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독일 동부의 주(州)
1.1 개요
독일의 주 | ||||||
니더작센 | 슐레스비히-홀슈타인 |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 작센-안할트 | 브란덴부르크 | ||||
라인란트-팔츠 | 헤센 | 튀링겐 | ||||
바덴-뷔르템베르크 | 바이에른 | 작센 | ||||
자를란트 | ||||||
독일의 도시주 | ||||||
베를린 | 브레멘 | 함부르크 | ||||
사라진 주 | ||||||
쥐트바덴 | 서베를린 | 뷔르템베르크-바덴 | ||||
뷔트템베르크-호헨촐레른 |
주기(州旗) | 주장(州章) |
작센 주의 위치 | |
국가 | 독일 |
시간대 | (UTC+1/+2) |
주도(州都) | 드레스덴 |
지도에서 녹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작센 주로, 북쪽에는 브란덴부르크 주, 동쪽에는 폴란드, 남쪽은 체코, 서남쪽에 바이에른 주, 서쪽에는 튀링겐 주, 서북쪽에는 작센-안할트 주와 이웃해 있다.
주도(州都)는 드레스덴. 기타 주요 도시로는 라이프치히, 마이센, 켐니츠(舊 카를마르크스슈타트) 등이 있다.
인구 밀도가 가장 조밀하고 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지역이다. 2009년 기준으로 면적은 1만 8,413 ㎢이며, 약 417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2], 국내총생산은 929억 유로에 달한다. 교육수준이 굉장히 높고 우수 전문 인력과 학자들이 작센에서 배출되었다. 작센 산하의 행정 구역으로 22개의 구로 구성되어 있다.
1.2 역사
작센이라는 명칭은 3세기경인 200년에서 700년 사이에 라인·엘베 두 강 사이에 정주한 게르만의 부족 작센(Sachsen)[3]과 그들이 정복과 병합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11세기 이전만해도 홀슈타인과 오늘날의 니더작센 주에 해당하는 엘베 강 하류의 서쪽 지역이 원 작센 지방이였다.
카롤루스 대제가 810년 작센족을 평정한 후 이 곳엔 작센 공작령이 들어섰고, 베르됭 조약을 통해 동프랑크 지역이 되었다. 동프랑크, 즉 독일의 5대 공작령 중 하나인데, 동프랑크 건국 때부터 있던 공작령 5개를 부르는 말로 다른 4곳은 각각 프랑켄, 바이에른, 슈바벤, 로트링겐이다. 신성로마제국 성립 후엔 자연스럽게 신성로마제국으로 편입. 작센은 크게 4개 지방으로 분류하여 서부는 베스트팔렌,[4], 동부는 오스트팔렌,[5] 북부는 노르트알빙기아,[6] 중부는 앙그리아라고 불렀다.[7] 작센 공위는 신성로마제국에서 황제 다음가는 첫째 서열로, 선제후이기도 했다.
961년 작센 공작위가 빌롱가, 1142년 벨프가의 사자공 하인리히에게로 차례대로 넘어갔다. 신성로마제국은 건국 초기 지금의 안할트 지방에 크베들린부르크나 마그데부르크 등의 도시를 세우고 국력과 투자가 집중하였는데, 작센 공작들은 이런 분위기를 타고 동부의 슬라브족들을 격파하며 영토를 늘려나갔다. 결국 작센 공작령은 엘베강을 넘어 마이센과 드레스덴까지 닿게 되었다. 1180년 사자공 하인리히가 황제 프리드리히 1세에게 반기를 들어 제국 추방령을 받고 모든 직위가 박탈당하면서 1235년 제국의회에 의해 너무 비대해진 작센 공작령에서 원레 작센의 땅에 해당했던 베스트팔렌 공작령과 브라운슈바이크-뤼네베르크 공작령이 분리되었다. 벨프가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베르크 공작령만을 상속받게 되었다. 이후 엘베강 중류 지역으로 이동 및 좁아진 작센 공작령은 아슈카니아 가문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260년 홀슈타인의 남동부의 작센-라우엔부르크와 엘베 강 중류 부근에 위치한 지금의 라이프치히 북쪽의 작센-비텐베르크로 나누어졌고, 두 지역이 치열하게 싸우다 결국 작센-비텐베르크쪽에서 작센 선제후로 인정받게 되었다.
1422년 작센-비텐베르크 가문이 대가 끊기면서 작센-비텐베르크 공작위와 선제후 지위는 마이센 변경백인 베틴 가의 프리드리히 4세에게 주어졌고, 마이센 변경백의 영지를 구성하는 오스터란트(지금의 라이프치히 주변 지역)와 라우지츠·튀링겐 등과 작센-비텐베르크와 합쳐지면서 지금의 작센 주의 기원이 되었다.[8] 하지만 1428년 프리드리히 4세가 사망하면서 두아들인 에른스트와 알브레히트의 재산 문제로 인해 결국 동서로 갈라졌다. 알브레히트가 작센 동부인 마이센 변경백령과 북부 튀링겐를 상속받고 이는 작센 주로, 에르스트가 작센 서부인 비텐베르크와 남부 튀링겐을 상속 받아 이는 튀링엔 주로 이어진다.
