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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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경제학 분야에 대하여 뛰어난 업적을 남긴 학자에게 수여되는 노벨상의 한 부문. 학문과 관련된 4개의 부문 가운데 유일하게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에 주어지는 상으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꿈꾸는 상이기도 하다. 노벨상 중 가장 늦은 1969년부터 시상하고 있다.
2 오해와 진실
2.1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상이 아닌가?
일단 노벨경제학상은 알프레드 노벨이 유언으로 정한 시상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노벨 재단에서 수여하는 상이 아니므로 이 점에서 나머지 5개 부문과 차이가 있다.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과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이며,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하여 제정된 상이다.
그러나 해당 학계에서의 공신력이나 수상자 선정 과정에 대해서는 그 공정성과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일단 상의 심사주체가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로 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과 동일하며 시상식도 다른 부문 수상자들과 함께 치러진다. 또한 경제학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는 업계의 수많은 네임드 가운데에서도 경제학의 발전에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공헌을 한 학자로 평가받아, 대단한 영예로 여겨진다.[1] 따라서 노벨경제학상의 권위 그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일단 형식상으로는 '노벨상(Nobel Prize)'은 아니므로 '노벨상이 아니다'는 말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거의 동등한 권위를 가진, 형제적인 위치에 있는 상'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2.2 노벨경제학상은 국적을 차별하는가?
노벨경제학상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으로 제기되는 논의 중 하나가 지나치게 미국인 학자들에게 우호적인 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역대 수상자들 가운데 미국 국적을 가진 학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소속 연구기관(재직대학)까지 따져 본다면 미국에서 공부한 수상자들은 더 많아진다.
그러나 이는 심사위원들이 국적을 차별해서라기보다는, 현대 경제의 중심지가 미국이며, 이에 따라 가장 활발한 경제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곳도 미국이기 때문이다.[2][3] 또한 이는 다른 사회과학보다 좀 더 보편적이며 정량적인(general and quantitative)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은 경제학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경제학은 사회과학 가운데 심리학과 함께 이른바 "과학화"가 가장 진행된 분과이며, 이 경향을 이끈 이들이 다름 아닌 미국 학계였다.
물론 이러한 소위 '과학화'[4] 경향은 그 자체가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아 왔기도 하다. 정확하게 말해서 현대 경제학의 중심지가 미국이라는 말은, 현대 주류 경제학의 중심지가 미국이고 실제로 미국 경제학계가(또는 미국 자체가) 세계의 정치, 경제에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지, 꼭 미국의 경제학 내지 경제학자들이 가장 우월해서라고 볼 수는 없다. [5]
2.3 노벨경제학상은 주류경제학만을 옹호하는가?
노벨경제학상이 주류경제학만을 옹호한다는 떡밥은 미국 편중 떡밥과 더불어 가장 보편적인 비판론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수상자의 국적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보다도 더 애매한 비판인데, 어디까지를 주류경제학으로 규정할지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주류경제학의 반대 개념을 마르크스경제학으로 규정한다면 노벨경제학상은 확실히 주류경제학만을 옹호하는 상이 되지만, 이 경우 현대 경제학의 거의 대부분의 학파가 '주류경제학'에 들어가게 된다. 사실 '주류'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게 맞다고 봐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경제학만을 비주류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좁은 규정이고, 현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와 소위 '시장경제'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지닌 경제학들(보통 좌파로 분류된다)를 비주류로 봐도 문제가 없다.
