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히트 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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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구 용어

1.1 개요

완벽에 가까운 경기

투수가 상대팀에게 안타를 1개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미국 - No hitter (또는 No hit game)

  • 투수(들)이 최소 9이닝을 던지고, 안타를 1개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것.
no-hitter의 정의. 점수는 내줘도 상관없다. 또한, 승패 여부도 무관하며 경기에 졌는데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일본 - No hit no run (또는 줄여서 No-no)

  • 단 한 명의 투수가 최소 9이닝을 던지고, 안타를 1개도 허용하지 않고, 어떤 이유로든 실점을 내주지 않고, 경기에서 완투해서 승리하는 것.
간단히 표현하면 선발투수가 '노히터' 와 '완투'와 '완봉승'을 동시에 달성하면 된다.[1]

다른점 설명

  • 한국/일본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면, 미국 기준으로도 노히터가 된다. 하지만, 그 역은 아닌 경우가 존재한다.(예: 켄 존슨의 노히터 패전)
  • 미국에서는 노히터를 기록하고도 패전이 가능하지만, 한국/일본에서는 노히트노런 패전은 불가능하다.
  • 미국에서는 여러 투수가 노히터를 합작하더라도 기록으로 인정하지만, 한국/일본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퍼펙트 게임과 다른 점은, 퍼펙트 게임의 경우 어떤 형태로든 타자가 출루해서는 안되지만, 노히트 노런/노히터의 경우 볼넷, 실책, 몸에 맞는 공,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안타 종류가 아닌 이유로 인한 타자의 출루는 인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퍼펙트 게임을 해도 노히트 노런을 포함하기에 노히트 노런 횟수에 포함된다(다만 그 역은 아님).

참고로 경기 자체를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비가 오거나 해서 9회 이전에 경기가 끝나면 인정되지 않는다. 실제로 박동희 선수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적이 있으나 6회 강우콜드게임으로 끝났기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받지 못했고, 번외 기록으로 언급된다.

9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어도 0:0으로 연장으로 이어져서 10회에 안타를 맞는다거나 10회에 새로운 투수가 올라왔으면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심지어, 경기 끝날 때까지 노히트 노런으로 막았으나 0:0 무승부로 끝나도 마찬가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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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 종료 후.

물론 언론에서는 노히트 노런을 했다고 언급하고, 준-공인급 기록으로 인정해주는 사례도 있지만 그래도 안습. 심지어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배영수는 연장 10회까지 노히트 노런으로 막은 적이 있으나 결국 승리투수가 되지 못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삼성 물빠따... MLB식으로 관대하게 팀 기록을 계산한대도 본인이 완투한 것이 아니므로 개인의 노히터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어차피 후속 투수가 안타를 얻어맞기도 했으니.

1.2 한국프로야구에서의 노히트 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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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우덴의 KBO 리그 가장 최근 노히트 노런 달성 순간.(2016. 06. 30)||

공인 노히트 노런
순서이름소속팀일자상대팀결과포수기록비고
1방수원해태 타이거즈1984년 5월 5일삼미 슈퍼스타즈5:0유승안6탈삼진, 3사사구KBO 최초
2김정행롯데 자이언츠1986년 6월 5일
더블헤더 1차전
빙그레 이글스8:0한문연
김용운[3]
5탈삼진, 4사사구-
3장호연[4]OB 베어스1988년 4월 2일롯데 자이언츠4:0김경문3사사구[5]개막전 무탈삼진
최저 투구수[6]
4이동석빙그레 이글스1988년 4월 17일해태 타이거즈1:0유승안5탈삼진, 2실책무사사구[7]
5선동열해태 타이거즈1989년 7월 6일삼성 라이온즈10:0장채근9탈삼진, 3사사구-
6이태일삼성 라이온즈1990년 8월 8일롯데 자이언츠8:0이만수4탈삼진, 3사사구신인 최초
7김원형쌍방울 레이더스1993년 4월 30일OB 베어스3:0김충민6탈삼진, 1사사구최연소[8]
8김태원LG 트윈스1993년 9월 9일쌍방울 레이더스9:0김동수4탈삼진, 3사사구-
9정민철한화 이글스1997년 5월 23일OB 베어스8:0강인권8탈삼진, 1낫아웃낫아웃 출루
10송진우한화 이글스2000년 5월 18일해태 타이거즈6:0강인권6탈삼진, 3사사구최고령[9]
11찰리 쉬렉NC 다이노스2014년 6월 24일LG 트윈스6:0김태군7탈삼진, 3사사구외국인 최초
12유네스키 마야두산 베어스2015년 4월 9일넥센 히어로즈1:0양의지8탈삼진, 3사사구-[10]
13마이클 보우덴두산 베어스2016년 6월 30일NC 다이노스4:0양의지9탈삼진, 4사사구최다 투구수[11]

