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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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立民俗博物館

홈페이지

1 개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0조(설립과 운영)
②민속자료의 수집·보존·전시와 이의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위하여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소속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을 둔다.
④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문화유산의 균형 있고 효율적인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 및 문화향유의 균형적인 증진을 꾀하기 위하여 필요한 곳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방 박물관 및 지방 미술관을 둘 수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번지에 있는 대한민국국립 박물관. 경복궁 안에 있다. 한민족 고유의 생활양식, 풍속 및 관습 등을 조사 연구할 뿐만 아니라 생활민속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함으로써 한국 민속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는 일을 하는 곳이다.

한국의 유명한 전통 건축물들을 짬뽕한 결과물이다. 건물의 전면 중앙부 계단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상부의 5층 건물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난간 위의 평면과 부속 건물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난간 아랫부분과 건물 측면은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상륜부 난간은 경복궁 근정전(국보 제223호)에서 따와 만들었다. 맛있다고 재료를 함부로 섞으면 이상한 맛이 나오는 것처럼, 단순히 이전의 유명 건축물을 짜깁기 한다고 좋은 건축이 되는건 아니다. 그덕에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에 당당히 선정되기도 했다.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에 따라 2030년대에 철거될 예정이다.[1]

2 연혁

연혁 정보 출처

국립민속박물관의 역사는 1924년 일본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창립된 조선민족미술관이 모태이다. 이후 1946년 미군정에 의해 개관한 국립민족박물관에서 시작한다. 그후 1950년 국립민족박물관은 국립박물관에 흡수 통합되지만, 1966년에 한국민속관으로 분리된 뒤,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변천사 만큼이나 국립민속박물관은 그 위상이 바뀔 때마다 박물관의 위치와 사용하는 건물도 계속 바뀌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946년 개관 당시에는 남산 구 시정기념관(통감관저), 1966년부터 1975년 사이에는 경복궁 수정전, 1975년에서 1992년 사이에는 경복궁 향원정 뒷편 구현대미술관 건물(지금은 사라짐)을 사용해 왔다. 1993년 2월 현재의 경복궁 건물 위치로 이전하였다. 헌데 이 건물도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쓰다 나온 건물이다. 안습 현재 쓰는 건물은 경복궁 동편에 위치해 있고, 입구도 동쪽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맞은편 궁궐벽을 뚫고 나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서남쪽에 경복궁역과 연결된 건물에 위치해 있으니 착각하지 말것.

숭유억불의 태도를 취한 조선의 정궁 안에 불교건축을 짬뽕해놓은 건물이 있다는 괴이함 때문에 2000년대 들어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고, 실제로 2001년경 문화관광부는 이전 용역보고서를 내기도 하였다.[2] 추후에 경복궁 복원사업이 진행되면 민속박물관은 철거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경우 이촌 쪽의 부지를 매입해 새로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을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계획대로라면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과 함께 이촌 쪽이 박물관 집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관련 전공자들의 미팅장소가 되겠지 다만 이러려면 용산 미군기지가 제때 이전해줘야 한다.

3 건물에 얽힌 비화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의 외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들을 조합하여 디자인한 것이다. 건물의 계단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상부의 5층 건물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난간 위의 평면과 부속 건물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난간 아랫부분과 건물 측면은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상륜부 난간은 경복궁 근정전(국보 제223호)에서 따온 것. 말이 따온거지 사실상 짜깁기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보다 더 높은 괴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2013년에는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20위 중 15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 괴랄한 모습 만큼이나 건물의 탄생에 얽힌 비화도 여러모로 대단하다. 1966년 문화재관리국은 국립중앙박물관 설계와 관련해 "건물 자체가 어떤 문화재의 외형을 모방함으로써 콤퍼지션 및 질감이 그대로 나타나게 할 것이며 여러 동이 조화된 문화재 건축을 모방해도 좋다."고 규정을 정했다. 당연히 이러한 규정은 당시 건축계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건축계와 문화계에서는 건축의 창의성을 무시하는 일이며 단순한 모방은 전통을 계승하기는 커녕 왜곡할 수 있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당시 주요 건축가들은 정부의 이러한 처사를 문화적 만행이라 규탄하며 설계 공모 자체를 거부했고, 결국 응모된 10여 개의 설계안 중에 강봉진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디자인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보면 김중업 건축가가 지은 주한프랑스대사관처럼 반드시 기단만들고 기와올리지 않은 건물이라도 한국 전통건축의 미를 계승할 수 있고, 그게 오히려 더 발전적인 방향이다. 하지만 속전속결을 강조하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는 이런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은 내부 전시관만 둘러볼 수 있을 뿐, 건물 기단 윗부분에 있는 넓은 외부 공간에는 관람객이 자유롭게 거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에펠탑이나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도 국적불명인 최악의 디자인이라는 비판을 받다 시간이 지나니 문화적 아이콘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드나들며서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은 방문자가 자유롭게 둘러볼 수도 없고, 대부분의 방문자들이 한국의 유명 전통건축물들을 어떻게 따왔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대다수가 모르고 넘어가는 사실이 있는데,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터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어진들을 모신 건물인 선원전이 있었던 곳이다. 선원전은 일제 시기인 1932년에 장충단에 있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모신 절인 박문사로 팔려나갔고, 더욱이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을 지을 당시 유구마저 훼손해버려 현재로써는 선원전의 정확한 구조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4 기타

