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들강 임산부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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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들강 임산부 살인사건은 2007년 전라남도 나주시의 드들강에서 26세의 임산부 김 모 씨가 피살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의 동기는 다름 아닌 보험금 때문임이 밝혀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2 사건의 전말

2007년 6월 19일, 119 구조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은 나주의 드들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낚시꾼인데 그물에 뭔가가 걸려 보니 자동차가 밑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는 제보전화였다. 신고 접수를 받은 구조대와 경찰관들이 모두 드들강으로 출동했으나 첫 날에는 찾지 못했고 다음 날 다시 걸려온 제보전화에서 알려준 위치대로 가서 보니 물에 빠진 차 한 대가 있었고 그 안에는 20대로 보이는 여성의 시체가 있었다. 사망자의 신원을 밝혀본 결과 26세의 여성 김 모 씨였는데 김 씨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8일 전인 6월 11일에 남편으로부터 실종신고가 되어 있던 상태였다.

김 씨의 남편은 아내가 운전연수를 위해 드들강에 갔는데 그 뒤로 집에 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김 씨의 부검 결과 김 씨는 6월 6일 밤 11시에 사망한 것으로 판정되었다. 김 씨는 임신 5개월 차 임산부였다. 시신에 뚜렷한 외상도 없었고 또 사망자의 폐에서 플랑크톤이 발견된 점을 미루어 사인은 익사로 밝혀졌다. 그래서 당초 경찰은 남편의 진술대로 김 씨가 운전 미숙으로 인해 강에 빠져 변을 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2.1 석연찮은 의문점

언뜻 보기엔 단순한 사고사로 보였지만 이 사건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존재했다. 그 몇 가지 의문점은 다음과 같다.

  • 주행 중에 차가 강물에 빠졌다면 충돌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 차 문이 모두 열려 있다.
  • 야간주행을 했는데도 전조등이 꺼져 있다.
  • 기어가 중립에 놓여 있다.
  • 운전자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

이상의 의문점들이 이 사건이 단순히 운전이 미숙한 사망자가 사고를 당해 죽은 것일까 하는 의문점을 낳게 했다. 주행 중에 차가 강물에 빠졌다면 강물에 빠지는 동안 강 가의 돌이나 나무 등에 부딪히거나 긁힌 자국이 있어야 하는데 발견된 차의 차체에서는 그런 것들이 발견되지 않고 그냥 깨끗하게 수장되었다는 게 뭔가 수상했다. 그런데다 김 씨는 6월 6일 밤 11시에 사망한 것으로 판정되었는데 그렇다면 사건 당시 김 씨는 야간에 차를 몰았을 것이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차의 전조등은 켜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간에 그것도 도시만큼 가로등이 밝지도 않은 시골에서 전조등을 켜지 않고 차를 운전하는 건 자살행위이다. 아무리 초보 운전자라도 전조등 켜는 법 정도는 다 알고 있으며 그걸 모르면 아예 면허 시험을 칠 수도 없다. 또 기어가 중립에 놓여 있는 것도 매우 수상하다. 사고를 당한 차량의 기어는 오토매틱 기어였는데 암만 초보 운전자라도 D에 놓아야 주행할 수 있고 R에 놓으면 후진, N에 놓으면 멈추고 주차할 때는 P에 갖다 놓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분명, 주행 중에 운전 미숙으로 차가 강물에 빠져 버렸다면 기어는 주행에 놓여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사고를 당한 그 차량의 기어는 중립에 놓여 있었다. 차가 강물에 빠졌는데 운전자가 탈출할 생각은 않고 기어를 중립으로 바꾼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또 면허증을 취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운전자들은 면허 시험 칠 때 항상 안전벨트를 꼭 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안전벨트를 매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안전벨트를 안 매고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운전이 손에 익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그런데 초보 운전자인 김 씨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운전대를 잡았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2.2 남편의 행적

이 사건에선 남편도 매우 수상했다. 일단 김 씨의 남편은 평소 행실이 방정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김 씨의 남편은 조직폭력배의 일원으로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사채를 써서 거액의 빚을 지고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이 남편이란 자가 김 씨의 이름으로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어놓았고 김 씨가 사망하자 자신이 2억 원 상당의 보험금을 타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빚을 갚기 위해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이 사고를 가장해 김 씨를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심증만 있을 뿐 이 남편이 범인임을 입증할 물증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 사고가 미궁에 빠지기 시작했다.