1.2.1 비공인 노히트 노런

포스트 시즌 노히트 노런[12]
순서이름소속팀일자상대팀결과포수기록비고
1정명원현대 유니콘스1996년 10월 20일
한국시리즈 4차전
해태 타이거즈4:0김형남
장광호[13]
9탈삼진, 3사사구-
강우콜드 노히트 노런[14]
순서이름소속팀일자상대팀결과포수기록비고
1박동희롯데 자이언츠1993년 5월 13일쌍방울 레이더스4:0강성우6탈삼진, 1사사구6회 강우콜드 [15]
합작 노히트 노런[16]
순서이름이닝소속팀일자상대팀결과포수기록비고
1신정락7⅓LG 트윈스2014년 10월 6일NC 다이노스1:0최경철
현재윤[17]
9탈삼진, 2사사구-
유원상1⅓2탈삼진-
신재웅0⅓-구원승

1.2.2 9회에 무산된 노히트 노런

1989년 8월 31일 빙그레 이글스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경기에서 빙그레의 한희민이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 첫 타자 홍승규가 우전 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

1993년 4월 11일 LG 트윈스해태 타이거즈의 광주 경기에서 해태의 조계현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송구홍이 좌전 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

1998년 5월 6일 한화 이글스현대 유니콘스의 인천 경기에서 현대의 위재영이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 첫 타자 강석천을 볼넷으로 내보내고 이어 백재호에게 좌전 안타를 맞으며 무산되었다.

2000년 7월 16일 해태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의 수원 경기에서 현대의 김수경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헤수스 타바레스가 기습번트로 내야안타를 기록하면서 무산되었다.

2005년 7월 26일 KIA 타이거즈롯데 자이언츠의 광주 경기에서 롯데의 장원준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이종범의 1루수 앞 내야안타로 무산되었다. 당시 장원준 나이는 19세 11개월 26일로, 김원형의 최연소 노히트 노런을 경신할 수 있었다.

2006년 8월 11일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잠실 경기에서 데뷔 첫 선발 등판한 LG의 신재웅이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 첫 타자인 신경현이 좌전 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

2008년 7월 4일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경기에서 KIA의 이범석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박석민이 3루수 앞 내야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

2010년 6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의 문학 경기에서 SK의 김광현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최형우의 우전안타로 무산되었다.

2012년 9월 26일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경기에서 KIA의 윤석민이 9회말까지 노히트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박한이의 안타로 노히트 노런은 무산되었다.[18]

2015년 4월 4일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의 잠실 경기에서 임지섭 - 이동현 -봉중근이 9회초 1아웃까지 팀 노히트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최형우의 투런 홈런으로 2014년 10월 6일에 이은 통산 두 번째 팀 노히트 노런 기록은 무산되었다.
그러고 보니 삼성이 4연속 기록 저지 바꿔 말하면 4번이나 노히터 직전까지 끌려간 셈

