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인공위성 및 로켓개발에 대한 항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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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한국 역사 최초의 로켓 발사 기록은 고려사에 등장하는 최무선이 화통도감(火㷁道監)에서 제작한 주화(走火)이다. 1377~1392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세계 최초의 다연장 로켓이자 한민족 최초의 로켓이라고 볼수가 있다. 이것이 개량된 것이 1448년, 세종 30년에 제작된 신기전. 그리고 문종대에 들어서 화차가 개발이 된다.
2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1 1950~60년대
1958년 10월 10일 오후 3시, 인천 고잔동 해안에서 최초의 국산로켓 실험 발사가 있었다.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이 실험에는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들만 참석했다. 이날 길이 170㎝, 무게 48㎏, 사거리 8㎞ 등 아주 초보적인 7개의 로켓이 시험 발사됐다. 그중 여섯 개는 성공했고 한 개는 실패했다.
다음해 7월 27일 오후 2시 45분 국방부과학연구소 기술진[1]에 의해 처음으로 제작된 2단, 3단 로켓이 역시 고잔동 해안에서 시험 발사되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모든 국무위원, 유엔군 사령관 매그루더 대장을 비롯한 주한 미군 장성들이 대거 참석했다. 지난 번과 달리 일반에도 공개되었다. 총 5개의 로켓을 발사했는데 모두 성공했다. 특히 기대를 모은 제566호 3단 로켓은 79초 동안 날아가 8500m 상공에서 성공적으로 분리되었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의 혼란 속에서 국방부과학연구소가 해체되었고, 로켓연구는 인하대에서 전담하게 되었다. 15명으로 구성된 인하공대 병기공학부 로켓반에서는 실험용 로켓을 만들어 1960년 11월 19일 오후 3시 송도 아암도 해안에서 IIT0-1A와 IIT0-2A 등 2개의 로켓을 시험 발사했다. 이 실험을 위해 당시 육군과 학교 측에서는 50만환을 지원했다.
인하공대 로켓반은 1964년 12월 19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카메라와 애완용 모르모트를 태운 IITA-4MR 관측용 로켓을 발사하여 송신기적을 회수하는데 성공했다. IITA-7CR 3단 추진 로켓은 3단 분리 및 50Km 고도진입에는 성공했으나, 약화된 풍속으로 캡슐 회수는 하지못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인 만큼 위험도 많았다. 실제 로켓 실험 중에 교수 한 명이 오른손을 잃는 사고도 있었다.
1964년 이후 한국의 로켓 개발은 공군사관학교로 이어진다.
2.2 1970년대
1970년 공군사관학교의 박귀용, 조옥찬 교수팀이 과학기술처의 지원을 받아 아스팔트 추진체를 연료로 하는 AXR-55호 로켓을 발사했다, 다음해에는 AXR-73호, 72년에는 AXR-300호를 개발했다. 참고로 55호와 73호, 300호의 숫자는 개발된 횟수가 아니라 센티미터를 적용한 로켓의 지름을 뜻했다.
1972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미사일 개발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녀석이 그 유명한 백곰. 현무 지대지 미사일의 전신이다.
1978년 12월에 제정되었던 "항공공업진흥법"이 존재했으나 이 법안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 1980년대 민정당 정책 위원회 산하의 "2000년대 국가발전 연구 특별위원회"에서 항공우주산업에 대한 기술 개발 촉진과 산업정책 방향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항공 우주산업정책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1986년 2월부터 본격적인 법안이 작성, 심의되었다. 전문가와 관계기관들의 협의를 거친후 1987년 12월 4일자로 제정공포된 법률 제 3991호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이 시행되면서 본격적인 과학 로켓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이후 1989년 10월 10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창설되고 한화를 비롯한 다양한 방산 업체가 참여해 로켓을 제작하게 된다.
