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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8년 12월 6일-
대한민국의 언론인 겸 딴지일보의 총수.
2 초기 이력
중학교 시절 사진과 시. 글솜씨는 타고 났나보다. 근데 얼굴이 더 돋보인다 왜 저 얼굴이 30년만에 이렇게 된거지 이 사진이 팬카페에 올라왔는데 누군가 "송승헌이 지상렬로 성장했다"라고 제목을 썼다. 이 짤을 본 총수 왈 "씨바!" 정확한 리딩은 다음과 같다. "씨↗이발↘ (으하하하하하핳) 이 씨발 (으허하하하핳) 음모야 이건! (씨발 으허흐흫)" (나꼼수 22화 30분 17초부터 들을 수 있다. 유튜브로 찾는다면 31분 11초)
경상남도 진해시(현 창원시 진해구) 출신으로 홍익대 전기제어공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꽤 잘했다던데,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서 삼수까지 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결국 후기대였던 홍익대로 낙착되었다. 당시 학력고사 체제에서 전기-후기로 모집이 나뉘어져 있었으며, 전기 모집 대학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등이 있었고 후기 모집 대학은 한양대, 성균관대(인문), 외대(인문), 경희대(인문), 인하대(자연) 등이 있었다. 후기대 중에서도 홍익대 공대를 간 것은 그 당시 홍익대에는 파격적인 성적장학금제도가 있어서 학력고사 300점 이상의 점수를 얻으면 4년 등록금 면제에 월 20만원 이상의 지원제도가 있어 아마도 그것을 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3 시절 대입지원 때나 합격자 발표 후 자존심에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하지만, 본인은 저서 '건투를 빈다(p.26~29)'에서 '서울대에 갔더라면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 겨우 공부 하나 잘하는 걸 가지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우월하다고 믿는 어린 편협하고 유치한 멘탈리티에 사로잡혔을 것'이라며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진정으로 '서울대에 떨어진 것이 다행이다'라고 밝혔다.
1991년 1인투어 가이드 시절. 지금의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 |
이런 사정을 알고보면 위의 사진처럼 고등학교 때까지는 모범적인 스타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선망의 직장 중의 하나인 포스코에 입사한 경력도 있는 등, 대학 때도 현재처럼 튀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한다. 대학 시절 배낭여행이 그 성향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여행한 국가는 대략 50개가 넘는다고... 이때의 에피소드가 참으로 놀라운데. 당시 걸프전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이라크와 이스라엘 중동지역을 방문할 때 반군 지도자 아라파트의 모습이 궁금해서 그의 집을 한참 찾다가 만나기 직전까지 갔으나 생각해보니 무작정 만나고 싶었을 뿐 아라파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작 없어 그의 집 벽에서 사진 한장 찍고 돌아왔다고 한다.[1]
3 딴지일보 창간
포스코를 8개월만에 자기 발로 박차고 나왔다.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서류복사나 하는 신입시절 자기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는거 아니냐는 자괴감과 어느날 새벽까지 이어진 회식 후 사원들 기를 잡아주기 위해서 바로 회사에 들어가 가오(...) 잡는 간부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끔찍했기 때문.
이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IMF때 정리해고를 당한 후, 1998년 딴지일보를 시작했다. 원래 딴지일보는 김어준 개인 사이트로 시작을 했고, 스스로 기사를 만들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고 코드를 짜는 등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소문을 냈다) 처음에는 아무도 방문 안해서 스스로 조회수를 올리는 짓을 했다고 하나, 결국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당당히 1999년 언론사 영향력 순위에서 당당히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B급 정서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초창기 인터넷 문화 형성에 나름의 공이 있다. 이 점은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에 비할만하다. 명확한 정치지향이 없다가 이후에 보수쪽으로 커밍아웃한 김유식과 달리 김어준은 확실히 처음부터 진보-개혁세력 지향이었고, 특히 조선일보에 대한 적대적 포지션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쪽이 좀 더 빨랐으며 그리고 말아 먹기도 더 빨랐다 초창기에는 날카로운 정치 평론과 유력 정치인, 대권 주자들에 대한 신선한 형식의 인터뷰로 유명했다. 유명 정치인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빤스가 사각이냐, 삼각이냐는 빠질 수 없는 핵심 질문이었다. 2012년 새롭게 시작한 웹 월간지 더딴지에서도 파토 등의 주요 필진이 물어본다.
