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제5번(말러)

구스타프 말러의 5번째 교향곡.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한 시카고 교향악단 연주 영상.

1 작곡 과정

말러의 교향곡 5번에 이르게 돼서는 이전의 4개의 교향곡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교향곡 1번 "거인"과 "뿔피리 3부작"에 해당하는 2,3,4번 교향곡들은,물론 말러 자신이 표제들을 개작이나 출판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삭제하긴 했지만, 당초에는 표제가 있었다는 점에서 교향시적인 면모가 존재했다. 또한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많은 소재들을 가져왔고, "뿔피리 3부작"은 모두 성악이 가세했다는 공통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제 20세기로 넘어온 1901년에 이르러서 말러는 이제 더이상 가곡에서 소재를 가져오지도 않았고[1] 교향곡에 성악을 쓰지도 않았다. 순수하게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하는 표제성이 없는 순수기악곡으로서의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다. 말러음악의 발전 단계로 볼때, 1901년은 터닝 포인트라고 할수있다.

또한 말러의 개인적으로도 터닝 포인트였는데, 바로 부인이 되는 알마 쉰들러를 만난 때가 이때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1901년은 꽤나 성과도 있던 때였다. 말러는 1901년 여름 휴가철에 5번 교향곡의 세 악장과 8곡의 가곡을 만들었기 때문이다.[2] 말러 자신도 이 해의 성과에 흡족했던지,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정도였다고 한다.

당초 처음 구상 단계에서는, 5번 교향곡은 비슷한 분위기의 4악장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알마 쉰들러를 만나면서(이것은 멩겔베르크의 주장이지만) 연애 편지의 구조를 가진 그 유명한 아다지에토 악장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악장인 론도-피날레 악장이 아다지에토와 주제면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것을 고려하면 마지막 악장은 이듬해인 1902년에 작곡되었을것으로 보여진다. 1902년 6월, 말러는 크레펠트에서 교향곡 3번을 연주한후 마이에르니히의 별장으로 돌아와 교향곡 5번의 나머지를 작곡하는데 열중했다. 이때는 결혼한 아내 알마 말러도 같이 있었는데 말러가 작곡한 악보를 옮겨적는 일을 도왔다. 결국 1902년 가을에 전곡을 완성해 알마 앞에서 피아노로 연주하게 된다.

사실 이전 교향곡에 비해 작곡 과정은 순탄한 편이었지만, 엉뚱하게도 말러의 전통은 5번 교향곡에서는 개정과 출판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 1903년에 5번 교향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완료가 되었지만 말러는 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이듬해인 1904년 봄에 가진 빈 필하모닉의 시범연주에서 같이 감상한 알마는 '타악기를 위한 교향곡' 같다고 평했고 말러 자신도 그렇게 느꼈던지 타악기 파트를 대폭 축소했다. 타협이란걸 모르던 말러 선생이지만 부인의 충고는 쉽게 수용했던 모양이다.

사실 말러 자신부터 이 곡에 쉽게 만족을 할수가 없었던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이전의 4개의 교향곡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곡이기 때문에 새로운 관현악법을 적용해야 했던것이다. 사실상 말러는 죽을때까지 5번 교향곡의 개정에 매달렸다. 크게 개정한 것만으로 따지면 세 가지의 다른 버전이 존재한다지만, 자잘한 수정은 무수히 많다. 말러는 이 곡을 연주할때마다 잔뜩 악보를 수정해서 단원들에게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럴 지경이니 말러 자신도 이 곡을 몇 번이나 수정했는지, 몇 가지의 버전이 존재하는지 모를것이다. 마지막 수정은 1910년, 말러가 병으로 쓰러지기 전에 행해졌고 이게 말러 생전의 마지막 음악작업이었다. 물론 말러가 죽지 않고 그 뒤로도 계속 살았다면 마지막 수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말러 생전에 이미 한 번 출판되었지만, 그 이후의 수정 사항들을 모아 1960년대에 국제 말러 협회에서 유니버설 에디션이 나왔다. 2000년대 이후에도 마이너한 수정사항들이 더 추가된 판본이 나와 래틀과 베를린 필의 공연에서 채택되었다.

대부분은 유니버설 에디션으로 연주되는데, 60년대초까지 녹음들은 당연히 말러 생전에 출판된 판본에 의거한 연주다. 이 구버전의 파트보가 구하기가 쉽기 때문에 지금도 심심치 않게 연주된다.

