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드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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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마르셀 드사이 (Marcel Desailly)
생년월일1968년 9월 7일
국적프랑스
출생지가나, 아크라
신체 조건185cm, 85kg
포지션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소속 클럽FC 낭트 (1986-1992)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2-1993)
AC 밀란 (1993-1998)
첼시 FC (1998-2004)
알 가라파 (2004-2005)
카타르 SC (2005-2006)
국가 대표116경기[1] 3골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디디에 데샹
(1995~2000)
마르셀 드사이
(2000~2004)
파트리크 비에이라
(2004~2005)

1 소개

비셴테 리사라수, 로랑 블랑, 릴리앙 튀랑과 함께 레 블뢰의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아트 사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철의 포백의 일원
밀란 제너레이션의 당당한 일원이자 데니스 와이즈, 지안프랑코 졸라, 아이두르 구드욘센 등과 함께 로만 이전 첼시의 아이콘

2 선수 경력

가나 아크라에서 가나인 부모 사이에 오덴케 아베이(Odenke Abbey)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해 아이를 입양했을 때 마르셀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그의 가족은 1972년 프랑스 낭트로 이주하였다. 그는 12세부터 FC 낭트의 유소년 팀에서 성장하여 1986년 1군팀으로 승격하였다.

낭트에서 드사이는 6시즌동안 164경기 5골을 기록했다.

1992년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했다. 당시 마르세유는 드사이를 비롯해 호화 멤버를 구성해 전성기를 구가하며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전 유럽에 깃발을 날리며 1992-93 시즌에는 염원하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루며 리그 우승까지 하는 더블을 이루었으나 저 유명한 승부 조작 사건으로 리그 우승이 박탈되었다.

이에 드사이는 1993년 11월 세리에 AAC 밀란으로 이적하였다. 1993-9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다른 클럽에서 2년 연속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또한, 1993-94 시즌과 1995-96 시즌 2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는 수비수로서 플레이를 선호했지만 밀란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 이는 또 저 유명한 입축구 사건인 이른바 크루이프의 "축구 레슨을 시켜주지" 사건과 이어진다. 다만 크루이프의 해당 발언은 과장된 발언으로 실제로는 양 팀 간 스타일 차이에 대한 코멘트였을 뿐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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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제국의 초석을 쌓다

밀란에서 큰 성공을 거둔 드사이는 1998년 잉글랜드의 첼시 FC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460만 파운드로 알려졌다.

프랭크 램파드가 B급 미드필더로 여겨지고, 존 테리가 가까스로 데뷔해 이름을 알리던 시절, 자랑스럽게 내놓을만한 스타플레이어라고는 지안프랑코 졸라 정도 밖에 없던 첼시에서 데니스 와이즈의 뒤를 이어 주장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중상위권 도깨비팀 첼시를 챔스권에 진입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고, 2003-04 시즌까지 중앙 수비수로 활약하였다. 첼시에서 6시즌 동안 156경기 7골을 기록하였다.

2004년 카타르의 알 가라파로 이적하였다. 클럽의 주장을 맡아 2004-05 시즌 카타르 리그에서 우승하는데 기여하였다. 2005년 여름 카타르 SC로 이적하여 7경기를 소화하고 2005년 11월 자진 탈퇴하였다. 2006년 5월 7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3 국가대표

1993년 8월 22일 스웨덴 전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이후에도 프랑스 수비의 핵심으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프랑스 우승에 공헌하였다. 유로 2000 이후 디디에 데샹이었던 프랑스 주장을 인계받았다. 한일 월드컵, 유로 2004에 각각 출전하였다, 유로 2004이후 프랑스 대표에서 은퇴를 표명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드사이는 뛰어난 신체적 조건을 활용하며, 파워풀한 수비를 자랑하던 선수였다. 경이적인 점프력을 자랑했기 때문에, 공중전에서 대부분 승리하였고 1대 1 대인마크에서는 밀리는 법이 거의 없었으며 발재간도 안정되어 있고, 냉정한 판단력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비라인의 지휘도 훌륭했었다.

5 은퇴 이후

선수 은퇴 후에는 잉글랜드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이력을 살려 BBC에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6 기타

위에 말했던 것처럼 93-94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시작하기 전 요한 크루이프의 입털기(?)에 등장한 인물이다. [2] 하지만 크루이프의 인터뷰와는 달리 결과는 밀란이 4:0으로 완승을 거두며 바르셀로나에게 역으로 축구 레슨을 시켜줬고 드사이는 거기에다가 골까지 넣어 크루이프를 완벽하게 관광태웠다. 그리고 16년 후 월드컵에서 독일의 모 축구선수가 아르헨티나 감독을 관광태워버리는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데..[3]

명성이 자자한 프랑스 철의 4백의 일원으로서 밀란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클럽 커리어도 남부럽지 않다. 그러나 나머지 4백 멤버들이 엔하에 기재되고 심지어 후배인 윌리 사뇰까지 추가되는 와중에 몇 년째 항목이 생성되지 않았던, 안습 존재감을 자랑하기도 한다.끝내 그래서 추가되었다... 펠레의 피파 100에도 리사라수, 블랑은 빠졌지만 드사이는 들어갔고 진짜 커리어도 끝내주는데 존재감이 너무 없다...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인 빈센트 콤파니가 자신의 롤모델로 꼽았다.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라는 팬의 질문에 일말의 주저없이 '마르셀 드사이, 그는 수비수로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라고 대답했다.
  1.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역대 3위
  2. 인터뷰 내용 : 밀란은 공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는 드사이 같이 형편없는 놈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는 끔찍하게 멍청한 팀이다. 내일은 우리들이 축구 레슨을 시켜주겠다. 하지만 크루이프의 실제 인터뷰 내용은 밀란이 특별한 점이 없고 수비를 중시한다고 디스하기는 했지만 드사이를 개인적으로 찍어서 깐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바르셀로나는 공격을 중시하고 밀란을 수비를 중시하며 그 예시로 바르셀로나는 호마리우와 계약했고 밀란은 드사이와 계약했다고 한 정도. 물론 이것만으로도 밀란 선수들의 전의를 불태우기는 충분했다.
  3.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인 디에고 마라도나는 독일과의 경기를 앞두고 독일의 3부리그 출신 볼보이와 기자회견 하기 싫다고 징징댔다. 그리고 경기 시작 후 그 3부리그 출신 선수 토마스 뮐러에게 3분만에 골을 얻어맞으며 4:0으로 박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