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다이스케

파일:Attachment/다카하시 다이스케/takahashi.jpg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힙합백조'를 연기하는 다카하시 다이스케.

髙橋大輔 (高橋大輔)[1]
[2]
일본의 남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 선수. 1986년 3월 16일생.
아시아 남자 싱글 선수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 세계선수권 챔피언.

1 소개

일본 남자 싱글의 간판스타 자리를 근 10년 가까이 유지해 오면서 일본이 남자 싱글에서도 강국으로 떠오르는데 선두 주자 역할을 해 왔던 선수. 현역 남자 싱글 선수 중에서는 패트릭 챈과 예술성에서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다. 챈이 탄탄한 스케이팅 스킬을 바탕으로 유려함을 보여주는 스타일이라면 다카하시는 퍼포먼스와 쇼맨십을 중심에 둔 스타일.[3] 원래는 4회전 점프 능력도 남못지 않은 선수였으나 2008~2009 시즌의 부상 이후로는 4회전 점프 능력이 꽤 떨어졌으며, 러츠를 거의 플러츠에 가깝게 뛰는 데도 롱에지 판정을 잘 받지 않는다는 지적이 꽤 있기도 하다.

1.1 ISU 공인 최고 점수

쇼트: 95.55(2013 NHK 트로피)
프리: 182.72(2012 세계 선수권)
합계: 276.72(2012 월드 팀 트로피)

1.2 주요 대회 성적

올림픽: 3회 출전, 동메달 1개
세계선수권: 8회 출전, 금 1, 은 2
4대륙선수권: 7회 출전, 금 2, 은 1, 동 1
그랑프리 시리즈/파이널: 11시즌 출전, 파이널 진출 8회,[4] 금 1, 은 3, 동 1.

2 선수 경력

2005년 스케이트 아메리카 우승과 그랑프리 파이널 3위로 메이저 대회 입상권에 처음 발을 들인 뒤 2007년 세계선수권과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모두 2위를 차지하면서 정상권에 입지를 굳힌다. 2007~2008 시즌에는 고양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에서 남자 싱글 선수 중 처음으로 260점을 돌파하며 프리와 총점의 세계 최고 기록[5]을 세우는 절정의 기량을 보였으나 세계선수권에서는 4위에 그쳤다. 이 시즌의 쇼트 프로그램 '힙합백조'[6]는 다카하시의 대표작 중 하나.



2008년 고양 4대륙 선수권에서 연기한 '힙합백조' 영상

2008~2009 시즌에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을 통째로 불참한 후, 2009~2010 시즌에는 4회전 점프를 거의 성공하지 못하는 등 예전만은 못한 기량을 보이기도 했으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90점대에 오르는 3명 중의 한 명이 되면서, 프리 프로그램에서 4회전에 도전했다가 넘어지고 러츠 점프 두 개에서 모두 에지 문제로 감점을 받는 등의 부진을 보였음에도 쇼트 점수의 우위를 바탕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아 남자 선수로는 최초의 기록. 그 후 2010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시즌 최고 기록을 세우면서 아시아 남자 선수로는 최초의 우승을 차지했다.[7]

밴쿠버 올림픽 이후에는 4회전 점프 능력이 어느 정도 돌아오긴 했으나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4회전 점프를 장착한 패트릭 챈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2011~2012 시즌에서는 그랑프리 파이널, 4대륙선수권, 세계선수권에서 챈과 맞붙어 세 번 모두 챈에게 우승을 내주고 2위. 콩라인 그래도 2012~2013 시즌의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챈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밴쿠버 올림픽 이후 패트릭 챈을 꺾어 본 몇 안 되는 선수에 속하며[8], 전반적으로 이 시기의 커리어로는 패트릭 챈에 이은 2인자에 가장 가까운 선수.

2012~2013 시즌부터 하뉴 유즈루가 부상하면서 일본의 간판스타 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했고, 이 시즌 하뉴에게 NHK 트로피와 일본선수권 우승을 내 주었다. 2013~2014 시즌에도 NHK 트로피에서 우승하며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하긴 했으나 부상으로 기권했고, 일본 선수권에서도 5위에 그쳤으나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는 출전하게 되었다. 이 사이에 하뉴 유즈루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역대 2위 기록을 세우며 패트릭 챈을 꺾고 일본 선수권에서도 2연패를 달성하면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의 일본의 간판을 하뉴에게 사실상 내 준 분위기. 그리고 소치 올림픽에서 쇼트와 프리 모두 쿼드를 시도했지만 다운이 되고 심지어 프리에서는 후반 트리플 악셀마저 시퀀스에 언더로테이드 판정을 받는 깨끗하지 못한 경기를 펼쳐 결국 6위에 그치고 말았다.

2014년 여름, TV 토크쇼에서 은퇴를 암시하는 멘트를 몇차례 남겼고 2014년 10월 14일, 은퇴를 발표했다.