2 출판

말러로선 수도 없는 개정을 거치며 나아지는 오케스트레이션에 매우 뿌듯했겠지만, 그걸 출판해야 하는 출판업자의 입장은 골치가 아플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이야 컴퓨터 입력으로 인쇄가 쉽게 가능하다지만 그 당시는 금속판형을 만들어 찍어내는 방식이었으니 계속 바뀌는 악보대로 금속판형을 만들어내는것도 고역이었을게 분명하다. 그만큼 많은 돈이 들어갔을것은 말안해도 뻔한 일이었을 것이고. 결국 계속되는 수정에 짜증날대로 짜증이 났던 이 문제의 주인공, C.F. 페터스 출판사의 소유자였던 헨리 힌리센은 계속 수정되는대로 금속판형을 만드는데 너무 많은 돈을 썼다고 생각해[3] 1913년에 게오르크 괼러가 연주를 희망했을 때도 최종판을 만들지 않았다.[4] 게다가 짜증나게 만든 말러에게 복수할 생각이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쇄판까지 없애겠다고 선언해버렸다.

이 폭탄선언에 충격을 받은 말러의 열렬한 팬이었던 당시 젊은 작곡가였던 아놀드 쇤베르크는 이를 막기 위해 서둘러 말러 음악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강연을 준비했다. 이런 쉔베르크의 열성덕에 말러의 자필 교정본을 넘겨받아 수작업으로 교정한 후 최종본을 완성했고, 1914년 1월 9일에 괼러의 지휘로 이 최종본이 연주될수 있었다.[5]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종판 악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 버전의 포켓 스코어를 인쇄했던 힌리센에게, 말러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멩겔베르크가 최종판 악보의 포켓 스코어를 인쇄해야 한다고 힌리센을 들볶았기 때문이다. 멩겔베르트가 들볶았던 사연인즉,1920년에 자신이 지휘하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와 함께 말러 페스티벌을 기획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멩겔베르크의 독촉에 못이긴 힌리센은 새 포켓 스코어를 인쇄했지만 실은 이것도 말러가 1904년의 오리지널 포켓 스코어에 자필로 교정한걸 인쇄한것이었다.[6]

결국 말러의 최종판은 어윈 라츠에 의해 1964년 IGMG-패터스 에디션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으나, 이 에디션도 결정적으로 말러의 최종 교정을 모두 다루지는 못했다. 이 긴 역사를 지나 최종 교정원고는 이미 어딘가에서 분실되어진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대부분의 연주는 1964년 판이며, IGMG-패터스에서는 이 악보를 좀 더 다듬어서 1989년에 두 번째 판을 내놓았다.[7]

현재 공연되는 연주는 주로 1964년 에디션이지만 의외로 페터스판도 자주 연주된다. 위에 링크된 다니엘 바렌보임의 연주도 페터스판으로 연주되었다.

3 초연

이 곡의 초연은 1904년 10월 18일, 쾰른에서 말러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말러의 3번 교향곡의 연주회가 상당한 호평을 받은 후 귀르체니히 콘서트의 지휘자인 프리츠 슈타인바흐는 5월의 쾰른 축제 기간에 이 곡을 공연하고 싶어했지만 알마 말러가 참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말러는 연주회를 10월로 연기했다그러나 불행히도 10월 공연에도 알마 말러는 오지 못했다. 연주회의 객석으로부터 야유와 갈채가 함께 터져 나왔지만, 대체적으로 아다지에토와 론도-피날레는 호평을 받았다. 다음 날 신문들에서는 당연히 별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브루노 발터도 이 연주회에 참석했는데, 그는 생애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말러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문제는 오케스트레이션 때문이었는데 그는 말러의 관현악이 다성음악을 표현하기에는 불투명하다고 생각했고, 말러 자신의 생각도 이와 비슷했다. 1년 후 빈 초연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안티-말러리안으로 유명한 로베르트 히르슈펠트는 빈 청중까지 싸잡아서 '자연의 기형(奇形)'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사고(思考)의 기형'을 듣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4 곡의 구성

오케스트라의 편성은 플루트 4, 오보에 3, 클라리넷 2, 바순 2, 콘트라바순, 호른 6, 트럼펫 4, 트롬본 3, 튜바, 글로켄슈필, 팀파니, 심벌즈, 베이스드럼, 스네어드럼, 탐탐, 하프, 트라이앵글, 현 5부로 구성된다.

총 5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상위에 3부 형식을 취하고 있다. 1,2악장이 1부, 3악장이 2부, 4,5악장이 5부다. 3악장은 단독으로 2부를 맡고 있는 만큼 이 작품에서 가장 거대한 악장이다. 1악장과 4악장은 단독된 악장이긴 하나 각각 2악장과 5악장의 전주 악장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1악장: Trauermarsch. In gemessenem Schritt.(신중한 속도로, 엄격하게, 장례행렬처럼) 2/2박자, C#단조. 장송 행진곡. 2개의 트리오(B플랫단조 & A단조)를 가진 겹세도막 형식

