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로드리게스

All-Star-catcher-Ivan-Rodriguez-to-retire-891B5L6E-x-large.jpg

이름이반 로드리게스 (Iván Rodríguez Torres)
생년월일1971년 11월 30일
국적푸에르토 리코
출신지마나티
포지션포수
등번호7[1]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8년 텍사스 레인저스 자유계약
소속팀텍사스 레인저스(1991~2002)
플로리다 말린스(2003)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2004~2008)
뉴욕 양키스 (2008)
휴스턴 애스트로스, 텍사스 레인저스(2009)
워싱턴 내셔널스(2010~2011)
1999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후안 곤잘레스
(텍사스 레인저스)
이반 로드리게스
(텍사스 레인저스)
제이슨 지암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2003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베니토 산티아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반 로드리게스
(플로리다 말린스)
알버트 푸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 개요

요기 베라, 자니 벤치, 그리고 원조 퍼지 칼튼 피스크를 계승하는 제2의 퍼지[2]이자, 공수를 모두 겸비한 MLB 역대급의 전설적인 포수...의 성적을 가졌음에는 이견이 없지만, 호세 칸세코 의 폭로로 인하여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장수생이 될 것이 기정사실화하고 탈락확률이 더 높아진 포수. 그의 모든 기록은 현재 땅바닥으로 추락한 상태이다. 스테로이드 시대에 내셔널리그에 마이크 피아자가 있었다면 아메리칸리그엔 퍼지가 있었다. 마이크 피아자가 흠좀무한 공격력이 일품이었다면 퍼지는 수비력이 최고로 인정받았다. 물론 공격력 역시 피아자에 뒤지지 않아 실버슬러거를 통산 7회 수상했다.

동시대의 수많은 들과 묶여 I-Rod로 불리기도 하지만, 퍼지라는 임팩트 있는 별명이 더 많이 사용 중. 퍼지라는 닉네임 자체가 땅딸보인 그를 나타내고 칼튼 피스크의 후계자로서 이보다 적절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퍼지 로드리게스라고들 부른다.

흠좀무한 커리어

2 선수 생활

2.1 20대 : 텍사스 레인저스의 레전드.

레전드. 먼치킨. 역대 최고의 포수. 포수로서 20-20 달성. 외계인을 누르고 따낸 MVP, 10년 연속 올스타, 10년 연속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 6연패.

어린 시절에는 쇼핑몰에서 배달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어릴 때부터 야구를 배웠는데 원래는 투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야구 코치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를 포수로 바꿨다. 포지션 변경을 한 이유가 걸작인데, 지나치게 작은 키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세게 던지다보니 상대 타자들이 얘를 무서워해서(...) 고등학교 때에도 이름을 날렸는데, 당대 라이벌은 후안 곤잘레스였다고 한다. 비교적 작은 체구를 가진 16살짜리 포수로서 동료들 사이에서 굉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점에 이끌린 텍사스 레인저스는 그에게 접근하였고, 흔쾌히 어린 나이에 프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마이너에서도 흠좀무한 강견과 뛰어난 수비력을 선보인 그는, 1991년 베이스볼 어메리카 유망주 순위에서 7위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고 데뷔한다. 1991년에 일단 타격은 불만족스러웠지만 88게임에서 49%라는 엽기적인 도루저지율을 기록하며 RoY 4위에 올랐고, 92년부터 전설이 시작되었다.[3] 92년부터 10년간 골드 글러브와 AL 올스타 포수 한 자리를 독식하게 되며[4], 도루저지율이 대충 2번에 한번 꼴인 50%를 상회하는 흠좀무한 도루저지율을 보이더니 94년부터는 타격까지 대폭발하여 OPS 8할을 달성하고 6년간 실버슬러거를 독식했다. 94년엔 케니 로저스퍼펙트 게임을 캐치했고, 96년엔 생애 최초의 한 경기 2홈런을 보스턴 레드삭스로저 클레멘스에게서 뽑아내기도 했다.

2.2 전대미문의 포수 20-20

특히 99년은 그야말로 최고 중의 최고의 시즌이었는데, 그간 중심타선이나 하위타선에 배치된 것과 달리 2번을 주로 치면서 야구 역사상 전대미문의 대기록인 포수 20-20을 달성했다![5] 이 미칠듯한 기록에 끔뻑 넘어간 메이저리그 기자들은 그간 MVP 투표에서 10위권에 머물던 퍼지를 76년 서먼 먼슨 이후 처음이자 역사상 9번째로 포수 MVP로 뽑았다.

