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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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베리 가문의 대저택. 5대 150년에 걸쳐 스웨덴 재계의 군주로 군림해 온 역사가 느껴진다.

발렌베리 가문의 계보

1 개요

Wallenberg family

  1. 150년 이상의 시간 동안 5대에 걸쳐 경영 세습
  2. 금융·건설·항공·가전·통신·제약 등, 스웨덴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기업 19곳을 포함해 100여 개 기업의 지분을 소유
  3. 발렌베리 소속의 기업들은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0%를 차지
  4. 발렌베리 소속 기업들의 국내외 매출은 약 1,000억 달러로, 스웨덴 전체 GDP의 1/3과 맞먹는 규모임.
  5. 순이익의 상당수는 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1]
  6. 남은 그룹 이익금은 개인이 아닌 발렌베리 가문의 재단에 적립
  7. 후계자 요건
    1. 경영 세습의 경우 적합한 후계자가 있을 경우에 한함
    2. 후계자는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해야 함
    3. 후계자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야 함
    4. 후계자는 부모의 도움 없이 세계적 금융 중심지에 진출해서 실무 경험과 금융 흐름을 익힐 것
    5. 후계자 평가는 10년이 넘게 걸리며, 견제와 균형을 위해 2명을 뽑음
  8. 반드시 노조 대표를 이사회에 중용
  9. 발렌베리 재단은 대학·도서관·박물관 공공사업에 투자
  10. 재단과 그룹 경영자는 급여만을 받는다(이들은 세계 1000대 부자, 스웨덴 100대 부자 명단에 끼지도 못함).
  11. 발렌베리 가문의 원칙: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esse, non videri).

스웨덴, 아니 유럽 최대(最大), 그리고 최고(最古)의 산업 왕조[2]로 불리는 로열패밀리이자 진정한 의미의 상속자 가문. 이와 더불어 그들의 지배 하에 있는 기업 집단까지 포함한다.

2 가문의 역사

2.1 발렌베리 가의 초석을 닦은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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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에 해군장교 출신이었던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André Oscar Wallenberg, 1816년생)가 은행을 창립하면서 대재벌로서의 발렌베리 가문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던 앙드레는 17세였던 1832년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해군장교가 되었고, 견습 사관으로서 미국에 건너가 2년간 머물면서[3] 은행사업에 자극을 받았는데,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정글 같은 미국 금융업계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후, 은행업에 관심이 생긴 그는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은행을 설립하기 위한 꿈을 키웠는데, 스웨덴 최초의 증기선인 린쾨핑 호의 선장을 역임[4][5]했고, 중부지역 해군책임자를 거쳐 순드발지역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스웨덴 의회에서 주목받는 정치인이 된 그의 정치적 배경은 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당시 스웨덴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던 산업혁명에 힘입어 공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된 은행이 없어서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한다.[6] 이에 주목한 앙드레는 1856년에 은행을 세워서 국내 자산가[7][8]와 외국에서 유치한 자금[9]을 국내 산업에 공급[10]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11] 이것이 발렌베리 그룹의 모태이자 캐시카우라고 할 수 있는 SEB의 원류, 스웨덴엔스킬다은행의 탄생이었다.

