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1953년 1월 29일[1]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 전(前)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종교는 원래는 천주교였으나, 후에 불교(법명 : 심산)로 개종해서 불교이다.
한국의 전 국민은 물론, 세계를 속인 사기꾼이자 대한민국 과학계에 길이 남을 연구부정행위 범죄의 장본인이다. 한 때는 대한민국 과학계의 위상을 드높여준 국민적 영웅이자, 난치병 환자들과 가족들의 꿈이자 희망이었으나 지금은 대한민국 과학계의 볼드모트로 전락했다.
2 전성기
서울대학교 수의대 시절에 줄기세포를 연구하여 1999년에 젖소 영롱이를 체세포 복제로 만들었다고 발표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는 외환위기로 국가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던 때라 세계에 내세울 것 하나만 나오면 띄워 주는 언론 덕분에 국민의 관심도가 상승했다. 이후 신기술 개발의 선구자로서 국민적인 인기와 관심을 얻게 된다.
사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1999년 소 브루셀라 백신 파동 때 황우석 박사가 국정감사장에서 백병걸 전북대 교수의 백신이 엉터리라고 주장해 구속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백 교수는 이에 대해 자신이 만든 백신은 미국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것이며 당시 백신이 들지 않은 것은 오염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점점 백 교수를 향한 시선이 따가워지자 자신은 사실 은폐를 위한 농림부의 희생양이라고도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 나중에 백병걸 교수의 말이 사실로 밝혀졌다. 서울지방고등법원이 백신 파동의 원인은 공무원에게 뇌물 공여와 잡균들로 오염된 불량 백신을 제조한 대전의 한 백신 제조회사에게 있으며 국가에 끼친 손해 역시 그 회사에서 보상하라는 구상권 판결을 내림으로서 확실해졌다. 한마디로 괜한 황우석 교수의 거짓주장으로 브루셀라 전염이 한창일 때 효용성이 있는 백신을 사용하지 못하게 돼서 대한민국에서는 브루셀라가 대 창궐하게 됐었다. (#)
2004년 2월에서 3월중에는 『사이언스』지에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면서 (운명의 해당 논문)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과학자로 부상했다. 이 시기까지가 황우석의 전성기였는데 영롱이를 시작으로 전국민적인 관심과 지지를 비롯해서 대한민국을 이끌 새로운 지식인으로 대우받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대중에게 알려진 줄기세포 기술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의 기반이 될 기술로 각광받았고 배아줄기세포 개발 덕분에 한국만 아니라 전세계의 불치병과 난치병 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줄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게되었다.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배아줄기세포는 더욱이 세계 최초라는 수식이 붙었고 그야말로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나중에 황우석 박사가" 해외에서 더 많은 지원금과 혜택을 주겠다는 제의를 거부하고 국내에 남아서 연구를 계속 하겠다"고 하면서 진정한 애국자로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고 위인전까지 나왔다. 그러나 훗날 밝혀지는데 해외의 스카웃 제의는 완벽한 거짓말이었다. 나중에 PD수첩 팀이 1조원 떡밥에 대해 진위를 확인하자 황우석은 자기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매일경제신문 기자가 확인도 안 하고 멋대로 쓴 거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정작 1조원 떡밥이 돌아다닐 땐 아무 말도 없더니….
이 때의 인기는 김구, 이순신, 세종대왕에 버금갈 정도로 당시 고등학교 이과 교실 알림판에는 교육청에서 만든 황우석 관련 에피소드가 수시로 걸리기도 했다.
이 시기 황우석에 대한 지지가 어느 정도였나면 대한항공에선 황우석 박사에게 퍼스트 클래스를 무료로 지원해주겠다고 했고, 국회의원이 황우석에게 만큼은 특혜를 주어서 영수증 없이도 연구비를 지원하자고 했으며, 2005년 논문 발표 이후에는 아예, 최중요 인물로 대통령급 경호를 경찰에서 직접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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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발행되었던 기념우표[2] |
황 교수 가라사대, 일어나서 걸으라고 하자, 척추 손상 환자가 벌떡 일어나 가족들의 품에 안겼도다.
황 교수는 2005년 7월 26일 KBS 열린 음악회에서 클론 공연 다음차례에 등장하여 “ ’열린음악회’에 출연해 휠체어 댄스를 선보인 강원래를 벌떡 일으켜 과거의 화려한 몸놀림을 다음 ’열린음악회’에서는 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PD수첩에서는 이사건을 "원래야! 내가 너를 일으켜 걷게 하겠다"라는 영적 계시와 다름 없는 발언이라고 깠고 황우석의 실체가 밝혀진 후에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황우석이 스스로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한 것 같다고 비판할 정도로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였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보행장애자들은 황교주가 자신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철썩같은 믿음을 가졌고 심지어 자신을 마루타로 써달라고 하는 사례가 언론기사로 나올 정도였다.
2005년 8월에 스너피라는 이름의 아프간 하운드 종의 개를 복제하였다[3]고 발표하면서 다시 한번 대한민국은 황우석에 열광했다. 그야말로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 이래, 전 세계가 열광할 제2의 한글을 만들 기세였다. 여야도 구분없이 열광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우고 황우석을 대표 이미지로 내세워 대대적인 홍보를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까지 직접 황우석의 연구실을 방문해 격려하는 등 참여정부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다. 황 박사는 참여정부의 후광 아래서 온갖 수혜를 다 받으며 ‘거물’로 성장했던 것이다. 한나라당도 황우석 + 한나라당 + NO.1 = H2O라는 해괴망측한 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그 덕분에 2004년 총선 정국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양측에게서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직에 나설 것을 제안받기도 했을 정도였다. 물론 연구에 전념해야한다며 거절하긴 했다.
일부 기독교 및 환경단체, 민주노동당원 정도만 윤리문제로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황 교수에대한 비판은 미미했다. 그 때문인지 민주노동당 때문에 황우석 교수가 연구를 못해먹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몰락 직전에는 영장류 복제와 줄기세포 연구 대가(大家)로 알려진 제럴드 섀튼 피츠버그 대학 교수가 방한하여 황우석 교수와 공동연구를 선언하기도 했다.
