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에 데샹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디디에 클로드 데샹
(Didier Claude Deschamps)
생년월일1968년 10월 15일
국적프랑스
출생지바욘
신체 조건169cm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유소년 클럽바욘 FC (1976-1983)
FC 낭트 (1983-1985)
소속 클럽FC 낭트 (1985-1989)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89-1994)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90-1991) (임대)
유벤투스 FC (1994-1999)
첼시 FC (1999-2000)
발렌시아 CF (2000-2001)
지도자AS 모나코 FC 감독 (2001-2005)
유벤투스 FC 감독 (2006-200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감독 (2009-2012)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2-)
국가 대표103경기 4골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에릭 칸토나
(1993~1995)
디디에 데샹
(1995~2000)
마르셀 드사이
(2000~2004)
유벤투스 FC 역대 감독
파비오 카펠로
(2004~2006)
디디에 데샹
(2006~2007)
지안카를로 코라디니
(2007)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2007~2009)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로랑 블랑
(2010~2012)
디디에 데샹
(2012~)
현직

장군(Le General)

유벤투스와 레 블뢰의 레전드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클로드 마케렐레보다 더 한수 위였던 선수

하지만, 감독이 된 이후에는 자국 내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고 있는 사람[1]

1 클럽 커리어

데샹은 아마추어 클럽인 아비롱 바용에서 처음으로 공을 찼으며 낭트 스카우터에게 눈에 띄어 1983년 15살의 나이로 낭트와 계약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뒤, 1985년 9월 27일 1부 리그 데뷔에 이르게 된다. 낭트에서 4시즌동안 111경기에 출장해 4골을 기록하였다. 1989년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해 17경기에 출장하였다. 1990년 지롱댕 보르도로 이적해 29경기 3골을 기록하였고, 1991년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복귀하였다. 1991년과 1992년 리그 우승과 더불어 1993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는데 기여하였다. 1994년 유벤투스 FC로 이적하였으며 3차례 리그 우승과 코파 이탈리아 우승,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UEFA 챔피언스 리그,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등 수많은 트로피를 획득하였다. 1999년 첼시 FC로 이적하여 27경기에 출장하였다. 2000년 발렌시아 CF로 이적하여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오르는데 기여하였다. 2001년 여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2 국가대표

파일:PxFnTsB.jpg
1989년 4월 29일 미셸 플라티니 감독으로부터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를 앞두고 처음으로 차출되었다. 데샹은 1990년 FIFA 월드컵과 1994년 FIFA 월드컵 진출에 실패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암흑기에 국가대표팀 데뷔를 하였다.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출된 이래 프랑스 대표팀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였다. 유로 1996을 앞두고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유로 2000 우승을 이끄는데 기여하였다. 유로 2000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포백을 잘 보호했고 가진 공을 견실하게 지키고 안전하게 넘겨주는 플레이에 능했다.
흔히 말하는 육각형 미드필더처럼 공-수 만능인 선수는 아니었다. 수비력이 좋고 패싱력도 겸비했지만 공격능력(슈팅, 드리블, 공간침투, 상대 박스에서 이뤄지는 모든 페너트레이션 행위 등)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편.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이 전성기 시절 프랑스 국대나 유베에서 뛸 때 팀은 4-3-2-1, 4-3-1-2, 4-2-3-1, 3-4-1-2 등의 포메이션을 사용했고 데샹은 항상 지단 뒤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공격하러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거의 없었다. 상황에 따라 가끔 올라가서 마무리 패스나 슛팅도 하긴 하지만 결코 장점은 아니었다. 그리고 동시대에 육각형 미드필더라 할 수 있는 전천후 미드필더들은 3미들의 좌, 우 미드필더로 나왔다.

4 지도자 생활

현역 은퇴이후 2001년 AS 모나코 감독에 선임되었다. 2002-03 시즌에는 팀이 리그 2위로 마쳤고, 2003-0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강호를 누르고 준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2005년 9월 성적 부진과 클럽 수뇌부와의 갈등으로 경질되었다. 2006년 7월 유벤투스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칼치오폴리 여파로 세리에 B 소속이 된 유벤투스를 승점 삭감이 있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리그 1위로 세리에 A로 승격하는데 성공시켰다. 승격 이후 보드진에 영입 전권을 요구하였으나 보드진은 이를 거절하였고, 선수 영입 의견에도 역시 마찰이 생겨 결국 사임하였다. 이후 2009년 7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선임된 후 첫시즌만에 리그컵과 리그앙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2011-12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8강과 리그컵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리그에서는 10위로 부진하였다. 2012년 여름 마르세유와 계약이 만료되었고, 로랑 블랑의 후임으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부임 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팀을 8강까지 끌어올렸으나, 하필 대회우승팀 독일을 만나 탈락했다.

유로 2016을 홈에서 치루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기대하는중이지만, 최종명단 발표 이후 프랑스 현지에서는 으리엔트리(...) 논란으로 홍명보급으로 까이는중. 내용은 여기서 참조 → 유로2016/출전선수명단 왜 아레올라, 가메이로, 벤 아르파 를 안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레올라는 요리스때문에 벤치라고 쳐도 가메이로나 벤 아르파만 있었다면

5 기타

비셴테 리사라수 항목에 설명되어 있듯 프랑스바스크인이다.

6 데샹에 대한 말말말

클럽에는 친구 디디에 데샹이 있었다. 바스크 지방 출신이었는데 막강한 놈이었다. 다리 힘이 어찌나 센지 당할 사람이 없었다. 우람한 허벅지를 보면 '바용의 기둥'이라는 별명이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그는 나를 주눅들게 했지만 경기가 끝나면 우린 마냥 즐겁기만 했다. 15살이었지만, 이미 데샹은 완벽한 프로선수였다. 듬직한 데샹 옆에만 있으면 나는 마음이 놓였다. - 마르셀 드사이
데샹은 미드필드에서 모든 공을 따내곤 했다. 그러곤 너무도 쉽게 공을 처리했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빠른 결정을 내리고 최선을 이끌어내는 선수였다. - 프랑크 르뵈프
기술과 체력은 땀과 노력으로 배양했지만 선수로서 지녀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은 데샹으로부터 배웠다. - 지네딘 지단
위대한 주장이며, 사소한 그의 향기조차 대신할 인물이 지금 있을까? - 로제 르메르
그는 타고난 리더다. 투지와 정신력이 필요하면 주위에 있는 선수들은 데샹을 찾았다. - 장-피에르 파팽
그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승리해야 한다는 열정을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 파트리스 에브라

7 경력

7.1 선수 시절

  • 유벤투스 FC (1994/95 - 1998/99)
    • 이탈리아 세리에 A (3) : 1994/95, 1996/97, 1997/98
    • 코파 이탈리아 (1) : 1994/95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 ; 1995, 1997
    • UEFA 챔피언스 리그 (1) : 1995/96 ; 준우승 (2) : 1996/97, 1997/98
    • UEFA 슈퍼 컵 (1) : 1996
    • 인터콘티넨탈 컵 (1) : 1996
  • 첼시 FC (1999/00)
  • 발렌시아 CF (2000/01)
    •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1) ; 2000/01

7.2 감독 시절

  • AS 모나코 (2001/02 - 2004/05)
  • 유벤투스 FC (2006/07)
    • 이탈리아 세리에 B (1) : 2006/07

7.3 개인 수상

  • 1996 프랑스 올해의 선수
  • 유로 1996 베스트 일레븐
  • FIFA 100
  • 2004 프랑스 올해의 감독
  1. 4번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