關興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자는 안국(安國). 관우의 차남, 관통과 관이의 아버지.
2 정사
정사 관우전에 약간 소개되는데, 어려서부터 좋은 평판이 있었고 제갈량이 높이 평가했으며 형 관평이 아버지와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한수정후 작위를 계승하고 약관의 나이에 시중, 군감군이 되었지만 몇 년 후 죽었다고 나온다. 그의 적자 관통이 그의 작위를 잇고 후사를 이었지만 또 요절하고 관통이 후사가 없어서 관흥의 서자 관이가 이를 이어 받았다.
그런데 왕은의 <촉기>에 의하면 훗날 방덕의 아들 방회가 종회, 등애와 함께 촉나라 정벌에 참여해서, 촉이 무너질 때 관이와 관씨 일가를 찾아내 멸족시켜 버렸다고 한다.[1]
연의의 영향으로 용장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으나, 제갈량과 함께 입촉한 사람들은 거의 문관들이다. 그래서 아마 무(武)보다 문(文)쪽으로 재능이 있지않았나 추측된다. 또한 관흥이 맡았던 시중은 황제를 가까이 모시고 궁전을 드나들며 물음에 대답하는 일종의 고문관이었다. 무관 계열이 아닌 문관 계열의 작위인 것. 흔히 공신의 자제 대신이 맡았던 작위이기도 하다. 아무튼 재능을 펴보기도 전에 사망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나관중이 훌륭하게 창작으로 승화시켜, 연의만의 거의 오리지널 캐릭터로 탄생시킨 것이 흔히 알려진 관흥의 모습이다.
연의에서의 관흥의 활약은 남정, 북벌에서 셀 수도 없이 많다. 초장에 장포와의 무술 대결에서 보이는 말도 안되는 활솜씨 등은 신 캐릭터의 임팩트 있는 등장을 위해 늘상 나오는 서비스 장면. 무안국같은 캐릭도 첫 등장시에는 항상 임팩트가 넘친다.
4 기타
사실 사서의 기록이 짧막하게 있을 뿐 실제로 별다른 활약이 없어서 그런지, 삼국지연의 이전의 삼국지 문화에는 이런 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듣보잡이었으며 아예 존재 자체가 무시되었다. 형인 관평은 그래도 여기저기 이름을 많이 내보였지만 관흥은 그렇지 못했다.
관우의 셋째 아들이라는 관색이 창작된 것도 저런 사정 때문인 듯하다. 사람들이 관흥의 존재를 까먹기도 했고 무엇보다 방회 때문에 관우의 대가 끊어졌기 때문에 관우의 혈통을 잇고 복수를 할 관색이라는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수호지의 108두령 중 한 명인 대도 관승은 관우의 후손이라는 설정이 있지만 당연히 창작이다.
5 미디어 믹스
- 관흥/기타 창작물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