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드러진 콧수염을 자랑하던 강타자에서
의회 청문회에서 나온 약쟁이로...
이름 | 라파엘 팔메이로 (Rafael Palmeiro Corrales) |
생년월일 | 1964년 9월 24일 |
국적 | 쿠바 |
출신지 | 아바나 |
포지션 | 1루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85년 1라운드 전체 22순위 |
소속팀 | 시카고 컵스(1986~1988) 텍사스 레인저스(1989~1993) 볼티모어 오리올스(1994~1998) 텍사스 레인저스(1999~2003) 볼티모어 오리올스(2004~2005) |
1993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득점왕 | |||||
토니 필립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 → | 라파엘 팔메이로 (텍사스 레인저스) | → | 프랭크 토머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
1 개요
영화배우 뼘치는 외모에 3000안타 - 500홈런을 동시에 기록한 단 5명의 선수[1]중 한 명이자 30홈런 - 100타점을 10회 기록한 강타자[2]
텍사스의 마해영
그러나 동시대의 강타자들[3] 때문에 존재감이 바랬고 현재는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경력으로 인해 모든 경력이 흑역사가 된 선수
통산 기록은 타율 0.288, 출루율 0.371, 장타율 0.515, 3020안타, 569홈런, 1835타점
2 초기 메이저리거 생활
쿠바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집안은 반 카스트로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결국 팔메이로가 어린 시절,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1982년 드래프트 8라운드 전체 189번으로 뉴욕 메츠의 지명을 받은 팔메이로이지만 메츠의 지명을 거부하고 미시시피 주립대에 입학한 후 1985년에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2번으로 시카고 컵스의 지명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 선수생활을 시작하지만 컵스는 1988년 12월 5일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팔메이로를 트레이드한다.[4]
이 당시 팔메이로의 보직은 좌익수였고 흔히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거포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중장거리타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3 텍사스 레인저스, 그리고 볼티모어 오리올스
텍사스 레인저스는 팔메이로를 1루수로 보직변경시켰고 보직변경 첫 해에 팔메이로는 부진하지만 그 다음해부터 팔메이로는 좋은 활약을 펼쳤고 장타력 역시 증가하며 20개의 홈런을 치기 시작, 1993년에는 37개의 홈런을 친다. 이떄는 도루도 22개나 기록, 20-20을 기록하면서 호타준족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레인저스는 팔메이로와의 계약을 연장하는 대신 새로운 1루수로 윌 클락을 영입했고 팔메이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
레인저스에서의 마지막 시즌부터 시작된 팔메이로의 전성기는 오리올스에서 계속되었고 이적 첫 해인 1994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30 ~ 40개의 홈런과 100 ~ 140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한다.
자세한 활약 추가바람
4 다시 레인저스로
한 편, 팔메이로 대신 클락을 영입한 레인저스는 다시 팔메이로를 영입하려 했고 팔메이로는 1999년부터 다시 텍사스 레인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레인저스에서도 팔메이로는 99~03 5년간 47-39-47-43-38의 A로드를 충분히 받쳐줄 수 있는 홈런과 100 ~ 120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한다. 그리고 2003년에는 명예의 전당 보증수표라 할 수 있는 500홈런을 돌파한다. 특히 박찬호가 텍사스로 갔을때는 02년 43홈런을 치며 57홈런을 친 A로드와 100홈런 콤비를 이루기도 했고, 멋진 외모로 인해 한국야구팬들한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다만 99년에는 미친듯한 타격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MVP 투표 5위를 비롯해 갖가지 상을 싹쓸이하다못해 골드글러브까지 가져갔는데, 이 시즌에 출전한 기록을 보면 1루수로는 단 28경기만 출전하고 나머지 128경기는 지명타자로 출전했음에도 1루 골드글러브를 가져갔다는 것 때문에 감독과 코치들이 뽑는 골드글러브 투표의 신뢰도 하락에 본의 아니게 한 몫을 하기도 했다.
5 돌아온 오리올스에서의 몰락
레인저스는 팔메이로가 장타력은 계속 보유하고 있었지만 나이가 이미 40에 가까웠고 정확도가 떨어져갔기 때문에 팔메이로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2004년, 팔메이로는 다시 오리올스로 건너갔고 전성기의 기량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팀의 노장으로서 활약한다.