하지만 이때의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는 지금까지도 양대리그 MVP 투표 역사에 남을 불꽃튀는 명승부이자 가장 논란성이 짙은 투표로 회자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퍼지의 MVP 투표 경쟁자는 다름아닌 페드로 마르티네즈였기 때문.

그 외에 로비 알로마, 매니 라미레즈, 라파엘 팔메이로, 데릭 지터, 노마 가르시아파라도 경합을 벌였는데, 이 때 경쟁자들 사이에서 WAR를 순위로 매겨보면 퍼지는 하위권이었고, 최고는 페드로였다. [6]

그렇게 투표한 결과 1위표 최다 득표자는 MVP 8표이자 사이영상 만장일치 수상에 빛나는 페드로 마르티네즈. 그러나 페드로는 7표를 얻은 퍼지에게 총점에서 밀려서 2위로 추락하였고 92년 데니스 에커슬리 이후 첫 사이영상-MVP 동시 석권이 좌절되었으며, 2011년 저스틴 벌랜더 이전까지 투수가 MVP를 먹는 일은 나오지 않았다. 퍼지가 WAR에서 경쟁 강타자들에 비해 포수라는 포지션 외에는 딱히 앞서는 것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포수로서 달성한 20-20"의 임팩트가 심하게 강렬했다는 평. 지금까지도 투수들이 MVP를 수상할 수 있는가의 논쟁에서 불꽃 튀기는 키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때 퍼지가 30홈런을 넘어서지 못했다면 포수 20-20이고 뭐고 페드로가 MVP 먹었을 것이란 것도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당시 투표 결과.

2000년에도 OPS가 1을 넘는 괴력을 발휘했지만 부상으로 91경기 출전에 그쳐서 호르헤 포사다에게 실버슬러거를 빼앗겼다. 대신 수비는 여전해서 이후 2001년까지 올스타에 선정[7]되고 골드글러브를 가져간다.

그러나 2002년 도루저지율이 현격한 저하를 보이고 그 전부터 부상이 많아지며 노쇠화 조짐이 보이는듯 했고, 결국 11년 연속 골드글러브와 올스타가 좌절되자, 박찬호, 칼 에버렛, 라파엘 팔메이로, 후안 곤잘레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의 고액 연봉자들 때문에 페이롤에 부담이 많았던 레인저스는 스캇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둔 퍼지를 붙잡지 않았다.

2.3 30대 중반 : 말린스에서의 우승과 제2의 전성기

새로 도전한 내셔널리그. 2003년 말린스와 1년간 10m의 계약을 맺은 후 데뷔전에서 홈런을 때려내며 산뜻한 출발을 보인 퍼지는 94년 .298 이후 처음으로 3할 타율에 실패하고 도루저지도 명성에 비해 부진했지만 OPS 8할을 넘기며 여전히 살아있음을 과시했고, 특히 포스트시즌에 3홈런 .313 .390 .522의 흠좀무한 성적을 찍으며 월드 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2003년 이후엔 모두가 잘 아는 말린스의 파이어세일이 이어졌기에 재계약은 이뤄지지 않았고, 다시 FA가 되어 2004년부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4년 40m 계약을 맺었다.[8] 그리고 부활. 강력한 타격을 바탕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그간 잃어버렸던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9]도 되찾아오고 개인 통산 1000타점을 돌파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시작했다.

다만 나이가 들었는지 타격은 상대적으로 부진하여 OPS가 20대 시절보다 1할 이상 하락했다. 다만 장타력에 비해 타율은 대체로 일관적이라 별 차이 없는 수준. 그러나 04, 06[10], 07년 골드글러브를 따내며 역시 빅리그에서 최고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포수임을 입증했다. 결국 이때부터는 공수 양면에서 최고라기보단 공격도 준수하지만 수비력이 몬스터급으로 돋보이는 수비형 포수로의 변신이 이뤄졌다. 2007년에는 저스틴 벌랜더 게임에서 생애 두 번째 노히터를 캐치했다.

2.4 2008~09 저니맨 생활

2008년 $12.38m의 5년째 옵션이 승인되어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잔류했다. OPS .756을 찍으며 분전했지만, 팀의 성적은 바닥을 찍었다. 고액 연봉자였던 퍼지를 지킬 이유는 없었고, 결국 데드라인에 맞춰 호르헤 포사다가 부상을 당한 뉴욕 양키스가 그를 영입하였다. 트레이드 대가는 빅 파피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트레이드 소식에는 눈물을 글썽인 현역 MLB 최강의 파이터.
그러나 타율이 2할 초반으로 떨어지고 앤디 페팃, 마이크 무시나가 퍼지와의 호흡에서 문제를 보이며 배터리를 이루길 거부했다. 결국 공수에서 민폐만 끼치다가 아웃...되었는데, 몸값이 비싼 그를 원하는 팀이 없어서 실업 위기에 몰렸다!