3 언론플레이
전성기 때의 황우석은 언론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신의 유명세를 불리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난치병, 불치병 환자의 가족들과 만나 자신이 연구한 줄기세포로 그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고문을 주었는데 대표적으로 열린음악회에 출연해 클론의 강원래를 전성기 때처럼 벌떡 일으키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당시 독재정권 시절에 고생해서 얻은 후유증과 고령으로 건강이 안 좋았던 김대중 前 대통령을 만나서 내가 당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학수 PD가 쓴 '진실, 그것을 믿었다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에서는 황우석이 장애인 소년(교통사고로 반신불수 상태,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아이였다.)에게 임상 실험을 제의했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나온다.
이 줄기세포라는 것 자체가 암세포가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물건이다. 실용화 단계까지는 얼마만큼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그걸 십대 소년에게 임상실험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게 얼마나 황당한 말이냐면 한 마디로 이제 막 뒤집기를 시작한 아기에게 철인삼종경기에 나가라고 권유하는 꼴이다. 오죽하면 같이 연구한 미즈메디의 노성일이 아직 연구는 초기단계일 뿐 임상을 운운할 때가 아니니 설레발 좀 그만 치라고 말했을까.
"과학은 조국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4]라는 압박적인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다.
4 위기와 몰락
전체 사건 일자는 다음 참조 믿기지 않는 거짓말의 스펙터클 - 한겨레21, 2005년 12월 19일, 신윤동욱.
4.1 PD수첩 : 1차
2005년 11월 22일 MBC의 PD수첩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편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을 방송하면서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PD수첩은 난자의 출처에 의혹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난자 제공자에게 금품이 전달되었고 연구실의 여자 연구원들의 난자를 채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학윤리 문제가 불거졌다.[5] 상황이 이러자 황우석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을 시인하고 공직에서 사퇴했다. PD수첩 방영 이전부터 시민단체와 여성단체에서는 황우석의 연구윤리에 대해 의문을 계속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황우석의 언론 플레이 속에서 난자채취의 부작용을 알리지 않은 채로 난자채취를 한다는 의혹이 활발히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게 왜 논란이 되냐면 인공수정을 위해 난자를 채취하는 경우에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은 난자를 성숙, 배란시키기 위해 투여된 호르몬의 영향으로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르고 붓는다. 시험관 아기 항목에 서술되어있듯 신체적, 정신적으로 절대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그런데다가 황우석 측이 자행한 난자 채취는 인공수정을 위한 채취보다 호르몬을 과하게 써서 심하면 난소 자체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손상이 생길 수도 있었다.
이 과정을 대출(고리사채)로 비유하면 미래의 난자를 여자의 건강을 담보로 하여 선불로 땡겨오는 것이 난자 채취다. 건강한 아기를 잘 낳아야 원금 전액 상환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잘못하다가 영영 담보를 못 돌려받는 상황도 생길 가능성이 있다. 채취 과정에서의 신체 변화는 고리대금의 높은 이자로 비유가 되겠지만... 그런 것 따위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사람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러나 황우석의 인기가 지나치게 높아서 묻혔다. 아니, 방송 후 PD수첩은 국가적 인재의 연구를 방해했다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단 하룻밤 만에 시청자 게시판에는 글이 3000개가 넘게 올라온 것을 시작으로 황우석 지지자들이 MBC 앞에서 촛불시위를 함으로서 황우석 스캔들은 전국적인 이슈로 부상하였다. 다행히 이때 PD수첩은 억울한 비난을 받고 광고가 끊기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방송중단 사태를 맞이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때문에 PD수첩은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방송 강행의지를 꺾지 않았으나 YTN이 MBC PD가 김선종 연구원을 인터뷰하러 와서 황우석을 죽이러 왔다등의 발언을 하며 강압적 취재를 했다고 일방적으로 폭로(물론 거짓말이다.)하자 PD수첩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물론 PD수첩측은 이런 말 한 적 없고 황우석 교수가 곧 검찰의 수사를 받을 것이니 좋게 좋게 말하라 라고 했을 뿐이라 주장하였지만, 이 역시도 문제가 된 것이 당시 검찰 수사가 확정된 적이 없었으며, 회유이든 협박이든 명백하게 언론의 힘을 통해 취재 윤리를 어긴 것이다.
당연히 PD수첩은 방송 중단, PD는 경질됐고 대국민 사과문과 함께 밤 9시 메인 뉴스에서는 마치 남남처럼 느껴질 만큼 자사 프로그램인 PD수첩을 탈탈 털었다. 분명 취재윤리를 어긴 것은, 황우석 박사팀에서 어긴 과학윤리를 위반한 것만큼이나 큰 잘못이다. 백 번 까여도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PD수첩 팀이 제기한 의혹 자체는 합리적인 의심이었으나 재검증을 주장한 PD수첩의 요구는 이 일로 완전히 묻혀버리고 말았다.
반대로 황우석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어나서 황우석에 대한 지지는 더욱 커졌다. 인터넷 팬카페에서 출근하기를 바라면서 황우석 교수 사무실까지 찾아와 꽃잎을 뿌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다.진달래 꽃길 하지만 이 진달래 꽃길 이벤트는 이벤트업체에 부탁해서 벌인자작극이었다.
한편 프레시안에서도 처음 이런 기사가 나갔을 때 당연히 황우석 지지자들은 부정했고 아이러브 황우석의 카페 주인이었던 고운이 자기 노모가 밤새도록 꽃을 준비했다며 증거 사진을 올리고 다음해 2006년 2월 16일에 고소를 했다. 훗날 해당 기자는 다음에 꽃을 주문하고 싶다면 사진 속에서처럼 일부러 가지가 달린 꽃을 주문해서 힘들게 꽃만 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지가 붙어있지 않는 꽃을 주문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4.2 BRIC
황우석이 몰락하게 된 계기인 조작된 논문 사진이 올라온 곳은 BRIC(포항공대 생물학 정보 센터)이었다. anonymous라는 아이디가 12월 5일[6] bric 게시판에 "The show must go on" 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 이 글에 2005년 논문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글은 디씨인사이드 과학 갤러리로 퍼졌다. 초기에는 합성이 아니냐는 의심들이 많았으나 과갤의 한 능력자가 직접 논문을 다운받아 해당 사진을 확인, 조작된 것이 확실하다는 걸 밝히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되었고, 초기부터 황우석에게 비판적이었던 프레시안에서 보도하면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너무 어이 없는 짓이라 해당 전공자들조차 "바보도 아니고, 저런 수준 낮은 조작을 하겠냐? 실수한 거겠지"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황우석 교수 측에서 단순한 실수일 뿐 사진이 잘못된 건 이미 알고 있었고, 이미 사이언스에도 통보했다고 조작 논란을 일축했다.[7] 그러나 또 다른 과갤러가 황 박사의 2004년 논문 사진도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히자... 황우석의 위신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국민들 대부분이 속았단게 밝혀졌다..