그리고 2005년[5]에는 3000안타를 기록하며 역대 4번째로 3000안타 - 500홈런을 모두 기록한 선수가 된다. 비록 기량이 예전만 못했지만 은퇴를 해야할만큼 쇠퇴한건 아니었기 때문에 팔메이로는 장차 600홈런과 2000타점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3천 안타 달성 며칠 뒤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면서 몰락이 시작되었다.[6]
팔메이로는 동료 미겔 테하다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두 선수가 B12라면서 준 알약을 먹었기 때문[7]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미 약쟁이약물 복용자로 찍힌 팔메이로는 결국 후반기에는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자의와는 상관없이 은퇴해야 했다. [8]
그리고 현재는 명예의 전당 후보로 이름이 올라와 있지만 2011년 첫 해 투표에서 득표율이 고작 11%에 머물렀다.
비록 팔메이로는 약물을 고의로 복용하지 않았다[9]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기까지 했지만 이미 주변의 시선은 싸늘히 식어버린지 오래다.
6 평가
정교함이 요구되는 3000안타와 힘이 요구되는 500홈런,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꾸준함이 요구되는 위의 두 기록을 모두 달성했다는 점에서 라파엘 팔메이로는 역사에 길이 남을 대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그의 태도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뒤엎어버리는 약물복용으로 그의 평가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10]
결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는 영 힘든 상황이 되었고, 2014년 투표에서 4.4%의 득표율에 그치며 명전 투표에서 완전히 나가리되었다.
7 여담
결국 그의 유산은 그의 출중한 기록이 아닌 약물 사용으로 남아버렸는데, 데드풀 만화에서는 데드풀이 전 세계 정보를 다 볼 수 있게 되자 하는 말이 "어? 이거 라파엘 팔메이로의 은행 계좌 기록이잖아? 역시 사실이었어!"다(...)
2013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 좌타 3루수/외야수인 프레스턴 팔메이로가 나오는데, 바로 라파엘 팔메이로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후광이 없이도 드래프트 상위 라운드 지명이 기대되는 재목이라고.
- ↑ 다른 4명은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에디 머레이, 알렉스 로드리게스
- ↑ 테드 윌리엄스가 자신의 스윙과 가장 비슷한 스윙을 하는 선수로 팔메이로를 뽑은 적이 있다.
- ↑ 마크 맥과이어, 켄 그리피 주니어, 배리 본즈, 새미 소사,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
- ↑ 이 트레이드에서 팔메이로와 함께 레인저스로 건너간 선수중의 한 명이 제이미 모이어. 하지만 이 당시 모이어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 ↑ 이 해에 호세 칸세코의 <Juiced: Wild Times, Rampant 'Roids, Smash Hits & How Baseball Got Big>가 발간되며 제이슨 지암비, 이반 로드리게스, 마크 맥과이어 등과 함께 칸세코에게 스테로이드를 소개받아 복용한 선수로 지목된바 있고, 의회 청문회에서도 "Let me start by telling you this: I have never used steroids, period. I don't know how to say it any more clearly than that. Never"라는 발언으로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을 일축한바 있다.
- ↑ 구단 측에서 3000안타 달성 축하 행사를 계획하고 있었지만 팔메이로 본인이 취소해 줄 것을 요청했다
- ↑ 이 비타민(이라는) 알약은 테하다가 도미니카에서 들여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2007년 테하다 역시 미첼 리포트에서 스테로이드 복용자로 언급되었다.
- ↑ 부상까지 겹친데다 감독과 구단측으로부터 사실상 전력외 통보를 받았으며, 시즌 마지막 날 동료들과 코칭 스테프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아침 일찍 혼자 구장에 와서 사물함을 비웠다고 한다
- ↑ 2003년 비공개 도핑 테스트 결과가 공개되어 자신의 누명이 벗겨졌으면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당시 적발된 104명 중에는 데이빗 오티즈, 매니 라미레즈, 새미 소사, 알렉스 로드리게스만이 드러났다.) 비타민이든 뭐든 준다고 넙죽 받아먹은 자신이 멍청했다고 자책하기도.
- ↑ 여기에는 팔메이로가 백인이 아니고 히스패닉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응이 더 냉담하다는 말도 있다. 예를 들어 마크 맥과이어라든가 로저 클레멘스 같은 선수들은 미첼 리포트가 처음 나왔을 때 언론의 반응이 배리 본즈 등과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데이비드 오티즈는 백인도 아니고 약물복용도 밝혀졌지만 은퇴시즌까지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 모든것을 차치하더라도 약물로 커리어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는 충분하다. 당장 2016년의 김재환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