딴지일보의 직설적인 논조와 과감하게 당시 기성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까지 거침없이 다루었기 때문에 매우 큰 관심을 받았다. 예를 들어 그동안 하급문화 취급을 받아 아무도 심도있게 다루지 않았으며 저평가되었던 국산애니나 고전만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 발굴운동을 벌였다든지 하는 일은 꽤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정작 김어준 자신의 아이디어는 빈약했지만 90년대 후반은 묘하게 고급 필진들이 모여드는 시기였다.
딴지일보의 성공으로 기성언론에 대한 비꼼과 날카로운 풍자를 내세우며 인터넷 문화와 언론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매김한다. IT거품이 한창이던 리즈시절에는 300억원에 딴지를 인수하겠다는 오퍼도 있었다고. 하지만 딴지일보가 서서히 지면서 같이 지기 시작한다. 딴지일보 외에 여러 풍자 사이트와 유머 사이트가 등장했고, 특히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사이트들은 이용자끼리 생산-소비를 하는 형태로 사용자들의 지속적 참여로 성장을 거듭한 반면 일방적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소비하는 포맷의 딴지 일보는 이들 사이트들에 이용자를 많이 빼앗기게 된다. 이후 상황은 딴지일보 항목 참조.
이것과 함께 정치적인 지형도 딴지의 몰락에 한몫했다. 소위 개혁세력이 집권할때 딴지의 주적인 보수세력이 야당이었는데, 원래 풍자와 해학은 권력을 까는데서 재미가 나오는 법인데, 딴지의 주적은 그 당시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었으니... 비슷한 진보적 정치풍자 사이트인 미디어몹도 개혁세력이 위기에 몰렸던 탄핵정국까지 그 인기가 피크를 이루다가 이후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자 거기에 휘말려 인기가 떨어졌다.
4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
딴지일보의 몰락 후(2000년대 중반)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한다. 전 부인과의 이혼도 이 시절 딴지가 리즈시절일때 지나친 확장을 해서리 그게 다 빚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해 딴지일보에서 여성용 성인기구를 팔기도 했다. 그러나 딴지 몰락하에서도 진보적 논객으로 활약하면서 김어준의 지명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스스로 야매 상담가라고 자칭하기도 했으며, 한겨레 신문에서는 "그까이꺼"라는 상담 코너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를 묶어 "건투를 빈다"라는 저서로 펴냈다. 이와 함께 대학이나 기관의 각종 강연에도 얼굴을 내밀었는데, 주된 논지는 "남의 눈에 구애받지 말고 과감하게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자주 불려다닌 것으로 봐서는 이런 연사로서 평가는 꽤 좋은편. 의외로 이런데 나와서는 "씨바" 같은 욕을 안한다. "존나"는 한다.
2011년 이후 나는 꼼수다의 인기에 힘입어 전국민적으로 폭풍적인 관심을 받았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사람들에게는 나는 가수다 품평으로도 유명하다. "두시의 데이트 윤도현입니다"의 한 코너에 출연해서 나가수의 열풍에 힘입어 크게 이슈에 오르기도 했다. 전율스럽게도 김어준은 라디오에서 당시 진행되던 시즌에서 1등과 7등(탈락자)를 한 번 빼고 다 맞췄으며 심지어 그 한 번도 총수가 찍은 사람이 6등이었다. 허나 얼마 뒤 MBC 라디오국이 윤도현을 하차시키면서 함께 퇴장.
여러 저서 등과 활동을 볼 때 상당히 정치지향적인 인물이며 정치논리로 움직이고 이를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꾸준했는데 스탠스는 중도라고 하는데 사실상 진보개혁성향(민주당, 국민참여당쪽)으로 평가받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성향이 야권이나 극좌파는 아니다.
5 정치적 성향
김어준이 표방하는 정치적 성향은 진보개혁성향이다.