2.2 앙드레의 위기, 재도약의 2세대

하지만, 앙드레의 독선에 질린 은행 이사의 절반이 독립을 선언하여 스톡홀름한 델스 방켄이라는 은행을 설립, 오늘날 스웨덴 금융계의 투톱이 생긴 게 이때라고 한다. 게다가 전체 은행자산 중 40퍼센트에 이르렀던 채권자산은 1870년대의 경기과열 끝에 찾아온 1878년 경기침체를 맞으면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의 위기를 초래했다.
3일 연속 뱅크런을 맞자 위기에 몰린 앙드레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은행 경비원들에게 사복을 입히고는 동전을 가득채운 현금자루 하나씩을 걸머지게 하고는 예금을 하러 온 것처럼 행세하게 하여 고객들을 진정시켰다.
다행스럽게도 스웨덴 국왕 오스카 2세가 자신의 개인예금 1만 크로네를 공개적으로 예치했으며, 마지막에는 정부 차원에서 앙드레의 은행을 비롯한 전 은행권에 구제 금융을 해주면서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던 그는 이자율을 대폭 올려 가까스로 파산을 면했지만 예전 같은 영광을 되찾지 못한 채 1886년에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러나 그에게는 21명이나 되는 자녀가 있었고, 이들 가운데서 발렌베리 가문의 진정한 건설자들이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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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승계한 장남 크누트 아가손 발렌베리(1853~1938)는 당시 파리에 있던 세계적인 은행 크레디리요네에서 전문 금융교육을 받았고, 21세부터 스웨덴엔스킬다은행의 이사로 선임되어 은행 경영에 참여하는 등 그야말로 준비된 후계자였다. 은행의 경영자가 된 그는 외국생활 동안 구축한 런던과 파리의 금융계 인맥을 통해 해외자금 조달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그를 통해 공급된 자금은 스웨덴 산업 성장의 기반이 됐다.
그러던 중 그와 그의 은행에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는데, 1911년에 은행들의 일반기업 주식 직접소유 및 경영 참여가 법적으로 허용[12]되면서 금융자본의 산업지배가 가능[13]해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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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20년대에 이르면 대부분의 은행은 피지배기업들의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무너졌는데, 1878~1879년의 금융위기에서 교훈을 얻은 크누트는 이복동생 마르쿠스 발렌베리 시니어(1864~1943)[14]에게 SOS를 요청, 피지배 부실기업들 중 성장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에 대한 워크아웃 작업을 시작[15]했다.
부실기업들을 실사한 마르쿠스는 부실의 주범이 무능력한 경영자들이라는 걸 알고는 이들의 모가지를 모두 쳐냄과 동시에 회사의 부채를 털어줬고, 오랫동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쿠스의 첫 작품인 철도차량 제조업체 아트라스를 예로 들면 기존 경영진을 갈아치운 마르쿠스가 그 자리에 40대의 유능한 경영자를 새로이 투입했는데, 새 경영자는 수익성이 없는 공장을 모두 폐쇄하는 대신에 스톡홀름의 다른 공장에 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다음 부채 청산을 위해 새로운 법인인 니야 아트라스(Nya atlas)를 세워 기존 회사의 자산을 모두 인수하고 나머지는 모두 청산했다고 한다. 그렇게 부활한 회사가 산업용 컴프레서와 압축공구 세계 1위를 달리는 아트라스 콥코의 전신이다.

그밖에도 철강회사 호포스(오늘날의 SKF), 발전설비회사 아세아(현재의 ABB), 트럭제조회사 스카니아 바비스(현재의 스카니아[16]) 같이 건설ㆍ기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크누트는 엄청난 규모의 자선사업을 추진[17]하는 한편, 정계에 진출하여 외무장관으로서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을 선언한 스웨덴의 위기를 극복[18]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그는 부부의 이름을 따서 세운 ‘크누트앤앨리스 발렌베리재단’에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했다.

2.3 그 후

3대가 되면 크누트의 조카 야콥과 마르쿠스가 전자업체 에릭슨을 사들여 오늘날의 그룹 체제를 갖췄다.[19] 두 명 중 한 명은 지주회사, 한 명은 은행을 맡는 것이 보통이다.

4대째 후계자인 마르크 발렌베리는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 총재 신분으로 1971년 자살했다. 3대째 마르쿠스 발렌베리는 '스톡홀름 엔스킬다 은행'을 경쟁 은행인 '스칸디나비스카 은행'과 합병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거대 은행으로 만들고자 했다. 반대로 4대째 마르크는 가문의 은행을 지키고자 합병에 반대했다. 둘은 부자지간이었지만 계속해서 충돌했고, 끝내 합병안이 가결되자 마르크는 자살했다.

현재는 5대째인 마르쿠스 발렌베리과 야콥 발렌베리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5대째 후계자인 야콥 발렌베리의 약력을 알아보자. 그는 1956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976년 스웨덴 왕립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 해군 예비역 장교가 되었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경제학과(1980), MBA(1981)을 졸업했다. 몇 년간 몇 개의 국제적 은행에서 일하다가 1984년에서 1990년까지 SEB 은행에서 일했다. 주로 스톡홀름에서 일했으나, 런던/뉴욕/홍콩/싱가포르 등 금융 중심지에서도 일했다. 1990년에서 1992년까지 Investor AB 사의 부사장 (Deputy Managing Director)으로 일했다. 1993년 SEB 그룹에 재입사해 1997년에는 CEO가 되었고 1998~2005년에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5대째 후계자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역시 비슷하다. 스웨덴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뉴욕의 시티은행 본사를 시작으로, 독일 도이체방크, 영국 SG워버그, 홍콩 시티그룹에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가문의 후광을 입어 커리어 패스를 쉽게 만들었을 수도 있으니 마냥 맹신하지는 말자.

