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곰

백곰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 만화영화를 찾으신다면 빼꼼 항목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1 북극곰의 다른 명칭

보통 북극곰이 하얗다보니 백곰이라고도 부른다. 곰이 100마리 있다는 뜻이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에 따르면 동물원에 간 어린이 수 명이 북극곰과 놀기 위해 우리를 건너 갔다가 그만...
힘세고 사나운 동물이니 가까이 가지 말자.

2 한국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 사업

국산 미사일 국산 어뢰 전력
대공 미사일신궁 맨패즈천마 단거리 미사일해궁 대공미사일천궁 중거리 미사일
천궁PIP 중거리 미사일L-SAM
대지 미사일현궁 대전차 미사일천검(개발중)239mm 유도로켓한국형 전술 탄도미사일
현무-1 탄도미사일현무-2 탄도미사일현무-3 순항미사일
대함 미사일비궁 유도로켓130mm 유도로켓해성 아음속 대함미사일차기 초음속 대함미사일
어뢰청상어 어뢰백상어 어뢰범상어 어뢰홍상어 대잠로켓
퇴역 및 프로토타입K-744 어뢰해룡 단거리 대함미사일백곰 탄도미사일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기간 무기의 국산화에 관심이 많았다. 허나 당시 우리나라는 이제 막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M16 소총을 제작하던 현시창 수준이었기에 미사일 같은 첨단무기의 개발을 위한 장벽은 넘사벽으로 다가왔다.

물론 우리나라가 처음 부터 미사일을 독자개발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 우리정부는 사거리 70km 짜리 어네스트존 로켓 대신 미국에 사거리 120km 랜스 지대지 로켓일의 판매를 요청하였으나, 당시 미국 대통령이 '전쟁은 좋지 않아요.' 라고 생각하던 지미 카터[1] 시절이라.... 카터 정권은 한국의 지나친 군비경쟁은 대략 좋지않다고 여겼기에 이 미사일 판매를 거절한다.

이에 당시 정부는 국방과학연구소(당시에는 기밀 유지를 위해 대외적으로는 기계공업 회사인 것 처럼 꾸미고 있었다)를 통하여 미사일, 로켓과 관련된 연구 개발을 진행시키는 한편, 이미 우리나라가 운용중이던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카피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은 일단은 지대공 미사일이지만 폭격기를 인수분해시킬 목적으로 탄두가 거의 지대지 미사일급으로 큰데다가 [2] 지령유도 방식이기 때문에 비행경로를 지상에서 어느정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이키 미사일로 제한적으로나마 지대지 사격이 가능하였다.[3]

이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국산화하는 한편, 지대지 성능을 좀 더 개량하는 사업이 바로 백곰 미사일 개발 사업이었다.

백곰 미사일은 1970년대 중, 후반에 실제로 발사시험에 성공하는 등, 상당한 사업진척을 보였다. 한동안은 미국도 우리나라가 백곰 사업을 진행중인줄 몰랐는데, 사업자체가 워낙 비밀리에 진행된데다가 생김새가 사실상 나이키와 동일하다보니 그랬다고..그러나 곧 미 정부도 백곰 사업을 눈치챘으며 이에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로 치자면 중국에 휴대폰 수출했더니 그거 그대로 카피해서 국산화하겠다는 꼴이었기 때문. 또한 당시 미국 정권은 여전히 한국의 장거리 미사일 보유를 반대하던 지미 카터 정권.

거기다가 미국은 당시 기술로는 100km가 넘어가면 공산오차가 100m 이상이나 되는데 이를 화학탄 또는 으로 커버하려는 것 아니냐며 안보담당 차관보였던 아브라모비츠까지 국과연에 달려와 개발중지를 요구했다.[4]

1977년에 이 문제가 대두되었고, 우리정부는 어디까지나 나이키 미사일의 개량이 목적이며, 미국이 나이키 미사일을 폐기하고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대체하는 것을 알기에 나이키 마사일의 정비 유지와 성능개량을 위해 포기할 수 없다고 설득해 사거리 180km, 탄두중량 1000파운드로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을 1979년에 체결하였다. 어차피 백곰으로 날릴 수 있는 최대사거리가 그 정도였고, 또 그 이상가는 사거리를 만든다는게 당장 쉽지 않았으므로...[5]

한편 이 미사일 사업을 진행하려면 연구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한다고 치더라도 실제 제품은 기업에서 만들어야 했는데, 기업들이 이렇게 실패위험 높고 수익도 별로 안나는 군수사업에 끼고 싶어하지 않았다. [6] 이 때문에 정부에서 반 강제로 미사일을 제작할 업체를 만들도록 하였는데 그것이 현재의 LIG넥스원의 전신격인 금성정밀이다. 2016년 5월에 당시 개발진들이 출간한 회고록을 보면, 워낙 가진 게 없다 보니 경운기 제작 회사에서 외부 동체를 만들고 로켓 연소실에 쓸 고강도 강철이 없어서 청계천에서 155mm 야포 포신을 구해다가 사용했다고 한다.