결국 텍사스 시절부터 그간 뛰어오던 푸에르토 리코 윈터리그로 돌아가서 분노의 맹타를 휘두르며 .370을 찍었고, 같은 시기 뉴욕 메츠와 계약이 만료되며 MLB 팀들에게 오퍼를 받지 못하고 실업자 신세가 되었던 도미니카 공화국페드로 마르티네즈처럼 구단들에게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2009년 WBC푸에르토 리코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2006년에도 출전한 바 있다.) 그 결과 3월 20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1.5m+성적에 따른 $1.5m 추가 인센티브 계약에 사인하였다. 아아 눈물나는 염가계약...

그렇게 힘들게나마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커리어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다.[11][12] 또한 인터리그에서 같은 텍사스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와 가진 원정경기에서는 칼튼 피스크의 역대 최다 게임 캐치 기록을 넘어서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2009년 8월 중에는 웨이버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텍사스 레인저스로 돌아와 잠시 뛰면서 레인저스 팬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레인저스의 7번을 달고 있던 외야수 데이빗 머피는 1년 전 양키스 소속으로 알링턴에 온 퍼지와 홈에서 충돌하여 시즌을 마감한 불의의 사고는 깨끗이 잊었다면서 레인저스 사상 최고의 포수에게 7번을 양보하고 14번으로 옮겼다.(퍼지의 이적 이후 7번 복귀)

2.5 워싱턴 내셔널스

2009년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의 연봉조정 제의를 거절한 후, 2년 총액 $6m에 워싱턴 내셔널스와 계약했다. 이 계약의 의도는 다분히 뻔했다. 한 시즌을 작정고 말아먹어 데려온 역대 최고의 루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조던 짐머만, 드류 스토렌, 존 래넌 등으로 이뤄진 투수조 꼬마들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것. 굳이 스트라스버그를 빼더라도, 냇츠는 성적은 잘 안 나와도 이리저리 트레이드와 드래프트를 단행하며 리빌딩을 진행 중이었고, 주력 선수들 중에서도 특히 투수들의 연령대가 상당히 어렸기 때문에 그들을 토닥일 수 있는 베테랑 수비형 포수가 필요했으며, 시장에 나온 포수들 중에는 가장 적절한 후보였다.

결국 투수조의 노장 이닝이터 리반 에르난데스와 함께 사실상 최고참이 된 퍼지는 38세의 나이에 시즌 초반 3할 타율로 팀 타선을 이끌며 드디어 실버슬러거급 레전드의 타격이 살아나는가 하는 기대를 줬지만,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는건지 부상이 다시 찾아와서 DL에 등재되었다. 이 때의 부상으로 내셔널스가 역대 최고의 데뷔전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했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의 데뷔전이 늦어졌고, 5할을 상회하던 팀 승률도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돌아온 첫 경기에 맞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의 데뷔전에서 안정적인 포구와 리드로 스트라스버그의 7이닝 14K라는 충격적인 피칭에 기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상 이후 타격이 침체를 겪으며 결국 2할 중후반대로 타율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젠 나이가 들었으니...

결국 2011년엔 맷 캡스를 보내고 데려온 유망주 포수 윌슨 라모스의 백업과 클럽하우스 리더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에게 도움을 받는 윌슨 라모스는 좋은 스승을 만나 굉장한 성장세를 보였다.

2.6 은퇴

하지만 2011년 이후 새 팀을 찾지 못하게 되자, 결국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다. 자신이 커리어를 시작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홈구장 레인저스 볼파크 in 알링턴에서 2012년 4월 23일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한 시대를 호령한 명포수답게 시구를 홈플레이트에서 2루로 송구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은퇴 이후엔 텍사스 프런트에서 단장 특별 보좌로 일한다.

이후 2016년 1월 1일(현지시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이니셜 번호인 7번을 영구결번시켰다.

