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느

1 프랑스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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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Marianne. 여성의 모습을 한 자유와 이성의 알레고리. 모에선을 쬔 프랑스 혁명 프리지아 모자, 갈리아 수탉과 함께 프랑스 혁명의 3대 상징물 중 하나이다. 자유의 여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여성상이 왜 혁명의 상징이 되었으며 어떤 경로로 마리안느라는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남성 이름인 자크와 마찬가지로 하층민들이 쓸 법한 서민적인 여성 이름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엔 프랑스란 '국가'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1] 미국의 엉클 샘/컬럼비아나 영국의 존 불(John Bull)[2]/브리타니아와 마찬가지. 비시 프랑스 시기에는 일시적으로 사용이 중단되었다가 비시 프랑스 정권이 몰락하고 공화정이 복구되자 다시 사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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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와 20세기 프랑스 주화에 종종 옆얼굴이 들어갔고 현 프랑스 정부의 공식 로고에도 마리안느가 들어가 있다.[3] 마리안느의 흉상을 주요 공공기관 건물에 장식하기도 하는데, 이때 그 시대에 가장 이름난 여배우나 가수들이 모델이 되는게 보통. 한때는 브리지트 바르도가 마리안느의 모델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여인이라는 상징성을 두고 실존인물인 잔 다르크와 대립도 하는 편이다. 마리안느는 혁명과 공화국을 상징하는만큼 주로 진보 좌파, 잔 다르크는 왕국과 교회를 상징하는 만큼 보수 우파를 상징하는 여인이 된 탓.[4] 하지만 사이 좋게 묘사되는 경우도 있는데 심지어 레즈비언 컨셉 그림까지도 있다. 살짝 수위 있으니 주의

2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의 등장인물

마리안느 비 브리타니아 항목 참고.

3 작안의 샤나의 등장 린네

과거 프리아그네가 우연찮게 발견해 린네로 만들었는데, 만들고 보니 솜뭉치 인형이 말하고 움직이는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나머지 최애캐 수준이 되어버려 그녀를 린네 이상으로 완전한 존재로 만들려는 지경에 이르러 미사키 시에서 과거 아시즈가 행한 도시 삼키기를 계획했었는데, 때마침 그 도시를 지나가던 샤나라는 변수로 말미암아 마리안느는 물론 그 주인인 프리아그네까지 토벌당한다.

그리고 끝에 밝혀지는 거지만 그가 한때 소유했고 사카이 유지가 다른 무리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소지 중인 아주르라는 반지 보구에는 그가 마리안느를 완전하게 만들고자 새겨넣은 자재식이 있었는데, 발동 조건이 키스 였음이 드러난다.(...)

4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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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오른쪽

애니판 성우는 사토 사토미.
19세, 야쿠시지 료코의 메이드로 뤼시엔느와 콤비로 활동한다.

야쿠시지 료코의 메이드로 뤼시엔느와 함께 프랑스에 있는 료코의 아파트에서 함께 거주하고 있다. 프랑스 국적이지만 알제리계라고.

흑발에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녀. 료코의 고용인답게 단정하고 새침한 외모와는 달리 총기 및 단검 등 각종 무기의 스페셜리스트. 저격, 근접전투, 각개전투 등에 능한 뛰어난 전투력의 소유자. 료코를 주인님 이상으로 경애하고 있는 듯 하다. 료코에 대한 호칭은 밀레디(milady)[5]

5 소록도에서 헌신한 수녀

이름 :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öger / Marianne Stoeger)
출신 : 오스트리아(1934.04.24~)

작은 할매라 불리던 마가렛 피사렛(Margaret Pissarek) 수녀와는 같은 수녀회 출신이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간호대학 기숙사에서 룸메이트를 지낸 적이 있다.

우리나라 소록도에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5년 정도 일할 계획으로 1962년에 한국에 입국,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봉사하다 노후에 대장암을 겪는 등, 건강 문제로 인하여 봉사활동이 어렵게 되자 2005년 11월 작별 편지만 남기고 조용히 귀국하였다. 이를 나중에 알게 된 환자, 가족들 및 주변 사람들이 많이 울었다고. 귀국 이틀 전이 되어서야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고, 귀국하던 때 챙겨간 짐은 처음 입국할 때 가지고 왔던 낡은 가방 뿐이었다고 한다.