또한 주류경제학을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신고전파종합(neoclassical synthesis) 경제학으로 규정한다면, 노벨경제학상이 주류경제학을 옹호한다는 비판은 틀린 말이다. 일례로 2009년 수상자인 올리버 윌리엄슨과 엘리너 오스트롬은 전형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자라기보다는 합리적 선택 신제도주의 학파[6]의 경제학자 내지는 정치학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왕립 학회는 공유재화와 관련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그들이 공헌한 점을 인정하여 노벨상을 수여하였다. 따라서 노벨경제학상이 반드시 신고전파종합, 그 중에서도 거시경제나 금융경제에만 수여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 외에도 게임 이론의 존 포브스 내시, 행동경제학의 허버트 사이먼, 오스트리아 학파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신고전파종합이 아니면서 노벨상을 수상한 사례다. 단, 게임 이론, 행동경제학을 포괄하는 합리적 선택 신제도주의 학파는 이제는 주류라 봐도 무방하다. 이 부분은 비주류 경제학 항목 참조. 다만 수상자의 다수가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자라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흡사 현대의학=서양의학이듯이 경제학계에서 신고전파 경제학=경제학이라 볼 수 있을 정도의 비중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벨상을 수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이 수행한 연구로 인해서 수많은 여타 학자들이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전체 경제학계의 추후 연구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7] 따라서, 원래 논문을 낼 당시에는 비주류경제학에 속했던 분파가 그 해당 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정도가 되면 주류경제학에 편입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게임이론과 행동경제학이 대표적. 엘리너 오스트롬이 그나마 근래에는 주류경제학과 제일 거리가 있는 편이나 그녀가 속한 합리적 선택 신제도주의 학파의 통찰은 주류경제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 하이에크는 예외적인 편이다. 이 사람이 속한 오스트리안은 최근까지도 비주류 취급받고 있으며, 심지어 하이에크는 오스트리안 중에서도 별종취급받는다. 그래서 하이에크의 수상은 학술적 업적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수상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하이에크를 별종취급하는 오스트리안은 현재에 와서도 비주류 취급 받고 또 오스트리안 하면 하이에크라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한다는 점들을 볼 때 어쩌면 하이에크보다는 오스트리안의 업적이 문제인 것일 수도 있다.[8]
그리고 수상자 중에 주류경제학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굳이 경제학이 아니라도 의학 역시 한의학을 위시해 대체이론은 꽤 있지만 이런 대체의학들이 노벨생리학/의학상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벨생리학/의학상 역시 주류의학 편향이라고 비판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생각 자체가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근저에 주류경제학은 현대의학에 매칭되고, 비주류경제학은 대체의학에 매칭된다는 편향적 관점을 기반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9] 기본적으로 비주류경제학을 '과학'도 아니고 '학문'도 아닌 수준이라고 보는 태도가 깔려 있으며, 구 리그베다 위키부터 현 나무위키까지 경제학 관련 항목의 많은 서술에 이러한 태도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장하준이 이러한 경제학자 및 경제학도들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정리하자면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 것이냐에 대한 문제이다. 주류 경제학을 신고전파종합만으로 규정한다면 확실히 노벨 경제학상은 비주류 경제학에게도 열려 있는 상이다. 다만 현 경제체제인 자본주의와 소위 '시장경제'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지닌 경제학들(보통 좌파로 분류된다)를 비주류로 본다면 비주류 경제학자들에게는 열려 있을 수가 없는 상이다. 흔히 오해하지만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폴 크루그먼도 결코 좌파는 아니다. [10]
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경제 시사를 전부 꿴다고 볼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그렇지만,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다보면 주의해야 할 점들 역시 존재한다.
대체로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볼수록 점점 경제학의 전분야를 포괄하는 이른바 제너럴리스트보다는 특정 분야를 아주 좁고 그러나 매우 깊게 파고드는 경제학자들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경제학의 기준으로 볼 때 7~8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특히 미시 영역으로 갈수록 특정 분야에 특화된 사람들의 비중이 보다 높다.
그런데 보통 연구 분야가 깊고 좁아질수록 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자기 연구 주제가 아닌 부류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굉장히 떨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라고 해서 경제 시사를 전부 꿴다 볼 수는 없으며 주로 그 사람의 주된 연구 영역이 무엇인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제발 노벨 경제학상 받은 학자의 말이라고 아무 말이나 퍼오는 기레기들한테 낚이지좀 말자
노벨경제학상은 학문적 업적을 고려해서 주는 것이지 경제와 시사에 대해서 아는게 많다고 주는 것은 아니다. 물론, 노벨상 받는 학자들은 경제학계에서 최고급 인재로 대단히 명석한 사람들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경제학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루는 범위가 매우 광범위해졌고, 또한 각 분야별로는 매우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학문이다. 워낙에 거대한 규모의 학문이기 때문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라도 자기 전공이나 연구분야쪽만 자세히 알지 다른 분야는 그 동네를 주로 파는 연구자들보다 그렇게 잘 안 다는 보장은 없다. 현재처럼 경제학이 거대해지기 이전인 예전 6, 70년대에 맹활약한 학자들은 대부분 제너럴리스트들이었지만 그 이후 세대는 세부분과를 파는 쪽으로 특화해서 그러하다.
이것은 비단 노벨경제학상 혹은 경제학만의 문제도 아니고 역사학, 자연과학, 법학 등 많은 학문 영역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나고 현상이다.[11] 쉽게 이야기하자면 피부과 의사한테 성형수술을 맡기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아주 적합하진 않지만 비슷한 예시로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가 환단고기를 신봉한다고 해서 환단고기가 신빙성 있는 고문서로 인정받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대 교수를 할 정도의 인물이면 분명 공부를 많이 했을 것이고, 남들에 비해 아는 것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전공은 어디까지나 물리학이지 역사학이 아니다. 그리고 기레기들의 왜곡을 여기에 비유하자면 환빠들이 어디 학과라는 점은 쏙 감추고 서울대 교수도 인정한 환단고기 하는 식으로 약팔이를 하는 것과 같다.