이후 "국가 우주개발 중장기계획"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는
1995년부터 2015년까지 20년을 계획기간으로 하여
① 위성체 분야에서 총 19기(통신위성 5기, 다목적위성 7기, 과학위성 7기)의 위성을 개발하여 저궤도 소형인공위성의 국내 독자개발 능력과 국제공동위성개발사업의 주도적 참여능력을 구축하며,
② 발사체 분야는 위성발사체 시스템기반기술 확보(1단계), 500-700kg급 위성의 600-800km 궤도진입능력 확보(2단계), 그리고 우주발사체지원(3단계) 능력을 구축하고,
③ 위성이용 및 우주탐사분야에서는 통신방송 및 지구관측 등의 위성이용 핵심기술의 자립, 우주관측 및 우주정거장 등의 국제 협력사업 참여, 위성관제 및 수신기술 자립 그리고 국내 원격탐사센터 설립, 위성자료의 국가적 이용체계 구축 등을 추진하여 2015년에는 우주개발의 자립능력을 확보할 것을 목표한다근데 2015년 3월 5일 현재 과연 그럴까?
라는 요지로 발표하게 되었다.또한 "다목적 실용위성사업"이 진행되어 1996년 말까지 통산산업부, 과학기술처, 정보통신부등이 참여해 국가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2.3 1990년대
인공위성과 로켓개발이 진행되던 1992년 8월 11일,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KITSAT-1)가 프랑스의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발사되었다. 하지만 우리별 1호의 경우엔 영국 서리 대학에서 제작이 되어 완전한 우리 기술로 만든 인공위성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백곰과 현무의 자체개발로 힘을 얻게되자 본격적으로 과학로켓 개발을 시작하게 된다. 첫 시작이 KSR 계획이라 불리우는 한국과학로켓 계획이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첫 자체 관측로켓인 KSR-I(정식명칭 KSR-420) 1993년 6월 4일에 충남 태안 안흥시험장에서 첫 발사를 하게 되었다. 1단식 고체 연료 로켓인 KSR-I은 총 중량 1200kg, 6.7m 높이의 단순한 로켓이었는데 첫 발사가 성공적으로 끝나 이후 9월 1일에 두번째 발사까지 이루어 졌다.
대한민국의 첫 관측로켓이 발사되고 동해 9월 26일엔 카이스트에서 제작된 우리별 2호 역시 기아나 우주 센터에서 발사가 되었는데 우리나라 기술로 만들어진 진정한 인공위성이라고 볼수가 있게 되었다.
1995년 한국항공우주연구소가 대한민국 최초로 압축가스식 액체추진제 로켓엔진을 개발했고, 1997년 9월 1일 10시 32분에 서해안 안흥시험장에서 최초의 2단 고체로켓인 KSR-Ⅱ의 두번째 발사가 이루어 졌다. 발사 20초만에 통신이 두절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후 1998년 6월 11일 10시에 동일한 장소에서 2번째 발사가 이루어 졌다.
KSR-Ⅱ의 성공적인 발사로 소규모이긴 하지만 고체로켓을 완벽하게 제작을 하였고 단 분리기술 및 위에 언급된 페어링 기술, 추력 편향, 낙하지점 유도 기술을 얻는 성과를 얻었다.
1999년 5월 26일에 인도 사티시 다완 우주센터에서 우리별 3호가 발사되었고, 동년 12월 21일엔 미국 반데버그 공군기지에서 대한민국의 첫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2.4 2000년대
2000년 12월에 우주센터개발 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우주발사체를 전담할 발사기지를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2001년 1월, 정부는 우주개발사업체제를 전면 재정비하고 부처별로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해 우주개발 사업을 국가전략 차원에서 육성하기로 결정, "우주개발사업 체제정비 법안"으로 2000년 1월 3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결정되었다. 이와 같은 계획으로 우주개발 사업에 대한 대외협력을 강화하고 중소기업들의 우주개발사업 참가를 독려하게 되었다.
KSR-Ⅱ의 발사로 로켓발사에 박차를 가할수 있게 되었지만 고체연료로켓은 약간의 수정만 거치면 대륙간 탄도 미사일로 사용 가능하기때문에 순수 과학목적의 로켓에 사용되는 액체연료로켓의 개발이 필요로 했고[2][3] 그 결과가 나온것이 KSR-Ⅲ다. 대한민국 최초의 액체연료로켓인 KSR-Ⅲ는 2002년 11월 28일 14시 52분 26초에 안흥시험장에서 발사했다. 목표 고도에는 못 미치는 비행 궤적을 나타냈다.
