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블루제이스 No.55 | |
러셀 마틴 (Russell Nathan Jeanson Coltrane Martin, Jr) | |
생년월일 | 1983년 2월 15일 |
국적 | 캐나다 |
출신지 | 온타리오주 이스트 요크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2년 드래프트 17라운드 LA 다저스 지명 |
소속팀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06~2010) 뉴욕 양키스(2011~2012) 피츠버그 파이리츠(2013~2014)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5~) |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포수.
이름이 길고 아름다운데, 이는 아버지, 할아버지, 어머니 등에게 물려받은 이름들이라고 한다(...)
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2002년 드래프트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지명받아 계약했고 공수를 겸비한 최강의 포수로 클 재목이라 평가받으며 성장, 2006년 데뷔하였다. 그리고 시즌 초중반 콜업된 첫 해에 포수로서 좋은 수비와 2할 8푼의 타율을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두번째 시즌에는 포수로서 600타석 이상 출장하며 OPS 8할대 중반을 기록, 브라이언 맥캔을 제치고 실버슬러거와 골드글러브를 모두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단번에 내셔널리그 최고의 포수에 올라섰다. 특히 워낙 운동능력이 좋아서 3루수로 출전하기도 했으며 2007년에는 포수로서 20-20을 달성할 뻔 하기도 했다.(홈런 하나 차이로 실패.) 세번째 시즌을 마치고 찾아온 슈퍼2 연봉조정에서의 연봉 대박은 덤.
그러나 마틴은 이후부터 자기관리에 실패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유지한데다[1] 무릎과 엉덩이 부상까지 당하며 장타력과 포수로서의 미래까지 불투명해졌고, 다저스는 마틴의 연봉과 기량 하락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를 논텐더로 방출했다.
그래도 부상이 없다면 수비만으로도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평을 받았기에 주전감 포수를 구하는 많은 팀들에게 관심을 받았고, 결국 마틴은 캐나다 클럽이자 사실상의 고향 팀인 토론토 블루제이스행을 거절하면서 우승반지 기회가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르헤 포사다가 풀타임 지명타자로 전환하여 출전기회가 많이 있는 뉴욕 양키스와 계약했다.[2]
2 뉴욕 양키스 시절
양키스에서 그는 비록 타율은 낮지만 그간 주전으로 포사다의 수비에 비하면 안구정화급이라 할만한 좋은 수비를 보여주고 하위타순에서 적절한 공갈포 노릇을 하며 과거 보여준 공격력에 버금가는 18홈런을 때려냈다. 올스타전에도 출전했으며, 연봉 인센티브 조건도 채우며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시즌이 되었다. 오죽하면 양키스가 헤수스 몬테로를 트레이드 매물로 썼을 정도였겠는가.[3]
2012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의 적절한 번트 수비.(타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리드오프 마이클 본.)
양키스 팬들은 이런 마틴을 장기계약으로 묶으라 외쳤다.[4] 하지만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마틴 뿐만 아니라 미겔 몬테로, 마이크 나폴리, A.J. 피어진스키 등이 대거 튀어나오는 2012-13 FA 시장이라서, 또한 콜 해멀스 영입전에 가세해야 해서 양키스가 너무 목매지 않는 모습.[5]
2012년에는 본격 FA로이드 모드를 기대했지만...
11시즌 초반에는 페이스가 좋았지만 시즌을 .237 .324 .408으로 마감하면서 다저스 데뷔 시절의 성적과는 거리가 아주 먼 성적을 보였고, 2012년에도 .211 .311 .403의 안습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마저도 계속 1할대에서 헤매다가 9월 이후 바짝 올린 것. 그나마 위안이라면 21홈런을 쳐냈다는 것. 이를 고려해도 타율이 너무 낮아 공갈포 이상의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 오죽하면 한국팬들에게 광고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가뜩이나 전직 포수가 양키스 역사에 남을 만한 공격력 좋은 사람이어서... 그래도 야수로서의 포수 자질이라든지, 성격 등은 좋아서 아주 말아먹지만 않으면 싸게 묶자는게 팬덤의 주된 의견이었다.
자기도 양키스에 남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보스턴 레드삭스를 자극하는 발언도 한 적이 있다. 물론 레드삭스 팬들은 "뭥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의 반응만 보일뿐.[6]
2012년 시즌 종료 후 오프시즌에 양키스가 구로다 히로키와 앤디 페티트, 마리아노 리베라 등 베테랑노인네에게 신경 쓰는 사이에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2년 1700만달러의 계약에 합의하였다. 양키스에서의 구체적인 오퍼는 없었던 듯. 양키스 팬들은 생각보다 짧은 기간과 적은 총액에 계약한 마틴을 보며 양키스 프론트진은 도대체 뭘 하느냐며 분노했다.
