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경승

杜景升
(? ~ 1197)

1 개요

고려 무신정권 시대의 장군. 만경(현재 김제시 만경읍 일대)출신으로 두릉 두씨의 중시조이다.

1.1 무신 집권기의 행적

무신 정변 당시, 두경승은 견룡군의 대정으로 있었다. 왕실 직속 친위대의 하위 장교였다는 소리. 그는 무신 정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때 수도 내에서 장졸들이 약탈을 자행하였으나, 두경승은 홀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재물을 약탈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명종 즉위 이후 산원, 내순검군지유를 거쳐 낭장으로 승진했으며, 김보당의 난에서는 남로선유사가 되어 민심을 수습하는 공을 세웠고, 이후 북부 전선에서 종군하며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이 있어 상장군의 자리에 오른다.

경대승, 및 이의민 집권기에도 승진 행진을 멈추지 않아 공부, 호부의 상서 직책을 맡았고, 참지정사, 수국사, 평장사, 감수국사 등 승진을 거듭한다. 1193년에는 벽상공신의 자리에 오르며, 이듬해에는 이의민과 함께 문하시중에 제수된다. 아니, 도대체 언제까지 승진만 하는거지?

경대승과는 친우 관계였다고 하며, 이의민 집권기 때는 이의민과 대립하였지만, 과거 이의민과도 친우였으며 결정적으로 경대승에게서 이의민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1] 무예가 뛰어나고 명망이 높아서 이의민의 괴력에 대적할 수 있기도 했으나, 이 덕분에 명종이 이의민을 견제하는 카드로서 두경승을 활용하여 일부러 출세를 시켜주며 힘을 실어주던 것이다. 덕분에 이의민은 두경승과 주먹 다툼으로 싸울 수 밖에 없었다.[2]

1196년 최충헌이 미타산에서 이의민을 제거한 후, 명종 대의 마지막 무신으로 그의 정적이 되어, 이듬해 자연도(오늘날의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곳)로 유배를 가게된다. 즉 숙청되었다는 의미. 그는 귀양지에서 얼마 안 있어 죽었는데, 그가 병을 얻어 죽었다거나, 최충헌이 암살했다는 의견도 있고, 노비가 그의 재산을 노리고 죽였다는 의견(...)도 있는 등 직접적인 원인은 불분명하다.

죽고 나서 그대로 영종도에 묻혀서 오늘날에도 영종도에 그의 무덤이 남아 있다.

1.2 평가

문맹 장군이라느니, 이의민의 라이벌민폐를 끼쳤다(...)는 기록이 있는 등 부정적인 견해도 있지만, 다른 무신정변 권력자들과 달리 고려사 같은 사료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편.

글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지만 활솜씨가 뛰어났다는 기록도 있고, 그의 임기응변이 전세를 뒤집어놓았다는 기록도 있는 등 군인으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더불어 성품이 온후하고 가식이 적었다는 기록까지 있는것으로 보아 인덕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처세술도 능했는지 이의방을 거쳐 최충헌 초기까지 성격이 제각기 다른 집권자들 아래에 있었음에도 그는 말년에 숙청된 일 외에는 좌천되는 일 한 번 없이 꾸준히 정치적 영향력을 늘려나갔다. 정확하게는 이의방 정권 후반기와 정중부 정권 초기 때는 전쟁에서 큰공을 세운 영향이고, 경대승 정권 당시는 경대승과 친우 관계였으며, 이의민 정권 당시는 이의민과 대적하기는 했으나 이의민과 오랜 친우관계에 경대승이 이의민을 죽이려고 할 때 자신이 경대승에게 불이익을 당할 것도 각오하고 이의민에게 사실을 알려줘 이의민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기에 여러가지가 섞여서 이의민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 것이었다.[3] 본인의 능력이 뛰어난데다가 인간관계가 넓었기에 승승장구하던 것이다.[4]

또한 명종이 이의민을 견제할 카드로서 두경승을 활용하는 모습이 보이며, 최충헌이 명종을 폐위할 때 두경승도 같이 숙청하는 등, 왕실의 측근으로도 볼 수 있다.

사료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무신 집권기 몇 안되는 개념 장군이었다 할 수 있겠다.

여담으로 인간흉기(...)급의 괴수들이 넘쳐났던 무신집권기의 무인답게 그 역시 비범한 무력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한 일화에 따르면 라이벌인 이의민과 기싸움을 하는 도중 기선제압을 위해 이의민이 건물 기둥을 주먹으로 후려쳐 기둥을 진동시키자 두경승은 벽을 주먹으로 한방에 뚫어버리는 것으로 훈훈하게(...) 답례(?)를 했다고 한다.(...) 사람이 아니무니다.

2 무인시대에서의 모습

두경승(무인시대) 문서로.
  1. 무인시대 드라마에서는 최충헌이 이 일을 언급하며 이의민이 아무리 권력을 틀어쥐어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두경승을 함부로 대할 수 없어 둘의 대립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 하는 장면이 있다.
  2. 최고 권력자가 애들 싸움처럼 주먹싸움으로 상대해야 했던 것이다.(...)
  3. 그렇기에 이의민을 견제하기 위해서 두경승을 명종이 적극 기용한 것이었다.
  4. 쉽게 말하면 초기에는 그냥 능력으로 출세를 하다가 이후는 우연히도 최고 권력자가 되는 둘이 다 친우였던 셈이다. 심지어 경대승은 의종을 시해한 이의민을 증오함에도 이의민을 구해준 두경승과도 친우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