1.2.3 이야깃거리

  • 대한민국 야구역사에서 기록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 노히트 노런은 1935년 6월 22일 연전구장에서 휘문고보의 투수 송재경이 배재고를 상대로 거둔 노히트 노런이다. 7이닝[19] 5사사구 1실책을 기록.
  • KBO리그에서 최초의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운 투수는 1984년삼미전에서 해태 타이거즈방수원. 그가 그 시즌 기록한 유일한 1승이 바로 이 노히트 노런이었다.
  • 1988년 OB 베어스장호연은 첫 '개막전 노히트 노런'이자, '무탈삼진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는데, 2014년 현재까지 '최소 투구수 노히트 노런'을 하고 있기도 하다.
  • 1988년 이동석은 선동열을 상대로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2실책)을 기록하였다. 다시 말해, 그 2개의 실책으로 인해서 이동석의 퍼펙트 게임이 무산된 셈인데, 실책을 범한 선수는 장종훈과 강정길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 만도 없는 것이, 장종훈은 그 경기에서 유일한 타점을 올린 타자였으며, 그 유일한 득점 주자가 바로 강정길이었다. 운명의 장난 한편 이동석은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 이 날 노히트 노런을 떠올리면서 "해태 선발은 선동열이고 상대 선발은 나라고 그러니까 해태 타자들이 전날 맘놓고 을 엄청나게 마셔서 그런 거다."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20]
  • 1990년 대졸 신인 이태일은 팀 사상 첫 노히트 노런이자, 신인 첫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 1993년 김원형OB전에서 만 20세 9개월 25일로 최연소 노히트 노런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아직도 안 깨지고 있는 불멸의 기록. 일단 노히트 노런이라는 것 자체가 어렵다.
  • 1993년 5월 13일 롯데의 박동희는 쌍방울전에서 스코어 4:0, 노히트 노런으로 승리했지만 6회 강우콜드로 승리했기 때문에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현대 유니콘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3차전에서 정명원이 2013년 현재까지 한국시리즈 유일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 1997년 정민철의 노히트 노런은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퍼펙트게임에 가까웠던 경기였다.[21] 그때 포수였던 강인권은 그 에러 때문에 한때 많이 까였다.
  • 2000년 송진우는 김정행이 갖고 있던 최고령 노히트 노런을 2개월 차로 새로 경신했다.
  • 2004년 배영수는 한국시리즈에서 4차전에서 묘한 기록을 세웠다. 팀이 점수 못내는 바람에 재수 더럽게 없게 노히트가 망했다. 팀 타선이 한점도 못내면서 연장 10회까지 안타를 하나도 맞지 않았는데도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우지 못한다. 게다가 0:0이 깨지지 않으면서 완봉승은커녕 승리 투수조차 되지 못했다. 10이닝 노히트노런 더욱 값진 기록이건만 그 경기에서 7회 2사 1, 2루 상황에서 김한수가 친 중견수 앞 안타성 타구를 잡아낸 박진만의 호수비가 있었다. 더욱 흠좀무한 것은 그때 배영수는 8회 2사까지 퍼팩트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 볼넷을 골라낸 타자도 다름아닌 박진만.
  • 2014년 6월 24일 NC 다이노스LG 트윈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찰리 쉬렉이 드디어 14년만에 외국인 투수 1호로 노히트 노런에 성공했다. 2014년의 아주 심각한 타고투저 상황에서 나온 노히트노런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
  • 2014년 10월 6일 NC 다이노스와 잠실에서 맞붙은 LG 트윈스는 선발 투수 신정락이 7⅓이닝 동안 무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다 오른손 중지 손톱이 들리는 바람에 통증을 호소하여 자진해서 마운드를 내려왔고, 뒤이어 나온 유원상과 신재웅이 나머지 1⅔이닝을 무안타 무사사구 1실책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후 9회말 이진영의 끝내기 안타로 스코어 1:0 승리를 거두면서 KBO 최초로 팀 합작 노히트노런을 작성했다. 약 석달 전에 찰리 쉬렉에게 당했던 복수를 톡톡히 한 셈이다.
  • 포수로서 노히트 노런을 두 번 경험한 KBO 출신 선수는 2016년 현재 세 명이다. 유승안(1984년 방수원, 1988년 이동석), 강인권(1997년 정민철, 2000년 송진우) 그리고 양의지(2015년 마야, 2016년 보우덴)가 그 주인공.[22]

1.3 메이저리그에서의 노히터

메이저리그의 No hitter, 한팀의 투수이 안타를 맞지 않고 경기를 종료하는 것.

안타 이외의 요인으로 인한 실점은 논외로 한다. 따라서 no-hitter를 작성하고도 질 수가 있다. 하단의 '노히터 패전' 항목 참조. 이런 차이로 인해서 켄 존슨의 노히터 패전은 대한민국에서는 노히트 노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대한민국과 일본에서는 여러 투수가 합작하여 노히트 노런를 기록하더라도 이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MLB 에서는 합작 노히터도 인정된다. 2003년 6월 11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뉴욕 양키즈 경기에서의 로이 오스왈트, 피트 먼로, 커크 살루스, 브래드 릿지, 옥타비오 도텔, 빌리 와그너의 6명 합작 노히터를 기록한 바 있다. 그리고, 2012년 6월 8일, LA 다저스시애틀 매리너스의 경기에서 다시 6인 합작 노히터가 나왔다[23] . 퍼펙트 게임 NPB 항목을 보면, 2007 일본시리즈 5차전(시리즈 최종전)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의 야마이 다이스케와 이와세 히토키가 계투 퍼펙트를 기록했지만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고로 계투 퍼펙트게임은 일본에서는 비공식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경기에 숨어있는 병크도 있었다.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를 포함해 한국이나 일본을 제외한 다른 비영어권에서도 가끔 No Run, No Hit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도 노히터≠노히트노런이었던 사례가 흔치 않은 만큼 해설자들도 마지막 아웃카운트 때엔 그냥 No-No라고 부르기도 한다. 야구 정통론자들은 No-Hitter를 여러 투수가 합작할 수 있음을 명시한 MLB의 정의를 신봉한다. 즉 합작 노히트 노런이나 합작 퍼펙트 게임도 기록하자는 말. 당연히 점수 먹은 것도 포함이다.

사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10월 6일에 KBO 최초의 합작 노히터가 달성되었다. 아래 참조.

