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언해

1 개요

楞嚴經諺解. 조선의 7대 왕 세조의 명으로 엮은 불경 언해서. 중국 당나라(唐) 반랄밀제(般剌蜜帝)가 한자로 옮겼던 서역 대승불교의 불경인 능엄경을 세조와 그의 신하들이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총 10권 10책.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보 제212호, 보물 제760호, 761호, 762호, 763호, 764호, 765호, 948호, 973호, 1049호, 1794호로 등록되어 있다.

정식 명칭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이나 너무 긴 관계로 다들 줄여서 능엄경언해라 부른다.

2 편찬 배경

조선의 7대 왕 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불교를 선호하였으며 그 지식 또한 남달라 이를 눈여겨본 세종의 곁에서 불서편찬과 불경간행을 도맡아 왔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 뒤에는 피로 물들어버린 왕위찬탈 행위를 속죄하고 용서받고 구원받으려는 마음에서 더욱 불교에 심취하였다. 1457년 묘법연화경을 간행하고, 1458년 해인사 대장경 50부를 꺼내 전국 사찰에 분장하였으며, 1459년에는 월인석보를 간행하였다. 이렇게 어느 정도 불경 간행의 업적을 쌓은 뒤 크게 마음을 먹고 유학자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1461년 설치한 기구가 간경도감이다.

간경도감은 한자로 만들어져 있어 백성들이 그동안 마음놓고 읽을 수 없던 불경들을 언문으로 번역하고 간행하는 기관으로 서울의 본사(本司)를 중심으로 안동부, 개성부, 상주부, 진주부, 전주부, 남원부 등 전국에 설치하여 전 백성이 한글과 불경을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게 만들었다.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세조가 관장하였고 성종이 즉위한 후 성리학적 관점에서 폐지될 때까지 11년간 존속하며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 선종영가집언해, 사법어언해, 원각경언해, 아미타경언해,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목우자수심결언해,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언해, 금강반야바라밀다경언해 등 수많은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능엄경 또한 이 시기 언해본이 간경도감에서 만들어져 전국의 사찰과 민간인들이 쉽게 볼 수 있게 하였다.

3 의의

세조의 높은 언문 번역 실력과 불경 지식을 보여주는 자료로 중국 송나라 온릉계환(溫陵戒環)이 만든 본을 세조가 직접 한글로 구결을 달고 모두 번역하여 전국의 백성들이 읽을 수 있게 하였다.

대한민국의 대표 불교 종단인 조계종에서는 신미 대사에 대한 기사를 쓰며 이 당시 세조의 불경 번역에 대해 높이 평가하였다.# 신미대사는 세종, 문종, 세조에 이르기까지 3대 왕으로부터 존경을 받은 고승으로 범어의 자음과 모음체계를 설명해주고, 한글 창제에 응용할 수 있는 문자들을 수집, 분석하는 등 한글 창제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으며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의 초석을 다진 스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복천암에 삼존불을 시주하고, 죽기 전 유언으로 ‘우국이세(祐國利世)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법호까지 내렸으나 문종 때 우국이세가 삭제되고 숭유억불 정책에 의해 모든 공덕을 세종대왕에게 회향하고 다시 절로 돌아가야 했다. 세조는 1464년 복천암을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차례 한글의 보급정책 등을 논의하기 위해 신미스님을 찾았고 한글 창제 이후 국가적인 불교 경전 번역 사업을 벌여 한글을 널리 보급하였다고 평가하였다.

한글학회의 연구자들은 "세종이 처음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그의 대에는 용비어천가와 같은 정권 지배논리 차원의 몇권의 책에만 소수 쓰였을 뿐, 양반층의 극렬한 반대와 백성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세종의 깊은 뜻이 크게 퍼지지 못했고 한글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세조대에 백성들을 위해 그들의 생활에서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던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전 백성이 읽고 쓰고 말할 수 있게 함으로서 규방의 여성들까지 언문으로 편지를 쓸 수 있게 하였으니 사실상 한글은 세종이 발명하고 이를 세조가 전국에 널리 퍼트린 것"이라 평가하였다.[1]

4 종류

4.1 국보 제212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능엄경언해

동국대학교 소장. 세조 8년(1462)에 10권 10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간경도감을 설치한 다음 해에 만든 책으로, 당시 찍어낸 판본이 모두 완전하게 남아 전해지는 유일한 예이다.

세조와 신미(信眉), 김수온(金守溫) 등의 발문에 의하면, 원래 1449년(세종 31) 세종의 명령에 따라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번역에 착수하였으나 끝내지 못하고 미루어졌는데, 1461년 5월 석가모니의 분신사리(分身舍利) 100여 매가 나타나고,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이 책과 영가집(永嘉集)의 번역을 세조에게 청하자, 세조가 번역을 끝내고 그 해 10월 교서관(校書館)에서 을해자(乙亥字)로 400부를 간행하였다고 한다.