이 일이 언론을 타자 소수를 빼고는 중립이거나 황우석을 지지하던 여론은 당장에 두 패로 갈라졌다. 연구를 하는 도중 일어난 비도덕적인 사건까지는 몰라도 연구 결과 자체를 조작한 건 그야말로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PD수첩은 여전히 매국노로 돌팔매질 당하고 있었으나, 온라인에서는 폭탄이 터지듯 매일 같이 논문의 조작된 사진과 DNA 프린트가 올라왔고, 이 시기에 인터넷은 키배로 들끓었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일을 해명해야 할 책임이 있는 황우석은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자충수였다. 의도가 빤히 보이는 작위적인 이 사진은 일방적으로 황우석 편이었던 언론조차 뜨악하게 만들었고, 해명이 아닌 정치를 하는 황교수의 작태에 과학자들은 분노했으며, 중립적인 입장이었던 사람들은 과학자인지 정치가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이에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홍혜걸과 KBS기자 홍사훈이 동네 도서관에도 꽂혀있는 사이언스가 일반인은 억만금을 줘도 아무나 볼 수 없는 잡지[8]라거나 진실보다는 국익이 우선이라는 희대의 개드립을 날린다. 이를 시작으로 유시민, 정동영, 박근혜, 김문수, 손학규 등 여야를 막론한 주요 정치인들이 대동단결(?)하여 황우석을 위로하였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9]과 후에 국무총리가 되는 정운찬 총장역시 합세하였다.
노무현: “나도 MBC ‘PD수첩’의 이 보도가 짜증스럽다”박근혜: “우리 나라의 보배 중 보배인데 편찮으면 안 된다”
손학규: “숱한 시련을 안겨주고, 신화를 전복시키려는 보이지 않는 악인들에게 강하게 말하고 싶다”
유시민: “부당한 방법으로 과학자를 못 살게 구니까 방송국이 흔들흔들하고 광고 끊어지고 난리 아닙니까”
이해찬: “연구단계에 있는 과학적 결과물을 과도하게 취재하고 파헤치려 함으로써 우리 학계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과학자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 사태”
정동영: “황 교수는 앞서가는 사람이자 우리의 희망이므로 보호하고 지킬 필요가 있다”
일곱 명 최대의 흑역사
여야 구분 없는 정치인들의 황우석 옹호가 절정에 이르렀다. 다만 여기서 민주노동당은 예외적으로 생명윤리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가 , 조선일보가 민노당이 황우석 연구 방해한다고 기사를 써재끼는 바람에 욕을 얻어먹었다.
신문사들 역시 여기에 예외가 아니어서, 조선일보의 경우 동정론으로 대중의 여론이 황우석 쪽으로 기울었을 때 '노무현 정부가 황우석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고, 이후 여론이 반전됐을 땐 '황우석의 연구는 초기부터 노무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이루어졌다'며 이전 기사와는 전혀 반대의 말을 하는 등 이념 논리에 휘둘려 말바꾸기의 극치를 보여주는 추태를 저질렀고, 거기에다가 황우석 비판자를 좌파로 내몰기도 했다. 거기에 제대로된 사과문은 내놓지 않았으니 이건 뭐...
한편,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마찬가지로 황우석 사태를 보수 vs 진보의 대결로 만드는데 주력했다.[10] 연구결과가 조작으로 드러나면서 사과하기는 했으나 한겨레 역시 한창 황우석이 주가를 올렸을때 이에 편승하여 자사 내 제2창간운동본부의 공동본부장으로 임명하여 감투를 쥐고 '황우석 교수님과 한겨레 닮았습니까?' 'H2O, Co2, H2 = 한겨레(H) + 황우석(H)'[11]이라는 마케팅을 펼쳤다. 그나마 황우석 사태 당시엔 조선-동아에 비하면 논조가 온건했긴했지만(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어쩡쩡한 논조를 취한거 보면된다.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도 황우석 사태 당시에 한겨레와 비슷한 논조를 취했다. 다만 앞글과는 달리 미디어오늘의 그당시 기사에서는 한국일보만 호평했을 뿐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조중동이랑 똑같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KBS와 SBS는 18일부터, 조선일보는 한 발 앞서 지난 14일자부터 양상훈 정치부장의 칼럼 <황우석은 과학자여야 합니다>로 황우석을 비판하고 '언론의 반성적 연구’를 언급하며 변화의 조짐을 보였고,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7일부터 바뀌기 시작했다고. 물론 전체적으론 색깔론 편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이 가장 높다.) 그 이외 지역언론사의 경우는 더는 말할것도 없고 그나마 인터넷 언론사인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업코리아, 데일리서프라이즈가 사건 초반에도 황우석 비판논조를 취한정도. 경향신문의 경우 담당 기자가 황우석 사태 초기 수상쩍은 기사를 썼고, 이후 표창 및 공중파로 이적하는 등 황우석과 영합해 입신하여 지금도 잘 나간다는 씁쓸한 이야기가 전한다. 프레시안의 경우는 과학 담당 강양구 기자의 활약이 유명하며[12] PD수첩과 함께 언론으로써 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언론사와 담당 기자는 역시나 역적 취급을 당했었지만... #
방송사의 경우 YTN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KBS의 경우 사건초반에 MBC를 신나게 까댔다가 노성일 이사장의 폭로이후엔 보도국쪽은 잠잠해졌으나, 생방송 시사중심에서 황우석 관련 음모론을 방송했다가 키배가 벌어지기도 했고, 추적60분도 황우석 관련 음모론을 방송할뻔했다가 취소했다. SBS의 경우 보도국쪽은 사건 초반에 제보자의 신상을 취재한답시고 제보자를 사실상 과학계에서 매장시키는 행동을 했고 동시에 MBC를 신나게 까대다가 마찬가지로 노성일의 폭로가 나오면서 버로우했다. 다만 시사전망대의 경우는 제외인데 진행자를 맡은 진중권이 사건초반에도 황우석과 황빠들을 까는 발언을 했기 때문(...).