아무튼 MLB에서 2013년 종료 시점에서 총 282회의 노히터가 기록되었는데, 이런 이유로 MLB 통산 노히트 노런이 282개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니 반드시 주의하자. 가장 최근에 성공한 노히터 경기는 맥스 슈어저의 17K 노히터 (한시즌 2번!) (그 사이에 크리스 헤스턴과 맥스 슈어져, 콜 해멀스와 마이크 파이어스이 노히터를 하였다)

일단 노히터 하나 찍은 것만 해도 두고두고 명장면으로 회자되기에 충분하다. 단, 그 뒤에 해당 선수가 뜨고 안뜨냐는 별개의 문제. 미국 야구에서는 데뷔 첫 해에 노히터(상대는 빅유닛 랜디 존슨!)를 기록했지만 그 뒤로는 오히려 내리막길을 걸은 前 콜로라도 로키스의 마무리투수였던 호세 히메네즈 같은 사례도 있다. 아예 주니치 드래곤즈의 곤도 신이치 같이 데뷔전에서 노히트노런을 하고 나서 얼마 못 가 막장 테크를 탄 선수도 있다[24]. 멀리 갈 거 없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방수원도 별 커리어를 남기지 못했고, 외국인 1-2호인 찰리 쉬렉유네스키 마야도 2015시즌 도중 짐을 싸야만 했다.

현재 MLB에서도 데뷔전 노히트 노런은 없다. 1953년 보보 홀로먼이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를 상대로 선발 첫 경기 노히트 노런을 성공했지만, 그것이 데뷔전 경기는 아니었다. 커리어 2번째 경기 노히트 노런을 한 선수가 두 명 있는데 한명은 1991년 당시 화이트삭스의 왼손투수 윌슨 알바레즈이고, 다른 한명은 현역인 보스턴 레드삭스클레이 벅홀츠이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노히터 상대팀은 볼티모어 오리올스.

사실 A급 투수들 중에도 이거 못해본 투수가 수두룩하다. 그 때문에 노히터 횟수가 곧 투수의 실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약켓맨매교수, 외계인도 못해봤다. 빅 유닛은 복받은거다. 즉, 운빨이 따라주지 않으면 못한다는 것이 통념이다. 상대팀 타자들이 어지간하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거나.

그러나, 노히터를 던지려면 구위가 장난 아니게 강하거나(ex-저스틴 벌랜더, 랜디 존슨, 놀란 라이언) 타자들에게 분석이 덜 되어 비교적 생소한 신인급 투수, 혹은 리그를 갓 옮긴 투수여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최근에 노히터를 던지는 투수들을 최근에 보면 대체로 강력한 구위로 상대를 압도하는 선수들이 많다.그럼 장호연은 뭔데(댈러스 브레이든마크 벌리의 6K 퍼펙트 게임은 논외로 한다. 김형준 기자의 칼럼에 따르면 퍼펙트게임은 강력한 수비진을 등에 업고 제구력과 노련함도 갖춰야 한다고 한다. 브레이든은 뭐야 그럼? ) 전체적으로 보면 위에 예로 든 벅홀츠처럼 루키로서 타자들에게는 아직 낯설었던 투수들이 기록하는 경우도 많다. 로이 할러데이도 AL 동부에서 뛸 적엔 커리어 두번째 선발경기에서 9회 2사까지 노히트 행진을 가다 솔로홈런 맞고 1안타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이후엔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지 못하다가 AL 동부를 탈출하여 NL 동부로 가자 MLB 역사상 20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했고 볼넷 하나 내준 포스트시즌 노히터도 달성했다.

만약 선발투수가 4,5회 이상 노히트/퍼펙션을 하고 있는 경우, 아무도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25]야구의 암묵적인 룰이 있다. 게다가 투수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서 정신에 혼란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26] 아마 노히트 노런을 언급했다 하면 바로 그 타이밍에 투수가 안타를 맞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27][28] 그러니 아무래도 투수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정확히는 안타를 맞은 기억만이 남아있는 탓일테지만...

합작 노히트 노런으로 남은 경기중엔 이런 경기도 있다. 1917년 6월 23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워싱턴 세너터스와의 경기에서 베이브 루스가 선발투수로 나왔는데, 잘 알려진대로 성격이 불같았던 베이브 루스가 등판하자마자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는데 볼판정에 화가 나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해버렸다. 그래서 루스는 타자 한명만 내보내고 어니 쇼라는 구원 투수가 나왔다. 어니 쇼가 마운드에 올라온 뒤, 루스가 내보낸 주자가 2루 도루실패로 잡히고 나서 어니 쇼는 나머지 26명의 타자를 한명도 내보내지 않고 9회를 마쳤다. 심정적으로 볼땐 어니 쇼가 퍼펙트 게임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규정상 이 경기는 루스,어니 쇼의 합작 노히터로 처리되었다.

현재 메이저리그팀들 중 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유일하게 아직까지 노히터를 기록하지 않은 팀으로 남아있다. 뉴욕 메츠도 포함 되었으나 2012년 6월 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홈경기에서 구단 사상 첫 노히터를 기록하면서 파드레스가 유일하게 노히터를 기록하지 못한 유일한 팀으로 남아있다[29].