2.3 수상한 제보전화

이상한 점은 제보전화부터가 이상했다. 보통 목격자나 신고자는 한 번 경찰이나 구조대에 신고를 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러지가 않았다. 이 사건의 신고 전화는 6월 19일에 최초로 걸려 왔는데 이 때 경찰과 구조대는 그 문제의 차량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 날에 다시 제보전화가 동일인물로부터 걸려왔다. 더 수상한 건 이 사람은 마치 꼭 시신이 발견되어야 하는 양 지나칠 정도로 차가 가라앉은 곳의 위치를 알려주고 빨리 건져달라는 호소까지 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목격자들이나 신고자들이 잘 하지 않는 행동을 한 게 뭔가 수상쩍었다. 그리고 구조대 측에서 "혹시 어제 전화 주신 분과 같은 분이시죠?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라고 묻자 갑자기 전화가 안 들리는지 뚝 끊어버렸다. 마치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면 안 되는 사람처럼 한 것도 수상했다.

그 전화가 이상한 점은 더 있었다. 신고전화는 분명 자칭 낚시꾼이라는 인물이 했는데 그 옆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더 들렸던 것이다. 신고자 이외 목소리 주인공은 30대 남성의 목소리였는데 "겁 먹지 마.", "떨지마." 등의 말이 들렸다. 정황으로 보아 신고 전화를 하고 있는 낚시꾼에게 하는 말 같았는데 도대체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또 그 낚시꾼이 차량이 있는 위치를 제보할 때에도 옆에서 "화순 방향, 화순 방향"하는 식으로 마치 각본을 알려주듯 말했다. 즉, 이 사람은 그 낚시꾼이란 제보자보다 사건에 대해 훨씬 더 바삭한 인물이란 점인데 이 사람의 정체는 누구일까?

3 범인의 정체와 살해 동기

위 의문점에 대해 의문을 품은 형사의 끈질긴 노력 끝에 제보자의 정체를 밝혀냈다. 그 제보자의 정체는 김 씨 남편의 친구로 밝혀졌다. 경찰은 제보자가 사실 낚시꾼이 아니었고 남편의 부탁을 받고 신고를 대신 해준 것이며 그 대가로 아내 사망 시 지급받는 보험금의 일부를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사 결과 김 씨의 남편은 이미 보험사기를 저지른 전적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이상의 정황증거를 토대로 경찰은 이 사건이 사고를 가장한 살인사건이었으며 범인은 김 씨의 남편 박 씨라고 지목했다.

경찰 측에서 밝힌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조직폭력배 출신이었던 박 씨는 휴대폰 대리점 운영을 하다가 말아먹어 거액의 빚을 진 상태였는데 전처와도 이혼해 버려 빈털터리 신세로 15개월 된 딸을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2007년 2월, 그는 인터넷에 15개월 된 딸을 돌봐줄 보모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올렸다. 이 구인광고를 본 사람이 바로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26세의 미혼모 김 씨였다. 당시 김 씨는 낙태 문제로 남자친구와 갈등을 겪은 뒤 헤어졌는데 마땅히 거처도 없던지라 숙식을 제공해준다는 이 구인광고에 끌려 죽음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어쨌든 김 씨는 한 달 동안 보모로서 그 박 씨의 15개월 된 딸을 정성껏 돌봐주었고 박 씨는 김 씨에게 "나는 이혼남이고 너도 미혼모니까 우리 다시 한 번 행복한 가정을 꾸려보자. 뱃속에 있는 네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아빠 노릇하면서 정성껏 키워줄게."라고 청혼을 했다. 오갈 데 없는 미혼모였던 김 씨는 이 청혼에 홀딱 넘어가 버렸고 두 사람은 그 해 5월 23일에 혼인신고를 하고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박 씨가 집필한 시나리오에 불과했다.

김 씨가 초보 운전자란 사실을 알게 된 박 씨는 결혼 일주일 후에 자신의 명의로 세피아 승용차를 구입해 김 씨에게 운전을 하게 만들었다. 30일부터 박 씨는 피보험자를 김 씨로, 보험수익자를 자신으로 하는 세 개의 보험을 연달아 가입했다. 6월 6일 밤 11시경 결국 김 씨는 어머니에게 “남편이 강가에서 부른다”는 마지막 통화기록을 남긴 뒤 실종됐다. 경찰은 박 씨가 이 날 운전연수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김 씨를 운전석에 앉히고 시동만 걸고 아직 기어가 중립에 놓여 있는 상태에서 뒤에서 그대로 차를 떠밀어 강에 빠뜨린 것으로 추정했다.