3 I-Roid??? :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

2000년대 나이가 들며 굉장한 하락세를 보였지만 통산 타율이 .296로 높은 편이고 10년간 부상으로 하락세를 겪었음에도 2011년에야 통산 OPS가 8할 밑으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이반 로드리게스가 90년대에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스탯을 찍어댔는가를 알 수 있다. 장타력이나 선구안을 말한다면 몰라도 통산 안타수를 보면 오히려 마이크 피아자보다도 낫다.(통산 2844안타) 나이들어 도루저지율도 조금 하락했지만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최소 세번에 한번 꼴로 주자를 잡아내는 강견은 여전했다. 레인저스에서의 전성기에는 50~60%는 기본으로 넘긴 도루저지율을 기록했고 커리어 통산 46%라는 경악스러운 저지율을 찍었다. 이쯤되면 알겠지만, 골드글러브 10연패를 포함한 13회 수상, 실버슬러거 7회, 올스타 14회 선정 등의 화려한 수상실적만으로도 이미 그의 평가는 요기 베라, 자니 벤치칼튼 피스크 등 MLB 역사에 남을 포수다. 동시대의 마이크 피아자와 비교하면 절대 다수는 퍼지의 손을 든다는 점에서도 당대 최고의 포수였었다.

그러나 2005년, 호색한 색호의 책 <Juiced>가 출간되면서 상황은 급변. 이 책에서 칸세코는 자신이 직접 마크 맥과이어, 제이슨 지암비, 이반 로드리게스, 후안 곤잘레스, 라파엘 팔메이로에게 스테로이드를 소개했다고 밝히는데, 퍼지를 제외한 나머지 넷은 실제로 약물복용이 적발되었다[13]는 점에서 칸세코의 저 발언이 신빙성을 얻고 있으며, 함께 언급된 퍼지의 약물 복용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직까지 로저 클레멘스배리 본즈처럼 브라이언 맥나미BALCO 스캔들 같은 빼도박도 못하는 물증은 없지만 前 동료들의 불명예와 칸세코의 말이 적중했다는 것만으로도 정황 증거로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반 로드리게스의 경우 칸세코의 책에서 나온 말이나 제프 펄먼(Jeff Pearlman) 기자의 책 <The Rocket that Fell to Earth>에서 마이크 피아자와 함께 약쟁이로 취급받은 것 외에는 각종 도핑테스트에서도 걸린 바가 없고, 메이저리그를 통째로 까뒤집었던 미첼 리포트에서도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미니카 언론발 2003년 양성 반응자 리포트[14]에 의하면 그가 올라 있긴 한데, 그 리포트에서 같이 언급된 인물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인물로는 페드로 마르티네즈, 마크 프라이어, 케리 우드, 버논 웰스이분이 끼어있다는 점에서부터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알폰소 소리아노, 아드리안 벨트레가 있다(...)

A-Rod처럼 2003년 비공개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난 것이 어떻게 들통나자 본인이 실토한 경우도 있지만, 루이스 곤잘레스제프 배그웰처럼 화가 나서 기자회견 열고 결백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 출신 선수가 인터뷰에서 랜디 존슨, 제이미 모이어, 켄 그리피 주니어 등도 약물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암시했지만, 이들을 약쟁이라 하는 이들은 없다.

다만 퍼지 본인은 이런 논란에 대해 "칸세코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여러 차례 도움을 주었는데 그가 거짓말을 해 상처를 입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지만 2009년에 한 인터뷰에서는 2003년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이었냐는 질문에 "Only god knows"라는 무책임하면서도 묘한 발언을 했다. 이에 약물 혐의자를 색출하자는 사람들은 "아이로이드"라고 까지만, 사실 저렇게 말했다고 그것이 곧 스테로이드 복용 인정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물론 대놓고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만, 1990~2000년대 선수들 중에서 "너 약 했어, 안했어?"라고 물었을 때 "안했어"라고 하면 믿어줄 선수가 몇이나 있겠는가? 심지어 알버트 푸홀스도 도핑테스트 걸리면 야구 때려치겠다고 한 후 진짜로 테스트하러 가자고 찾아온 기자를 불쾌해하며 내쫓았더니 약쟁이 소리 듣는 판인데...

결국 이반 로드리게스는 일단 책에서 약쟁이 소리 듣고는 있지만, 현재는 이를 증명할 수 없고, MLB나 FBI 측에서도 그를 증명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부정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가 약물을 했느냐 마느냐는 절대 확실히 검증할 수 없다. 2003년의 비공개 도핑 테스트 역시 양성으로 밝혀지면 약쟁이라 할 순 있어도 그 결과가 음성으로 밝혀진다고 사람들이 퍼지를 결백하다 하진 않을 것이다. 그를 믿느냐 마느냐는 독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그러나 기자들의 편견이란 것은 좋든 싫든 어쩔 수 없는 법. 은퇴할 경우 쿠퍼스타운 장수생으로 오랫동안 기다려야지 HoF에 가든 말든 결정될 것이 확실하다. 일단 퍼지에 대해 긍정적인 기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홈런타자도 아니었고 수비에서 더 돋보이는 선수였는데 약을 빨 이유가 있었을까라지만, 칸세코에게 직접 지목되었다는 점이 많은 이들의 관점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 몹시 뼈아프다.

