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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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역대 국왕
42대 흥덕왕 김경휘43대 희강왕 김제륭44대 민애왕 김명
시호희강왕(僖康王)
김(金)
제륭(悌隆)
생몰년도음력? ~ 838년 1월[1]
재위기간음력836년 12월 ~ 838년 1월 (14개월)

1 개요

신라의 제43대 왕. 원성왕의 증손, 즉 원성왕의 차남 예영의 아들인 이찬 헌정(憲貞)의 아들이다. 왕이 되기 전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거의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아버지 헌정이 819년(헌덕왕 11년)에 병으로 다닐 수 없게 되자 왕으로부터 금장식의 자색 단장(지팡이)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흥덕왕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숙부 김균정과 서로 왕위를 다투게 되었는데 당시 시중이었던 흥덕왕의 아우인 충공의 아들이었던 김명(후에 민애왕), 이홍 등의 도움을 받아 김균정 일파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유력한 왕위계승권자였던 김균정은 이 과정에서 살해당했고, 그의 아들인 우징(후에 신무왕)은 청해진으로 도망쳐 장보고에 의탁하며 훗날을 기약한다.

이후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지원해준 김명을 상대등에 이홍을 시중에 임명하였으나, 838년 김명이 이홍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결국 1년만에 그 일파에 의해 자진하고 말았다. 이후 신라는 경문왕 때까지 피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의 아들로는 계명이, 손자로는 응렴이 있었다. 응렴은 47대 헌안왕의 사위가 되었고 마침내 왕이 되는데 바로 경문왕이다. 할아버지가 잃은 왕위를 손자 대에 와서 되찾은 셈. 실제로 경문왕은 왕실의 분란을 수습하기 위해 화합조치에 노력했다.

흥덕왕 시기의 짧은 안정이 끝나고, 희강왕부터 시작하여 신무왕까지 신라 왕실의 왕권다툼이 재시작된다. 김부식도 이런 왕위계승 싸움을 한탄하며 신무왕 즉위조에 논평을 적었다.

2 삼국사기 기록

一年冬十二月 희강왕의 즉위와 즉위 과정
二年春一月 참수형 이하의 죄수를 사면하다
二年春一月 아버지를 추봉하고 어머니를 태후로 삼다
二年春一月 김명을 상대등으로 삼고, 이홍을 시중으로 삼다
二年夏四月 당 문종이 김의종을 돌려보내다
二年夏四月 우징이 균정의 일로 원망의 말을 하다
二年夏五月 우징이 청해진 대사 궁복에게 의탁하다
二年夏六月 예징과 양순이 우징에게 의탁하다
二年夏六月 당 문종이 김충신 등에게 비단을 하사하다
三年春一月 김명과 이홍 등이 난을 일으켜 왕이 자살하다

3 희강왕을 다룬 언론 매체

KBS 드라마 해신에서 신라 왕위계승쟁탈전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짧게 등장한다. 연극배우 장기용이 희강왕을 맡았으며 김명 일파에 의해 허수아비로 등극했다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장보고에게 신변안전을 부탁하는 서신을 보내지만 그 사이 암살당하는 것으로 나왔다. 안습
  1. 생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20대인 민애왕과 같은 항렬임을 감안해 본다면 이쪽도 꽤 젊은 편이었을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