사건 이후 박 씨는 경찰서에 세피아 승용차를 도난당했다고 먼저 신고했다. 아내에 대한 가출 신고는 4일이 지난 뒤였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자신이 친구 양 씨와 함께 그 무렵 드들강 주변에서 아내를 찾아다녔다고 진술했지만 양 씨는 그런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아내의 시신이 발견된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박 씨는 미리 들어놓은 보험금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박 씨는 한 보험사로부터만 1억 9,800만 원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박 씨가 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틀림없다. 하지만 범행 장면이 찍힌 CCTV나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직접증거 즉, 물증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재판부도 고심을 거듭했다. 1심에서는 살인죄와 보험사기죄를 합산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당연히 박 씨는 항소했고 2심으로 넘어갔다. 2심 재판부는 살인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고 보험사기죄만 적용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왜냐하면 박 씨가 직접적으로 김 씨를 살해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사건 당일 밤 10시 51분 어머니와 통화한 김 씨의 마지막 위치는 사고지점에서부터 9㎞ 떨어진 곳이었다. 11시 22분 박 씨의 마지막 발신 위치는 화순읍이었다. 2심은 현장검증까지 거쳤는데 박 씨가 그 사이 31분 동안 아내를 유인해 차에 빠뜨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결국 3심인 대법원까지 넘어가 버렸다. 그런데 대법원은 심리가 부족하다며 이를 뒤집었고 2013년 8월 1일 광주고등법원은 “범행추정시각의 교통량이 오후에 진행됐던 현장검증 당시보다 훨씬 적었을 거다. 피고인이 과속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살인죄를 다시 인정해 박 씨에게 징역 15년 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4 범인이 형사를 고소하다

이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범인으로 밝혀진 박 씨가 2015년에 갑자기 자신을 검거한 형사를 공문서 위조죄로 고소한 것이었다! 드들강 임산부 살인사건을 해결한 형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계급 특진한 상태였는데 이에 대해 박 씨가 앙심을 품고 저지른 짓이 아니냐는 말이 많다. 박 씨는 국과수에서 내놓은 아내의 부검 소견서에 '타살'이라는 용어가 적혀 있지 않았는데 자신을 검거한 형사가 수사보고서에 멋대로 타살 소견을 갖다붙여 자신을 감방에 집어넣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맹점은 김 씨에 대한 살해수법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심부터 종국심까지의 판결문을 분석하면 박 씨가 불상의 방법으로 아내를 실신시킨 뒤 승용차 운전석에 앉힌 상태에서 강에 빠뜨려 살해했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처럼 범죄 수법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는 부검의의 판단이 결정적이다.

1심 재판부는 “국과수의 2007년 6월 최초 부검당시 B 부검의는 A 씨의 사망원인을 익사로 추정했다”며 “다만 운전미숙으로 인한 사고에서 나타난 반사작용에 따른 신체손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머리 우편 두피 손상을 사후증상으로 추정했지만 당시 사고사로는 부자연스러웠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도 했다. 여기까지의 부검 소견은 2007년과 같다. 문제는 부검의 B 씨의 판단이 2011년과 달라졌다는 것.

박 씨의 주장대로라면 그 당시엔 타살이란 용어가 없었지만 수사보고서와 1심 판결문에 그 용어가 다시 등장했다. 1심 법원은 “부검의 B 씨는 2011년 경찰로부터 타살 의혹 관련 서류를 받고 머리 우편의 두피 손상이 사망 전에 발생한 외력으로 볼 수 있다”며 “두피 손상은 둔기나 돌에 의한 충격으로 발생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사망 전에 발생한 외상으로 볼 수 있다고 해 정황상 타살로 의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국과수는 최근 “2007년 당시 부검감정서에 사망의 종류(외인사와 내인사)를 기재한 적이 없으며 타살이란 용어를 기재한 바 없다”며 “두부의 우측의 두피손상은 사후손상으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부검결과에 의해서만 타살이란 결론을 유추했다는 박 씨의 추론은 무리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같은 시신을 두고 최초 부검 당시 국과수의 입장과 4년 뒤의 입장이 바뀌었고 1심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박 씨는 “경찰의 허위 보고서가 없었다면 타살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었을 거다”며 “일반인이 부검의의 타살 소견을 반박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경찰의 수사보고서 때문에 망인이 타살됐다는 사실이 확정돼 당시 사고사에 대한 사실조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1심 판결을 제외한 모든 판결문에서는 “타살 정황이 있다”는 부검의 B 씨의 의견이 등장하지 않았다. 원심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은 “타살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심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최종심을 선고한 광주고등법원은 “피해자의 사인은 익사로 추정된다”고 판결했을 뿐, A 씨의 시신에 나타난 우뇌 두피 손상이 사건 발생 전에 나타났다는 부검의의 의견을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대해 노 형사는 주간 타블로이드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사의 지휘 하에 부검의와 면담했으며 유선상의 구두 통화를 통해 타살이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다”며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이 된 사건이다. 수사에 대한 부분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고 하면 이미 그런 부분이 반영됐을 거다”고 반박했다. 국과수 관계자도 “소견서에 타살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구두상 표현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박 씨는 억울하게 살인범의 누명을 쓴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기 위해 적반하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 이 사건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