거기에 더해, 간혹 수학이나 정치학자들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도 따지고 보면 이들이 경제학을 잘 해서가 아니라 경제학 연구에 소위 말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 때문에 받는 것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볼 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경제학을 잘 해서가 아니라 자기 연구가 그만큼 학문의 발전에 기여해서 그 상을 수상하는 것이니만큼 이 개념의 차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3 역대 수상자 일람
노벨경제학상/수상자 참고.
3.1 수상자 통계
- 노벨경제학상은 2016년 기준 48회, 총 78명에게 수여되었다.
- 최연소 수상자(케네스 애로우)의 수상 당시 연령은 51세로 다른 분야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한 수상자의 평균 연령(67세)도 제일 높다. 가장 어린 수상자(말랄라 유사프자이, 17세)는 평화상 부분에서 배출되었지만, 가장 나이 많은 수상자(레오니트 후르비츠, 90세)는 경제학에서 배출되었다.
- 2014년까지 미국 수상자의 비율이 약 42.7%로 압도적이다(32명/75명). 다음으로는 영국 출신 수상자가 16%를 차지하며(12명/75명), 노르웨이·캐나다·프랑스가 각각 3명, 네덜란드·스웨덴·이스라엘이 각각 2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대체로 장수한다는 개 흥미로운 점. 1991년 수상자 로널드 코스는 1910년 12월생으로 2013년에 9월에 사망, 거의 만 103년을 살았고, 밀턴 프리드먼이 94세, 얀 틴베르헌이 91세, 폴 새뮤얼슨이 94세 등 90세를 넘어 사망한 수상자들이 수두룩하다. 80을 넘어 장수하는 것은 보통. 케네스 애로우나 로버트 솔로우는 90세가 넘어서 지금도 살아 있다. 최초의 여성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이 2012년에 78세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 이는 경제학이라는 학문 특성상 이론이 정립이되어 현실에 반영되어 그 결과가 입증되는 시간이 비교적 오래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연령이 59세인데에 비해 경제학상은 평균 67세로 8년 정도가 더 높다. 노벨상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수여되기 때문에 장수하지 않는다면 못 받을 수도 있다.
- 1969년 경제학상 수상자 얀 틴베르헌의 동생인 조류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헌은 4년 후 생리학상을 수상한다.
- ↑ 반쯤 농담으로, 조지 워커 부시 정권 시절 학문적/정치적으로 대립했던 하버드의 그레고리 맨큐와 프린스턴의 폴 크루그먼이 반쯤 병림픽이 된 논쟁을 벌이던 와중 크루그먼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되면서 맨큐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말까지 있다. 물론 학계에서는 크루그먼도 정상인 취급을 받지는 않지만(…). 애초에 크루그먼의 백그라운드는 국제경제학인데, 크루그먼이 2000년대 이후 주로 키배를 벌이는 영역은 맨큐의 백그라운드인 일반거시경제다. 문제는, 이 쪽 영역에서는 크루그먼이 삽질을 거듭한다는 거.
- ↑ 실제로 경제학자의 영향력을 재는 RePec같은 사이트에서는 국가별 학자 랭킹을 제공하고 있는데, 미국만은 나라 단위가 아닌 주 단위로 집계된다. 그만큼 미국 경제학계가 압도적인 연구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말.
- ↑ 다른 예로 흔히 비주류경제학으로 치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대표적 학자들을 살펴보면 미국인, 혹은 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이들이 많다.
AEA : 오스트리아는 미국으로 흡수합병했습니다 - ↑ 과학주의와도 연관이 있다. 경제학뿐만이 아니라 현대 미국 정치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은 이념적 색채를 희석시키고 수량적 모델과 과학성을 강조하며 인문학과의 연관성을 애써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 ↑ 비주류 경제학 중에 마르크스 경제학이나 좌파 계열 경제학의 학자들은 유럽이나 제3세계에 더 많이 분포한다. 물론 존재감이 없고 아는 사람들만 알지만...
- ↑ 근데 이 부류는 대부분 주류 경제학으로 포섭되었다.
- ↑ 수상자들의 면면을 조금만 봐도 알 수 있는 문제다.
- ↑ 여기에서 하이에크의 수상 이유를 볼 수 있으니 스스로 판단해보자.
- ↑ 한의학에 대한 논쟁은 논지와 관계가 없으니 넘어가자.
- ↑ 사실 이러한 분류는 순수 경제학 이론상의 분류는 아니고 정치학적인 관점을 포괄한 것이며, 그럴 수밖에 없다.
- ↑ 통섭, 융합 같은 개념이 등장한 것에는 이러한 학문의 세분화, 파편화 현상에 대한 반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 ↑ 경제학자 겸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치인으로 무역장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