이렇게 1979년에 미사일 사거리 지침등으로 미국과의 문제도 해결되고 몇 차례의 발사시험도 성공하는 등(물론 개발과정에서 실패도 몇 번 있었다) 사업이 진척되어 갔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으로 사업의 진척속도가 늦어졌다.

결정적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백곰 사업을 완전히 취소시켜버렸다. 단순히 사업만 취소시킨 것이 아니라 국방과학연구소 내의 미사일 관련 연구자들도 대거 짤려나갔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거 사실은 나이키 허큘리스인데 색만 바꿔 칠해서 구라까는거지?'라며 사업을 취소시켰다나. 하지만 정적 전두환 대통령이 아직 군 현직으로 머물던 시절에는 직접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들을 만나서 백곰사업에 대해 칭찬도 하고 그랬던 점을 감안하면, 정말로 백곰이 나이키 허큘리스 커스텀 도장버전이라고 생각했다기 보다는 미국과의 관계를 감안하여 [7] 사업을 취소시킨 것이라 보는 것이 적당하다고 한다.

결국 백곰 사업이 취소됨에 따라 이것의 후속 사업으로 준비하던 각종 미사일 사업도 줄줄히 취소되었다. 국내에 어렵게나마 모이기 시작한 미사일 연구개발 인력들은 대부분 흩어지고 우리나라의 미사일 개발 능력은 후퇴해버리고 만다. 나중에 민간 기업에 시설과 인력을 이전 시킨 일본의 사례를 알게 된 관계자들이 이쉬워했지만, 이미 해체된 부서와 사람들까지 원상복귀하기엔 한 발 늦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몇 년 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장관급 국무위원 16명[8]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자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한다. 눈 앞에서 모든 걸 지켜본 전두환 대통령이 북한을 위협하기 위하여 휘두를 주먹 -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이 없음을 알고 통탄했던 것. 이에 5공 출범 후 취소됐던 백곰 사업의 후속 계획 일부를 재추진하여 현무 지대지 미사일이 탄생하게 된다. 현무가 나이키 허큘리스와 닮은 것도 이 때문..이라지만, 닮았다고 해야 할 지. 로켓 통모양부터 다르다.

2.1 관련항목

  1. 이 땅콩농부아저씨때 미국이 터보팬엔진을 쓰는 F-16에 구식 터보제트엔진을 단 변태비행기르를 개도국용으로 팔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레이건이 집권하면서 엔진 다운그레이드는 취소하고 바로 팔았다.
  2. 나이키 미사일은 개발당시 핵탄두를 탑재하여 폭격기 편대를 일시에 shift + delete 시킬 생각도 하고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핵탄두로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아작내는 독은 독으로 제거한다는 방안도 검토했다. 다만 소련과 서로 지나친 군비경쟁을 막기 위해 핵으로 핵미사일 날리기는 서로 안하기로 합의.
  3. 미군은 아예 지대지용으로 확산탄(클러스터탄) 버전의 탄두도 개발하려 하였으나 취소
  4. 게다가 한국이 만들어봐야 명중률 고자에 발사조차도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대놓고 공개적으로 발사까지 성공을 해서 높은 명중률을 보였으니 미국으로서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당시 ICBM과 핵관련의 기술획득과 개발이라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었던 한국이었으니 당연했다.
  5. 흔히 이 미사일 사거리 지침을 전두환 대통령 시절로 알고 있으나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때이다. 아래 서술된 것처럼, 전두환은 여기에 한 술 더 떴다가 아웅산에서 찬물뒤집어쓰고 정신차렸다.
  6. 군수산업이 돈 많이 번다고 소문난 것은 주로 영화나 소설등의 영향으로, 장비 하나하나의 군 납품가격은 비싸지만 대부분 원자재와 인건비 자체가 비싸다. 또 납품되는 수량자체도 적기에 전체 판매수익을 따져보면 보통 액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7. 일단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을 조건으로 백곰 사업진행을 허가하였지만 좋게 보고 있지는 않았다.
  8. 다른 한 분은 당시 사진 기자로 명성이 있었던 이중현 씨(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