치노부후지와라노 미치쓰나의 어머니다카시나노 기시후지와라노 긴토
이즈미 시키부무라사키 시키부다이니노 산미아카조메에몬고시키부노 나이시
이세노 다이후세이 쇼나곤후지와라노 미치마사후지와라노 사다요리사가미
승정 교손스오노 나이시산조 덴노노인 법사료젠 법사
미나모토노 쓰네노부유시 내친왕가의 기이오에노 마사후사미나모토노 도시요리후지와라노 모토토시
후지와라노 다다미치스토쿠 덴노미나모토노 가네마사후지와라노 아키스케다이켄몬인노 호리카와
도쿠다이지 사네사다후지와라노 아쓰요리후지와라노 도시나리후지와라노 기요스케슌에 법사
사이교 법사자쿠렌 법사고카몬인노 벳토쇼쿠시 내친왕인부몬인노 다이후
구조 요시쓰네니조인노 사누키미나모토노 사네토모아스카이 마사쓰네승정 지엔
사이온지 긴쓰네후지와라노 사다이에후지와라노 이에타카고토바 덴노쥰토쿠 덴노
제 99번 고토바인(後鳥羽院)

人もをし 人もうらめし あぢきなく / 世を思ふゆゑに 物思ふ身は
히토모오시 히토모우라메시 아지키나쿠 / 요오오모우유에니 모노오모우미와
사람 가옆고 사람 원망스러워 갑갑하다고 / 세상을 생각하며 고민에 빠진 나는

  1. 사실 막부군을 지휘하는 호조 야스토키는 진군 도중 가마쿠라로 돌아와서 덴노가 직접 출진했으면 어떻게 하냐고 아버지이자 싯켄인 호조 요시토키에게 물었는데 요시토키는 덴노가 직접 출진 했으면 항복하지만 병력만 왔다면 싸우라고 지시했다 즉 고토바 덴노 본인이 친정에 나섰다면 싸우지도 않고 이길수 있었다는 말
  2. 가마쿠라 막부의 역사서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 의하면 호조 요시토키는 '덴노깨서 전쟁을 좋아하신다길래 19만 대군을 준비해드렸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3. 죄책감도 죄책감인데 삼종신기가 없이 즉위한 덴노라는 점이 즉위 내내 덴노의 발목을 잡았다. 격식이나 예법, 전통 같은 것에 목숨을 거는 상류 귀족사회에서 덴노의 상징과도 같은 삼종신기도 없이 즉위했다는 점은 고토바 덴노 자신이 덴노로써 자격이 있는가의 여부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졌던 것. 실제로 고토바 덴노를 안 좋게 보던 귀족들은 덴노가 뭔가 실책 비스무리한 것을 하거나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이게 다 하늘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덴노 때문이다! 하늘이 내려주신 덴노의 신기를 제대로 간수 못해 잃어버린 덴노를 하늘에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라에 안 좋은 일만 터진다!"라고 걸고 넘어졌다.
  4. 굳이 한국의 사례로 빗대자면, 국왕이 옥새나 중국으로부터의 고명(외교적 승인)도 없이 왕으로 즉위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