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항목 : 야구 관련 인물(KBO)
파일:/image/poktannews/2010/06/24/201006241814779760 1.jpg
삼성 라이온즈 시절.
파일:/image/109/2012/04/14/201204141947771947 1.jpg
한화 이글스 시절.
한화 이글스 No.60 | |
임익준(林翼晙 / Ik-jun Lim) | |
생년월일 | 1988년 3월 15일 |
출신지 | 광주광역시 |
학력 | 광주화정초 - 충장중 - 광주동성고 |
포지션 | 유격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7년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삼성 라이온즈) |
소속팀 | 상무 피닉스 (2007~2008) (군복무) 삼성 라이온즈 (2009~2011) 한화 이글스 (2012~현재) |
응원가 | 컨츄리꼬꼬 - Oh! Happy[1][2]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4번 | |||||
이재덕(2006) | → | → | 채태인(2007~2008)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번 | |||||
김경모(2008) | → | 임익준(2009) | → | 강명구(2010~2014)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번 | |||||
손주인(2009) | → | 임익준(2010~2011) | → | 백상원(2013~ )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53번 | |||||
김회성(2011) | → | 임익준(2012) | → | 임경훈(2013)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66번 | |||||
장재훈(2013) | → | 임익준(2013~2014) | → | 이시찬(2015)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60번 | |||||
황영국(2014) | → | 임익준(2015~) | → | 현역 |
목차
1 소개
2 프로 입단 이전
투수 양현종과 광주동성고 동기로, 고교시절 유격수와 3루수로 활약했다. 2006년에는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IBAF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 참가, 결승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끝내기 안타를 뽑아 통산 4번째 우승에 기여했다. 흠좀무. 당시 대표팀에는 김광현도 있었는데 화려한 투수진의 뒤에는 탄탄한 내야진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활약으로 인천고의 김남형, 덕수고의 김민성과 함께 고교 3대 유격수로 꼽히던 유망주였다.
3 삼성 라이온즈 시절
3.1 2007 ~ 2008 시즌
좋은 컨택에 빠른 발, 준수한 야구 센스를 갖춰 삼성 라이온즈 키스톤의 미래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삼성의 유격수는 박진만(...).
일단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서 상무에 입대하였다. 원래는 송승준을 위한 자리였는데 송승준이 군면제를 노리고 군 입대를 연기해 임익준이 대신 입대했다. 2007~2008 2시즌을 상무에서 보내고 2009 시즌을 앞두고 제대했다.[4]
3.2 2009 시즌
2009년에는 퓨처스리그 올스타로 뽑힐 정도로 활약을 했지만, 정작 1군에서는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등 별다른 활약이 없다.[5] 2009년 프로필 사진을 보면 동생 임익현이 신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정작 본인은 구형 유니폼을 입고 있다(95 유니폼). 안습. 그런데 2010년에 신형 유니폼(2008 유니폼)을 찍은 사진이 나왔다.
2009 시즌 2군 남부리그에서 25개의 도루를 기록, 한화 신석기(35개)에 이어 남부리그 도루부분 2위를 했다. 흠좀무.
3.3 2010 시즌
2010년 4월 25일 양신의 대주자로 나와 첫 1군 출장했다. 그런데 최잉여가 땅볼을 치는 바람에...
2010년 4월 30일 대전 한화전에서 박진만을 대신해서 유격수로 나와 처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는데 우익수 플라이 아웃으로 물려났다. 경기중에 캐스터가 임익준을 박진만으로 잘못 불렸다. 뭐 듣보니 좀 이해해주자
2010년 5월 5일 신명철을 대신해서 선발 2루수로 나와 5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득점찬스에서 주루사를 당한게 흠. 다만 유격수 수비면에서는 박진만보다 낫다는 평. 이게 다 박진만의 급격한 먹튀화 때문이다
2010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손주인과 내야 유틸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발이 느린 손주인과 달리 대주자로서의 활용 가능성은 있지만 손주인보다 수비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평.
3.4 2011 시즌
2010 시즌 후 마무리훈련 때 내야수 중 가장 많은 기량향상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2011 시즌에는 2군에만 머물러 있는 데다가 그나마도 부상으로 2달 가량 경기에 못 나왔다. 그리고 박진만의 후계자는 김상수가 대신 차지하였다. 안습.
4 한화 이글스 시절
4.1 2012 시즌
2011년 11월 22일 처음으로 시행된 2차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한화에 지명되었다. 한대화 감독이 삼성 수석코치 시절 눈여겨 봐두었다고.
하지만 같은 시기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이적해온 최승환, 이학준과 달리 출장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시즌 초반 대주자로 간간이 기용된 것이 전부였고, 퓨처스리그에서도 12경기 출장에 그쳤다.
4.2 2013 시즌
그렇게 한 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2013년 5월 24일 자로 드디어 1군에 복귀했다. 허나 8회말 대타로 나와서 헛스윙 삼진(...). 주로 3루수로 출장했다.
4.3 2014 시즌
담 증세로 엔트리에서 빠진 김회성을 대신해 6월 28일 시즌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28일과 29일에 거쳐 1타석만 들어섰고 7월 4일에 다시 말소되었다.
이후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
4.4 2015 시즌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가 2015년 6월 28일에 정식선수로 재등록되었다. 이 로스터 조정으로 정민혁이 팀에서 웨이버 공시되었다.
그럼에도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시즌 후 보류선수에서 제외된 뒤 다시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
4.5 2016 시즌
2016년 7월 29일에 외야수 고동진이 웨이버 공시되어, 그 자리에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 어찌 매년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 귀신같이 매년 살아 남는 불사조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
2007 |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 |||||||||||||||
2008 | ||||||||||||||||
2009 | 삼성 라이온즈 | 1군 기록 없음 | ||||||||||||||
2010 | 64 | 63 | .175 | 11 | 0 | 0 | 0 | 5 | 10 | 4 | 0 | .175 | .172 | |||
2011 | 1군 기록 없음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
2012 | 한화 이글스 | 10 | 5 | .000 | 0 | 0 | 0 | 0 | 0 | 1 | 1 | 0 | .000 | .000 | ||
2013 | 36 | 63 | .254 | 16 | 1 | 0 | 0 | 1 | 6 | 1 | 4 | .270 | .299 | |||
2014 | 6 | 10 | .300 | 3 | 0 | 0 | 0 | 0 | 2 | 0 | 0 | .300 | .300 | |||
2015 | 4 | 2 | .000 | 0 | 0 | 0 | 0 | 1 | 1 | 0 | 0 | .000 | .000 | |||
2016 | 3 | 2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
KBO 통산(8시즌) | 123 | 145 | .207 | 30 | 1 | 0 | 0 | 7 | 20 | 6 | 4 | .214 | .225 |
- ↑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오! 한화 임익준~ 날려주세요 우리를 위해 한화를 위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오! 한화 임익준~ 날려줘요 승리가 우리에게로~ 한화에게로~
- ↑ 응원가는 좋은 편인데 1군에서 불려진적이 거의 없어 응원가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 ↑ 2007 시즌 개막 하루 후 상무에 입대. 등번호는 역시 시즌 개막 후 정식 입단한 채태인에게 승계되었다.
- ↑ 참고로 동생인 임익현은 같은 팀에 입단했다가 2년만에 방출.
- ↑ 선동열 감독이 신인 내야수/툴 좋은 내야수보다는 당장 안정적으로 공을 받아낼 수 있는 선수를 선호하는 경향의 덕도 있다. 철저하게 투수 위주로 야구를 풀어가는 편이라... 물론 2010년 들어서 약간은 변화한 모습이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