아래에 있는 숱한 트리비아를 보면 나오듯,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봐도, 일부 비난적인 논리가 존재하긴 하나 이걸 가지고 정치를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단순화시키고, 그렇게 구분된 진영을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단결하게 만들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모든 진영 논리가 그러하듯 진영이라는 절대적 전제 하에서 다른 중요한 문제들을 과소평가하거나 혹은 무시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욕하기도 쉽고 욕 먹기도 쉽다
이 진영논리적인 태도 때문에 생긴 흑역사라면 우선 황우석 사태 때 황우석 옹호 칼럼을 써서 논란이 되었던 일이 있었다. 논란이 벌어지던 당시 김어준이 썼던 각종 음모론과 인터뷰들 중 그나마 아직 남아있는 것들을 몇가지 찾아보면
섀튼은 왜 떠났는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에서 날라간 부분들을 스크랩한 곳
이와 관련해서 새튼과 미즈메디 음모론을 다룬 적이 있으며, 황우석을 옹호하는 인터뷰에서는 "황우석 논문을 밝혀낸 브릭은 신뢰할 수 없는 곳이다" " 영롱이와 스너피가 거짓이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 같은 여러 이야기를 그대로 싣기도 했다. 이후 저서 '닥치고 정치'에서 그는 아직도 황우석의 의도가 나빴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보수라고 해서 의도를 무조건 나쁘게 해석해서 짓밟는 진보진영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라고 짧게 해명했다. 책 한 권 쓸수 있을만큼 생각이 많지만 혹 핑계처럼 보일까봐 그런 책은 쓰지 않겠다고 한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적지만 가장 애매한 부분이다.
디 워 논란 때도 심형래를 변호하는 투의 기사를 써서 역풍을 맞은 전적도 있다. 때문에 황우석, 심형래 건때문에 당시 대립각을 달리며 의견을 달리했던 진중권과는 같은 진보 성향이면서도 사이가 좋지 못 했을 듯. 물론 지금은 성향이 같아져 문제는 없는 듯.
또한 2011년에 일어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후보자 매수 의혹에 대해서는 나꼼수를 진행하면서 이를 선의로 행동한 것이라고 옹호하는 편이라 잘못된 건 잘못된 것이라고 까는 다른 진보나 좌파 인사들과 치고 받았다. 2012년 9월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곽노현은 교육감의 자리를 박탈당했다. 이후 헌법재판소까지 가서도 패소. 다만, 곽노현의 경우는 좀 다른 문제인 것이, 이 시기까지 다른 진보 인사들과 대립각을 세운 것은 사실이고 이후 곽노현이 결국 유죄로 끝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곽노현 사건은 1심 판결로 가는 과정에서 진보측 언론의 평가가 뒤집히게 되었고, 곽노현의 죄목이 사후매수죄로 나오면서 지금 진보측에서 곽노현을 비판하는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애초에 김어준과 진보측이 대립한 것도 그 곽노현 사건의 팩트보다는 김어준이 기존의 진보측에서 너무 결벽증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면서 쫄아서 비겁하게 나온 것이라고 평가한 것이 더 크다.
위에 있는 사례들이나 그의 기타 언행에서 볼 때, 진보는 도덕적으로도 결백해야된다고 믿는 일부 논객과는 달리,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의 대상을 지키는 동기와 배짱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꼼수다 방송 중에도 보수 언론의 의혹제기 때 다른 진보 인사가 이전까지의 동지를 공격하는 것은 보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과 스스로의 도덕적 우월감을 위한 비겁한 행동이라고 언급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논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문제가 있고, '무죄추정의 원칙'도 있으니 확정될 때까지는 기다려보자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독특한 포지션 때문에 진보신당 계열 정통좌파들은 보수 계열과 마찬가지로 김어준에 대해 안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통 좌파의 김어준 혐오증이 "나꼼수"에 대한 디스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만 이것을 김어준 개인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해석하는건 곤란. 실제로 김어준의 이런 포지셔닝 때문에 나꼼수의 팬들 중에서는 철저하게 내편 아니면 니편이라는 편가르기가 행해지고 나꼼수에 대한 비판을 곧 이적행위로 취급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이고 있다.
이른 바 '나꼼수 비키니 사건'에서 보듯 김어준은 진보적이라 할 말한 정치 성향과는 충돌하는 등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김어준은 사과를 요구하는 일부 여성 지지자들을 향해 동료 호스트였던 주진우, 김용민의 사과마저도 막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30대의 유권자들로부터 성별을 가리지 않는 전폭적 지지를 누렸던 나꼼수는, 이 사건 이후 2008년 촛불 이래로 결집되어 온 젊은 여성들의 지지를 상당 부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슈에 대해서는 논란이 가라앉을 즈음 나꼼수에서 언급하기도 했었는데, 주된 논리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권력 관계가 애초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상이 된 여성마저도 발언의 취지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아무 불평 없었다고 했다.
