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동명이인)

1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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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수,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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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려의 문신

고려 시대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이다. 젊을 적에 제주 판관을 지낸 적이 있으며, 이 시기에 토지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많이 놓여 있는 현무암을 돌담으로 활용해 땅을 빼앗길 수도 있는 양민의 토지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

4 조선의 문신

4.1 金絿

조선 4대 명필
사자관체 석봉 한호예서안평군 이용인수체 자암 김구초서봉래 양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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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의 필체인 인수체. - 대전시립박물관 전시


1488년 ~ 1534년

조선 중종 시대의 문신으로 자는 대유, 호는 자암(自庵)과 삼일재, 시호는 문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조선 초기 4대 명필 중 한명으로 그의 필체는 인수방에서 살아서 인수체라고 불렸다.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투옥된뒤 개령으로 유배가 되었고, 남해, 임피등으로 이배되었다가 죽기 1년전인 1533년에 풀려나게된다. 그리고 고향인 예산에서 여생을 보내던 중 사망하였다.

4.2 金構

조선 시대 후기의 문신. 당색은 서인 노론. 본관은 청풍 김씨이며 자긍(子咽), 호는 관복재(觀復齋)이고,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현종 10년(1669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숙종 8년(1682년)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성균관전적과 각 조의 낭관을 거쳐 대사간, 장예원판결사를 지냈다. 판결사로 재직 중 세조에게 쫓겨난 노산군의 복위를 주장하여 단종복위를 성사시켰고 아울러 단종비 송씨의 묘를 왕비의 능으로 추봉하고 능을 조성하는 공사를 감독했다. 이후 형조판서를 거쳐 육조의 판서를 모두 지내고 숙종 29년(1703년) 우의정으로 승진했다.

그의 집안은 4대에 걸쳐 6명의 정승을 배출한 집안이기도 하다. 사도세자를 공격했던 영의정 김상로좌의정 김약로의 삼촌이며, 후에 영의정이 된 김재로는 그의 아들이다. 또한 나중에 죄의정이 된 김치인은 김재로의 아들이자 김구의 손자며, 정조 때의 서인 노론의 거두 김종수는 김구의 아들 김희로의 손자, 즉 김구에게 증손자가 된다. 형 김유는 대제학을 지냈고, 조카 김취로는 호조참판(종2품)을 지낸 정치 거물들이다. 또한 독립운동가 김규식은 그의 동생 김무의 7대손이었다.

5 창작물

김구 - 대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