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 dementia
1 인지적 현상의 일종
1.1 설명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 등에 둘러싸인 현대인, 특히 2010년대 기준으로 10~30대 젊은이들이 문명의 이기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로 치매와 유사한 인지적 저하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회 일각의 주장. 얼핏 반-과학기술적 관점이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디지털 치매가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하 찬성론자들이라 함)은 이에 더불어서 이런저런 옳으신 말씀들도 많이 하고 있기에 무조건적 찬성이나 반대보다는 적절히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는 묘하게도 게임 중독 같은 떡밥과도 엮이며, 세대 간 갈등과도 유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 당장 젊은 사람들 앞에서 이런 얘기 함부로 했다간 노땅이니 꼰대니 하는 소리를 들을 위험도 있고
인지적 저하를 설명하려면 먼저 인지과학이 다루는 주제부터 설명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크게 언어, 지능, 기억과 인출, 표상, 의사결정, 지각(perception), 의식, 문제해결 등등이 포함된다. 뜬구름 잡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주제야말로 레알 심리학이라는 과목에서 줄창 배우게 되는 내용들로, 치매라는 질병은 이러한 인지적 역량의 전 범위에서 점차적인 붕괴가 진행되는 것이다. 즉 디지털 치매라는 주장은 디지털 기기에의 의존이 언어, 기억, 지능, 의식 등의 감퇴를 초래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사실 찬성론자들도 현대사회에서 이미 스마트폰 같은 것들이 너무나도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예 그런 것들을 끊으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찬성론자들이 디지털 치매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제시한다는 건 보통 독서나 운동, 음악러닝머신 위에 스마트폰을 두고 음악을 들으며 디지털 북을 읽으면 된다. 감상이나 명상, 충실한 사회생활 등등과 같은 건전한 취미생활을 병행하라는 로우리스크 로우리턴의 무난한 조언들이다. 디지털 세대는 히키코모리가 아닙니다만... 물론 이것들은 누구나 분명히 새겨들어야 할 좋은 말들이고 인생을 보람있게 살 수 있는 좋은 방법들이긴 하다.
국내의 개신교계 역시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의존을 우려하는 풍조가 있다. 이쪽 바닥에서는 디지털 금식이라고 해서 일정 기간을 정해두고 일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쓰지 않는 의식(?)을 자율적으로 하기도 한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는 디지털 치매를 별도 분류를 하고 있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건망증과 같은 단순 기억장애로 본다. 그러므로 디지털 치매보단 디지털 건망증이 좀 더 올바른 표현이다?
1.2 비판점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제본의 중지에 대해서) ...일부는 슬퍼하면서 향수를 느끼겠지만, 우리에게는 웹사이트라는 더 좋은 도구가 있다."- 호르헤 카우스,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회장
한 블로그에 올라온 디지털 치매 비판글 그런데 해당 링크의 예시에서 가리키는 이론은 실제로 문자의 발명을 두고 존재했던 갈등에 대한 기록이 있는것도 아니고, 실체가 불분명한 사이비 이론이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문명에서의 초기적인 문자는 훈민정음 마냥 만들자 해서 조직적으로 발명되어 특정 세대에 의해 갑자기 등장한게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형성된거다. 체계적인 문자가 정립되기 이전에 무언가를 기록하여 기억하는 개념이 전혀 없던 것도 아니고, 그림이나 기호로 기록하던 것에서 발전한게 문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문자의 등장이 갑자기 이전에는 없던 개념의 발명품의 등장이라는 주장은 매우 판타스틱한 상상력이다(...). 선사시대의 젊은 세대가 문자를 발명하고 나이 든 세대가 그것을 반대했다던가 글자가 발명되자마자 신세대들에게 책을 읽는게 유행했다는 주장도 황당하다. 현실은 책은 근세,근대 까지도 하층민들은 못읽었고 문자나 책 자체가 권력자들의 철권에 의해서 체계화되고 발달하거나 기록될 때가 많았다. 글자의 발명,형성,보급은 권력과 연관이 크고 권력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즉 선사시대에 갑자기 젊은 세대가 기존에 없던 기록 개념을 생각해내고, 그 문자를 발명하겠다는 젊은 세대와 그것을 반대하는 나이 든 세대가 특정하게 나뉘어서 갈등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고 사실 그렇다 할 것은 없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한데 (디지털기기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기존의 문명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관념은 문자의 형성과 문명의 형성으로서 생겨났다. 그냥 그런 개념 자체가 희박했던 선사시대에 현대적인 가치관 갈등이 있었다고 보는게 무리수(...).)그냥 글쓴이가 자신의 주장을 위해 생각한 얘기.