거기에다가 모 사이트에서는 황우석을 지지하는 회원이나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손학규 지사가 "황우석이 옳으면 황우석 비판자는 모두 떠나라"라는 병크까지 나올 정도였고 이 반대항 역시 엄청났다. 과장 좀 보태자면 분단 이래 최대의 국론 분열이었다. 심지어는 한국 역사 이래 최초로 당시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까지 이 사건에 묻혔다.
여기서 홍혜걸을 다시 설명하자면 서울대 의학 박사 출신이며 대한민국 최초의 의학전문기자이다. 근데 그는 2002년 서울대학교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 줄기세포 논문의 엠바고를 깨고 중앙일보에 보도한 것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사이언스에 발표되기 하루 전 한국언론에 먼저 보도됨으로써 연구진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것으로 기사를 작성한 홍혜걸과 이를 보도한 중앙일보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는 황우석 등 연구진의 누구도 엠바고를 사전 설정하지 않았고 독자적 취재로 얻은 결과이므로 통상적 엠바고 파기와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2005년 5월 19일 황우석 교수의 두 번째 논문이 또다시 중앙일보, 한겨레, 광주일보 삼사에 의해 엠바고를 무시하고 먼저 보도되어 논란이 되었을 때, 그는 또 다시 엠바고를 깬 것으로 오인되어 방송출연 정지를 받기도 하였다.
4.3 노성일 이사장 긴급 기자회견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결국 이 거대한 병림픽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결정적 증언이 터졌다. 당시 황우석에게 줄기세포를 제공한 미즈메디 병원의 이사장 노성일이 긴급기자회견에서 "체세포 줄기세포가 존재하지 않는다"란 폭탄 발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 뒤 전국민이 받은 충격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근데 노성일도 황우석에 비해 상당히 많이 묻히긴 했지만 협력을 하다가 뒤통수를 치고 정의로운 척 하는 등 이 양반의 행적도 황우석 못지 않게 더럽다. 황우석의 항변 인터뷰와 같은 날 이루어진 그의 고백은 전형적인 동정에 대한 호소로 일관된 횡설수설에 가까웠지만 요는 자신에겐 책임이 없고 자신의 부하 직원만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이야기. 우습게도 이런 뻔히 보이는 인터뷰도 여러모로 동정을 산 모양이다. 하지만 한학수 PD의 말에 따르면 이 양반도 논문조작 자체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황우석이 줄기세포가 있다고 한 말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고, 때문에 난자매매 문제가 터져나왔을 때 자신이 한 일이라고 총대를 직접 매기까지 했다.
4.4 PD수첩 : 2차
노성일 원장의 해당발언 이후, PD수첩이 폐지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방송국 자체가 사장될 뻔했던 MBC는 기사회생했고, 여세를 몰아 반대여론에 방영하지 못한 후속보도를 밤 10시 황금 시간대에 70분간 편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불어 시청률 또한 기염을 토했다. PD수첩의 평균 시청률이 5~6%였으나, 이날 시청률은 13%를 넘겼다.
게다가 PD수첩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던 YTN의 김진두 기자가 황우석 교수의 최측근인 안규리 교수의 출장에 동행했을 뿐더러 미국으로 출국 당시 600만 원이 넘는 출장비를 전액 지원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MBC와 처지가 순식간에 뒤바뀌게 된다. 후에 YTN은 출장비를 돌려줬다고 해명했지만 황우석에게 유리한 기사를 써준 기자가 출장비를 지원받았다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공정성은 커녕, 청부취재 의혹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MBC 당국에서는 1차 방송을 한 직후, 황우석 측에선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진짜 핵폭탄인 2차 방송을 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고, PD수첩 측이 응하질 않자 방송이 나가기 바로 전에 문제의 YTN 기사가 터졌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MBC PD와 김선종 연구원이 인터뷰를 했던 그 당시에, YTN 김진두 기자에게 출장비를 지급했던 황우석의 핵심측근인 안규리 교수가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YTN과 황 교수의 의심스러운 정황은, 황우석의 대리인 노릇을 한 아이러브 황우석의 카페 주인 윤모씨가 YTN 기획조정실장 출신으로 드러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또한 PD수첩팀이 황우석 측에게서 줄기세포 샘플을 건네받아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있었을 때, YTN은 유전자 결과가 논문과 다르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TN은 그 사실을 숨겼고, PD수첩이 신나게 털리고 있을 때도 모르는 척 했으며 김선종의 사진 조작 인터뷰를 은폐하거나 확인되지도 않은 개인 이메일 보도 등 각종 패단를 저지르다 결국 취재과정이 공정치 못했음을 시인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4.5 서울대 자체 조사 : 결말
PD수첩의 보도 내용과 노성일 원장의 증언 등이 겹쳐 서울대에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시작했고 연구결과는 조작되었다는 결과가 나오자 대한민국이 통째로 요동쳤다. 황우석의 그때까지의 성과라고 나열되던 것들의 실상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줄기세포가 한 개도 없었다. 2005년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는 부풀린 것도, 과장한 것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통째로 조작된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날의 황우석을 만들어준 복제소 영롱이의 논문이 없었다. 그 소가 복제소가 맞는지 아닌지 확인할 증거인 유전자 검사는 커녕, 연구노트조차 하나도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연구팀에서는 진짜로 복제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두 번째라 언론의 관심 밖이었고, 학문적 성과는 황우석 팀이 가져갔기에 유전자 검사도 하지 않고, 논문도 쓰지 않았으나 그 교수팀은 복제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연구노트가 남아 있다.
PD수첩의 한학수 PD가 황우석 사태 이후로 내놓은 책인 <진실, 그것을 믿었다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에서 언급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한참 황우석 팀에서 복제소로 주가를 날릴 때,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던 교수가 논문이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기고 황교수 측에 관련자료를 요구하자, 황우석 교수는 " 정 교수가 이해해주시오. 나는 바빠서 논문 쓸 시간이 없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연구 노트도 논문도 아닌 포털 검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는 보도 자료를 내놓았다. 유전자 검사 결과도 없고, 논문도 없는 소가 황우석의 말 한 마디만으로 복제소가 된 것이다. 과학 전문 기자들이 논문이 있는지 없는지 클릭질 한 번만 했어도 황우석 이 양반이 이토록 스케일 크게 사기치지 못했을 것이다.
