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어,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

"어,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예시 중 가장 잘 알려진 것.[1]

1 설명

세상과 인생에 대해서 밝거나 어둡게 보는 것. 또는 앞으로의 일들이 잘 되거나 안 될 것이라고 믿는 태도. 이것은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믿음이나 기대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대를 통해서 낙관주의자들은 더욱 자신감 있고 집요하지만, 비관주의자들은 이러한 기대가 부족하므로 의심이 많으며 망설이는 경향이 많다. 어느 연구에서는 낙관론자들이 현재와 미래를 비슷한 수준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비관론자들은 미래를 다소 밝게 전망하되 현재와 과거를 비슷한 수준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함이 확인되었다. 즉, 낙관론자들에게 현재는 "최고" 이고, 이것은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에게 아직 "최고" 란 오지 않은 것[2]이다. 한편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기보다는 현재에 대한 평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낙관주의/비관주의가 전체적으로 이뤄지기 보다 특정 분야나 환경 등에 따라 마구 섞이거나 대조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국가의 향후 경제적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관주의이면서 자신이 하는 일이 잘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주의가 되는 등이 있다. 그래서 일부 부분에서 낙관주의/비관주의를 보인다고 다른 부분에서도 일관적으로 똑같은 경향을 보인다는 보장도 없으며, 또한 어떤 사람을 일관되게 '비관주의자다, 낙관주의자다' 등으로 일반화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2 다른 개념들과의 관계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통제소재(locus of control)와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다지 관계는 없다.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는 자신감이나 자괴감을 느끼기 위해서 꼭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거나 없다는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설명양식(explanatory style)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약간 다르다. 설명양식은 일종의 귀인(attribution)의 차원, 안정성의 차원, 보편성의 차원에서 무엇을 설명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설명양식에도 낙관적인 것이 있고 비관적인 것이 있는데, 이하에서 이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설명양식과 분리하여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를 설명하자면, 오히려 무엇을 설명한다기보다는 삶의 전반적인 측면에 대해서 확신한다는 쪽에 더 가깝다.

3 낙관적/비관적 설명양식

뾰족머리 부장 : 우리 회사의 이윤이 감소했네. 좋지 않은 경제상황 때문이라고 하는군.

딜버트 : 그러니까... 이윤이 증가하면 부장님 같은 훌륭한 매니저가 있어서고, 감소하면 불황 때문이라는 겁니까?
뾰족머리 부장 : 자네가 자꾸 트집을 잡지만 않는다면 회의가 더 일찍 끝날 수 있을 듯한데 말일세.
딜버트 : ...죄송합니다.

- 《딜버트》, 2001.09.04

설명 양식은 다음의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된다.

1. 이 사건은 내가 원인이 되어 발생했는가? 아니면 외부의 무언가가 원인이 되어 발생했는가?
ex) 시험을 망쳤다 → 공평하지 못한 시험이었고, 논란이 있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vs 내가 충분히 대비를 하지 못했다

2. 이 사건은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인가? 아니면 항상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인가?
ex) 돌이켜 생각하기도 싫은 말실수를 했다 → 내 삶에서 어쩌다 나타난 우스운 실수였다 vs 내 삶 속에서 늘 반복되는 불쾌한 의례와도 같다

3. 이 사건은 내 인생에서 제한적인 영향력을 갖는가? 아니면 내 삶의 여러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가?
ex) 친한 친구와 소원해졌다 → 단순한 친구관계에서의 충돌일 뿐이다 vs 내 전반적인 대인관계 역량의 부족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면 알겠지만 전자는 낙관적 설명양식, 후자는 비관적 설명양식에 속한다. 즉 낙관적인 사람은 좋은 일에 대해서 내 덕분, 항상 있는 일, 내게 중요한 일[3]이라고 생각하지만, 비관적인 사람은 남 덕분, 가끔 있는 일, 시덥지않은 일[4]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나쁜 일에 대해서는 설명이 거꾸로 흘러간다. 낙관적인 사람은 남 탓, 다시는 없을 일,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고 떨쳐내지만, 비관적인 사람은 내 탓, 항상 있는 일, 내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괴로워하게 된다.

이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용어와 관련이 깊다. 회복탄력성은 현재 시련이나 안 좋은 결과를 심리적으로 극복하는 특성이나 능력을 말한다. 한 마디로 '좋은 일' 에 실제보다 과장하고 정서적으로 큰 느낌을 갖느냐 '나쁜 일' 에 실제보다 과장하고 정서적으로 큰 느낌을 갖느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정리한다면 다음의 표와 같다.

 낙관적 설명양식비관적 설명양식
좋은 사건1. 내 덕분에 생겼다.
2. 좋은 일은 또 만날 것이다.
3. 내 삶의 모든 면이 좋아졌다.
1. 남 덕분이거나 우연한 일이다.
2. 다시는 없을 행운일 뿐이다.
3. 내 삶에 큰 의미가 없다.
나쁜 사건1. 내 잘못이 아니다.
2. 이런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3. 내 삶을 위협하지 못한다.
1. 전적으로 나 때문이다.
2. 내게는 항상 있는 일이다.
3. 내 삶의 전부를 무너뜨렸다.

허나 낙관적 설명방식에는 약점이 있는데, 어떤 행동의 결과가 분명히 자신에게 있음에도 그것을 남 때문이거나 환경 탓으로 심리적 정당화를 통해서 책임를 회피하거나, '좋으면 내 탓, 나쁘면 남 탓'이라는 논리로 이기주의(이기적 편향)로 발전할 수 있다.

4 무엇이 더 좋은가?