  • 민속학과 졸업생들에겐 꿈의 직장. 근데 한국에 민속학과는 하나밖에 없다.(...)[3] 때문에 역사학과, 고고학과, 인류학과, 문화재학과, 미술사학과 등 다른 학과 출신들도 많다.
  • 유홍준 교수는 국내 주요박물관 관람비를 더 받아야 한다면서 왜 문화재 보는 값어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냐고 비난한 바 있다. 그가 들려준 일화로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온 적이 있는데 당시 2천원이란 관람비를 2천엔으로 듣고 한국 돈으로 10배가 넘는 돈을 내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당연히 자국 중심문화재를 보여주고 보관하니까 이 정도는 당연했다며 비싸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우리도 이래야 한다면서 일본이 문화재를 아끼는 게 괜히 그런 것이냐고 일갈했었다. 실제로 국내 박물관과 미술관 입장료는 터무니없이 싸다. 기본적인 운영유지조차 안 될 정도이다.
유교수의 주장은 저렴한 관람료 때문에 박물관의 가치가 평가 절하된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문화재를 공짜로 인식해서 관리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 것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4]이나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관람료가 없다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두 박물관은 기부금만으로도 운영이 된다. 유명 기업인들이나 정치인들이 꾸준히 기부를 해주기 때문에 지금처럼 운영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루브르는 12유로나 되는 관람료를 받지 말아야 할까? 두 박물관의 사례만 들어 박물관 관람료가 공짜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발상 자체가 웃긴 것이다. 당연히 외국 박물관도 땅파서 전시하는 게 아니고 기부든 관람료든 어디선가 운영비용을 충당하며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관람비를 갑자기 인상하면 다른 즐길거리가 많은 상황에서 도리어 관람객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문화 교육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도 있다고 하면서, 민박이나 중박 관람료가 1만원에서 2만원 대로 치솟으면 관람객이 급감할 것이라 헛소리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의 기본 전시 관람료는 무료다. 경복궁 입장료나 기획전시 관람료와 착각한 듯. 그리고 민속학과 학생들의 꿈의 직장이고 겉보기에 박물관 내부가 굉장히 깔끔하며 전시내용도 주기적으로 잘 교체된다고 박물관 운영이 잘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민속박물관 전시실 규모는 꽤 협소한 편이고 전시도 외국 박물관들에 비하면 교체주기가 긴 편이다. 이유는 당연히 운영비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박물관들이 대부분 적자를 보면서 운영되고 있다는걸 잊지 말자. 애초에 박물관을 운영하려면 큐레이터 인건비나 유물 관리비나 전시 기획비 등으로 돈이 들 수밖에 없는데, 그 돈을 충당하려면 기부를 받든 관람료를 받든 해야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박물관 적자를 다 국가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5] 이 구조 자체가 이미 비정상적인 것이다. 사실 언젠가 누군가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고치자고 지적해야 했고, 유교수는 그런 엄연한 사실을 지적하며 총대를 맨 것에 불과하다. 다르게 말하면 유교수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언젠가 지적했을 문제란 이야기이다. 기초적인 운영지원비 인식도 없으면서 박물관 관람료가 비싸다고 징징대는 사람들은 복돌이 만큼이나 터무니 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 위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민속박물관이나 중앙박물관 등은 애초에 국립시설인데 국립시설 운용비를 세금에서 충당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비정상적인 상황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박물관 관람료를 인상한다면 문화유산에 대한 접근성을 너무 높게 설정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만약에 유홍준 교수의 주장대로 중앙박물관이나 민박의 관람요금을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2~3만원 수준으로 높힌다면 과연 일반 대중이 지금처럼 편하게 박물관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인가? 만원이면 몇천원만 더 보태면 블럭버스터 영화나 대학로에서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금액이다. 만약 관람료가 2~3만원 까지 높아진다면 저소득 층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의 관람료다. 