2011년 7월 27일 LA 에인절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게임에서 MLB 사상 272번째 노히터가 나왔는데, 주인공은 짭타나 어빈 산타나. 노히트노런이 아니다! 1회말에 폭투로 1실점을 내주었지만, 타자들이 3점을 뽑아내 주면서 3-1로 노히터 승리를 기록했다.

1.3.1 노히터 패전

MLB 에서는 노히터 기준에 실점과 승패에 대한 조건이 없다. 그래서, 노히터 패전이 가능하며 실제로도 존재한다. 상대팀은 안타1개도 없이 승리한 것이므로 무안타 승리가 된다. 대표적으로 1964년 휴스턴의 켄 존슨은 신시내티를 상대로 1실점 노히터를 기록하고도 팀의 무득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자세한 건 무안타 승리 항목 참고.

1.3.2 노히터 무승부

2015년 3월 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시범경기에서 2-2 팀 노히터 무승부를 기록했다. 애틀랜타는 총 9명의 투수가 합작하여 팀 노히터를 만들어 냈다. MLB 는 원칙적으로 무승부를 인정하지 않지만, 이 경기는 시범경기였기에 10회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관련기사

1.4 관련 이야깃거리

  • 스티브 달코스키[30]라는 마이너리그 투수가 있었는데, 18개의 볼넷을 주고 노히터를 기록했다.(…) 어떤 의미로는 퍼펙트 게임보다 진기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볼넷을 18개 허용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투구수무피안타 완투했다는 얘기다. 이 경기에서 달코스키는 18개의 삼진을 기록했으니 투구수는 최소 129개 이상이라는 이야기. 이 129라는 숫자는 모든 삼진이 삼구삼진(54개), 모든 볼넷이 스트레이트 볼넷(72개), 남는 9개의 아웃카운트는 초구 삼중살 3번으로 처리했을 경우에나 가능한 투구수니까 실제로는 200구를 넘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이 때 그 노히트 게임은 고교야구 경기였기 때문에 투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혼자 던지다보니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마이너리그 선수생활을 하면서는 7이닝 20K-18BB가 평균이었다고 한다(...)
  • 2013년 9월 29일 말린스 파크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마이애미 말린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선 마이애미의 투수 엔더슨 알바레스(Henderson Alvarez)가 조금 특별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9회초까지 알바레스가 1볼넷 1사사구에 5회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시킬 뿐 노히터를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팀 타선도 8회말까지 점수를 내지 못해서 0-0. 잘못하다간 95년 페드로 마르티네즈[31]처럼 연장에서 기록이 깨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지만, 9회말 2사 만루에서 상대 투수 루크 풋코넨의 폭투로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서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당시 알바레스는 다음 타순을 준비하려고 대기 타석에 있었는데[32] 경기가 끝나고 그자리에서 팀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 일본 최초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건 사와무라 에이지라고 한다.1936년 9월 25일 한신타이거즈의 홈구장 고시엔에서 스코어1-0 4볼넷 7삼진으로 일본프로야구사상 첫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1]
  • 1999년에 발간된 한국야구사에 따르면 한국야구사 최초의 노히트 노런은 1935년 6월 22일 연전구장에서 휘문고보의 투수 송재경이 배재고를 상대로 기록한 것이 최초라고 기록되어 있다. 13:0이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듯 7회 콜드게임이 선언되었지만 7이닝 5사사구 1실책으로 6명의 주자를 내보냈고 그중 5개의 도루를 허용했으나 단 한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고 경기를 끝냇다고 한다.
  • 애니메이션 메이저의 3기 21화에서는 '노히트 노런'관련 병크가 하나 나오는데, 시게노 고로가 안타를 맞고 "노히트 노런이 깨졌잖아!" 라며 좌절한다. 그런데 그 상황은 1회말에 포볼과 실책으로 이미 실점을 준 상황이었다. 메이저 제작진은 이 외에 보크 상황을 그려놓는[33] 등의 병크를 저질렀다.
  • 이렇게 힘들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 노히트 노런이지만, 세계 야구사에 딱 한명 노히트 노런을 2경기 연속으로 해낸 투수가 있다. 신시내티 레즈의 데뷔 2년차 투수였던 자니 반더 미어는 1938년 6월 11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34]와의 경기에서 노히터를 거둔 후 바로 다음 경기인 6월 15일 LA 다저스[35]와의 경기에서 또 한번 노히터를 기록했다. 당연히 그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록이며, 후에 놀란 라이언이 노히트 노런을 거두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8회까지 노히트를 이어간 적이 있지만 실패했다. 물론 앞으로도 영원히 나올 것 같아보이지는 않는다

