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항목은 해당 부대의 이명인 황금사단으로도 들어올수 있습니다. |
특수 공화국 수비대 | |
영문 표기 | SRG(Special Republican Guard) |
아랍어 표기 | الحرس الجمهوري الخاص |
분류 | 대통령궁 경호대[1] |
1 개요
걸프전에서 패배한 이라크는 쿠웨이트에서 물러나게 되고, 패전의 혼란을 틈타 이라크내의 반시아파가 후세인의 암살을 전제로 한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 쿠데타를 간신히 제압한 후세인은 자신의 명령을 우선시하며, 자신을 지켜줄 독자적 독립 부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대통령궁을 경호할 부대를 창립한다는 명목으로, 친위대를 창립할 준비를 하게 된다.
2 창립
특수 공화국 수비대(Special Republican Guard)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으며, 황금사단(Golden Division)이라는 이명 얻게 된다.[2] 참고로 이 부대는 서방측에서 '후세인의 황금방패'라고 불르기도 했다.
자세한 창립연도는 불명이지만, 대통령궁의 경호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1992년과 공식적인 사열식과 예산 편성을 하게된 1995년 3월로 추정된다.
최초 성립시기가 불분명하다 보니, 초대 사령관은 불분명하지만, 미국의 공식교전기록을 기준으로 볼 경우에는 최후의 사령관은 '바루잔 압둘 가후루 슬라이만 알 마지드 앗 티크리티' 준장으로 보인다. [3]
3 채용
특수 공화국 수비대의 경우, 당시 이라크 내부에서 높은 지원율을 보였는데[4], 그 이유로는 우선은 후세인의 고향이던 티크리트 상류층에게는 후세인의 직속 친위부대라는 점 때문에, 권력층과의 접점을 원하는 가문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었으며, 하류층에게는 훈련을 버틸 정도로 몸이 튼튼하고 키가 크면 채용되며, 훈련기간에도 높은 보너스가 지급되었으며,[5] 각종 복지 및 의료 혜택 등의 각종 파격적인 대우와 함께, 이들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였기에, 높은 지원율을 보였다.[6]
다만,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 출신자가 아니면 서류 심사에서부터 자르고, 집시가 아니거나[7], 바트당의 당원이 아니거나 훈련기간 내에 전향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채용되지 못하는 등 여러모로 채용이 공정하지 못했지만, 특수부대를 뽑는거라서 사상검사라는 핑계와 높은 급여로 반발을 무마하였다.
4 최후
이라크 전쟁 전까지는 굉장히 뛰어난 정예 부대로 홍보되어서, 특수 공화국 수비대만큼은 쉽게 지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이 대세였으며, 수비대는 어떠한 지원도 없이[8] 동원 가능한 중화기가 고작 50대 뿐이라는[9]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5일이나 적의 공세를 막았지만, 천하의 천조국 앞에 그러한 선전은 얼마 가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 잔당들이 이라크의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활동을 벌였으나, 후세인 체제부터 유구히 내려오던 파벌문제를 해결 하지 못했으며[10],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합류하다보나, 부대의 질이 급격하게 저하되었으며, 만성적인 물자 부족 등의 여러가지 잡다한 문제가 산재하여 사실상 아무런 성과를 얻지를 못했다.
5 재건?
이라크가 ISIL과 전투하는 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리고 있는데, 그중 golden division, 즉 황금사단이라는 것이 제목에 있다. 사실 이들은 황금 사단으로 활동하는 이라크 내의 최 정예 부대이다. 인원은 약 1만여명이다.
6 기타
6.1 트리비아
차우셰스쿠처럼 후세인은 친위대와 정규군을 차별했었다. 그래서 미국이 후세인을 축출 안 했어도, 차별받던 정규군에 의해 축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근데 이런 식의 친위대를 만들고 유지하는 건 딱히 후세인만 한 일은 아니고, 부족주의와 종파주의가 만연한 중동 지역의 독재자들한테는 거의 필수요소급인지라 설득력이 없다.[11] 당장 사우디아라비아부터 국방을 담당하는 정규군과 국왕 직속의 국방군이 따로 있고, 이란의 이슬람 혁명 수비대는 매우 유명하며, 시리아 같은 경우 수없이 많은 첩보부대를 운영했다.[12]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 이라크 정규군은 질적으로 매우 떨어져서, 정규군 대부분이 저학력자들이 가득 채웠던데다가, 정규군이 급여조차 지급받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 큰 불만이 없었다. 당시 정규군은 한끼라도 굶지 않기 위해 입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밥 굶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던 셈.
이들은 집시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의용군과 함께 끝까지 후세인에게 충성을 바치며 미국에 대항하여 싸웠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기 위해서 잡다한 수속을 준비하던 2004년도에, 미군 철수 이후, 이라크 내부 치안 유지를 위하여 편성 중이던 정규군에 편입하게 된다.
