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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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지연 (金智妍, KIM Jiyeon)
출생 1988년 3월 12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국적 대한민국
신체 165cm, 57kg, 왼손잡이
종목 플뢰레 (2001~2004) → 사브르 (2004~현재)
학력 부산 재송초등학교
부산 재송여자중학교
부산디자인고등학교
원광대학교 스포츠건강관리학 학사
소속팀 익산시청 (2007 ~ 현재)
별명 킴치[1], 미녀검객[2]
종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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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자 펜싱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아시아 최초 올림픽 여자 사브르 금메달리스트
한국 여자 사브르의 대들보

1 개요

대한민국의 여성 펜싱 선수. 2012 런던 올림픽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최초의 여자 펜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아시아 최초 여자 사브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국내 여자 사브르가 도입된 후 처음으로 배출한 세계적인 여자 사브르 선수로 2010년대 여자 사브르의 대들보이자 에이스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여자 사브르 선수 최초 세계랭킹 5위권 진입(2011/2012), 역대 최고 랭킹(3위, 2012/2013), 세계선수권 동메달 획득, 아시안 게임 사브르 여자 단체전 최초 금메달, 그랑프리 및 월드컵에서의 역대 최다 입상 등 대한민국 펜싱사에 한 획을 그었다.

엘리트 체육인 국내 펜싱에서 오랜 후보선수 생활을 하다가 20대 중반에 빛을 보기 시작한 드문 대기만성형 선수이기도 하다. 선수 개인의 실력 뿐만 아니라 화려한 외모까지 주목을 받으며 경기 내외로 한국 펜싱을 대표하고 있다.

2 선수경력

2.1 2001-2011: 만년 후보에서 국가대표로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한 김지연은 태권도를 배웠고 중학교에 입학하면 태권도부에 들어가 태권도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였다. 그런데 진학한 중학교에는 태권도부가 아닌 펜싱부만 있었고, 김지연의 운동신경을 눈여겨본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펜싱부에 들어간다. 당시(2001년) 여자 사브르 팀은 전국에 거의 없었고 여자 플뢰레가 대부분이었기에[3] 김지연도 플뢰레로 펜싱을 시작했다. 스스로 말하길 펜싱이 좋다기 보다는 펜싱부 언니들과 노는 것이 좋아서 펜싱을 시작했기에 열정도 없었고 실력도 늘지 않아, 개인전 32강도 들지 못하고 단체전에서는 만년 후보 선수였다고 한다.

그저그런 후보 선수였던 김지연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재송여중 펜싱부 감독이 새롭게 신설된 부산디자인고 여자 사브르 펜싱부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김지연에게 사브르로 종목 전환을 제의한 것. 김지연은 당시 사브르를 잘 알지 못했지만 은사에 대한 신뢰와 경쟁이 치열한 플뢰레보다 선수층이 얇은 사브르가 유리하겠다는 판단으로 플뢰레에서 사브르로 종목을 바꿨고, 빠른 발과 급한 성격을 가진 김지연에게 공격적이고 속도가 빠른 사브르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종목을 바꾸며 펜싱의 재미를 느끼고 열정이 생겼고 선수층이 얇아 출전기회도 늘어나며 급속도로 속도가 늘어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고 2007년 익산시청에 입단한다.

그러나 국가대표와 실력차이는 컸다. 2000년대 국내 여자 사브르 강자였던 이신미, 김금화, 김혜림 등 선배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며 번번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김지연은 포기하지 않고 소속팀 익산시청에서 훈련하며 실력을 키우며 국가대표 후보선수[4]로 선발되다가 22살에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국제무대 데뷔시즌인 2009/2010 시즌, 김지연은 대부분의 대회에서 예선 탈락했고 그나마 본선에 진출한 두번의 그랑프리에서도 64강에서 탈락하는 저조한 성적을 거둬 세계랭킹은 174위를 기록했으며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단체전 멤버에서도 탈락했다. 당시 국내 펜싱계는 '여자 사브르 메달권은 아직 무리.'라는 인식이 있었고 국내에서도 특별히 돋보이지 않았던 김지연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것이라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2.2 2011-2014: 세계 정상에 서다

2010년 12월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끝난 후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김지연은 16강에서 탈락한다. 그러나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본 당시 펜싱 국가대표 총감독이자 여자 사브르 담당 김용율 감독은 추천선수 선발 규정에 따라서 김지연을 추가 국가대표로 선발하였고 2011년 1월 겨우 대표팀에 승선했다. 이렇게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24살의 무명선수는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세계 상위권 펜서로 급성장한다. 2010/2011 시즌 첫 대회로 참가한 3월 모스크바 그랑프리에서 무명인 선수가 세계랭킹 10위권의 선수들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동메달을 획득하며 일약 여자 펜싱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이후 중국 텐진 그랑프리와 이탈리아 볼로냐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하고 이전과 몰라보게 달라진 경기력을 보이면서 세계랭킹이 174위에서 163계단이나 상승한 11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이런 활약으로 김지연은 2011년 대한펜싱협회(KFF) 최우수 선수로 뽑히고 펜싱계의 기대를 받게된다.