보통 교향곡의 첫 악장은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 오지만, 5번 교향곡에선 장송 행진곡으로 곡이 시작된다. 말러의 작품들에서 '장송 행진곡' 혹은 '죽음의 행진'이라는 테마는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교향곡 1번 "거인"의 3악장이라든지, 3번의 1악장, 심지어는 가곡 '북치는 소년' 과 '기상 나팔'에까지 등장한다. 곡의 시작은 트럼펫의 팡파르로 시작하는데(사실 교향곡을 팡파르로 시작했던 경우는 말러 이전에는 찾아보기 어렵고 말러 이후에도 그렇다.)[8] 꽤나 특이한 케이스라 할수있다. 게다가 군대의 기상나팔 같은 기분도 드는 리듬이다. 이 트럼펫의 첫 소절은 멘델스존의 '한여름밤의 꿈'의 '결혼행진곡'의 시작과 똑같다. 다만 세번째 반복의 네번째 음이 갑자기 감화음(반음이 줄어드는것)으로 등장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이것을 '운명의 동기'라고 하기도 한다.

곡의 구조는 주부(c샾단조) - 트리오 1(갑자기 빠르게 열정적으로, 난폭하게, b플랫 단조) - 주부(c샾 단조) - 트리오 2(a 단조) - 코다(c샾 단조)로 구성된다는게 대부분이 동의하는 내용이다.

2악장: Stürmisch bewegt. Mit grösster Vehemenz.( 폭풍 같이, 격렬함을 가지고) 2/2박자, A단조. 소나타 형식

실질적인 1악장이라고 볼수있는 악장이다. 소나타 형식이며, 실제로 스터디 스코어의 첫 버전에는 제시부에 반복표시까지 있었다. 이런 점 때문인지 말러는 자필 악보에 이 악장은 '주 악장(Hauptsatz)'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출판사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 이 악장은 앞의 악장과의 연계가 분명해서 트럼펫 팡파르의 셋잇단음 리듬이 악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제2주제는 앞 악장의 두 번째 트리오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처음 첼로와 베이스가 거칠게 동기들을 연주하고, 금관악기들이 날카로운 고음으로 나열해나간다. 앙상블이 흐트러지지 않고 이 대목을 연주한다는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재현부에선 갑자기 승리와 환호의 멜로디(코랄)가 나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승리와 환호의 분위기를 가진 마지막 악장의 암시라고 볼수있을 것이다. 하지만 2악장의 코랄은 결국 좌초하고 만다. 이 코랄은 5악장의 마지막에 (2악장에서와는 다소 다른 형태지만) 다시 등장하여 마침내 찬란하게 작품을 마무리짓는다. 여러가지 면에서 1번 "거인"의 마지막 악장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악장이다.

3악장: Scherzo. Kräftig, nicht zu schnell.(스케르초. 활기 있게, 너무 빠르지 않게)3/4박자, D장조

교향곡 사상 최대의 스케르초 중 하나다. 보통 교향곡에서 스케르초는 가장 짧은 악장이지만, 이 교향곡에선 가장 긴 악장으로서 단독으로 2부를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악장이다. 이 작품에서 가운데 축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3악장을 중심으로 1,2악장과, 4,5악장이 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대한 악장인 만큼 전형적인 스케르초는 아니며 소나타 형식과 결합된 스케르초로서 주제들이 다양하게 변형,발전 되고 있다. 구조는 주부 - 트리오 1 - 주부의 짧은 재현 - 트리오 2 - 발전부 - 재현부 -코다의 순으로 구성된다. 발전부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트리오 1이며, 재현부에서는 상당히 변형되거는 했지만 그래도 주부의 주제와 두 트리오 모두 등장한다. 사실 말러 자신이 직접 스케르초라고 악보에 적은것은 5번이 처음이었다.

3악장은 일종의 호른 협주곡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3악장에서만 corno obligato라 명시된 독주 호른 파트가 존재한다. 이 독주 호른은 앉아서 연주하기도 하지만 자리에서 서서 연주하거나, 무대 앞에서 지휘자 옆에서 협연자처럼 서서 연주하기도 한다.[9][10] 지휘자 옆에서 서서 연주하는 전통은 말러 생전부터 이 작품을 지휘해왔던 멩겔베르크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1] 하지만 말러가 직접 서서 연주하도록 지시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obligato라고까지 지칭한 만큼 협주곡의 협연자에 해당하는 파트이므로 지휘자 옆에서 서서 연주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말러가 늘 애용하는 렌틀러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보통 말러의 교향곡에서 드러나던 패러디나 아이러니가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나 독특한 악장이다.