2.4 보쉬 스캔들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웨덴은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택하는 전략을 취한다. 발렌베리 가문 역시 양국과 모두 교류하면서 전쟁에 있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으며, 이 때문에 전후 보쉬 스캔들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일어나자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0년 독일과 미국 간의 관계가 악화되자 발렌베리 가문의 두 명의 경영자 중 한 명이었던 야콥 발렌베리는 독일 회사인 보쉬의 미국 자회사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문제는 이 계약에는 비밀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전쟁이 끝난 뒤 발렌베리는 보쉬에게 회사를 돌려주는 대신 보쉬는 발렌베리에 거액의 대가를 지불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미국과 독일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내 독일 자산이 전부 몰수되었으나 보쉬의 미국 자회사만은 발렌베리와의 밀약으로 이러한 조치를 피할 수 있었고, 전후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발렌베리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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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발렌베리 가문은 나치에게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가문의 일원 중 하나였던 스웨덴의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수만 명의 유대인들을 나치와 화살십자당의 마수로부터 구출하여 ‘헝가리의 쉰들러’[21]로 찬양받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소련군에 의해 수감되었다가 독살되었지만, 그의 행적과 죽음은 유대인들의 증오에 대한 발렌베리 가문의 방패가 되었고, 행위 자체의 인도적인 면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2.5 가문 사람들의 생활

그들은 선대 오너들의 이름인 '마르쿠스'나 '크누트', '야콥' 등의 이름을 자주 쓰는데, 이는 선조들의 이름을 쓰면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가문의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발렌베리 가문 오너로서 갖춰야 할 기본자세를 체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옷은 형제가 물려입고, 계절에 따라 잔디깎기, 갈퀴로 낙엽 모으기 등등의 집안일을 하는 대가로 용돈을 받으며,[22] 그 용돈의 반은 저축을 함으로써 근검절약을 익힌다고 한다. 게다가 사업 이야기를 할 때는 문 앞에 앉혀서 이야기를 듣게 한 다음 사업 안건 해결 방식의 근거를 묻게 함으로써 기업가정신을 익히게 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집안에서부터 제왕학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다.

오너 2명을 선발하기 때문에 독단경영을 할 수 없다. 오너라 하더라도 지주회사를 통해 비전/경영전략/투자 등 거시적인 부분만 결정하고, 세세한 결정은 전문경영인이 한다.

장자상속 전통이 없이 능력별로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태어난 순서에 관계없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선대 이사의 자녀라고 해서 이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사 후보는 발렌베리 가문의 수십명의 자녀 모두에게 열려 있다. 거기다 자격조건이 아주 특이한데,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예비역 장교여야 하며, 자력으로 외국 명문대 MBA를 취득하고, 발렌베리 이외의 외국 금융기업에 입사해서 수년간의 경력을 쌓아야 하며, 이사 후보생이라도 하급 임원의 자리에 오르는 건 최소 40대다.[23]

3 발렌베리 그룹

발렌베리 그룹 지주회사인 Investor AB 홈페이지

발렌베리 가문은 공식적으로 발렌베리 그룹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훈 중 하나가 ‘존재하나 드러내지 않는다.’[24]이기 때문이다. 대재벌이다 보니 세간의 이목이 쏠릴 것을 알고 몸을 숙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예 가훈으로 정하여 후손들에게 전하는 듯하다. 그런 가훈 덕분인지 창업자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 이후 150여 년간 5대에 걸쳐 경영권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세습 재벌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존경받는 가족경영기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3개의 발렌베리 가문 소속 재단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데, 몇몇 회사[25]는 재단에서 직접 소유하는 기업이다. 나머지 회사들은 재단에서 직접 소유한 지주회사 ‘인베스터’의 피지배 기업인데, 재단과 인베스터 산하에 있는 기업들을 보면......