2 노래

범프 오브 치킨의 노래. 메이저 데뷔 전 1집 <FLAME VEIN> 5번 트랙의 수록된 곡. 어원은 말 안해도 알잖아.(…)

노히트 노런의 긴장된 상황 속이라도 인생이라는 타석에 올라서면 누구나 주역이라는 것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었다. 즉 타자의 입장에서 노히트 노런을 겪는 것을 노래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투수도 긴장하겠지만 타자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팀이 지고 있거나, 잘해봐야 0:0으로 비기고 있다는 의미니까)

物語の始まりは

모노가타리노하지마리와
이야기의 시작은

そう成す術の無い僕らが主役
소-나스스베노나이보쿠라가슈야쿠
그리할 방법이 없는 우리들이 주역

白いライト当てられて
시로이라이토아테라레테
하얀 라이트 쬐면서

期待を背負って
키타이오세옷테
기대를 짊어지고

「頼むぜ我らがスラッガー」
「타노무제와레라가스랏가」
「부탁해. 우리의 슬러거(강타자)」

今日はどうした
쿄오와도-시타
오늘은 어째서

未だノーヒットノーラン
이마다 노힛노런
아직까지 노힛노런

一番前で見ている人の目
이치방마에데미테이루히토노메
제일앞에서 보고있는 사람의 눈

その想いは僕をあせらせて
소노오모이와보쿠오아세라세테
그 생각은 나를 초조하게해

高鳴る心の背中につかえる
타카라루코코로노세나카니츠카에루
고동치는 가슴뒤가 메인다

タメ息に勇気かき消されても
타메이키니유우키카키케사레테모
한숨에 용기가 싹 없어져도

「まかせろ」なんていう
「마카세로」난테유
「맡겨둬」따위 말하지만

だけどライトからすぐ逃げたいよ
다케도라이토카라스구니게타이요
라이트에서 당장 도망치고싶어

打てるかな打てなきゃ
우테루카나우테나캬
칠수있을까 칠수없을까

ノーヒットノーラン
노힛노런
노힛노런

スラッガーだって怯えるんだ。
스랏가닷테오비에룬다
슬러거라도 겁낸다

好きな時に好きな事をして時々休み
스키나토키니스키나코토오시테토키도키야스미
좋아하는 때에 좋아하는 일을하고 때때로 휴식

また適当に歩き出していた。
마타테키토-니아루키다시테이타
다시 적당히 걷기시작하고 있었다

それがいつの間にか
소레가이츠노마니카
그것이 어느 사이엔지

誰かに何か求められて
다레카니나니카모토메라레테
누군가에게 뭔가 구해져서

誰にも甘えられない
다레니모아마에라레나이
누구에게도 응석부릴수없어

ライトからすぐ逃げたいよ
라이토카라스구니게타이요
라이트에서 당장 도망치고 싶어

だけど僕はスラッガー
다케도보쿠와스랏가-
하지만 난 슬러거-

ノーヒットノーランもままじゃ 認められない。
노힛노런모마마쟈미토메라레나이
노힛노런도 그대로는 인정할수 없어

そんな僕は存在しちゃいけない
손나보쿠와손자이시챠이케나이
그런 난 존재해서는 안돼

願わくば怯える自分に逃げ場を与えてあげたい
와가와쿠바오비에루지분니니게바오아타에테아게타이
원컨대 겁내는 나에게 도망칠곳을 주게해주고 싶어

願わくば誇れる自分と名誉とライトが欲しい
와가와쿠바호코레루지분토메-요오토라이토가호시이
원컨대 자랑할수있는 나와 명예와 라이트가 갖고싶어

ボクになにがのこるんだろう?
보쿠니나니가노코룬다로-?
이런 나에게 뭐가 남았을까?

臆病なボクにナニガデキルンダロウ?
오쿠뵤나보쿠니나니가데키룬다로-?
겁많은 나로써 뭘 할수있을까?

ライトがまだ足りないよ
라이토가마다타리나이요
라이트가 아직 부족해

「ボクはスラッガー」
「보쿠와스랏가-」
「난 슬러거-」

もっと思い込ませてくれ
못토오모이코마세테쿠레
더욱 깊게 결심해!