2011/2012 시즌에서도 김지연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첫 대회 프랑스 오를레앙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시작으로 그랑프리와 월드컵에서 은,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올림픽 직전 세계랭킹 5위[5]에 올랐다. 이는 한국 여자 사브르 역사상 최초로 세계랭킹 TOP 5에 든 것으로 김지연은 동시에 랭킹 15위 내 선수에게 주는 런던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획득하였다. 국내 펜싱계에서는 상승세를 탄 김지연을 동메달 가능성을 점쳤지만, 결승 진출은 기대하지 않았다. 세계 여자 사브르의 BIG 3 마리엘 자구니스, 올가 카를란, 소피아 벨리카야의 전력이 압도적이라 판단했고 김지연의 상대전적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준결승에 진출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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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 준결승에서 승리한 후 포효하는 모습

5번 시드를 받은 김지연은 32강부터 차례로 멕시코, 이탈리아, 그리스 선수를 꺾으며 준결승에 진출한 김지연의 상대는 미국의 마리엘 자구니스. 자구니스는 올림픽 여자 사브르 최초의 챔피언이자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고 3연패를 노리는 최강의 상대였다. 게다가 2011/2012 시즌 자구니스는 토너먼트 대회에서 패배한 적이 없으며 미국 선수단의 기수를 맡는 등 금메달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상대였다. 이런 상대로 김지연의 결승 진출은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고 실제 경기시작하자 마자 실점을 하며 전반전을 2-8로 끌려갔다.

후반전이 시작 되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구니스에게 무력하게 끌려가던 김지연은 5-12, 8점차까지 스코어가 벌어졌고 누가봐도 자구니스의 결승 진출이 확정적이었다. 중계진들도 힘을 내서 동메달 결정전을 대비해야한다는 식으로 방송을 했고, 시청자들 중 일부는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껐으나 김지연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 하나 점수를 내며 따라가던 김지연은 마침내 13-13 동점을 만들었고 결국은 15-13, 기적같은 역전승을 만들었다. 자구니스와의 준결승 경기는 2012 런던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들 중 하나로 꼽히며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다. 기세를 탄 김지연은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러시아의 소피아 벨리카야와 전반 팽팽한 경기를 펼치다가 후반에는 완전히 압도하며 15-9로 승리하였고 한국 여자 펜싱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또한 한국 펜싱 최초의 사브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며 아시아 선수로 역대 5번째, 여자 아시아 선수로는 2번째, 여자 사브르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본인의 국제대회 첫 금메달을 올림픽 금메달로 장식하는 기적의 업셋을 이루고 세계랭킹 4위로 2011/2012 최고의 시즌을 마무리한다.

올림픽 후 많은 인터뷰, 방송, 행사 등을 소화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으나 많은 스케줄로 인해 몸살이 나서 링겔을 맞고 국내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컨디션이 나빠졌다. 또 일부는 올림픽 시즌에만 반짝한 플루크가 아닌가라는 의문의 시선도 보내기도 했다. 2012/2013 시즌 초반 월드컵 2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8강 진출에 실패하며 우려의 시선을 받았으나, 안탈리아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2013년 5월 시카고 월드컵에서는 생애 최초 월드컵 금메달을 차지했고, 6월 아시아 선수권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8월 세계선수권에서 생애 처음이자 한국 여자 사브르 두번째로 동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금메달이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시즌 세계랭킹은 3위현재까지 한국 여자 사브르 사상 최고로 높은 랭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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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미국 시카고 월드컵 시상식

2013/2014 시즌 1월 오를레앙 그랑프리에서 은메달을 따며 순조롭게 시작했지만 이후 대회에서 거듭 8강 진출에 실패하다가, 5월 베이징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7월 아시아 선수권을 2연패하고 세계랭킹 6위를 기록하며 여전히 세계 정상급 선수임을 보였다. 9월 처음으로 출전하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강력한 개인전 금메달 후보로 꼽혔으나 후배 이라진에게 패배하며 은메달을 걸었고, 단체전에서는 3번 마지막 주자로 출전하였다. 결승전에서 4연패를 노리는 중국을 맞이하여 33-40으로 리드하던 9바우트 마지막 선수로 나서서 41-41 동점을 허용했으나 마지막 4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한국 여자 사브르 사상 첫 아시안 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김작가