연극이나 뮤지컬이 높은 관람료로 인해 고소득층의 유희나 특정 매니아들의 전유물로 치부되는 일이 굉장히 많은데 박물관 마저 2~3만원의 관람료를 받는다면 마찬가지로 박물관에 가는 것이 자유롭게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값비싼 사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관람료를 높히자는 주장은 단순히 관람료를 받기 시작하면 지금 관람하는 관람객의 숫자만큼 수익을 얻어 예산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박물관 관람료에 대한 가격 탄력성이 고려되어야 하며 만약 관람료 인상에 대한 관람객들의 거부감이 크다면 관람객이 줄어 관람료가 생각보다 안겆혀서 예산 확충에도 도움이 안되고 그나마 무료라서 많이 들르던 관람객의 수가 감소하여 문화재를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박물관 본연의 기능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위의 주장을 보면 마치 대영박물관이나 스미소니언 재단의 박물관들이 막대한 기부금과 예산으로 꿀을 빨면서 관람료를 무료로 하는 사치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박물관도 예산 부족이나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전시를 취소하거나 소장품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다. 물론 한국보다는 사정이 낫겠지만 정부 예산을 통해서 소장품을 관리하기도 하는 것은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람료를 무료로 유지하는 것은 대중에게 문화유산을 공개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6] 박물관을 유지하는 방법은 정부 예산 혹은 기부금이다. 정부 예산을 더 타내는 것은 부처간의 알력을 극복해야 하고 사실 관람료도 어떻게 보면 기부금이다. 애초부터 문화유산에 돈 쓰는 것을 인색하게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기부금이 안 걷히는데 또 다른 기부금인 관람료를 새로 부과한다고 해서 관람료가 많이 걷힐지 신중히 생각해볼 부분이다.
  • 박물관이 위치한 경복궁과 박물관의 주제가 생각해보면 참 묘하다. 조선의 최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이 존재했던 고궁에, '민속'이라는 일반 민중들의 가장 평범한 모습을 담은 문화재들이 모여 있으니. 사실 고궁박물관도 그렇고 궁내에 박물관을 짓고 지하도나 주차장을 설치하는 등의 훼손을 가하는 것을 탐탁치 않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 사람들은 현재 대한항공이 호텔을 지으려 하는 구 미대사관 숙소부지(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49번지 일대)로 박물관을 신축 이전하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돈이 문제라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현재는 용산으로 가는 것이 거의 확정되어가는 분위기.
  • 사실 야외전시관 내의 '추억의 거리'는 1999년에 개최되었던 '추억의 세기에서 꿈의 세기로'라는 특별전시회의 일환으로 개관, 폐막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다가 2009년부터 리뉴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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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확히는 2031년 ~ 2042년 사이
  2. 당시 이전후보지로는, 서울의 용산 미군기지 이전부지, 소격동 기무사 부지, 정독도서관, 의릉, 방배동, 뚝섬, 상암동 DMC 부지가 제시되었고 경기지역에서는 포천, 부천, 용인, 파주가 후보에 올랐다.
  3. 현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안동대에 민속학과가 남아있다. 다른 학교에도 민속학과가 있을시 수정바람. 국내에서는 안동대 민속학과가 가장 오래된 학과이다. 중앙대에 비교민속학과가 있었으나 구조조정으로 폐과되고 아시아문화학부라는 이름으로 중문과와 일문과화 함께 통합되었다. 폐과에 대한 정보는 중앙대학교/학부 항목을 참고. 중앙대학교는 중부지역 민속 연구를 담당하는 주요 연구기관중 하나였다. 두산대의 위엄 별도의 민속학과 외에 민속학 관련 커리큘럼은 인류학과, 사회학과, 역사학과, 문화재학과, 미술사학과 등에 일부 개설되어 있긴 하다.
  4. 그리고 애초에 영국박물관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약탈 문화재(엘긴 마블 등)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그런데 만약 영국박물관이 입장료를 받는다면 약탈문화재를 모두 돌려줘야 한다.
  5. 사실 엄청나게 많은 문화재 관리비용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은 문화재청 예산도 그렇고 한국은 선진국에 비하면 문화 예산에 인색한 편에 속한다.
  6. 물론 대영박물관과 같은 경우 외국 문화 유산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많을 경우 관람료를 무료로 한다는 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