物語の始まりは
모노가타리노하지마리와
이야기의 시작은

ぞう成す術の無い僕らが主役
소-나스스베노나이보쿠라가슈야쿠
그렇게 이룰 방법이 없는 우리가 주역

白いライト当てられて
시로이라이토아테라레테
하얀 라이트 쬐면서

期待を背負って
키타이오세옷테
기대를 짊어지고

「頼むぜ我らがスラッガー」
「타노무제와레라가스랏가-」
「부탁해,우리의 슬러거-」

「まかせろ!!」って僕は胸をたたく
「마카세로!!」테보쿠와무네오타타쿠
「맡겨둬!!」라고 난 가슴을 친다

この手よ今は震えないで
코노테요이마와후루에나이데
손아 지금은 흔들리지 말아줘

この足はちゃんとボクを支えて
코노아시와챤토보쿠오사사에테
발은 꼭 나를 지탱해줘

白いライトあてられて
시로이라이토아테라레테
하얀 라이트 쬐면서

怯えないように
오비에나이요오니
겁내지 않는듯

帽子を深くかぶり直し
보시오후카쿠카부리나오시
모자를 깊게 고쳐쓰고

不敵に笑うスラッガー
후테키니와라우스랏가-
대담하게 웃는 슬러거-

普通に生きてりゃ誰だって
후츠우니이키테랴다레닷테
평범하게 살고있는 누구라도

ライトを浴びる日は訪れる
라이토오오비루히와오토즈레루
라이트를 쬐는 날은 찾아온다

そんな時誰でも臆病で
손나토키다레데모오쿠뵤데
그런때 누구라도 겁내니까

皆腰のぬけたスラッガー
민나코시노누케타스랏가-
모두 겁쟁이 슬러거-

ノーヒットノーラン
노힛노런
노힛노런

誰かにそれを知ってほしいから
다레카니소레오싯테호시이카라
누군가로 그것을 알고싶으니까

「まかせろ!」って
「마카세로」테
「맡겨둬!」라고

僕は胸をたたく
보쿠와무네오타타쿠
나는 가슴을 친다

3 홈페이지

불암콩콩코믹스의 작가 부람최불암의 홈페이지.

바로가기 공식 칭호(?)는 '인생막장 노히트노런'

원래 커뮤니티였으나 구성원들이 하도 친목질을 해대서 참지못한 최불암이 개인홈페이지로 전환해버렸다

최불암을 제외한 이용자들은 야구공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이주했다.

전환 전 이말년이 만화를 올리기도 했었다. 홈페이지 주인과 식구가 병맛만화로 유명세를 탔지만 이후 둘의 위상은 대반전. 이때 이말년은 그저 노히트노런의 한 유저에 불과했지만 야후 카툰을 거쳐 후 네이버 웹툰에 입성했으나, 최불암은 이말년보다 늦게 인지도도 네이버보다 떨어지는 네이트 스포츠카툰에 연재하게 되었다.