2.3 2014-현재: 부상과 슬럼프, 그리고 재기

순조롭게 흘러가던 선수생활은 골반 부상을 입으며 슬럼프가 찾아온다. 한쪽 다리를 주로 쓰는 펜싱 종목의 특성과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빠른 스텝을 강조한 한국 펜싱 훈련법으로 왼쪽 고관절은 연골이 전부 닳아 버렸고 김지연은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 통증으로 인하여 특유의 역동적인 플레이는 나오지 않았고 스피드가 생명인 사브르에서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2014/2015 시즌 모든 그랑프리와 월드컵에서 입상하지 못했고 아시아 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따며 3연패에 실패했다.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고 재활에만 메달렸고 경기에는 진통제를 맞고 출전하는 상황에서 국내대회 성적도 나빠져 국가대표 선발도 장담하지 못했고, 세계랭킹은 13위로 대표 선발이 되더라도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2015/2016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은 통과했으나 시즌 초 월드컵과 그랑프리에서 부진하며 세계랭킹은 추락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다리를 절둑거릴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김지연은 포기하지 않고 재활을 하여 2016년 2월 벨기에 신트니클라스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따며 1년 9개월만에 세계대회 메달을 획득한다. 몸상태와 경기력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4월 아시아 선수권에서는 동메달에 머물렀으나, 중국 포산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획득한다. 세계랭킹은 7위로 상승하여 올림픽 사브르 개인전 출전권을 획득했으며, 한국 여자 사브르 최초로 단체전 출전권도 획득하며 2연속 올림픽 출전을 결정지었다.

2016 리우 올림픽 여자 사브르 개인전 32강에서 베트남 응우옌을 상대로 15-3으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16강에 진출하나, 이탈리아 굴루타에게 13-15로 패배하며 탈락한다. 평소답지 않게 예민한 모습을 보였는데 결국 리드를 하다가 역전을 당하게 되었다. 8월 13일 단체전 8강 우크라이나와 경기에서 마지막 선수로 나와 올가 카를란를 상대로 분전하였으나 40-45로 패배하였다. 5-8위 결승전에서는 프랑스를 45-40으로, 폴란드를 45-41로 꺾으며 단체전 최종순위 5위로 두번째 올림픽을 마감하였다.

3 수상경력

  • 주요 국제대회 메달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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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2012 런던사브르
세계선수권
동메달2013 부다페스트사브르
아시안 게임
금메달2014 인천사브르 단체전
은메달사브르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2011 서울사브르 단체전
금메달2012 와카야마사브르 단체전
금메달2013 상하이사브르
금메달사브르 단체전
금메달2014 수원사브르
은메달사브르 단체전
동메달2015 싱가포르사브르
금메달사브르 단체전
동메달2016 우시사브르
은메달사브르 단체전
유니버시아드
동메달2011 선전사브르
동메달사브르 단체전
은메달2013 카잔사브르
금메달사브르 단체전
  • 시즌별 세계랭킹
시즌순위
2009/2010174위
2010/201111위
2011/20124위
2012/20133위
2013/20146위
2014/201513위
2015/20165위

4 기타

  • 실력 외에도 예쁜 외모로 화제가 되며 언론에서 '미녀 검객'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올림픽 시즌에는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외모만으로도 자주 언급된다.
  •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라서 펜싱을 시작할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운동을 시작한 후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으시고 뭐든지 본인 뜻대로 하라고 하셨다고.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은 딸의 경기를 일 때문에 보지 못했는데 어머니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야 처음으로 직접 보셨고, 아버지는 2012 런던 올림픽 중계 방송으로 경기 자체를 처음 봤다고 한다.
  • 경기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포효로도 유명하다. 본인이 밝히길 심판의 권한이 매우 큰 펜싱, 특히 사브르 종목에서 판정을 유리하게 가져오기 위하여 어필하는 것이라고 한다. 외국에서도 인상적인지 2012 런던 올림픽에서의 포효하는 모습이 코카콜라의 2016 리우 올림픽 전세계 광고에 쓰였다. 광고영상
  1. 친한 지인들과 동료 선수들에게 이름처럼 불리는 별명이다.
  2. 언론에서 주로 쓰는 수식어.
  3. 여자 사브르는 올림픽 펜싱 종목들 중 가장 늦은 2004 아테네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국내에서는 1998년 처음 여자 사브르가 도입되었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 국내 여자 사브르 팀은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4개에 선수는 겨우 18명인 상황이었다.기사 짧은 역사와 격렬한 사브르의 특성상 현재도 여자 사브르 선수의 숫자가 펜싱 종목들 중 가장 적다.
  4. 펜싱은 8명의 국가대표를 선발하여 FIE 세계랭킹 상위 4명이 단체전 멤버로 출전한다. 8명 이외에도 만 23세 미만의 상위 4명을 협회 대표선수라는 명칭으로 선발하여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육성한다.
  5. 정확히는 4위에 올랐으나 올림픽 직전 5위로 한계단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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