KSR 계획으로 관성항법장치, 추력벡터 제어장치, 발사대등을 국산화 했고 위성발사체에 활용할수 있는 기술을 습득했으며 소형위성 발사체 과제 착수와 동시에 구체적인 연구를 수행할수 있는 전체 시스템 기반을 조성할수 있게 되었다. KSR계획의 종료후 다음 계획인 KSLV계획으로 넘어가게 된다.
2003년 9월 27일 러시아 플레세츠크 우리 우주기지에서 과학기술위성 1호가 발사 되었다.
2005년 5월 17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 수정안을 내놓았다.
* 현재의 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을 장기계획과 중기계획(향후 5년)으로 구분하여 국가우주개발의 유연성 확보
* 장기계획은 우주개발의 장기적 발전방향과 목표를 제시
* 중기계획은 장기계획을 기반으로 5년 단위의 구체적인 우주개발 목표 및 계획을 제시
*『국내 발사장에서 우리가 개발한 위성을 우리 발사체로 발사한다』는 목표를 당초 2005년에서 2007년으로 조정
* 위성의 공공적․전략적 수요에 따른 효율적 개발을 위해 다목적실용위성 개발계획 조정
* 2호 발사시기를 당초 2004년에서 2005년으로 조정
* 5호 발사시기를 당초 2010년에서 2008년으로 조정
* 민간 상용위성인 무궁화위성은 기본계획에서 삭제
* 우주개발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기반기술 연구개발 강화
* 위성본체, 탑재체, 발사체, 위성활용, 우주과학 등 분야별 우주기반기술연구 추진
* 소요예산은 중기계획 중심으로 검토
* 당초 2015년까지 총 5조 1,570억원의 투자 계획에서 2010년까지 2조 4,649억원으로 조정
2005년 9월부터 2008년 9월까지 2단 로켓을 개발하기 위해 실물형 퀵모터를 한화에서 개발해 실험을 하였는데 이 기술중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는 국가간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개발을 결국 성공해 나로호에 이 기술을 적용하게 되었다.
2006년 7월 28일에 7년간의 개발기간을 거친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 2호가 발사 되었다. 아리랑 2호는 70%가 국내자체 기술로 개발된 위성이며 아리랑 2호의 성공적인 발사로 세계에서 7번째로 1미터급 해상도 관측 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2006년 8월 22일에 한국통신에서 개발한 대한민국 최초의 민군겸용 통신위성[4]인 무궁화 5호를 해상에서 발사해 쏘아 올렸다.##
2007년, 정부에선 "자립형 우주개발"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제시했다.
제 1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
- 독자적 우주개발능력 확보를 통한 우주강국 실현
- 우주산업의 세계시장 진출을 통한 국민경제 발전에의 기여
- 우주공간의 영역확보 및 우주활용으로 국민 삶의 질 향상
- 성공적 우주개발을 통한 국민의 자긍심 고취 등을 목표
이는 "사업중심"이었던 우주개발을 "핵심기술 확보 중심"으로 바꾸는 계획으로 단순히 통신 사업이나 기업들에게 정보 제공만을 위한 우주기술이 아닌 우주산업의 원천 기술확보에 중점을 두어 차후 행성 탐사나 우주 진출로의 방향을 모색하기위해 제시되었다.
2009년 6월 11일, 나로우주센터가 7년간의 공사기간을 마치고 완료가 되었다. 그리고 첫 발사체인 8월 25일 나로호의 발사가 이루어 졌으나 페어링 미분리로 위성 궤도 진입에 실패하게 되었다.
2.5 2010년대
2010년 6월 10일 나로우주센터에서 2차 발사가 시도되었으나 발사 시작 137초후 1단 로켓의 폭발로 추락했다.
2010년 6월 26일에 대한민국 최초의 해양 관측, 기상관측, 통신 서비스를 담당하는 통신해양기상위성인 천리안이 발사되었다. 이 발사로 대한민국은 세계최초로 정지궤도 해양관측위성 보유국이자 세계 7번째로 기상관측위성 보유국이 되었다. 이 위성 발사로 독자적인 위성개발국가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으며 국산기술로 개발된 통신 중계기가 탑재되어 세계 10번째의 정지궤도 통신위성 자체 개발 국가로 인정 받았다.