3 이야깃거리

3.1 니콜라이 모로조프와의 관계

피겨계의 유명한 코치 중 하나인 니콜라이 모로조프와는 그 관계가 깊은데, 모로조프를 만나기 이전만 해도 다카하시는 평범한 아시아 선수 중 하나로 시니어 데뷔 후 꽤나 고전하고 있었다. 토리노 올림픽의 티켓이 걸린 2005년 세계 선수권을 대차게 말아먹은 후 모로조프와 같이 일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다카하시만의 특색이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코치를 맡게 되었던 2005-2006 시즌 모로조프가 다카하시에게 주문한 컨셉은 '섹시'였는데, [9] 본래 수줍음이 많았던 성격의 다카하시는 굳은 결심을 하고 도전했고 그 결과 첫 그랑프리 시리즈 우승, 첫 시니어 내셔널 우승 등의 성과를 얻게 된다. 또한 2006-2007 시즌에는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한다. (이 당시 다카하시는 인터뷰에서 '니콜라이가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라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한 피겨 프로그램의 혁신이라고도 불리는 '힙합백조' 를 위해 다카하시에게 뉴욕 댄스스쿨을 4개월동안 다니게 하기도 했다. [10]다카하시는 이 시즌 세계선수권에서 4위로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는데, 그 이후 인터뷰에서도 '니콜라이가 골라주는 곡은 대체로 좋다. (다음 시즌 곡은 모로조프가) 좀 더 머리를 식힌 후에 알려줄 것 같다. 니콜라이의 존재는 나에게 플러스가 된다.'라며 모로조프와 계속 함께할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나고 얼마되지 않아 라이벌인 오다 노부나리가 모로조프의 밑에 들어가게 되고, "라이벌이므로 같은 코치 밑에 있는 것은 힘들다, 나에게 집중해줄 수 있는 사람 쪽이 좋다."라며 모로조프를 떠나 선수 생활 시작을 함께 했던 나가미츠 우타코 코치 밑으로 돌아가게 된다. [11]

웃긴 것은 모로조프의 반응인데, 보통 선수가 코치를 찾아가는 관행과는 다르게 모로조프는 본인이 선수에게 컨택을 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다카하시와의 첫 컨택도 민스크에서 열렸던 주니어 월드에서 본인이 먼저 제안했다고 했었고, 오다에게도 코치를 받기 1년 전부터 모로조프에게서 오퍼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별 당시 모로조프는 다카하시와의 결별이 다카하시의 에이전트와의 트러블때문이라며, 다카하시에게 "나와 에이전트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라는 주옥같은 명대사(..)를 날려주었다. 이때 다카하시는 그 대신 에이전트를 선택했고, 그때문에 오다와 사제관계를 맺기도 전에 결별했다는 것이 모르조프의 주장이다. [12]

미묘한 것은 그 후 다카하시는 모로조프와 관련해 최소한의 언급만 했었던것과는 반대로 모로조프는 마치 찌질한 구남친 마냥 틈만나면 다카하시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카하시는 내가 키웠다.드립이다(...). 실제로도 모로조프는 결별 이후에도 꽤나 오랫동안 다카하시를 신경쓰고 있었고, 보통 그가 맡았던 탑 스케이터와의 작별은 그들의 은퇴라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는데 다카하시만은 그러지 못했다며 그에 대한 미련으로 가득차 있었다라는 심정을 드러내었다. 또한 다카하시가 그의 제자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선수였으며, 그의 성공에 질투하기도 했었다는 말도 했었다.

밴쿠버에서 동메달을 딴 다카하시는 은퇴 대신 소치를 목표로 현역을 지속하게 되는데, 2012년 월드 이후 모로조프를 그의 팀에 영입하게 된다. 동영상 당시 다카하시는 2012년 월드 전 그 사실을 들었고, 월드가 끝나서야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매 시즌 안무가를 생각할 때 그의 이름을 떠올리긴 했지만 다시 일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그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놀랬다고 밝혔다.

이번 모로조프와의 재결합은 이전의 풀 코치였던 것과는 반대로 어드바이저의 역할정도로, 다카하시는 그와의 재결합을 승부같은 구석이 있다라고 표현했다. 반대로 모로조프는 앞으로 더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며, 소치에서는 그가 메달을 따도록 본인이 갖고 있는 온 힘을 다 주겠다는 집착각오를 밝혔다.

이 둘의 사이가 남들이 보기에도 미묘했던건지 한 기자는 대놓고 모로조프에게 "다카하시가 당신을 필요로 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당신쪽이 그를 더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인가"라는 돌직구를 날렸었고, 모로조프는 "그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

3.2 그 외

일본 선수 중 드물게 예술성을 겸비한 선수인데다 '힙합백조' 프로그램의 인기 등으로 한국 피겨팬 중에도 팬이 꽤 있었던 선수. 특히 2008년 고양 4대륙선수권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일본 선수라는 점 때문에 받게 되는 기본적인 비호감에서는 역시 자유롭지 않다.
한국 피겨팬들에게 통용되던 별칭은 닭.(...) 다카하시 → 다카 → 닥 등으로 줄여서 부르다가 생긴 별칭인 듯.