훗날 서울대 조사위원회에서는 황교수에게 복제소에 관련된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황교수는 이사 도중 잃어버렸다는 답변을 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첫번째 복제소라 알려진 영롱이는 과정이 없어졌으니 과연 황우석이 직접 만든 것인지, 우연히 튀어나온 것인지, 어디에 돈 주고 만들어서 바꿔친 것인지, 우시장에서 임신한 소 한마리 사온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백두산 호랑이 복원 사업과 관련해 당시 대대적인 홍보를 하였는데 사업시작 보도는 물론 매월 여러 언론사에서 3달후 나온다, 2달후 나온다, 1달후 나온다, 출산 임박! 기사로 보도 하다가 정작 출산 예정일에는 아무기사도 안나왔다. 나중에 임신한 대리모 호랑이가 배가 가려워 핥다가 창자가 빠져나와 죽었다(...) 고 해명하기는 했으나 정작 동물원 사육사는 그런일 없었다고 한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호랑이가 발톱을 세우고 긁어서 배가 터져죽는 일따위가 벌어지는게 더 이슈거리다(...) 어느 언론사 기자 중 한 명만 임신 여부를 동물원으로 확인하러 가면 됐으나 평상시 명절마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실에서 보내주는 명절선물 한우세트만 받아먹으면서 기사쓰기에 익숙했던 기자들은 어느 누구도 임신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백두산 호랑이의 난자도 문제가 되었는데 대리모가 호랑인지 사자인지도 해명이 엇갈렸고 심지어 돼지난자에 돼지핵을 넣은 순수한 돼지라는 류영준 교수의 실명 제보도 있다. 이쯤되면 황우석의 연구가 호랑이 난자에 호랑이 핵을 넣었지만 중간에 난산을 한 실패가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한 것 같은 사기라는 것 외에는 다른 해명이 불가능하다. 또 그가 업적이라고 내세운 광우병 내성 소나 무균돼지들도 결국 허상임이 드러났다.
복제된 줄기세포 가운데 몇 개는 처녀생식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사실 이것도 발견 자체는 대단한 것이지만, 연구노트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일 뿐, 기술적이거나 과학적인 발견은 될 수 없었다.
확실한 조작임이 밝혀지자 황우석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이 올라있던 교수들이 '난 그저 이름만 빌려 줬을 뿐이고 자세한 내용 같은 건 알지 못한다. 나랑 상관 없다.'라고 징징거림으로써 단지 친분이나 이해 관계만으로도 논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다시 한번 충공깽했다. 황우석의 기막힌 언플과 제 식구 챙기기 스킬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와중에도 황교수는 2개면 어떻고 10개면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원천 기술이 있지 않습니까?라는 과학자로서는 상식을 초월하는 발언을 하며 6개월만 주면 재연해 보이겠다고 큰소리를 쳤고,[14] 원천기술이 있다면 다시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여전히 많았다.[15]
연구 결과가 조작이라고 나오자 검찰에서 수사에 들어갔고 대법원에서 판결한 결과, 연구비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 후 수암생명공학 연구소에서 시간을 들여 줄기세포 연구를 다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비 횡령에 대한 황교수 측의 입장은, 생명 공학에 관한 연구는 돈도 많이 벌게 되지만 그만큼 연구에 많은 돈과 인원을 필요로 하고 시간 또한 오래 걸린다. 하지만 당시 환경상 경제적 지원과 연구 인력이 부족하고, 시간도 촉박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긴 하지만 너무 심했다.
5 우리사회의 병든 면과 반성해야 할 점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은 거대한 스캔들로 막을 내렸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거리를 남겼다. 물론 PD수첩의 취재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PD수첩 팀이 최초로 제기했던 '난자 매매 의혹'은 비록 그 과정에 잘못이 있었지만 감시와 견제를 담당하는 언론의 역할을 다한 것이었다. 그러나 의혹을 제기하고 검증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최우선시 해야 할 언론들이 단순 국익을 더 중시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폭력적인 수단마저 묵인함으로써, 당시 한국의 언론사들의 신뢰도는 그저 바닥을 치게 되었다. 물론 자업자득일 뿐이지만.
그리고 대중들 역시 객관적, 비판적인 시선을 잠시 잃어버리고, 거짓말에 선동당한 일도 어떻게 보면 억울하다면 억울할 일이긴 하지만, 진실이 밝혀진 지금 다시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분명, 논란이 거셀 때에도 황우석의 논문에 대하여 의심되는 부분은 확실히 보도되었으며, 때문에 대중 스스로도 진실 여부와는 상관 없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태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결국 파시스트적인 광풍이 이웃한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며 그보다 더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고, 더 나아가서는 대중의 여론 자정능력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당시 언론인이 우선시 해야 할, 진실을 밝히는 일을 한 PD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떠돌았고, 안전을 우려한 PD 일가족은 학교도 못 나가고 거처를 옮겨야 했고, PD 본인은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경호원을 달고 다녀야 했다.
또한 이번 스캔들로 인해 나름 진보적인 시각을 가졌다 자처했던 이들이 동반 몰락하였는데, 국가에 의한 개인의 희생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던 이들이 국익 앞에선 과정이고 윤리고 다 필요 없다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여럿을 충공깽하게 만들었다. 이때 여러 명이 망가졌는데 대표적인 예가 딴지일보의 김어준 총수. 이것 때문에 김어준을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아직 상당수 존재한다. 심지어 어떤 분은 앞에 서술한 난자 채취의 부도덕성 비판을 까면서 실험 대상에 대한 안전문제는 사실상 미국 등의 음모라는 드립을 날렸다. 유명한 인물 가운데 살아남은 건 진중권 정도였다. 진중권은 이전부터 유명했으나 황빠와 대거 싸우면서 황빠들의 사탄이 되었고, 이후 디워 논쟁에서도 다시 디빠들의 원수가 되면서 박빠, 황빠, 디빠 트리니티에 의해 무병장수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황비어천가를 불러제끼며 객관적인 취재를 등한시하고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일조하며 언론의 본연의 임무인 의혹을 객관적으로 검증하지 못한 자신들의 병크를 반성하기는 커녕 분별력을 잃은 대중을 선동질하는 것도 모자라, 앞장서서 PD수첩을 신나게 털다가 진상이 밝혀진 후 재빠르게 태도를 바꿔 황우석팀을 비난하는 뻔뻔한 작태를 보여준 몇몇 언론의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은 MBC가 취재윤리를 위반했다며 신나게 털어댔지만 정작 자신들은 취재원과 정보원의 신원을 노출시키질 않나, 청부취재를 하지 않나, 본인들 스스로가 취재 윤리를 어기는 추태를 보였다. MBC가 취재윤리를 위반한 건 개쌍놈의 짓이지만 우리가 위반하는 건 관행이라고 하는 수준.