번역은 세조가 손수 한 것이란 뜻에서 뒤의 기록에서는 어역(御譯)이라 되어 있으나, 위의 발문에 의하면 실제로는 여러 사람이 분담하여 이루어졌다. 즉, 세조는 구결을 달아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에게 옳고 그름을 따져 밝히게 하여 구두(句讀)를 바르게 하고, 그에 따라 한계희(韓繼禧)·김수온이 번역하였는데, 그 번역을 신미 등 명승이 교정하고 세조가 본 뒤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 본문을 서로 견주어 고찰하는 것과 예문의 손질, 한자음의 표기 등도 각기 분담했다.

간경도감에서 최초로 간행한 한글 해석판으로 편찬 체제와 글씨를 대자·중자·소자로 구분하여 쓰는 방법 등은 뒤에 간행되는 국역판의 길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특히 목판본은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최초의 언해본으로서 간경도감의 다른 언해본에 대하여 책의 형태는 물론, 번역의 양식과 정서법에 걸쳐 규범이 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400년대 한글의 번역 양태 또한 살펴볼 수 있어서 국어사적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4.2 보물 제760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1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一)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33.3㎝, 가로 22.6㎝이며 전 10권 중 권 제1이 전한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였다.

4.3 보물 제761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2, 5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二, 五)

서울대학교 소장. 1461년(세조 7)에 교서관에서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금속활자본으로, 전체 10권 중에서 제2권과 제5권 등 2책만 남아 있는 영본(零本)이다.

4.4 보물 제762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7, 8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七, 八)

동국대학교 소장.

4.5 보물 제763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7~8, 9~10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七∼八, 九~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4.6 보물 제764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2, 3, 4, 6, 7, 8, 9, 10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二, 三, 四, 六, 七, 八, 九, 十)

아단문고 소장.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처음 찍어낸 듯 인쇄상태가 좋으며, 권2-4, 권6-10을 각각 한권의 책으로 엮었고 크기는 세로 35.5㎝, 가로 21㎝이다. 처음에는 속지를 꿰맨 뒤 겉에다 두꺼운 표지를 감싼 포배장(包背裝)으로 만들었으나 나중에 겉표지까지 같이 꿰맨 선장(線裝)으로 바꾸었다. 표지에 쓰인 제목은『대불정수능엄경』으로 되어 있고, 권 제2, 3의 제목 밑부분 여백에는 교정을 했다는 도장이 찍혀있다.

간경도감에서 펴낸 최초의 능엄경으로, 편찬체재나 글자체 등이 뒤에 간행된 국역본의 규범이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4.7 보물 제765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서울대 규장각 소장. 11권 11책. 1462년(세조 8)에 간경도감에서 을해자본(1461년 간행)의 오류를 교정하여 제작한 목판으로 인쇄한 판본이다. 인쇄 시기는 책마다 각각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권5·8·9 등 3책은 1462년에, 권1·4·4 등 3책은 성종대(1470~1494)에, 그리고 권2·3·6·7·10 등 5책은 성종대 이후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4.8 보물 제948-1, 948-2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3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三)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3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三)

동국대학교, 김창현(개인) 소장.

4.9 보물 제973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언해) 권4, 7, 8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諺解) 卷四, 七, 八)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한자를 크게 쓰고 한글로 토를 작게 달은 뒤에 번역을 2줄로 실었다. 글씨는 을해자 활자본을 사용했다. 을해자는 강희안의 글씨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글자 모양이 납작하고 폭이 넓은 편이다. 본문에는 잘못된 곳을 주홍색으로 바로 잡은 흔적이 있다.

4.10 보물 제1049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6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六)

대한불교천태종 구인사 소장.

4.11 보물 제1794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언해) 권9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九)

원각사 소장. 세조연간에 인출된 을해자본이며, 본문 중간중간에 교정지시가 주서(朱書)로 되어 있어 교정본임을 알 수 있으며, 표지가 결락되고 첫째 장이 마모되어 글자가 일부 훼손된 부분이 있으나 나머지는 온전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이와 동일본인 보물 제763호로 지정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본 권9 앞부분의 1~26장과 뒷부분 1장이 결락되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을해자본 권9도 완전하게 보충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전기 국어학연구와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1. 김완진, 『楞嚴經諺解』에 관한 몇 가지 과제. 간경도감과 능업경언해 사업과의 관계. 한글학회. 19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