은근슬쩍 콩라인 속성이 있는 선수. 앞에서 소개한 2011~2012 시즌의 경우 말고도, 부상을 당하기 전의 2006~2007, 2007~2008 두 시즌 동안은 '힙합백조'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예술성과 프리/합계 세계 최고기록의 바탕이 된 점프 능력이 겸비되었으나 정작 이 두 시즌의 중요 대회 우승 기록은 2008년 4대륙선수권 1회뿐이다. 세계 선수권에서는 2위와 4위.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두 시즌 모두 2위(...)

나이가 비슷한 오다 노부나리[13]와는 선수 생활 기간 내내 국내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전반적으로 다카하시가 우세했다. 경기에서의 라이벌 관계 말고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둘러싼 해프닝(자세한 내용은 오다 노부나리 항목 참조) -- 모로조프 코치 사건 등 오다와 얽힌 사연이 많은 편.

다카하시와 오다의 라이벌 관계는 일본이 남자 싱글의 강국이 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2006년 세계선수권에서 오다가 4위를 하며 일본의 티켓을 두 장으로 늘렸고, 2007년 세계선수권에서는 다카하시와 오다가 나란히 출전해 다카하시가 2위에 오르며 티켓을 세 장으로 늘렸다. 그 후 이 두 선수의 후배인 코즈카 다카히코가 가세하면서 일본의 올림픽/세계선수권 티켓은 지금까지 계속 3장을 유지 중이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하뉴 유즈루가 결국 금메달을 땄다. 아사다 마오 이후로는 더 이상 유력 선수가 없어 보이는 여자 싱글[14]에 비해 남자 싱글에서는 하뉴 유즈루를 필두로 하여 계속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15]

일본의 여자 선수들과도 열애설이 심심찮게 돌았다. 모로조프 코치 밑에 있을 때는 안도 미키와도 열애설이 있었고, 2011년에는 아사다 마오와도 열애설이 돌기도 했다. 다만 후자는 전자에 비해 그리 신빙성은 없었던 편.

소치 올림픽 시즌 프로그램으로 일본의 유명 작곡가 사무라고우치 마모루의 음악인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티네를 골랐다. 그런데 사무라고우치가 18년 동안 다른 작곡가에게 돈을 주고 대리 작곡을 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은 큰 충격에 빠졌고, 다카하시 본인도 뜻하지 않게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다카하시는 작곡가가 아니라 곡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것이라며 다른 곡으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언론에 발표했다. 해당 기사

  1. 원래는 자를 쓰나 상용한자가 아니기 때문에 인터넷 등에서 글자가 깨지는 경우가 있는 듯 하다. 때문에 일본 위키페디아에서 髙橋大輔 라고 검색을 하면 高橋大輔로 리다이렉트 되고 기본정보 위쪽에 본래의 표기법은 髙橋大輔 입니다 라고 적혀있다.
  2. 리그베다 위키에서는 이 선수의 성 高橋를 타카하시라고 표기하지만, 한국 기사에서 이 선수의 성을 보통 다카하시라고 표기하는 데다가 나중에 소개할 별명(...)과도 연관이 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카하시라는 표기를 썼다.
  3. 느끼하다는 평가를 종종 받기도 한다.
  4. 1회는 부상으로 기권
  5. 이 기록은 3년간 지속된 후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패트릭 챈에 의해 깨졌다. 신채점제 실시 후 남자 싱글 최고 기록 중에서는 가장 오래 지속된 기록. 참고로 밴쿠버 올림픽 시즌 이후 경기 제도가 바뀌고 또한 이론적 만점이 존재하는 아이스댄스를 제외한 피겨 스케이팅의 나머지 3종목 중 가장 오래 지속되는 세계기록은 김연아의 여자 싱글 기록 228.56점.
  6. 백조의 호수 음악 일부를 힙합 버전으로 편곡하여 선보인 작품.
  7. 그런데 이 대회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반 라이사첵은 불참, 은메달리스트 예브게니 플루셴코는 대회 직전에 기권을 했다. 빈집털이
  8. 다른 선수들은 토마스 베르너, 하비에르 페르난데즈, 하뉴 유즈루가 전부이다.
  9. 쇼트 '록산느의 탱고'는 성인 남성의 윤기나는 섹시함, 프리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애절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섹시함(....). 진짜다.
  10. 심지어 비욘세 백댄서와의 만남을 주선해 댄스를 배우게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11. 당시 오다 노부나리는 본인이 모로조프 밑에 들어가게 되어 좋은 사제 관계를 깨트린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12. 그러나 모로조프가 그 후 결별의 진짜 원인은 재정적인 측면이었다고 말하기도 해 사건은 미궁 속으로.....
  13. 다카하시보다 1살 어리다.
  14. 스즈키 아키코는 아사다 마오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고, 무라카미 카나코도 소치 올림픽 이후 은퇴설을 흘리고 있다.
  15. 그러나 남자 싱글도 장기적으로 보면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일본의 주니어 세계 선수권 남자 싱글/여자 싱글 출전권은 이미 2장으로 줄어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