여기에 사건 이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각 언론사들이 자신들의 태도에 대해 진지한 반성문을 올렸으나 조선일보만은 올리지 않은 뻔뻔함을 보였다. 또 PD수첩의 PD들이 대학생시절 운동권이었다는 사실을 들어 색깔론을 주장하는 병크까지 벌였다.
어지간한 서스펜스 영화보다 더 긴박했던 한국과는 달리 황우석 스캔들이 이슈화된건 과학계일 뿐 외신들의 반응은 그다지 뜨겁진 않았다. 사실 과학계에서 정말로 우리나라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슨 사기꾼 하나가 나왔을 때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수습했느냐의 문제인데, 당시 외국언론에서 이런 국익 앞에 과정이나 윤리가 없다는 논리가 국민 여론이 되고 국론이 되는 모습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이 나와 한국의 대중이나, 정치권이나, 언론이 싸잡혀서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그나마 우리 내부에서 먼저 문제를 발견하고 제기하고 수습을 했다는 것이 불행중 다행이랄까. 그리고 이 사태로 하여금 과학 윤리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최초로 이 거대한 사기극이 밝혀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내부고발자들은 결국 과학계를 떠나야 했다. 내부 고발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웃긴 건 그 내부고발자들의 신원이 밝혀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조선일보, SBS, 국가정보원, 한국과학기술원. 두 언론에선 집요하게 제보자를 취재해야 한다며 제보자들이 근무하는 병원의 원장과 홍보부장에게 압력을 가했고 국정원으로부터 제보자의 정체를 확인받은 병원에선 제보자를 반 협박하여 내보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브릭의 젊은 과학자들은 생활고로 고생하고 있는 제보자들에게 '아름다운 제보자상'의 이름으로 성금을 전달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뭔가 이상해보일 것이다. 양심을 따른 이는 직장에서 잘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던 과학계에서 추방을 당한데다가, 공백기를 지난 이후에도 배신자 딱지가 붙어 힘들게 지내고 있는데 이 거대한 사기극의 주모자는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씁쓸한 결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학수 PD가 말한 대로 대한민국은 그 제보자들에게 엄청난 빚을 졌다. 그 제보자 분들의 양심과 용기에 감사를 드리도록 하자.[16]
6 사건의 여파와 그 뒤의 황우석
서울대 파면 직후 2006년 7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설립하고, 2008년 5월 애완동물 복제 전문 기업인 에이치바이온 대표이사가 되었다. 충격적인 것은 그럼에도 2009년 경기도와 황우석, 바이오 연구협력 MOU 체결, 2009 장영실 국제과학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목적은 "당뇨병 치료를 위한 형질전환 복제돼지 생산", 김문수 지사는 "논문 파동과 관련, 황 박사의 재판이 진행중이나 도는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생명공학 분야 연구를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라고 했으며, 300억을 들여 세운 수원시 바이오 장기 연구센터도 재개를 검토중이라고 한다. 황우석도 "사회적, 정치적 셈법을 고려하지 않고 연구활동을 지원하는 도와 도민에게 감사한다"며 "나에게 시간을 주면 연구결과로 답하겠다"라고 화답했다.너한테 지원하려고 세금 내는 거 아니거든
장영실 국제과학문화상은 "비록 법적 분쟁 중에 있지만 줄기세포를 개발하고 개 복제에 성공하는 등의 업적을 세운 점을 고려"라면서 상을 줬다. 근데 나름대로 정근모씨도 상을 수여하는 등 권위있는 상인가본데... 여하간 황박사는 공판에 가느라 받지 못했고 다른 교수가 대리 수상했다.
서울대는 비록 조작되었긴 했지만 지적재산권이 존재하는 2006년 6∼7월 호주와 미국 등 해외 11개국에 낸 줄기세포 해외 특허 출원을 포기하고 이를 원하는 국내 연구기관 등에 기술 이전했는데, 유일하게 원한 쪽이 에이치 바이온이라서 그냥 특허출원 값인 1억4천만원만 주고 넘겼다고 한다. 특허에는 체세포 핵 이식을 통해 배아줄기세포주를 만드는 방법과 배아줄기세포로 확인된 1번 줄기세포를 물질특허로 인정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2011년 리비아에 연수로 와 있다가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자, 한국 외교부가 트리폴리 공항으로 보낸 이집트 항공 전세기를 타고 다른 교민들과 함께 카이로로 피난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가 리비아로 향한 이유는 리비아 정부와 1천 5백억원규모의 연구계약을 체결하러 간 것으로 보인다. 목적은 리비아 주민들의 고질적인 난치병 질환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 연구, 우수 형질 증식과 보존을 위한 형질전환 연구, 의약품 생산을 위한 바이오리액터(동물배양세포) 건설 등 여러가지.
하지만 리비아에서는 카다피 퇴진운동이 한참 진행중이라... 아무리 과학자들과 맺은 이행합의서라도 글쎄? 너무 위험하지 않나 싶지 않을까 했는데 과도정부에서도 사업은 계속 진행하려는 모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시에 조작된 줄기세포는 웃기게도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위에 나온 것처럼 처녀 생식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잘했으면 제2의 플레밍의 일화가 탄생했을 수도 있지만...
