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야구선수)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김경모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30000226064_700.jpg

이름김경모(金京模 / Kyeong-mo Kim)
생년월일1989년 6월 15일
신체177cm, 72kg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응암초 - 홍은중 - 장충고
포지션2루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8년 2차지명 2라운드 (전체 9번, 삼성)
소속팀삼성 라이온즈 (2008 ~ 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번
강명구(2003~2007)김경모(2008)임익준(200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2번
안성필(2010)김경모(2011~2013)야마이코 나바로(2014~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0번
이흥련(2013)김경모(2014)박민규(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4번
서동환(2014)김경모(2015)차화준(2016~ )

1 소개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2루수.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장충고 재학 시절 동기 최원제와 더불어 황금사자기 2연패에 공헌했다. 2007년 청소년 대표팀에도 뽑혔다.

3 프로 선수 시절

2008 신인지명에 대해 미래의 2번 겸 2루수, 3번 겸 중견수, 4번타자 겸 우익수에이스까지 뽑았다는 평가가 있었다.[1]

발이 빠르고 타격 정확도 갖춘 선수라 테이블세터로서 전도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2라운드 전체 9순위 지명으로 고졸 타자 중에서는 전체 2번째[2]로 뽑힌 것. 그 정도로 삼성에서 큰 기대를 걸고 뽑았다.

2008 시즌 후 바로 상무에 입대, 첫해에는 67경기에 출장해 52안타 4홈런 34타점 7도루 0.313의 타율을 기록했고 이듬해에는 81경기에 출장해 101안타 8홈런 54타점 39도루 0.334의 타율을 기록했다. 다른 선수에게 밀려서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고 볼넷/삼진 비율도 괜찮아 삼팬들을 설레이게 했으나 전국 체전에서 손목 골절상을 당했다.

3.1 2011 시즌

2011년 3월 17일 LG와의 시범경기에서 2루수로 선발 출장한 걸 보면 부상에서는 회복한 것으로 보이나 타격감이 많이 떨어져 시범경기에선 똑 부러지는 성적을 올리지 못해 1군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그래도 2군에서 테이블세터로 활약하고 있으며 류중일 감독의 지시로 본 포지션이었던 2루수 외에 유격수로도 출장했다. 2011 시즌 2군 남부리그 최다안타 2위(96안타), 최다 3루타 공동 5위(4개), 타점 2위(68타점), 득점 4위(57득점) 등을 기록했다.

좀 더 파고 들면 18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11개 도루실패가 있고 실책이 15개가 있다. 그저 찾기 쉬운 기록만 봤을 때는 왜 1군에서 기용을 안 할까 싶지만 저런 속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수비 툴이 무너졌다는 의견이 들려오고 있어서[3] 수비를 우선시하는 류중일 감독 체제 하에서는 1군 승격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3.2 2012 시즌

2012 시즌 들어서 2군에서 2할 초반대의 타율을 기록하던 중, 신명철의 2군행과 조동찬의 옆구리 부상으로 인한 2군행으로 인해 4월 15일 부로 1군에 등록이 되고 4월 17일 잠실 두산전에 커리어 최초로 1군경기 선발출장을 하게 됐다. 하지만 아직 수비에서 미숙함을 보이며 1군에 올라온지 5일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한동안 삼팬들은 2루수 때문에 뒷목을 잡았다

2군으로 내려간 후 타율을 2할 7푼대까지 끌어올려 9월 13일 신명철 대신 1군으로 올라왔다. 확장엔트리 때문에 선수 기용에 여유가 있다보니 거의 대주자로만 기용되었다.

3.3 2013 시즌

2루가 급한 상황에서도 그 손주인조차 못 넘으며 2군에 있더니 결국 2013년 전지훈련부터 외야수로 전향했다. # 그러나 삼성의 외야가 포화 상태다 못해 한가위 열차 가축 수송 수준의 빡빡함을 자랑한다는 게 문제. 좌익/중견/우익 어지간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타격이 갑자기 폭락하지 않고 류중일 감독의 믿음이 계속되는 이상 최형우는 좌익수와 지명타자를 오갈 것이며, 중견-우익 라인은 이미 배영섭-정형식-박한이 라인이 구축된 데다. 9월이면 아무래도 이영욱이 제대하고, 기대만큼은 못하고 있는 우동균도 있다. 정형식이 슬금슬금 박한이의 지분을 먹어가는 상황에서 김경모가 얼마나 잘해야 1군 외야수 자리가 날지... 그저 눈물만 난다.

시즌 시작 전부터 박찬도와 2군의 1번타자 중견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타격이나 수비 모두 박찬도에게 부족해 2번타자 좌익수로 밀려났다. 정규시즌 시작 후에도 불안한 수비를 보이다가 손목 통증이 재발하면서 결국 9경기만에 2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3.4 2014 시즌

2군 괌 스프링캠프에서 내야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시즌 초반 주전 2루수로 나오다가 6월 중순 포지션이 겹치는 백상원이 2군으로 내려온 후로는 결장했다.

3.5 2015 시즌

육성선수로 전환됐다. 삼성 홈페이지에는 외야수로, KBO에는 내야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그의 입지가 불안정하고 롤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그리고 15시즌 2군에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선수단 명단에서 제외됐다.

4 기타

1살 아래 동생인 김경한 역시 야구선수로, 2007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였다[4]. 김경한은 2009 신인 지명에서 지명을 못 받고 원광대학교로 진학했지만 1년만에 야구를 그만뒀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 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8삼성 라이온즈21.00000000000.000.000
2009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0
20111군 기록 없음
201294.00000000200.000.000
KBO 통산
(5시즌)
115.00000000200.000.000
  1. 미래의 1번타자는 2009년도 1차지명자인 김상수.
  2. 지명 당시만 해도 3번째가 맞겠지만….
  3. 여기에는 상무에서 2루수 경쟁에서 밀린 탓에 좌익수로도 출전했던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2007년 60타석 이상을 소화한 고교타자는 김경한을 포함해 겨우 3명 뿐이었는데, 재밌게도 60타석 이상을 소화한 3명 모두 장충고 2학년 선수들이었다. 당시 3학년이었던 김경모는 43타수 21안타 0.488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53타석으로, 청소년 대표팀 일정과 겹쳐 한 대회에 불참하는 바람에 이영민 타격상 수상 규정타석인 60타석에는 못 미쳤다. 만약 50타석이 기준이었다면 김경모가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