4 그 외

우울한 약물 떡밥과 달리 가정사는 제법 화목한 편이다. 부인 마리벨 리베라(Maribel Rivera)와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으며, 그 중 아들인 이반 데렉 로드리게스(Iván Dereck Rodríguez)는 2011 MLB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6라운드에서 지명받았다. 물론 고교에서의 성적을 보면 아버지의 후광이 없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순전히 혈통 덕분에 지명된 선수가 상위 라운드라 볼 수 있는 6라운드에서 뽑힐리는 없다는 점, 또한 퍼지는 미네소타 지역과 아무런 연고도 없다는 점에서 중견수를 볼 수 있고 아버지를 닮아 강견을 갖춘 우타 외야수인 아들도 본 바탕이 제법 출중하다는 평이다.

이들 부부는 푸에르토 리코댈러스-포트워스(레인저스 연고지)에서 활동하는 Ivan "Pudge" Rodríguez Foundation을 창립하기도 했다. 다만 2006년에 잠시 갈라서기도 했는데, 2007년에 재혼해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고.
  1. 7번이 미키 맨틀의 영구결번이었던 뉴욕 양키스에서는 12번. 크레익 비지오가 영구결번된 휴스턴에서는 12번과 77번
  2. 땅딸보라는 뜻. 피스크는 어릴 때는 키가 작아서 퍼지로 불렸지만 정작 성인이 되어서는 189cm의 우월한 위너가 되었다. 메이저 데뷔후에도 175cm정도의 신장으로 선수행활을 이어간 이반 로드리게스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퍼지일듯.
  3. 91-92 2년 연속으로 AL 최연소 선수였다.
  4. 2002년에는 올스타 포수 자리를 뉴욕 양키스호르헤 포사다미네소타 트윈스A.J. 피어진스키에 내줬고, 골드글러브는 몰리나 삼형제의 큰형님인 벤지 몰리나에게 내줬다.
  5. 이 기록은 잘 알다시피 크보의 퍼지 박경완이 2001년에 달성한다. 이는 각각 세계 1,2번째 대기록.
  6. 이런 먼치킨 대전이 벌어진 AL MVP 투표와 달리 NL MVP는 치퍼 존스, 사이영상은 페드로와 빅 유닛, RoY는 카를로스 벨트란과 스캇 윌리엄슨 - 이렇게 1999년에는 대체로 한 방향으로 대세가 기울어진 투표결과가 나왔다.
  7. 2001년 올스타 선정으로 자니 벤치의 포수 올스타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8. 이 시기 디트로이트는 116패를 당하는 최악의 팀이었고, 극약처방으로 스캇 보라스의 비싼 선수들을 FA로 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글리오 오도녜즈까지 지른 후 디트로이트는 116패를 당한 뒤 얻은 2004년 드랩 전체 2픽 저스틴 벌랜더를 앞세워 2006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그 해에 벌랜더는 조나단 파펠본을 누르고 신인왕 등극)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발렸다
  9. 실버슬러거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빅터 마르티네즈와 공동 수상.
  10. 세이버메트리션들이 이 해부터 처음 제정한 필딩 바이블 어워드 초대 수상자가 되었다. 다만 이후 07-10 4년간은 포텐셜이 만개한 몰리나 삼형제의 막내가 포수 부문을 독점한다. 야디어는 2010년까지 총 4회로 1루수 알버트 푸홀스와 함께 최다 수상자.
  11. 커리어 통산 311홈런은 포수 304홈런, 지명타자 5홈런, 대타 2홈런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수 포수 300홈런은 자니 벤치, 칼튼 피스크, 마이크 피아자에 이은 4번째이다. 게리 카터랜스 패리시는 각각 2개와 1개씩이 모자라서 실패했으며 피아자는 4개만 더 쳤으면 전무후무한 순수 포수 400홈런을 달성할 수 있었다.
  12. 8번째 포수 300홈런의 유력 후보로 호르헤 포사다가 있었지만 275개의 홈런을 끝으로 은퇴하면서 300홈런을 달성하는 포수는 아주 긴 시간동안 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3. 맥과이어는 의혹만이 남아있다가 스스로 스테로이드 복용을 인정했고, 지암비는 BALCO 스캔들에 연루된 것이 드러났으며, 후안곤조 역시 미첼 리포트에서 약물 복용자로 지목되었고, 팔메이로는 2005년 도핑 테스트에서 걸렸다.
  14. 당초 104인이었지만 여기선 103인이라 나왔다. 신뢰성이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