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어: Malmö
1 개요
스웨덴의 최남서부 스코네 주에 있는 도시이자 이 스코네 주의 주도이다. 인구 282,904(2008).말 마+뫼 산= 마산
2 역사
스웨덴 서남쪽 끝, 외레순 해협에 면하는 항구도시이며, 덴마크의 코펜하겐 건너편에 있다. 13세기에는 덴마크 도시였다.
당시에는 무척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차지한 항구 도시라 인구도 많았고 큰 도시였지만 스웨덴과 덴마크가 죽어라 치룬 전쟁에서 양 쪽 도시로 오고가고 이러다보니 도시가 아주 여러번 폐허가 되던 끝에 1685년 스웨덴으로 넘어갔으나 전쟁 여파로 거의 황무지같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이러다 보니 사람도 별로 없었고 다시 항만 시설이 복구되었으나 한동안 별다른 발전이 없었기에 잊혀진 도시가 되었었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 이후 철도가 개통되면서 스웨덴 남부와 각지를 연결하는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큰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어났고 덴마크 및 유럽 대륙 방면의 연락선이 취항하며 제법 큰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조선소가 폐쇄되는 등 다소 침체되기도 하였으나, 2000년 코펜하겐과 연결되는 외레순 교가 개통되는 등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현재 스톡홀름과 예테보리에 이어 인구나 도시 규모에서 스웨덴 제3의 도시이다.
3 경제
아무래도 항구도시이다 보니, 배를 만드는 조선업이 발달했으나 임금 상승으로 경쟁력을 상실, 1990년대 조선소가 폐쇄됐으며 골리앗 크레인은 단돈 1달러[1]에 한국 현대중공업에 팔리기도 했다. 일명 "말뫼의 눈물"이라고. 그러나 외레순 다리가 개통하면서 코펜하겐에서 일하면서 그곳에서 집세를 내며 사는 대신 잠은 말뫼에서 자고, 일은 코펜하겐에서 하는 것이 싸다는 것이 알려져 도시의 인구는 다시 회복되고 있다.
참고로 골리앗 크레인은 이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로 옮겨서 설치되었는데 한국에서 지어진 이름은 뭔가 약올리는 이름 '말뫼의 눈물'이다. 동아일보 기사
또한 말뫼는 세계 상용차 생산량 3위, 대한민국 수입 상용차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스카니아가 창립된 곳인 만큼 말뫼를 포함한 스웨덴 전체의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스카니아라는 회사 명칭 자체도 말뫼가 속한 지방인 스코네(Skane) 주의 영어식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며 엠블렘에 찍힌 가공의 동물인 그리폰 역시 스코네 주의 상징이다. 현재 스카니아 본사는 스톡홀름 근교 도시인 쇠데르텔리에로 옮겨졌고 스카니아의 대주주 역시 스웨덴의 대재벌인 발렌베리 가문에서 폭스바겐으로 넘어갔다.
4 스포츠
연고지로 축구팀 말뫼 FF가 있다. 지금은 동네북 약체팀이지만 스웨덴 리그 우승 16번을 차지한 리그 강호이자 더불어 1978~7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유러피언 컵 결승까지 오른 강호였다. 이는 북유럽 축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챔피언스 리그 진출 기록이다. 비록 결승에서 만난 잉글랜드 노팅엄 포레스트에게 0-1로 아쉽게 패하며 우승은 실패했지만.
말뫼 FF는 이젠 유러피언 클럽 대회에선 동네북 신세이지만 2014 스웨덴 리그(북유럽은 추위 때문에 한국처럼 춘추제, 즉 봄에 리그를 시작하여 가을에 끝내서 다른 유럽 나라들같이 추춘제(가을에 리그를 시작하여 다음해 봄에 리그를 끝내는 것)과 다르기에 1년에 1시즌을 연다)에서 리그 1위를 달리며 여전히 리그 강호로 군림하고 있기에 3부리그까지 추락하고 (2014~15시즌까지)지금도 2부리그에서 맴도는 노팅엄 포레스트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1990년엔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이 팀과 평가전을 가지기도 했다.
5 출생 인물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당연하게도 말뫼 FF 유소년 출신이자, 이곳에서 프로 데뷔를 했고, 이후 유럽 빅클럽들의 러브콜을 받다가 AFC 아약스로 이적, 유럽 축구에 족적을 남기기 시작한다.
- ↑ 사실상 공짜로 증여한 것인데, 이는 정말로 무상 증여할 경우 필요한 별개의 행정 작업을 피하기 위한 꼼수이다. 군수 분야에서도 외국에 군수 물자를 원조할 때 이런 식의 꼼수를 쓸 때가 많다. 단, 이 크레인을 한국으로 운송, 조립하고 수리하는 비용은 모두 현대중공업에서 부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