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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nihilism.
현실주의자 상위호환. 인간에게 절대적인 진리나 추구할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 허무하니까 싫은 거다 허무허무…
허무주의는 허무를 어떻게 바라보는냐에 따라 능동적 허무주의, 수동적 허무주의로 나뉜다. 쉽게 분류하자면, 무엇을 하려고 하는 쪽이 능동적 허무주의이고, 염세적인 반응을 보이며 염세적인 행위를 제외 한다면 딱히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 쪽이 수동적 허무주의다.
수동적 허무주의는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더없이 추악한 자(Der hässlichste Mensch)'라고 부르며 비판한 유형이다. 더없이 추악한 자는 자신의 치욕과 추함 같은 더러운 구석까지 파고들어와 연민하는 목격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참고 견딜수가 없어 신을 죽여버린다.
창작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허무주의는 수동적 허무주의지만, 이 문서는 일단 능동적 허무주의에 중점을 둔 내용이다.
2 역사
허무주의의 출발점은 18~19세기 계속해서 좁아져 가던 절대성과 신의 모습, 그리고 경험론을 마무리 지은 데이비드 흄이 제시한 회의주의 사상이었다. 과학적 탐구를 통한 합리주의 사조에 의해 신의 자리는 점차 좁아져 이신론, 무신론에게까지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과학적 탐구 또한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니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퍼져 나가면서, 결국 인간이 의존할 절대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가 확산되었다. 산업화와 잦은 전쟁으로 피폐해지던 유럽 사회의 단상은 이러한 사조를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이러한 사고는 중세의 절대신과 합리주의 사조가 추구하던 절대 진리가 모두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상으로 귀결되어, 절대성에 대한 사고를 완성한 헤겔 이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와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 구도를 잡은 허무주의로 나타났다. 니체는 투르게네프의 허무주의 관념을 본격적으로 철학에 도입하여 방향을 상실한 유럽 세계의 단상을 지적하였다.
3 오해
이름 때문인지 흔히 허무주의는 회의주의의 담론을 거쳐 결국 염세주의로 귀결되는 사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세상 왜 이따구냐 이 놈의 세상 다 망해 버려라." 따위가 허무주의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이는 허무주의의 한 극단일 뿐이다.
앞서 말한 철학자들의 허무주의 관념은 결국 인간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거나 추구할 외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이 가진 삶의 생동감을 일깨워야 한다는 주의주의(主意主義)와 실존주의 사조로 발전한다. 즉,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가치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근대 허무주의 사조의 답으로 제시된 것이다. 철학사에서 허무주의는 절대성의 해체를 통한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의 출발점으로서 의미가 크다.
게다가 수동적 허무주의마저도 반드시 염세주의의 색채를 띤다는 법은 없다. 사실 철저한 허무주의자라면 염세주의자인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세상을 싫어한다는 것은 보다 좋은 것과 이를 판단하는 기준을 인정하는 것인데 이 기준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허무주의다. 가령 쾌락만을 추구하는 향락주의자도 넓게 보면 허무주의자에 속한다. 향락주의자는 진리,선,질서 등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기껏해야 쾌락을 위한 도구적 가치로만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언급하는 종말의 인간(수동적 허무주의자를 뜻한다.)도 '세상 왜 이따구냐.'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행복을 발견했다.'라고 말한다.이러한 허무주의가 바람직한 것인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허무주의=염세주의가 아니며 허무주의는 현대에 생각보다 훨씬 넓게 퍼져있다고 볼 수 있다.
공(空)을 추구한다는 불교를 허무주의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는 듯하나, 불교의 공(空)은 결국 절대적인 깨달음[1]에 근거하므로 허무주의로 보기는 어렵다. 위에 나와 있듯이 허무주의는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는 것을 기본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진 '세상사 좋을 것 하나 없다.' 따위의 사고를 지칭한다면, 오히려 세상을 '모두가 불성을 내재한 꽃의 바다'(화엄종 계통, '이사무애 사사무애'), '살아가며 겪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부처'(선종 계통) 등으로 바라보는 불교 사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제로 붓다의 중도 또한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의 양 극단을 극복하자는 의미이다.