2012년 5월에는 일본 가고시마에서 아리랑 3호가 발사되었다. 해상도 70cm급 고해상도 광학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으며 이 카메라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탑재체실에서 국내 순수기술로 개발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띈다.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나로호의 3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 그리고 오후 5시26분에 비콘(beacon) 신호를 노르웨이 프롬소 기지국에 송출해 나로호에 탑재되어 있던 인공위성이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5]
아리랑 5호는 2011년 4월 개발을 마치고 러시아에서 발사될 예정이었으나, 1년이 넘도록 지연되었다. 2012년 4월 중으로 발사하기로 잠정 결정되었으나 다시 지연, 결국 2013년 8월 22일 러시아에서 발사되었다.[6]
2013년 11월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우주개발 중장기 계획(안)을 새로 수립하였다.
* '선택과 집중'에 의한 전략적 우주개발 추진
* 정부 연구개발 예산 대비 우주분야 예산 비중 지속 확대
* 한국형발사체 개발을 통한 자력 발사능력 확보
* 민간 참여 확대를 통한 인공위성의 지속 개발
* 선진국 수준의 우주개발 경쟁력 확보
이에 따른 구체적인 향후 계획은 다음과 같다.
*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 완료시점을 2021년에서 2020년으로 1년 3개월 단축
* 중장기적으로 해외 위성발사 수주를 통한 상업 발사서비스 시장에 진출
* 우주개발 영역 확대를 위해 중궤도 및 정지궤도 발사체 개발 추진
* 다목적실용위성 지속 개발
* 위성의 공공적․전략적 수요에 따른 효율적 개발을 위해 다목적실용위성 개발계획 조정
* 해상도 0.5m 이하급 광학카메라 탑재체와 전천후 상시 관측이 가능한 고성능 레이더 탑재체를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
* 세계 위성 제작 시장 진출을 위한 차세대중형위성 개발 추진
* 새로운 중궤도 및 정지궤도위성 개발
* 위성정보 활용시스템 구축 및 국제협력 강화
* 한국형발사체를 활용한 달 탐사 프로젝트 추진
* 2017년 시험용 달 궤도선 및 심우주 통신용 지상국 구축
* 2020년에는 한국형발사체를 이용하여 달 궤도선과 달 착륙선을 자력 발사
* 중장기적으로 화성, 소행성 및 심우주 탐사까지 추진
* 우주물체 추락 등 우주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우주감시시스템 구축
* 국내 우주산업 육성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방안을 마련
* 민간의 개발 물량 확대 및 우주제품의 수출 지원을 통해 우주산업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
* 세계를 대상으로 다목적실용위성 수출
* 기술의 이전과 기술개발 지원을 통해 산업체의 우주개발 주도를 유도
* 우주 원천, 핵심기술 강화와 더불어 미래 우주기술 개발 추진
* 현재 2,200여명에 불과한 우주분야 전문인력을 2020년까지 4,800명으로 확대
* 다변화되고 전략적인 국제협력 및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 추진
요약하자면 크게 한국형발사체 조기개발, 독자적인 달 탐사 계획 추진, 민간 우주산업 육성, 우주개발 선진화를 위한 기반 확충 정도이다. 그 외에도 나로우주센터 외의 해상/적도발사장 검토라든가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구축, 독자 대형 우주망원경 개발 등 관심이 있다면 매우 흥미있어할 떡밥이 많으니 한번 읽어보자. 미래창조과학부 보도자료
2013년 11월에는 과학기술위성 3호가 러시아의 드네프르 발사체에 실려 발사되었다. 과학기술위성 3호는 2년의 임무기간 동안 우리은하 적외선 영상을 확보하는 등 각종 과학기술 임무를 수행했으며 2015년 11월 임무를 완료하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차세대 위성기술 연구용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2015년 3월엔 드디어 아리랑 3A호가 러시아 드네프르 발사체를 이용해 발사되었다. 아리랑 3A호는 최초로 개발을 민간기업에서 주도한 국내 위성이며, 적외선 센서를 탑재해 주야간 전천후 관측이 가능하다. 또한 아리랑 3호보나 낮은 임무궤도 덕분에 광학 관측 성능도 향상되어 최대 0.55m의 해상도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
KBS 뉴스 단독보도로 2018년에 첫 달 궤도선 외국 로켓에 실어 발사할 예정이라고 보도 했다. #
3 기타
- 2004년 3월 13일엔 세계 최초의 정지궤도 통신위성인 한별(MBSAT)이 발사 되었다. 이 위성은 미국의 위성 본체업체인 Space Syestems/Loral에서 제작했고 미국의 유명 방산업체인 TRW에서 안테나를 제조했다. 국내 기술로 만든 위성은 아니지만 운용업체가 SK텔레콤이며[7] TU미디어가 이용중인 인공위성이기도 하다.