6 최근 동향
- 2011년 10월 24일 MBC 라디오 개편과 더불어 색다른 상담소가 폐지됨에 따라 해당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나는 꼼수다 때문에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색다른 상담소는 팟캐스트에서도 상위권에 포진해있는 나름대로 인기코너이기 때문에 그 의혹은 더 불거졌다. 허나 이러한 의혹에 대해 김어준 본인이 프로그램 시작 전부터 6개월만 찐하게 하고 끝내자고 제작진과 이야기 했다고 하며 일축했다...라고는 하는데, 이게 뭐 6개월만 하고 자기가 뜨겠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자신은 김미화 퇴출로 촉발된 진보 성향 연예인의 퇴출을 수습하기 위한 일종의 방패막이니 수명이 길지 않을 거라 예측했다는 것. 김어준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표현이 나온다. 참고로 색다른 상담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프로그램은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 재방송이다. 총수 왈 "내가 재방에 밀렸어!"
- 2011년 10월 28일, 열애설이 터졌다. 상대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의 작가로 상당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 인정옥. 이혼 후 2004년부터 열애중이었다고 한다.
- 알아주는 골초인데다가
안필래야 안필수가 없지비만기도 보이고 게다가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건강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나꼼수 지방 콘서트에다가 김어준의 뉴욕타임스(1주일당 대충 2시간) 녹화까지 겹쳐 매일 지방과 서울을 직접 운전으로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언동으로 보건데 맨날 고기만 퍼먹는 듯하다. 야채는 가축이 먹는 거라며 고기만 찾는다. 이런데도 나꼼수 4인방이 건강검진 받은 결과는 멀쩡하다고. 자기 말로는 의사가 자기 폐를 보고는 담배를 안 피는 사람 폐 같았다고 했단다. 진짜?! 결국 2011년 11월 28일,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으나 곧 회복하였다고 한다. 같이 있었던 탁현민씨가 다음날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트윗. 나꼼수와 정치적으로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중앙일보의 홍혜걸 의학전문기자가 이 소식을 듣고 동영상까지 만들어 빨리 병원가라고 충고해주기도 했다.
- 정봉주 비키니 응원여성에 대한 발언에서 김어준은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했다’라는 발언으로 인해 진보측에서 또한 비난을 받았다. [1]
- 2012년 대선에 혼신의 힘을 쏟아서인지 나꼼수는 대선 직전까지 줄기차게 매일매일 업데이트 되었다. 그래서 대선 직후엔 휴가차 주진우 기자와 유럽에 몸을 피신해 있었다. 정봉주 前의원은 김어준이 검찰수사를 피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도피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만기출소 기념식 때 언급하기도 하였다. 주진우 기자와 함께 2013년 4월 초에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주진우 기자만 먼저 귀국했고 김어준은 1주일 정도 이후에 귀국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주진우 기자가 검찰에 출두해 조사까지 받았음에도 김어준에 대한 소식은 없는 상태다.
- 결국 7월에 귀국했다.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 9월 중에 재판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간 유럽에서 최고권력자의 비자금을 찾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2013년 10월 24일, 국민참여재판을 거쳐서 1심 무죄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배심원 제도인 국민참여재판은 권고권한만이 존재하는데, 이 내용에 있어서 박지만 관련 기사를 주진우가 발표한 것은 6 대 3으로 무죄 우세, 나는 꼼수다에서 이를 발표한 것은 5대 4로 무죄 우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 명예훼손 문제는 8 대 1로 무죄 우세 권고가 나왔다. 다행히 재판부 역시 이를 받아들여서 전체에 무죄를 선고했다. 주진우 측에서 증인 출두를 요청한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은 결국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 2014년 3월14일 한겨레하니tv에 김어준의 KFC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하였다. 1주일도 안되어 조회수가 20만을 돌파하는 등 나꼼수의 인기가 여전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치킨은 박근혜의 동의어로 마초스러워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12화부터 프로그램 제목이 김어준의 파파이스로 바뀌었다. KFC 본사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고 한다. 한겨레에서 고소에 할애한 자금이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클레임을 받아들였다고.#
- 11월 17일 2심에서 검찰은 1심과 같은 징역 2년을 구형했다.
- 2015년 1월 김어준은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관련기사 ~~딴지 기자들은 총수의 무죄 판결 이후 "사법부는 각성하라", "종북 판사 물러가라" 등의 이야기를 했다.