한편 격투기 애호가라고 전해진다. 2011 시즌을 앞두고 오프시즌에 체력훈련을 위해 이종격투기 계열에서 수련을 했다고.
3 피츠버그 파이리츠 시절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도 캐나다 대표로 나설 계획이었는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 포수 조지 코타라스 때문에 유격수를 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캐나다 야구팬들은 충공깽 그러나 유격수를 본다는 것이 벅스 구단의 눈에는 영 좋지 않게 보였는지 결국 불참을 선언했는데, 이 때문에 캐나다 대표팀의 전력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고, 캐나다 대표팀의 주축인 브렛 로리와 저스틴 모노로부터 대차게 까였다.
2013시즌은 특유의 공갈타격도 있었지만 수비진을 어느정도 이끌면서 그럭저럭 해줬다. 작년대비 크게 개선된 피츠버그의 투수진 성적에는 그의 공이 크다. 40%의 도루저지율도 수준급. 판정논란이 있긴 했지만, 추신수는 그에게 도루성공 0회, 도루저지만 4회를 당했다.[7] 시즌 최종 전적은 .226 .327 .377 에 15홈런 55타점을 기록했고, 와일드 카드에서는 홈런 2개를 때려내며 피츠버그의 가을행진을 도왔다.
2014시즌에는 .290 .402 .430 11홈런 67타점의 좋은 공격력을 선보였고, 40%에 육박하는 도루저지율로 투수진을 이끌었다. 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얻는데, 팬들은 당연히 마틴이 잔류해주기를 원하고 있지만 벅스 구단이 마틴의 요구액을 맞춰줄 수 있을지는 지켜볼 문제다.
4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2014년 11월 18일 (한국시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기간 5년, 총액 8천 2백만 달러의 FA 계약을 맺었다. 컵스 팬들 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8]
2015 시즌이 개막되기 전 몬트리올에서 열린 신시내티 레즈 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시범경기 2연전을 앞두고 몬트리올에 메이저리그 팀이 다시 유치되기를 희망하는 지지성명을 했다. 온타리오주 태생이지만, 몬트리올에서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러셀 마틴으로서는 몬트리올 연고 메이저리그 팀 재유치에 당연 찬성하는 입장. 실제로 몬트리올 메이저리그 팀 재유치에 대한 여러 호재가 있는 상황이다.
2015년 4월 9일 뉴욕 양키스와 원정 경기 중 4회말 하마터면 본헤드 플레이를 할 뻔. 1아웃 주자 2, 3루 풀카운트 상황에서 선발 노리스가 체이스 헤들리를 삼진 잡았는데, 문제는 러셀 마틴은 3아웃으로 착각해 그대로 덕아웃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미국판 정범모 깜짝 놀란 노리스가 베이스를 커버하며 황급히 마틴을 불러 참사는 면했다.
- ↑ 일설에는 여자 문제였다고도 한다. # 그 처자는 에릭 가니에의 처제라고.
- ↑ 1년 $4M에 120경기 이상 캐치할 경우 $5.4M으로 상승하는 인센티브 조건.
- ↑ 양키스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다저스 시절부터 마틴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 ↑ 물론 야디어 몰리나가 5년 $75M 계약을 맺는 바람에 가격이 매우 치솟았다.
- ↑ 그러나 야디어 몰리나에 이어 몬테로도 재계약하면서 포수 시장이 급격히 좁아졌다. 그리고 해멀스도 필리스와 재계약. 양키스는 $189M 프로젝트를 앞두기도 해서 2012 시즌 이후 FA시장에서는 다년 계약을 자제했다.
- ↑ 근데 양키스에 있을 때 보스턴을 상대로 잘했다. 11시즌 .250 .362 .500에 3홈런 10타점. 12시즌 .235 .350 .608 5홈런 9타점.
- ↑ 게다가 추신수가 신시내티에 몸을 담고 있던 시기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는 러셀 마틴은 물론 전통의 가을좀비팀의 어느 본좌급 포수까지 계셔서 NL 중부지구 주자들은 이 둘이 포수를 보고 있으면 함부로 도루할 생각을 못했다.
- ↑ 결국 시카고 컵스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부터 미겔 몬테로를 영입하면서 포수 문제를 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