16 세기에 들어서 에른스트계 베틴 가의 요한 프리드리히가 황제 카를 5세의 중앙집권화 정책에 반기를 들며 개신교 제후와 도시들이 힘을 합쳐 슈말칼덴 동맹을 결성했으나, 알브레히트계 베틴 가의 수장이었던 모리츠가 카를 5세를 지지하며 뮐베르크 근처에서 요한 프리드리히를 위시한 슈말칼덴 동맹군을 격퇴시켜 1555년 9월 25일, 아우크스부르크의 제국 의회에서 에르스트계 베틴 가문이 갖고 있던 선제후의 지위와 비텐베르크에서 라이프치히에 걸치는 막대한 영지를 획득하면서 작센 주를 형성하게 될 기본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마르틴 루터의 등장으로 루터교회 계통의 프로테스탄트의 중심지가 되었다.[9]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를 지지하였으나, 구스타브 아돌프가 뤼첸 전투에서 전사하고 뇌르틀링겐 전투에서 스웨덴군이 대패하자, 편을 바꾸어 제국에 붙었다. 이에 스웨덴군의 보복으로 인해 많은 참화를 입긴 했으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보헤미아 왕국의 루사티아(라우지츠)를 차지하게 된다.
1806년 나폴레옹에게 점령되어 작센 공국에서 작센 왕국으로 독립되어 나폴레옹을 지지하지만 1815년,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영토의 북쪽(당시 작센 영토의 절반 이상)인 비텐베르크, 토르가우, 북부 튀링겐, 라우지츠 대부분을 프로이센에게 할양하고 신성 로마 제국을 대체한 독일 연방의 가입하였고 1871년 독일 제국이 성립되면서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에 발생한 킬 군항의 반란의 영향으로 일어난 혁명으로 국왕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 국왕이 퇴위하면서 현재의 명칭인 작센 자유주로 바뀌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끌날때까지 유지한다.
1945년 소련군 점령지가 되었고, 나이세강(江) 동쪽 지역은 폴란드 영토로 되는 대신[10]나이세강 서쪽의 슐레지엔 영토(대표적으로 괴를리츠)를 흡수하였다. 동독 치하에서 1952년, 드레스덴, 카를마르크스슈타트, 라이프치히 지역으로 나뉘어 소멸되었으나, 통일 후 1990년에 부활하였다.
1.3 특색
종교인은 대체로 개신교가 많다.[11] 전체 인구로 봤을때는 구동독 지역 답게 무종교인이 압도적이지만 그 시절에 대한 반작용과 타종교 이민자 및 난민들에 대한 위기 의식으로 인해 독일 전체를 통틀어 개신교인이 소폭 회복세를 보이는 지역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독일 내 언론에서는 작센 남부 지역을 바이블벨트로 언급하기도 한다.(출처 기사)
지리적으로 산이 많고 남쪽으로는 체코와 국경선이라 할 수 있는 에르츠 산맥이 가로지르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토지가 비옥하다.
산업적으로 토지가 비옥하여 밀·보리·과일·아마 등이 생산되며 마이센의 도자기, 라이프치히의 인쇄와 모피제품, 자동차[12], 드레스덴의 담배와 자동차[13], 산악지대의 목재·가구·완구공업이 유명하고 대체적으로 은·석탄·구리·철·우라늄 등의 지하자원이 많이 매장 되어 있다.
정치적으로는 기독민주당(CDU)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다. 통일 후 첫 자유선거가 치루어진 1990년부터 기독민주당이 주의회를 장악하고 주지사를 배출해왔다. 한때 바이에른만큼이나 보수색이 강한 지역... 이라고 인식되어왔으나, PEGIDA가 작센에서 시작한 후론 완전히 막나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다. 이게 한두번이 아닌게 2004년엔 네오나치 정당인 NPD에게도 9.2%라는 득표율을 주며 무려 12개의 의석을 준적이 있다. 바이에른은 아무리 보수적이고 애향심이 강하다고 해도 제노포비아적이진 않다. 바이에른의 기업들은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곳인데다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들로 인해 번성하는 관광업 수입도 높고 다국적 기업들도 들어와있기 때문. 바이에른 사람들로서는 괜히 자신들의 사업을 망칠 행동을 할리도 없고 애초에 외국인들과 교류가 많은 곳이라 외국인혐오 감정도 별로 없다.