- 2015년 1월 프로젝트 不 다큐멘터리 3부작의 제작자로 참여, 펀딩을 시작했다. 그리고 45일만에 목표액인 10억원에 도달하였다… 감독은 김지영을 기용.
- 2016년 6월 30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지 3년 7개월만에 7:2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을 받았다. 딴지일보에선 김어준 총수가 감옥에 들어가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며 헌재를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김어준, 주진우 무죄는 물론, 헌재의 위헌 판결 속에 담긴 의도마저 규탄한다
7 기타 이모저모
- 딴지일보의 과거 여행 전문 섹션으로 딴지관광청(現 노매드21)이 있었는데, 그는 사이트 내에 대형 여행 전문 섹션을 만들었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딴지관광청의 경우 2003년도에 노매드21로 이름을 변경한 후 전문 여행사로 독립했다. 또한 현재 딴지일보에서 완전히 경영 분리가 된 상태이다. 다만 칼럼 기고나 공동 상업인증 서비스 등의 형식으로 느슨한 업무협조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 상담칼럼을 모은 건투를 빈다라는 책자를 쓴 바 있다. 이 책자에서 남한 절반도 안되는 작은 나라였던 옛 고대 이스라엘이 무슨 대제국이니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냐면서 성경이라는 소설책을 신神의 말씀이라고 받드는 자들의 종교가 선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죄악이 많다고 풍자한 바 있다. 건투를 빈다를 썼을 당시 인터뷰에서, 향후 모바일 세대에 맞춰 새로운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한 적 있는데, 다들 딴지일보 모바일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꼼수가 등장해 대박이 난 것. 그리고 이 인터뷰에서 다음 저서는 인간의 동물적 속성을 파헤치는 책을 내겠다고. 가제로 '인간은 동물이다'라고 지었었다. 실제로는 그 책은 다음으로 미뤄지고 '닥치고 정치'가 발간되었다.
- 노무현 추종자. 딴지일보의 과거 대선후보 인터뷰는 총수가 항상 동행하여 직접 인터뷰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취재차 여러번 만나고 그의 인간성에 반한 듯 보인다. 스스로 밝히길 이명박에 대한 순수하리만치 한 증오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고. 그는 최고의 정치인으로 김대중을, 최고의 '남자' -정치인을 포함한 모든 남자 중 최고의 남자- 로 노무현을 뽑았다. 그리고 둘 모두를 이명박이 살해했다고 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한 후 아직까지도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검은 넥타이만 메고 있다. 차기 대선후보로 문재인을 미는 이유는 이명박의 대척점이라 박근혜와 붙어서 이길 수 있는 후보라는 것.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노무현 노제 때 사람들 쳐다볼까 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김어준 (닥치고 정치 中)
- 나꼼수로 SNS 정치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지만, 사용하는 휴대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피처폰. 다만 목격된 바에 의하면 2012년 초반 쯤에 아이폰4/4S로 갈아 탄듯하다. 거기다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안한다고 한다. 그래서 김어준의 동향은 김용민이나 탁현민, 주진우의 SNS를 통해 나온다. 하도 김어준 행세를 하는 가짜 트위터 계정들이 날뛰어서 딴지일보에서 '공식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8 매의 눈?
2011년 5월 지승호와 가진 대담을 글로 옮긴 저서인 "닥치고 정치"(2011년 10월 출간)에서 예언했던 내용이 일부 맞았다.
- 진보신당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은 탈당할 것이다. (11년 6월)
-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는 홍준표가 될 것이다. (11년 7월)
- 오세훈은 무상급식 져서 사퇴할 것이다.(11년 8월)
-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모종의 세력 (한나라당) 이 선관위 홈피를 공격한다.
-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은 합당할 것이다. (11년 12월)
- 진보신당의 일부는 끝까지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반대할 것이다.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를 위주로한 진보신당 탈당파는 진보신당과 결별하고 민노당,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에 참여로 실현.)