언론에는 카이스트와 브릭스가 나왔지만 인터넷에서는 디시인사이드의 위엄이 더욱 화제가 되었다. 디시를 잉여인간 집합소 취급하며 은근히 무시하던 수많은 사이트들은 디시의 능력자에 감탄하였다. 흠좀무한 건 이 사건이 터지기 6개월 전에, 이미 과학 갤러리에 황우석의 논문이 조작된 것임을 암시하는 듯한 글이 올라왔었다는 사실이다.디씨 잉여의 위엄 당연히 그 글은 성지가 되었고 병림픽이 난무하는 와중에 무려 7만 번 히트를 찍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15년 11월 24일 기준 11만 조회수/1400여개의 댓글이 있다
황우석 사건이 일으킨 가장 큰 폐해로 한국 과학계의 신뢰성이 크게 저하된 것이 있다. 이 사건 이후 한동안 해외 논문 투고시 몇몇 한국 학자들의 논문이 연구 노트 내놔라라는 요구 를 받는 등 매우 문턱이 높아지는 불상사를 겪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각 대학들에서 연구 노트에 대한 교육을 과거보다 훨씬 중요시하면서 제2의 황우석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은 이 사건이 남긴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고로 서울대학교의 경우 '과학과 기술 글쓰기'라는 과목에서 연구 노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시간이 생겼다.
사건이 터지고 얼마뒤 황우석 박사는 자신을 지지해준 불교 신도들에게 찾아가서 노벨상 메달을 보여주며, 노벨재단 총재가 자신을 지지한다며 얼른 누명을 벗고 재기하라는 의미에서 이미테이션 메달을 만들어 줬다고 주장했다. 재단 측에서 훗날 기술이 재현돼서 성공이 된다면 그때 정식으로 매달을 수여하겠다며 노벨재단 총재를 대리로 해서 이미테이션 메달이 담긴 상자를 보내줬다는것. 황우석 박사는 정식 메달 수상시 받게될 노벨의 유서 카피본까지 받았다고 주장하며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하지만 이미테이션 메달은 공동수상자나 수상자가 상을 잃어버렸을때 주는 메달로, 진품과 똑같은 공정으로 만들기 때문에 표면이 거칠고 노벨 특유의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한다. 반면 황우석 박사가 들고온 이미테이션 메달은 표면이 너무 반들거리고 은박지 같이 빛이 난다면서, 혹시 황박사가 스위스 노벨재단에서 판매하고 있는 노벨상 모양 초콜릿을 사서 그 포장지를 들고 상이랍시고 쇼를 하고 있는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6.1 서울대 파면 확정
서울대에서 파면처분을 받은 황우석은 즉시 서울대를 상대로 파면처분 취소소송을 걸었고, 1심에서는 패소했으나 2심에서 승소했다(...). 이 기사가 뜨자마자 황빠들은 리플에서 황우석의 억울함이 밝혀졌니 마니 난리지만 실상은 아니다. 재판부는 파면처분이 재량의 일탈 및 남용 혹은 비례원칙 위반이라 판시한 것이지 그가 무죄라는 것은 아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한 짓에 비해 억울할 정도의 처벌을 받았다는 뜻.
그러나 2014년 2월 26일 대법원은 파면처분은 정당했다는 취지 로 파기환송했고, 2014년 8월 22일 파기환송심에서 파면이 확정되었다.
'줄기세포 논문조작' 황우석 前교수 서울대 파면 확정(종합),2015.12.23
6.2 1번 줄기세포 특허 획득
황우석이 서울대 재직시절 만들었던 1번 배아줄기세포가 뉴질랜드, 유럽연합, 캐나다에서 특허를 취득했다. 특허 내용은 체세포 이식을 통한 배아줄기세포의 제작방법과 1번 줄기세포의 특허물질 인정에 관련된 것. 그리고 2014년 1월 11일에는 미국에서 공식으로 특허를 인정 받았다. '인간체세포 복제배아에서 유래한 인간 배아줄기세포주'라는 이름의 특허이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에 대한 특허가 통과된 것이며 특허 하나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2010년부터 줄기세포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질병관리본부는 이 줄기세포 등록을 거부했다. 이에 황우석 측은 소송에 나섰고 2015년 6월 24일 대법원은 1번 베아줄기세포의 등록을 허용했다.
6.3 코요테 복제
그 뒤로 한동안 잠잠하다가...2011년 10월 17일 코요테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복제한 코요테는 경기도에서 키우기로 결정하였다. 더욱 놀라운것은 대리모로 개를 이용했다는 것. 이 이후로 리카온도 복제할 계획이라고 하며 가능하다면 매머드도 복제하겠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저지른 사고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곱게 믿어줄 수가 없다. 최소한 조작되지 않은 연구노트 등의 실험증거, 논문이 게재된 저널, 유전자시험 검사 등을 같이 제시해야 반신반의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고의적인 건지 모르고 그랬는지 언론보도와 다르게 이번 이종간 복제는 세계최초가 아니며, 코요테는 멸종위기동물이 아님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영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6.4 재기?
2012년 6월 28일 법원이 "황우석 줄기세포주 등록거부 취소하라"는 판결을 냈고, 2015년 6월 24일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2013년 5월, 러시아에서 매머드 복원사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연구진들이 뭘 믿고 이런 연구를 맡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켜볼 일.
2014년 9월, 대한민국 경찰청에서 진행하는 "우수경찰견 복제 연구사업"을 황우석이 이끄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에서 맡기로 했다는 기사가 떴다. # 그러나 경찰 인명구조견 시험에서 떨어졌다.
2015년 6월 24일 대법원이 황우석 ‘1번 줄기세포(Sooam-hES·NT-1)’ 등록을 허용한다는 판결을 냈다. 줄기세포주의 연구와 이용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며 과학적 요건만 갖출 것을 조건으로 정한 만큼 윤리적인 이유로 등록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판단, 이에 따라 황우석이 만든 줄기세포주가 연구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게 됐다... 지만 그렇게 커다란 의미는 없을 듯. 이 문제는 법이 바뀌기 전에 등록을 한 것을 소급적용해서 등록거부한 것을 바로잡은 것에 불과하다.