4 사상으로서의 허무주의
일반적인 염세주의가 아닌 사상으로서의 허무주의는 한국에는 거의 명맥이 끊겼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정당이 결성될 정도 융성했던 사회사상이기도 하다. 허무당이라고 했는데, 혁명적 민주주의의 한 분파로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며 암살과 테러 등을 통해 혁명을 이루려 했다. 아나키즘의 전술적 기초를 제공하였으며, 현재에는 '직접행동'이라 불리는 전술의 원류로 평가된다.
그냥 "이것저것 다 허무하니 다 망해라."라는 사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그 전의 구 체제를 완전히 말소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쉽게 말해 세계를 포맷해야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사상적 계보로 따지면 제정 러시아 시기의 혁명적 좌파 내에서 극좌로 통했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도 진짜 상종 못할 정도라고 불렸던 그 미하일 바쿠닌이 극단적이라 부른 세르게이 네차예프의 <혁명가의 교리문답>에서 기원한다. 극단의 극단의 극단의 극단 말하자면 혁명가는 인간성도, 가족도, 사랑도, 이름도 다 죽여야 되고, 세상에 대하여 무자비한 복수를 퍼부어야 하며...라는 식의 혁명적 좌파 이데올로기 내에서도 가장 극단에 치달았던 경향이었다.
한국에서는 1926년 허무당 선언 사건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그 전술적 유사성 때문에 아나키즘과 혼동되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허무당은 개인의 상호부조나 자발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혁명 그 자체에 집중했고, 아나키즘은 자주적인 개인들의 공동체를 이상으로 제시했다는 차이가 있다. 현실 역사 속에서는 제정 러시아 시절만 해도 사제 관계였던 위의 미하일 바쿠닌과 세르게이 네차예프가 시사하듯 혁명적 테러리즘이란 수단을 공유 한다는 점에서 겹친 면이 있었으나, 네스토르 마흐노의 우크라이나 농민 혁명과 이를 승계한 스페인 내전 당시 CNT의 아나코생디칼리즘이 일단 철학적으로 파괴 자체 보다는 교육, 여성 해방, 반인종주의, 공동체 자치 등 '실질적인 사회 문제의 건설적인 해결'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면서 노선 또한 제대로 갈라졌다.
5 예시
5.1 현실
- 박이문 - 철학자이며 시인이다. 사회학자 정수복과의 대담집인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에 그의 사상이 나온다.
- 이영도 - 아나키즘에 더 근접한 의식을 많이 드러내는데 폴라리스 랩소디에서는 바스톨 엔도의 입을 빌어서 "자유와 평등의 두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나라'라는 이름의 환상이다."라는 국가관을 내비치거나, 월간 판타스틱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직을 가리켜 "일개 선출직 공무원"이라고 평가했던 것에서 그런 면모를 읽을 수 있다나.
5.2 창작물
- Warhammer 40,000의 코르부스 코락스
- ↑ 사성제와 12연기 등
- ↑ 과거에는 영지주의, 이상주의자였으나 타락하여 모든것을 무로 돌리려는 극단적 허무주의자가 되었다.
- ↑ 원래는 로봇 미니언 사의 CEO였으나 매그너스(인공지능)가 단체로 맛이 가면서 쾌활한 성격의 허무주의자가 되어버렸다.
- ↑ 빈센트 보라쥬와 이하동문. 스나코가 소토바를 완전히 장악한 후 점차 시귀들의 영역을 늘려나가며, 인간들의 객체 수가 완전히 사라져가며 이 세상의 마지막 남은 하나로서 사라져버리기를 갈망했다. 다만 스나코가 자신의 비루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의미를 주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마지막 자리는 스나코에게 양보할 마음이었다.
- ↑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보다는 완전히 세상을 멸망시켜버리고자하는 점을 보면 극단적 허무주의자라고 바라보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