다른 모든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낙관적인 학생은 비관적인 학생보다 공부를 더 잘 한다. 전자는 후자보다 동기수준이 더 높고, 역경에 부딪혀도 더 오래 견디고, 더 높은 수준의 성취와 관련된 방략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낙관론자들은 힘든 시기가 와도 동기를 잃지 않지만, 비관론자들은 어려움이 닥쳐오면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학습된 무기력도 주로 비관주의에서 많이 나타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관론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사법고시와 같이 과제의 양이 과중하거나 실패 위험이 높을 때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동기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연구자들은 비관론자들이 우울증에 취약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최선을 다하기 위해 사전에 기대 수준을 낮추려고 하는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다고 경고한다.

비관주의의 분명한 결점이라면 그것이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취를 위해 소극적인 방략을 동원하며, 목표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조언도 덜 구하는 경향이 있다. 성공적인 사람들은 반드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잘 대처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들 중 일각에서는 한편 우울한 현실주의(depressive realism)나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5]라는 개념으로 맞서고 있다. 이들은 낙관적 기대가 어쩌면 자신의 통제력이나 성공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고 본다.(낙관주의적 편향, Optimism Bias: 탈리 샤롯: 낙관주의적 편견)

비관주의<:>낙관주의<:>
막연한 비관주의방어적 비관주의전략적 낙관주의막연한 낙관주의

낙관주의자들의 인지도식 상에는 잘못된 신념들이 존재해서, 예를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의견에 동의할 거야"나 "낯선 사람들도 나를 무조건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겨줄 거야" 같은 것이 있다. 오히려 미약한 기분부전이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주어진 상황을 더욱 신중하게 헤쳐나간다고 본다. 일단 현재까지는 매우 도전적이고 논쟁적인 주제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결함이 있음이 발견된 상태이다.[6] 그렇기에 우울한 현실주의 가설은 아직 확신 단계까지는 아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동아시아 문화권, 특히 중국 등지에서 비관주의가 유독 강하게 발견되고 북미 문화권에서 낙관주의가 광범위하게 발견된다는 점을 들어서 일종의 문화차가 있음에도 연구자들이 문화의 프레임에 빠져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심리학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는 미국에서는 낙관주의가 일종의 신앙고백의 수준까지 취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라... 이 부분은 비서구 출신의 심리학자들이 추후 밝혀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성이다. 낙관주의라도 현실성이 없다면 그것은 망상일 뿐이며, 현실성이 있을 때 개인을 이끄는 강력한 엔진이 된다. 비관주의라도 현실성이 있다면 그것은 주어진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매사 조심스럽게 대비할 수 있도록 돕지만, 현실성 없는 비관주의는 지각된 현실을 왜곡시키고 혼자만의 고통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미시건대학교 심리학 교수이자 《낙관적 생각들》의 기고자 중 하나인 랜돌프 네시(Randolph M. Nesse)는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비관주의는 문젯거리가 아니라 유용한 감정 상태다. 바다로 1마일이나 나간 지점에서 배가 뒤집어졌을 때 해안까지 헤엄쳐 나갈 수 있다고 낙관적 태도를 유지한다면 치명적이다. 허리케인이 다가올 때 열 번 중 아홉 번은 낙관적인 태도를 가져도 괜찮다. 그러다 카트리나 같은 대형 태풍이 몰아친다.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 따뜻한 환영을 그 나라로부터 받을 것이라고 낙관한다면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더 나쁜 쪽으로 바꾸는 대재앙을 일으키게 될 뿐이다...

 
...거의 언제나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기로 우리가 마음먹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계는 여러 면에서 더 나아질 것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다른 부분에서는 더 나빠질 것이다..."
 
- 랜돌프 M. 네시

5 관련 항목

- 낙관주의 -

- 비관주의 -

  1. 참고로 저 상황에 대한 사실 판단은 "해당 컵에 물이 반이 차 있다"이고, 저 둘은 그 상황에 대한 각각의 성향이 반영된 가치 판단이다.
  2. 극단적으로는 현재는 "최악"이며 이것은 미래에도 지속된다고 하면서 "최고"는 결코 올 수 없다고 한다.
  3. 즉 1인칭 관점에서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느낌을 갖고, 실제보다 과장하여 느끼는 경향
  4. 3인칭 관점에서 '내 자신'을 해당 사건에서 거리를 어느 정도 둔 중립적 객관적인 관점에서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실제보다 축소하여 느끼는 경향
  5. 막연한(비현실적, 순응적 등) 비관주의와 방어적 비관주의가 있는데, 전자가 위험한 상황이나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며 자조적으로 포기하는 개념에 가깝다면, 후자는 위험한 상황이나 현실을 인식하고 그 상황이나 현실을 미리 피하거나 그 상황에 이미 처해있다면 어떻게 해야 그 상황이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적극적으로 시도하려는 개념에 가깝다.
  6. 예를 들어 비관주의자들은 실험실 실험에서 자신이 상황을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빨리 깨닫는 반면, 낙관주의자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미신적 행동을 보이는 "통제망상"을 보인다. 비판자들은 이에 대해서 단지 그 상황에 대해 비관주의자들이 빠르게 판단한 결과인지, 아니면 매사 그렇게 빠르게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7. 제임스 B. 스톡데일(James Bond Stockdale)의 베트남전 당시의 포로 수용소 경험을 통하여,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현실과 위험 상황을 인식하고 대비하는 사람은 끝까지 버틴 경우가 많은 데 비하여, 조금 있으면 바로 포로 수용소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지나친 낙관주의를 가졌던 사람은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린 후 오히려 극단적으로 비관화되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등의 안 좋은 경우가 많은 것을 예로 들며 대책없는 낙관주의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
  8. 또한 빅토르 프랑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