2015년 11월 25일, 황우석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중국의 한 기업과 손 잡고 연 100만 마리의 복제소 생산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상업용 우량 복제소를 대량으로 생산해 급증하는 중국의 쇠고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개를 비롯한 클론의 생산을 통한 매출을 홍보하여 자신의 연구 정당성을 호도하려고 하나 그 연구 부정의 전력을 만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애초부터 NT-1이 줄기 세포주가 아니었고 클론의 생산 기술이 이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16년 3월 7일 동굴사자를 복원하려고 한다. 매머드는 어쩌고링크 반응은 대체로 냉랭. 해외에서는 표본을 끌로 채취한다고 하자 황당해하는 반응도 있다.
한편, 황우석 박사는 전세계가 탐내는 인재이며 한국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전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기관이 서로 모셔가려고 경쟁한다고 그토록 지지자들이 부르짖었으나 2016년까지 세계 어느 일류급 대학이나 연구기관도 황우석 박사에 스카웃 제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엎드려 바랍니다. 한 번 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핵심은 재현성이므로 과학적 논란은 재현으로 검증하는 방법이 옳다.
[1]
직권으로 등재취소했던 두 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 황우석 근황보도
[2]
기존의 성급한 연구성과 폄하를 뒤집는 일련의 후속 보도들
[3]
7 참고자료
- '황우석 논문조작' 제보 류영준 "난 분노했다"
- 황우석 사태의 내부고발자, 드디어 입을 열다 - 위에서 언급한 류(유)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네이처 인터뷰 번역문.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 재미 생명공학자가 본 황우석 신드롬 - 다만 2005년도 기사라 사태의 흐름에 훨씬 늦은 감이 있다. 허나 교수들의 공로 독식 등등에 대한 부분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 "황우석 논문 조작, 10살 소년 살리려 제보했다" - 류영준 교수의 인터뷰 내용
- 2014년 10월 2일에 제보자란 제목으로 줄기세포사건이 모티브가 된 영화가 개봉되었다.
- NT-1 특허의 실체와 국내외 학계의 반응을 분석한 기사
8 각종 음모론과 맹목적 추종자 '황빠'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각종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고 사건이 종결된 지금 까지도 황우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황우석 극단 지지자 일명 '황빠'가 존재한다. 자세한 사항은 황빠 문서 참고.
9 관련 문서
- ↑ 음력 1952년 12월 15일.
- ↑ 이 우표는 황 교수의 조작이 밝혀진 후 전량 회수되었고 그 때문에 우표 수집가들 사이에선 액면가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이미 리콜량을 제외하고도 155만 장 가량(발행량의 70%)은 풀린 데다가 우표 수집 자체가 침체 상태인 까닭에 큰 가치를 기대할 것은 못된다.링크를 잘 돌아보면 알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나온 우표들은 물론이요, 그 이후에 나온 우표들과 비교해도 액면가 대비 가격 차이는 2~3배에 불과하다. 즉 비슷한 시기에 나온 평범한 기념우표들은 액면가에 거래가 되어 우편에도 심심찮게 쓰이는 것에 비하여, 이 우표는 우편에 쓰이지는 않아도 될 정도의 가치만 있다.
계륵 - ↑ http://www.hankookilbo.com/v/a425dcd0584947858422e798e7aeb51d 기사에 따르면 스너피는 만 10년을 살고 2015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사망 원인은 불명.
- ↑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빌헬름 2세의 훈장을 돌려보내며 한 말이다.
- ↑ 연구원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연구원은 임상시험과 같은 인체실험에서 "불리한 위치의 시험대상자"로 분류되며 정신지체자, 죄수, 미성년자 등과 함께 인체실험에 대한 특별 보호대상이다. 연구원은 자신의 상급자인 연구책임자에게 불복종하기 어려운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에서는 황 교수가 연구원들의 졸업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함부로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 ↑ 그러니까 12월 4일 문제의 YTN 방송이 나가고 다음날 새벽
- ↑ 그런데 거짓말이었다. 게시판에 사진이 올라온 것은 2005년 12월 5일, 황 교수 측이 사이언스에 수정요구를 한 것은 같은 날 오후. 이런 식의 빤한 거짓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더 무서운 건 그래도 황빠들은 낚였다는 것.
- ↑ 사이언스 구독 신청 링크 애초에 대학교다니는 사람이면 학교 도서관을 통해 볼 수 있다. 사이언스 구독권을 사놓지 않는 도서관은 없다고 봐도 된다.
- ↑ 다만 사건 초기에 PD수첩 광고주 불매까진 심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가 좀 심하게 까인 사건이 있었다.
- ↑ 이유는 2005년 당시 MBC는 최문순 사장의 영향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던데다가 카우치 존슨노출사건 등 여러가지 사고가 겹쳐서 보수세력이 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는 점도 있었다.
- ↑ 이전 한나라당이 추진했던 H2O 프로젝트의 패러디.
- ↑ 중심을 지킨 심층보도로 엠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했다.#
- ↑ 이 날 뉴스데스크 첫 보도가 노성일 이사장의 MBC와의 인터뷰 보도였는데 이 보도를 전하면서 한 첫 멘트가 이것이다. 그리고 당시 황우석 사태를 취재한 PD수첩 한학수 PD가 황우석 사태에 대한 취재기 형태로 쓴 책의 제목이기도하다.
- ↑ 황우석 “줄기세포 만들었다” VS 노성일 “과학자 눈 못 속여”,동아일보 ,2005년 12월 16일 입력, 2009년 09월30일 수정
- ↑ 원천기술 있다면 황교수 다시 기회줘야 80%, 리얼미터 2005년 12월 24일
- ↑ 링크된 기사의 주인공인 류영준 교수는 과학동아 팟 캐스트에 출연해서 "내부 고발자임에도 국립대 교수가 될 수 있었던 자신이 특이한 경우"라고 말 한 적이 있다. 사실 이 특이 케이스는 류영준이 고신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 부침을 거듭했지만 병리학 레지던트를 마친 후 전문의를 취득한 뒤 강원대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병리학은 흔희 기초 학문으로 오인되지만 실제로는 임상과 기초의 경계에 있는 학문이다. 소위 기초 의학이라는 해부학이나 생리학, 생화학 같은 학문들이 임상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희박한 반면, 병리학은 조직 진단을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그가 의사가 아니었고 환자 진단과 치료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을 경우 심각한 불이익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 ↑ 옥시레킷벤키저의 뇌물을 받고 서울대와 호서대 교수가 연구를 조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