PEGIDA의 활약과 더불어 2014년 주의회 선거에서 반이민 반난민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AfD가 9.7% 득표로 14개의 의석을 가져가면서, 본격적으로 관광업에 타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드레스덴과 작센의 산악지대는 안그래도 많은 관광객들이 오던 지역인데 외국인에게 불친절하며 잘못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곳으로 인식되면서다.
1.4 기타
1990년 이후 현재 통일 독일 영토의 최동단지점이 이 주에 위치해 있다.[14] 2차 대전 전만 하더라도 독일 국토의 중심점이 작센땅에 있었던 건 함정.[15] 또한 작센 주의 동부와 브란덴부르크 주의 동남부에 걸쳐서 서슬라브계 소수민족인 소르브인이 거주하고 있다. 독일내 소수민족으로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덴마크계 민족과 더불어 유이하다.
1.4.1 참고
2 색슨족/작센족을 의미하는 독일어
게르만 계통 중 하나인 색슨족을 독일어로 작센이라고 부른다. 즉 작센 왕국은 작센족들의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작센 왕국의 권역은 위 항목의 독일 주의 시초가 된다. 영국 내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잉글랜드 민족을 부르는 앵글로색슨이란 말도 여기서 왔는데, 엉뚱하게도 현대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 출신 사람을 폄하하며 부르는 멸칭이 원래 이 작센인을 의미하는 Sassenach이다. 독일을 핀란드어로 'Saksa'라고 하고 에스토니아어로 'Saksamaa'라고 하는데 이것도 작센 족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3 던전 앤 파이터에 등장하는 대검의 하나인 작센소드의 준말
한때 고강용으로 인기있었던 아이템으로, 고강한 작센소드는 짱쎈소드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 만렙이 85로 풀린 지금은 거쳐가는 레벨의 장비로 전락해서 잊혀지고 있는 비운의 아이템. 마봉템인 경우 마법으로 봉인된 작센소드, 유물인 경우 XXX의 작센소드 같은 식의 이름이 붙는다.- ↑ 뒤쪽의 'e'는 강세가 없어서 'ㅔ'로 소리나지 않는다. 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에선 그냥 'ㅔ'로 표기.
- ↑ 인구가 가장 많던 1950년에는 5,682,802명을 기록했다.
- ↑ 영어로는 '색슨족'(Saxons)이다. 애들이 앵글족과 편먹고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앵글로색슨이 된다.
- ↑ 서쪽의 평지라는 뜻으로 현재 지명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도 남아있듯이 빌레펠트와 파더보른, 뮌스터, 오스나브뤼크 등의 지역
- ↑ 동쪽의 평지라는 뜻으로,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베르크 등을 일컬었다.
- ↑ 현 홀슈타인 지역
- ↑ 앵글족이 어원이다. 현재의 민덴, 하노버 일대
- ↑ 현재의 작센주 문장도 베틴 가문의 깃발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 ↑ 루터가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을 때, 루터의 신변을 보장해 주었던 것이 작센 선제후였다.
- ↑ 그래도 상실한 영토는 기존 영토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3분의 1이 날아간 브란덴부르크나, 4분의 1만 남은 포메른에 비하면야. 아예 전부 날아간 동프로이센이나 슐레지엔은 말할 필요도 없고.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센 왕가의 종교는 가톨릭이었는데,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에 선출되기 위해 18세기말에 작센선제후가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결국 2대에 걸쳐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에 선출되었다.
- ↑ 2000년대에 포르쉐에서 카이엔을 생산하기 위해 라이프치히에 공장을 신설했으며, 현재는 파나메라와 마칸도 라이프치히에서 생산한다. 카이엔의 매출이 포르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보통이 아닌 만큼, 라이프치히와 작센 주의 세수에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BMW도 라이프치히에 공장이 있으며, 이쪽에서는 1시리즈, 2시리즈, X1을 생산 중이다.
- ↑ 여기에는 폭스바겐에서 개발한 F세그먼트 세단 페이톤 전체와 벤틀리 컨티넨탈/플라잉 스퍼의 플랫폼을 생산하며, 수제 공장이다. 공장 전 외벽이 철과 유리로 되어 있고, 바닥에는 캐나다산 단풍나무로 만든 원목 마루가 깔려있으며, 직원들은 가운을 입고 클래식이 나오는 헤드셋을 끼며 작업을 하며, 새들이 외벽에 부딪치지 않게 새들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출력 장치를 설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페이톤이 안습이라는 것 - ↑ 영어위키백과 참조.
- ↑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들에게 분할되기 전까지만 해도, 본래 독일의 강역은 현 폴란드의 그단스크(독일명 단치히)를 지나 현 러시아의 칼리닌 그라드(독일명 쾨니히스베르크)까지 이르렀었다. 때문에 지금도 작센, 튀링겐, 작센-안할트 지방 방송의 이름이 '중부독일방송(Mitteldeutscher Rundfunk)'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