이라크 정규군에 편입된 특수 공화국 수비대 출신 대부분은 IS와의 전투로 소모된걸로 추정되며, 정규군 편입을 거부하고 끝까지 항전하던 이들과 집시 출신은[13] 시리아 내전 당시에, 시리아군에 가담한걸로 추정된다고 한다.
후세인 몰락 이후, 서구권 언론들에서는 친위대 창설에 앞서, 후세인은 스탈린처럼 군 고위 간부진들을 싸그리 물갈이할 생각을 품었지만, 이라크군 병사들이 질적으로 매우 떨어져 있던 상황이라, 잘못 건드렸다가는 가뜩이나 좆망한 군대가 더 망할것 같아서, 이 생각을 접고, 친위대 창설을 결심했다고 했다지만, 이 당시 서구권 언론들의 중동에 대한 보도들 대부분이 신빙성이 떨어져서, 카더라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 신뢰하기가 어렵다.
6.2 편제
규모가 가장 크던 시기에는 4개의 여단과 1개의 후세인 직할부대로 구성되었다. 후세인 정권이 최종적으로 붕괴하기 전까지는 이라크 내에서 가장 충실한 설비와 보급품을 자랑했다고 한다.
총원규모 12000명, 각 여단 2500명 구성의 편제로 되어있었다.
아래는 2003년 기준으로 편제다.
- 여단
- 제1여단 : 수도방위 담당
- 제2여단 : 방위전 담당
- 제3여단 : 방위전 담당
- 제4여단 : 기갑전 담당
- 병과사령부
- 방공사령부
- 전차사령부
- 야전포병사령부
- 박격포사령부
- 통신사령부
- 보급수송사령부
- 직할부대
- 화학소대
- 수송소대
- 헌병소대
- 수리견인담당부대
- 회계국
- 탄약고
- 품질관리부
- 독립소대
- 전차소대
- 정보소대
- 방송국방어소대
- 엘리트기동소대
- ↑ 어디까지나 명목상 경호대였지, 사실상 친위대였다.
- ↑ Golden은 후세인이 황금으로 도색하는 것을 좋아해서 붙은 것이고, Division은 사단을 뜻하는 불어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사실 후세인만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 총을 도금 등으로 장식하는 건 꽤 흔한 일이다.
- ↑ 참고로 이 준장 각하께서는 2003년 7월 21일 바그다드 시내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미군에 의해 생포당했다.
- ↑ 당시, 이라크 군인들의 지원율이 너무 낮아서, 지원만 하면 바로 합격되었던것과는 대조적이다. 추가로, 이라크군은 당시 엄청나게 질적으로 떨어져있었는데, 군의 허리가 되는 장교진들 대부분이 군에 관해서 무지했었다. 사실 그럴만도 한게, 후세인 망하기 직전의 이라크군은 대학만 졸업했으면 영관까지 보장되었을 정도였다.
- ↑ 정식 급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 4인 가족의 한달 생활비에 맞먹었다고 한다. 정식 급여조차 제대로 지급해주지 않았던 정규군과는 대조적이다.
- ↑ 현대의 중국도, 인민해방군에 입대하는것이 시골 청년들에게 가장 쉬우며, 가장 효율적인 신분 상승의 기회였기 때문에 높은 지원율을 자랑하고 있다.
- ↑ 세계적으로 멸시받고 차별받던 집시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에 꽤 우대를 받았다. 이들은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여 열심히 싸웠고, 집이나 가게를 얻어 정착해 잘 살아가기도 했다. 이들이 이슬람이 아니라고 테러를 당하자 아예 군대를 보내 호위까지 해줄 정도라서 이라크 집시들은 사담 후세인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총력을 다하여 미군에게 맞서 싸우기도 했으며, 결국 후세인이 죽자 애도하며 슬퍼했다.
- ↑ 이라크군이 이미 과멸한 상황이었고, 유일하게 정상 작동하던 부대는 공화국 수비대뿐이었다. 그런데, 어차피 이라크군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해도, 정규군이 질적으로 매우 떨어져있던 상태라서 제대로 도움이 못됐을 가능성이 높다.
- ↑ 199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수조치 때문이었다.
- ↑ 원래 특수 공화국 수비대는 후세인의 고향이 출신이거나, 바트당 소속이어야 했다.
- ↑ 사실 이런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 대부분은 중동에 대해서 무지에 가까운 편이다. 애시당초 친위대vs정규군 구도 자체는 전형적인 서구식 잣대로, 중동을 바라보는, 바람직하지 못하는 자세다.
- ↑ 당연하지만, 이들 첩보부대들도 부대마다 친위대 역할을 하는 부대들도 있고, 타 첩보부대를 감시하는 부대들도 있고 다양했다.
- ↑ 특수 공화국 수비대 중에서 집시들 만큼은 항복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끝까지 결사항전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