뱀발이지만 한때 실장석컨텐츠가 '참피'라는 이름으로 올라왔었다.[36][37]
  1. 즉, 노히트노런이 노히터 보다 더 강화된 조건이며, 미국에서도 노히트노런인 경우를 명확하기 하기 위해서 No-no 라고 표현한다.
  2. 메이저리그 기준에서 이렇게 끝난다면 노히터가 성립되긴 한다. 하지만, 현재 메이저리그는 무승부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승부를 보기 때문에, 이런 점까지 고려한다면 '노히터 무승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참고로,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서는 '3인 합작 노히트노런 무승부'라는 기록이 나온 적은 있다.
  3. 공식 기록상 포수는 둘이지만 둘의 포구 이닝은 알려져 있지 않다.
  4. 이 경기의 선발은 원래 김진욱이었는데, 훈련 중 김광림의 타구에 급소를 맞고 선발 투수가 교체되었다. 출처
  5. 2개는 볼넷, 1개는 몸에 맞혔다. 2개의 병살타로 28타석만에 노히트 노런.
  6. 99개. KBO 리그의 유일한 투구수 100 미만 노히트 노런
  7. 그럼에도 퍼펙트 게임이 아닌 이유는 장종훈강정길이 실책을 하나씩 기록해서 이동석을 엿먹이며 1루에 출루시켰다. 안습. 그러나 당시 유일한 득점이 장종훈이 3루타 치고 나가서 견제구 미스로 득점한 거라 장종훈을 탓할 수도 없다....
  8. 20세 9개월 25일.
  9. 34세 3개월 2일.
  10. 그날 타구장에서 사이클링 히트가 나오면서 하루에 노히트 노런과 사이클링 히트가 동시에 나왔다. 둘 다 외국인 2호다.
  11. 139개.
  12. KBO 레코드북에서는 번외로 취급된다.
  13. 김형남 8이닝, 장광호 1이닝.
  14. 레코드북에서 따로 기록을 해주고 있지만, 강우콜드이므로 공식 기록에서는 제외된다.
  15. 기사를 보면 16타자를 상대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병살이나 견제사 등이 나왔을 경우 5⅓이닝까지, 아니면 5이닝을 소화했을 것이다.
  16. KBO에서는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일본에서도 인정하지 않지만 MLB 에서는 인정한다.
  17. 최경철 8이닝, 현재윤 1이닝(실책 범함).
  18. 아이러니하게도 박한이는 바로 전날 김진우의 완봉승을 희생플라이로 저지한 바 있다. 신흥 기록 브레이커
  19. 13:0으로 승리하면서 콜드게임 선언
  20. 당시 기준으로 이동석은 전해 데뷔 시즌에 1승에 6.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을 뿐인 2년차 투수였고, 뿐만 아니라 군산상고 출신임에도 해태의 지명을 받지 못해 빙그레로 입단했기 때문에 해태 선수들에게 얕보였을 가능성은 있다.
  21. 8회초 1아웃 2스트라이크1볼에서 헛스윙한 공을 포수가 포구에 실패하며 나온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 한 개가 유일한 피출루였다. 참고로 당시 죽다가 살아난 타자는 심정수. 심정수에게 1루 베이스를 밟을 때의 소감을 인터뷰하니 '똥밟는 느낌이었다.'라고 했다.
  22. 재밌는점은 세 명 다 각각 인연이 있다. 유승안과 양의지는 양의지가 경찰청에서 군복무하던 시절 만나 양의지의 포텐을 터뜨리는데 유 감독이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고, 강인권과 양의지는 소속팀(두산 베어스) 선후배 관계이자 현 코치-선수 관계이다. 유승안과 강인권 역시 소속팀(한화 이글스) 선후배관계. 다만 유승안은 해태에서만, 강인권은 빙그레-한화에서만 노히터를 경험했고, 양의지는 두산에서만 경험해 노히터를 기록한 시점에서의 소속팀은 각기 다르다.
  23. 선발 케빈 밀우드가 6회 동안, 이어 등판한 찰리 퍼부시가 2/3이닝 동안, 뒤를 이어 스티븐 프라이어가 1/3이닝, 그 뒤를 이어 루카스 륏기가 1/3이닝, 다음에는 브랜든 리그가 2/3이닝, 마지막으로 톰 윌헴센이 1이닝을 노히터로 마무리.
  24. 이쪽은 1961년 69경기, 1962년 61경기에 출전하는 등 무리한 출전으로 인해 부상으로 인한 혹사로 일찍 은퇴해야 했다. 비 온 날만 빼고 죽어라 던졌으니 오죽했으면 별명이 '비 곤도'였을까.
  25. 해설자들도 웬만큼 분위기가 무르익는 7,8회가 넘어가지 않는 이상은 되도록이면 언급을 피하려 하며, 설령 언급을 하더라도 살짝 지나가는 말로나 하지, 대놓고 분석을 하지는 않는다. 지나가는 말 한번 했다가 안타를 쳐맞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
  26.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야구 영화 <for love of the game>에서 이것이 잘 보인다.
  27. 2011년 5월 18일 삼성 카도쿠라 켄은 대구 넥센전에서 5회까지 노히트를 이어갔지만 이기호 캐스터가 노히트노런을 들먹이자마자 첫 안타를 얻어맞았다. 대신 카턱은 이날 개인 완봉으로 한일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2011년 7월 10일 기아와 LG의 경기에서는 로페즈가 6회까지 노히트노런으로 경기를 틀어막고 있었는데 양준혁 해설위원이 노히트노런을 언급하자마자 이병규에게 안타를 허용하였다.. 이 날 로페즈는 8이닝 2실점 승리를 달성했다
  28. 이외에 천조국의 야구게임인 MLB 2K11이 발매 초기에 퍼펙트 게임 달성 이벤트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이 게임에서도 해설자가 5회~6회 쯤에 노히터에 대한 언급을 한다. 'I would never say anything about the no-hitter.'라고(...)이 말이 나오자마자 안타를 얻어맞았다고 치를 떠는 게임 유저들의 후기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29. 다만 메츠는 아직까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선수가 없다.
  30. 마이너에서 빅리그로 올라오지 못했지만, 평균구속 160km, 최고구속 170km의 도시전설을 남긴 좌완투수다. 민훈기가 관련 기사를 쓴적이 있는데 공이 너무 빨라서 공을 받는 포수의 미트가 찢어졌다고한다.
  31. 단, 이쪽은 연장 전까지 퍼펙트 게임이었다.
  32. 어차피 9회말에 타석에 들어설 일은 없긴 했다. 2사 만루였으니 득점이면 끝내기 승리, 아웃이면 연장이니...
  33. 고의사구시에 포수는 미리 캐처박스를 나가 있으면 보크가 되나, 고의사구장면에서 포수가 캐처박스를 나가 있는 것 처럼 그렸다. 그리고 심판은 보크 판정을 안한다.
  34. 당시에는 보스턴 비즈라는 구단 이름을 쓰고 있었다.
  35. 당시에는 브루클린 다저스라는 구단 이름을 쓰고 있었다.
  36. 실장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게시판이 생길 정도였다.
  37. 하지만 사이트가 점점 알려지면서 결국 게시판을 폐쇄했고 실장석 컨텐츠도 전부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