그런데 이러한 몇몇 예언이 맞았다고 보기도 힘든게, 민노당 국참당의 합당이나, 노심의 탈당과 같은 경우에는 진보정치에 어느정도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정도의 인식은 지니고 있었다. 2011년 5월 있었던 연석회의의 결과가 발표되었을때, 그걸 주도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진보신당 당원들이 얼마나 반대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총선 국면이 다가오면서 이정희와 유시민이 함께 책을 내는등, 징후는 많았으며 정치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징후를 읽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매의 눈'으로까지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미국의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황우석을 옹호한 일이나 신정아에 대해 옹호적인 인터뷰를 쓴 일, 무조건적인 비난 의욕에 불타 사실관계 검증에 소홀했던 삼성 휴대폰 폭발 사건 등은 그 안목의 한계를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딴지일보참조. 이 가운데 삼성 휴대폰 사건은 딴지일보에서 터진 뻘짓이기는 하나, 이 시기의 딴지일보는 김어준의 손에서 많이 벗어난 시기이다. 김어준이 직접 쓴 글이라면 몰라도 그 외의 사건들을 김어준과 연결 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또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많은 이들을 실망시킨 이정희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내가 만나본 이정희의 최대 장점은 낭만성이야. 이데올로그 타입이 아니라 자연인으로서의 생래적 진보성에 기반한, 소녀같이 유연한 낭만성. 그녀의 강단 역시 그러한 낭만성에 기초한 것인지라 직관적이고 애잔해. 바로 그 지점에 그녀의 대중성이 있는 거지. 다른 진보정치인들이 싸움은 머리로 이해하는 거라면, 그녀의 싸움은 감성으로 다가오거든.(중략)
그리고 그 대목에서 노무현과 닮았어. 평생을 업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아무런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으로 살아내는 자는 극히 드물다고.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야. 타고나야 하는 거야. 가르치거나 흉내 낼 수가 없다고.
(중략)
진보진영의 정치인 중 어느 누구도 그 비슷한 지점에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이정희는 거기에 그나마 근접해가고 있는, 그런 싹수가 보이는 최초의 진보정치인이야. 한마디로 사람이, 보인다. 그게 그녀가 가진 힘이다. 김어준 (닥치고 정치 中)
이 부분에 대한 긍정과 부정 평가는 다음과 같다.
- 긍정 : 김어준의 책에서 이 내용은 더 어렵고 학술적이어서 대중에 유리된 언어를 사용하는 진보세력에 비해서, 이정희는 좀 더 감성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표현한다고 하는 부분이 핵심이다. 위 내용의 중간중간과 앞 뒤의 내용에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고, 이 다음 부분에서는 이정희가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을 통합시키기 어려울 것이란 내용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저 부분은 이정희에 대한 평가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이정희의 언어 사용에 대해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
- 부정 : 이정희의 언어 사용이 핵심인가? 아니면 이정희에 대한 김어준의 평가가 핵심인가? 당연히 후자다. 제 아무리 앞뒤에 다른 내용이 있다고 해도 저 인용 부분이 말하고 있는 '평가'는 빼도박도 못하는 사실이며, 이런데도 이정희에 대한 평가가 핵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과연 김어준의 평가대로 이정희가 "평생을 업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아무런 연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으로 살아내는 자"인가? 김어준은 "노무현과 닮았다"며 거의 최고의 찬사를 보냈고, 감성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쓸 뿐더러 "내가 만나봤더니" 노무현에 근접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이정희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정희가 감성적이고 쉬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관계 없이, 좁쌀만한 기득권을 지키는 문제로 통진당의 지지율은 땅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김어준의 평가는 "언어 사용"이라는 너무 좁은 사안으로 이정희라는 한 정치인을 모두 담아내려고 한 성급한 평가로 매듭지어진다.
결론은 김어준의 평가는 (모든 타인의 생각이 그렇듯) 적당히 필터링 해가며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자신이 틀렸던 사안에 대해서도 절대 인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 가장 대표적인 부분은 역시 김어준의 가장 어두운 과거라 할수있는 황우석 사건이다. 닥치고 정치에서 언급하는 내용과 당시 딴지일보에서 황우석을 다룬 내용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특히 황우석과 국익의 연관성에 대해서 관련된 부분. 위에 말한 진영논리적 사고를 비롯해 극단의 장단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김어준은 스스로 이론만으로는 모든 상황을 인식할 수 없고, 이론 이외의 부분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시선을 '무학無學의 통찰'이라고 부르곤 한다. 추종하는 사람들이 붙여준 말이 아니라, 스스로 저서나 발언에서 여러 번 언급한 내용. 그러나 황우석, 심형래, 이정희, 총선, 대선 같은 대형 건수에서 그가 보인 의견과 한계, 무엇보다도 위에서 언급한 반성 없는 태도를 볼 때, 그가 주장하는 '무학의 통찰'은 추종자들에게 말고는 인정받기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