4악장: Adagietto. Sehr langsam(아다지에토) 4/4박자, F장조

아마도 말러의 모든 교향곡을 통틀어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을 꼽으라면 역시 이 4악장 아다지에토일 것이다. 이 악장이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이탈리아의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가 토마스 만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12]에서 쓰인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시작할때부터 끝날때까지 계속 등장한다) 우리나라 모 방송의 단막극에서도 쓰인적이 있다. 아마 루키노 비스콘티가 아니었더라도, 이 악장을 듣고 배경음악으로 쓰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를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악장의 배경에 대해서는 멩겔베르크가 말하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멩겔베르크에 의하면, 말러는 알마에게 이 아다지에토 악장의 악보를 보냈고, 알마는 악보를 보고난후 자신에게 오라고 답장을 보냈다는 것이다. 멩겔베르크는 이 이야기를 말러와 알마에게 모두 들었다고 한다. 자기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멩겔베르크는 악보 여백에 이 사실을 써넣기까지 했다.[13] 심지어는 다른 여백에다가는 '나의 태양,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잇는지'로 시작되는 시까지 적고 있다. 열렬한 말러 애호가이자 수집가로, 나중엔 지휘자로까지 변신한 길버트 카플란도 멩겔베르크의 이야기에 동의하면서, 아다지에토를 빠른 속도로 연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4]

물론 멩겔베르크와 카플란의 말에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아다지에토 악장을 가리켜 '존재의 슬픔을 그린 음악' 혹은 '애이불비(슬프지만 슬픔을 드러내지는 않음)를 표현한 것 같은 악장'이라고 해석하며 철학적인 해석을 하기도 한다. 아마 실제 사실은 멩겔베르크의 주장이 옳을 것이고 후자의 철학적인 심오한 해석은 너무 과도한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아다지에토를 러브레터로 받아들이든 그 안에서 철학적인 심오한 것을 느끼든 그건 듣는 개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5악장: V. Rondo-Finale. Allegro giocoso (론도-피날레, 알레그로) 2/2박자, D장조

이 교향곡을 작곡하기에 앞서 말러는 바흐의 다성음악을 깊이 연구하고 있었는데, 그 영향이 깊이 반영된 곡이다. 소나타 형식으로된 마지막 악장에서 말러는 열심히 연구한 바흐의 다성음악에서 받은 성과를 푸가로 풀어내고 있다. 말러의 교향곡들을 중에서도 특히 밝고 환희에 찬 피날레 악장 중 하나다.[15] 2악장 말미에서는 코랄이 좌절하고 말았지만 5악장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D장조의 코랄은 찬란한 빛과도 같은 화려함 속에서 마무리된다.

5 여담

조조전의 12번 트랙[16]의 도입부분이 5번의 1악장 도입부를 일부 사용했다.또한 말러가 직접 피아노로 연주한 1악장이 피아노 롤 형태로 남아있다. 말러가 살았던 시대에 녹음 기술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이다.

  1. 다만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중 제8곡 "위대한 지성에의 찬미"(요약하자면 당나귀가 새들의 노래자랑에 편파판정을 한다는 내용)의 맨 앞부분을 5악장 제1주제의 앞부분으로 가져왔고, 그 제1주제의 중간 정도에 당나귀의 히힝 소리와 굉장히 닮은 모티프가 들린다.
  2. 위기의식으로 10일만에 절반이 넘는 분량을 만들었던 4번 교향곡을 작곡할때하고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3. 게다가 같은 5번인 베토벤의 5번 "운명"같이 많이 연주되지도 않는 곡이었으니...
  4. 그렇지만 솔직히 출판한 악보버전이 많은것도 아니었다.
  5. 힌리센은 12월에 보낸 편지에서 이것때문에 또 엄청난 경비를 소모했다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6. 왜 힌리센이 최종판 악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걸 반영안했는지는 미스테리다.
  7. 아마 혹시라도 최종교정본이 발견된다면 말러 애호가들에겐 그게 성배일 것이다. 그리고 애호가들 사이에는 싸움이 나겠지
  8. 거의 유일한 경우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5번에서 말러 5번을 연상시키는 팡파르가 나온다. 그러나 이건 곡 중간에서 나오고, 곡의 시작을 팡파르로 한건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9. 2002년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취임 기념 연주회에서도 이렇게 연주했다.
  10. 또는 자리에서 콘트라베이스 의자에 앉아서 하거나 지휘자 옆에서 앉아서 하는 경우도 있다.
  11. 멩겔베르크는 말러의 절친한 친구이자 지지자로 말러 교향곡을 자주 지휘했으며, 말러는 멩겔베르크가 자신의 곡을 지휘할 때 직접 가서 공연 준비에 참여하거나, 편지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12. 여담이지만, 같은 소설을 기반으로 한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도 있다. 브리튼의 개인적인 사연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사실에 묘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13. 멩겔베르크는 악보에 이런저런 것들을 세세히 적어넣는걸로 유명한 지휘자였다.
  14. 실제로 말러가 직접 아다지에토를 연주한 피아노 롤이 발견되었는데, 아다지에토를 7분대로 연주하고있다.
  15. 그도 그럴것이 이 곡을 만들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16. 관도대전 등 중요하고 큰 규모의 전투에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