찬성론자들의 제안이 워낙 다양하긴 하지만 일단 디지털 치매라는 현상 자체만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걸러 들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다. 우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뇌의 뉴런들은 자꾸 쓸수록 더욱 연결이 강력해지고 더욱 많은 연결을 갖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뉴런은 약해지다가 결국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뇌의 역량은 쓰는 만큼 강해진다. 이를 유념해 두고 디지털 치매에 관련된 주장들을 파헤쳐 봐야 한다.
현대인들이 기억술(mnemonics)이나 길찾기 능력과 같은 인지적 활동에 있어서는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역량의 감퇴는 앞서 말했듯 쓸 일이 없었기 때문이며 이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 큰 원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치매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센세이셔널한 명명이다.[1] 치매 환자들도 물론 인지능력의 붕괴를 경험하긴 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치매 환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현대인들은 자신의 인지적 역량을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면서 더 고도의 지적이고 창조적인 정신적 활동들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슨 중독처럼 의존증을 보이는 증상이 아니라 오히려 효율적인 업무분담이라고 봐야 한다.
디지털 치매가 실제로 그렇게 위험하다면 이미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서구 선진국 사회들은 치매 환자들로 우글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사회는 급격히 지식정보 사회로 접어들었고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할 발전을 누리고 있다. 흔히 대한민국이 IT 강국이라고들 하지만, 과거처럼 사람들이 일일이 전화번호를 외워야 했다면 뭇 회사들의 고객 서비스는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식정보 사회에서 고객들의 전화번호를 일일이 외우는 것이 그렇게 권장할 만한 덕목인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은 컴퓨터가 비교할 수 없이 더 잘 한다. 길찾기 능력 역시 중요하지만 그것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내비게이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디지털 치매를 설파하는 강연자의 강연 장소를 못 찾아서 적지 않은 청중들이 디지털 치매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배달업체 전화번호를 달달 외우면 좋긴 하겠지만 그런 것은 스마트폰 앱이 더 잘 한다.(…) 즉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가치가 떨어진 지적 활동을 기계에 위임하고, 그 대신 더 빠르고 효율적인 지적 역량을 얻었다. 이러한 득과 실 중에서 찬성론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이 바로 득의 부분이다.
찬성론자들이 강조하는 "인간의 뇌를 진정 인간답게 하는 역량들" 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간답지 못한 단순암기 능력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그들은 대중을 움직일 강력한 광고 카피 또는 징글(jingle)을 만드는 능력, 기업 로고를 구상하는 능력, 소설 《반지의 제왕》이나 영화 《스타워즈》 속 방대한 세계관을 구상하는 능력, 날카로운 논문을 발표하고 상대방의 논문을 논박하는 능력 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능력들은 그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에 얼마나 의존하느냐와는 별 관계가 없다. 도리어 지인들의 전화번호나 각국의 수도, 역사적 사건들의 연도를 달달달 외우는 것은, 그렇게 욕을 먹다 못해 어떻게든 벗어나 보겠다고 한국의 공교육이 몸부림치는 주입식 교육의 한 결과물이다.