수녀원 밖에 머무르는 재속회 소속이라, 노후를 보낼 수녀원이 없는 이유로 오스트리아 최저 수준의 국가연금을 받으며 일반 가정집에서 생활하고 있던 와중에, 이런 사정을 알게 된 광주 대교구와 소록도병원(성당)에서 말년을 보장하겠으니 다시 와달라는 요청을 하였으나 사양하였고, 관련된 지원도 거절하였다.

봉사기간은 무려 43년.[6] 의사들도 외면하던 환자들을 직접 챙기며 약을 발라주었고, 오후에는 과자 같은 것들을 만들어 마을에 나눠주는 등, 당대 한센병에 대한 각종 편견과 싸우면서 병의 치료에만 전념한 것에 그치지 않고, 환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외부 시선에도 맞서 싸우는 데도 진력하였다고 한다.

고국 오스트리아의 구호단체에 의약품을 요청하여 충당하였고, 자국의 수녀회와 각종 구호단체로부터 받은 물품들을 아낌없이 베풀었다고 한다. 출신 수녀회에서 보낸 생활비도 환자들을 위한 간식비로, 혹은 완치하여 떠나는 환자들의 차비로 챙겨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리안느 수녀와 마가렛 수녀는 수리도 하지 않는 3평 남짓한 방에서 지네에게 물리는 등의 고초를 겪으며 지냈다고 한다.

상장 수여나 인터뷰 등을 극구 사양하였으나,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의 경우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직접 방문하여 수여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나(...). 한국에서 수여한 감사패나 훈장도 결국 못 이기고 받았으나 기자회견은 끝까지 사양하였다.

그러다 2016.04.16. 소록도에 방문하여 아무리 요청을 해도 거절하던 기자 간담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들이 하는 일이 지극히 작은 일인데 언론 기사로 나가면, 한 일보다 높이 평가 받는 것 같아 그동안 굳이 기자 간담회를 하지 않았다.

국립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마리안느 수녀와 같이 일하던 신부가 직접 찾아가 '근래 한국사회에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회의가 심하다. 희망을 주시고 제2의 마리안느가 나올 수 있게 재고해달라.고 호소한 끝에 방문하게 되었다고. 안타깝게도 마가렛 수녀는 가벼운 치매를 앓고 있는 탓에 동행하지 못하였다.

  • 어록
수녀나 간호사나 한센인이나 누구든지 똑같은 다 사람입니다.
그저 예수님 복음으로 하루하루 살고 싶었고, 제가 하는 일 중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줬고 우리는 (환자들과)지금까지 친구로, 제일 좋은 친구로 살았어요. 1962년에 여기 왔을 때는 우리나라도 가난했고, 간호원이 부족했어요. 그저 부름에 따라 온 일은 알릴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 저희의 천막을 접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친구들에게 제대로 일할 수 없고, 있는 곳에 부담을 줄 때는 본국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해왔습니다. 그 말을 실천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대단히 감사 드립니다. 저희 부족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항상 기도 안에서 만납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건강 상 문제로 귀국하면서 남긴 편지에
  1. 한 예로 19~20세기 유럽 각국 신문들의 만평을 보면 프랑스를 '여성'으로 상징화한 경우가 많은데, 이 마리안느에서 기인한다.
  2. 뚱뚱하고 담배물고 있는 캐릭터
  3. 프랑스 정부기관 로고도 대부분 이걸로 통일되어 있다.
  4. 20세기 초반까지는 보수 우파는 물론 진보 좌파에서도 잔 다르크를 국가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이 때까지만 해도 진보 좌파에서는 잔 다르크를 민중의 딸이라는 이미지로 봤기 때문이다.
  5. 어감 때문인지 불어가 아니라 영어다. 불어로는 마담(madame).
  6. 1962.02.24.~2005.11.22. 일부 기록에서는 1959년부터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