- 2010년 12월 30일에 KT가 운용하는 올레 1호가 발사가 되었다. 제작은 미국에서 제작되었지만 운용주체가 KT다.
- 2013년 KT가 무궁화 3호 위성을 관제소와 위성 궤도, 주파수 총 4개를 옆나라 중국의 홍콩에
불법으로팔아넘겻다는 증거가 발견되어 망할때까지 까여도 할말없게 되었다.민영화 중단하고 공기업화 ㄱㄱ자세한건 KT 참고
- 거기에 2014년 1월 9일 한겨레가 낸 기사에 따르면 무궁화 5호가 고장난 채로 돌고있다고 한다.[8] KT측에서는 문제없다는 소리를 했지만 2016년에 대체위성을 조기에 쏘아올리는 것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참고로 무궁화 5호의 수명은 2021년까지이다.기사
- 세계 최초로 개인이 인공위성을 쏘았는데, 송호준이라는 아티스트라고 한다.
- 현재 페리지라는 이름의 대한민국 로켓개발팀이 2020년 LEO 500kg급 우주발사체를 발사한다고 계획하였다. 이미 고도 5km급 고체로켓이 개발이 완료되어 발사되었으며 현재는 1.5톤급 추력을 가진 엔진의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1.5t급 개량, 5t급 개발과정을 거쳐 15t급 엔진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1]
- 추가로 75t급 액체 추진 엔진 개발로 엔진분야의 중장기 개발은 끝이 나는데, 125t급 엔진을 시작으로하는 중대형 엔진개발 계획이 없냐는 항우연의 비공식적 답변은 탐색개발 등 여러 요인(국내 연구원 수, 예산, 인프라 등)을 고려하였을때 75t급 중형 엔진이 이른 미래(2050년대)까지의 한국의 한계이며 중대형 엔진을 개발할 비용(예산, 기간)의 경제성을 감안하였을때 또한 클러스터링(75t급 엔진의 다발)의 개발이 유효성이 있다 판단 개발 방향을 클러스터링으로 잡았다고 한다. 즉, 2050년까지 해외 발사체 제공 사업을 할 수 있는 기술력까지만 개발하고 그 이상의 추력이 필요한 발사체는 해외 협력이나 2050년대 쯤에는 우주 개발 공유의 이해관계가 확립된다는 판단. 이걸 보면 러시아의 소유즈 부스터의 5t 클러스터링 역사를 따라가는 듯하다. 물론 2050년의 95t 엔진이라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기술이겠지만 지속적인 개량, 발전을 통해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목표.
- ↑ 여기엔 일본 동경대 산업과학연구소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재일교포 과학자들이 있었다.
- ↑ 사실 고체연료로켓을 개발하자 이에 미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여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에 따라 방문 수색과 같은 행동을 취해 고체연료로켓은 난항을 겪게되 완전 재개발을 하게 되었다.
- ↑ 액체연료의경우엔 장기보관이 힘들어 생성후 바로 로켓에 주입, 발사를 해야된다. 반면 고체연료는 보관이 용이해 미사일이나 발사체에 넣어두고 있다가 발사하고 싶을때 발사할수 있기때문에 고체연료는 미국 입장에서 만들지 못하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 ↑ 한국통신과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공동으로 운용한다.
- ↑ 스페이스 클럽 가입은 아니다. 1단 로켓이 러시아 물건이라서.
- ↑ http://media.daum.net/digital/newsview?newsid=20130823004111065
- ↑ 일본의 MBCO와 공동운영중
- ↑ 항우연 위성관제실 방문자의 비공식적 증언에 따르면 무궁화5호의 연료 소모율이 운영기간에 비해 많이 소모된 상태였다고 한다. 아마 살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