또한 찬성론자들이 디지털 치매와 흔히 혼동하는 것이 바로 독서의 결여, 기초교양의 결여이다.[2]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기기의 사용이나 인지적 저하 현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도리어 디지털 기기를 통해 희귀 고서적을 보존하고 있고 E-BOOK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책을 주문하거나 심지어 리캡차의 경우 판독이 어려운 고서적을 스캔하는 데 활용된다. 물론 사람들이 갈수록 책을 읽고 있지 않고 있으며 긴 글을 읽는 힘도 약해져 가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는 글을 읽는 "활동" 을 하지 않을 뿐이지 정보의 바다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3] 경우에 따라서는 인문학적 감수성의 결여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한민국이나 미국과 같은 실용주의적 문화권에서 인문학이 경시되고 있는 사회적 풍조를 탓할 일이지 디지털 기기의 사용으로 인한 인지적 저하 현상과는 아주 무관하다. 또 일부는 대인관계가 아바타나 SNS 등으로 인해 디지털 기기로 대체되는 것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제 아무리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이 범람하고 있어도 여전히 사회생활은 현대인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은 사회생활의 연장선으로 취급받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퇴화라는 현상이 세대 내의 현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의 누진적 변화까지 포함한다면 이건 더 볼 것도 없이 아예 용불용설에 해당한다. 야구선수 자녀들은 더 긴 팔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과 똑같은 수준.
결국 디지털 기기에의 의존은 어찌 보면 현명한 것이다. 자신의 인지적 능력을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인지적 역량이 약화되는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디지털 기기를 통한 막대한 정보와 생활의 편리성, 사회의 효율성은 개개인의 인지적 역량의 약화를 감수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인류는 침팬지와의 공동조상에서 갈라져 오면서 그 막대한 완력을 거의 잃어버렸고, 수렵생활에서 다시 농경생활로 넘어가면서 나무타는 능력과 거주지를 찾는 능력을 거의 잃어버렸다. 문자를 발명하면서는 방대한 지식을 구전 노래로 외우는 힘을 거의 잃어버렸고, 산업화를 시작하면서는 날씨를 읽고 작물을 가꾸는 능력을 거의 잃어버렸다. 후기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는 전화번호를 외우고 길을 찾는 능력을 거의 잃어버렸다. 찬성론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인류는 퇴화 일로를 걷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인류의 생활 여건들은 갈수록 나아지고 있고, 이러한 변화가 인류라는 종을 60억에 이르도록 도와주었다. 중세시대에 떨어지면 레알 퇴화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긴 하겠다. 디지털 치매라는 변화는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약간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물질문명의 이기라는 것은 결국 사람 쓰기 나름이다. 디지털 기기는 무한한 생산성과 효율성, 편리함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의 시간을 매우 비생산적으로 소모하게 하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그것을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에 쓰는 게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위키질을 하고 페이스북이나 들락날락하고 네이버 뉴스 덧글란이나 보면서 히히덕거린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이 관점에서는 결국에는 문화 지체 현상이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2 위의 현상을 다루는 동명의 저서
- 상위 항목 : 도서 관련 정보
저자는 독일의 뇌의학자인 만프레드 슈피처(M.Spitzer). 책을 읽어 본 위키러가 비평 추가바람.
비슷한 책으로는 미국 영문학 교수가 쓴 《가장 멍청한 세대》- ↑ 실제 치매 환자의 가족들 앞에서 함부로 말했다간 크게 실례될 수도 있는 명명이라는 점에서는 암드립과도 비슷하다.
- ↑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이 인터넷 백과사전에 밀려서 제본을 멈췄을 때 이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그들은 브리태니커 인터넷판이 계속 출판되고 있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 ↑ 상기 블로그에도 나오지만, 당장 브라질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해 본다고 하자. 브라질에 대해서 아무리 달달 외워봤자 과연 네이버 검색창 첫 화면에 뜨는 방대한 정보를 쫓아갈 수 있을까? 네이버에서는 검색 후 클릭 한 번이면 획득할 수 있는 "브라질 입국 정보" 에 대해서 그 사람이 일일이 다 쫓아갈 수 있을까? 블로거들의 브라질 여행 노하우와 각지의 맛집들까지 외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