발렌베리 가문이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세계의 기업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 Stockholm Enskilda Bank, 스칸디나비스카엔실다 은행의 전신)[26]에릭슨(통신장비)[27]일렉트로룩스(전자)[28]사브(방위산업)[29]아트라스콥코(광산장비, 공기압축기)[30]감브로(투석치료)
스카니아(트럭)[31]SKF(베어링)[32]SAS(항공운항)[33]ABB(발전설비&엔지니어링)[34]허스크바나(전동공구)[35]소비(바이오)[36]
아스트라제네카(제약)[37]스토라엔소(제지)[38]나스닥OMX(증권거래소)[39]AIK(축구클럽)[40]
기타등등 스웨덴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구급으로도 경쟁력 있는 기업 19곳을 포함해 100여 개 기업의 지분을 소유[41]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구조를 근거로하여 ‘이 같은 재벌 위주의 구조 때문에 자산의 재분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가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발렌베리 산하 기업에서 나온 배당금은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의 개인 금고가 아니라 발렌베리 가문 소유의 재단으로 넘어간다. 게다가 재단의 후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집행하고, 투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매년 조 단위의 배당금을 스웨덴의 과학기술 및 학술 사업 발전 후원금으로 쓰며[42], 재단의 재무상황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실제로 2004년 기준에 의하면 인베스터의 명예회장인 피터의 개인 주식자산은 당시 환율 기준으로 199억, 두 명의 경영자 중 한 명인 마쿠스의 주식자산은 173억, 야쿱의 주식자산은 52억에 불과하다고 한다.[43] 미국의 대기업 CEO들 연봉이 100억 단위가 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정말 검소한 것 맞다.

또한 세계 최대의 DIY 가구 제조업체인 이케아의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 액체포장용 종이팩인 테트라 팩을 만든 라우싱 가문 등의 부유층이 스웨덴의 중과세를 피해 자신들의 재산을 짊어지고 스위스, 네덜란드 등으로 도망쳤을 때에도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에 남아서 묵묵히 가업을 지켜나갔고, 스웨덴 사회에 자신들이 받은 것을 돌려줬다고 하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같은 발렌베리의 지배구조와 기부가 가능했던 건 스웨덴판 노-사-정 대타협인 살트셰바덴 협약 덕분인데, 기업을 소유한 오너들은 보유주식을 상속-증여세 없이 재단에 출연하는 대신 고용을 지키며, 노동자 대표들을 일정 수 이상 이사회에 참여시켜야 한다. 노동자들 또한 자신들의 대표들을 이사회에 보냄으로써 경영에 참여하는 대신 회사의 어려움을 분담하고, 정치권은 오너 가문에게 특혜를 주는 대신 두둑한 세금을 받아 노동자들의 복지유지 및 개선에 힘쓰는 것이 이 협약의 주된 내용이다.

다만 현재 국내에 알려진 발렌베리 가문에 대한 정보들은 어느 정도 왜곡이 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살트셰바덴 협약에서 발렌베리를 비롯한 기업들이 85% 법인세를 납부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협약 어디에도 '법인세'에 대한 언급은 없다.

2011년 기준 살트셰바덴 협약을 따르는 기업
스웨덴 상장기업55%
핀란드 상장기업36%
덴마크 상장기업33%

과거 네덜란드는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 )'[44], 스웨덴은 '살트셰바덴 협약(Saltsjobaden Agreement)'을 통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어냈다고 한국에 알려져 있었으나 '85% 법인세'에 대해서는 한국 언론을 통해 와전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법인세 이야기.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법인세 이야기2 (한국 언론의 자기복제). 또한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살트셰바덴 협약의 내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스웨덴 노동조합총연맹(LO)에서 제공하는 협약 전문(스웨덴어)에도 법인세에 대한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

요약하면
1. 발렌베리 가문은 법인세를 내지 않고 오히려 환급을 받고 있다.
2. 상속세 폐지, 황금주 허용, 낮은 실효법인세를 납부하고 있으며 이 댓가로 높은 기부를 하고 있다.
3. 85% 법인세 납부는 한국 언론의 무검증 복제과정에서 와전된 것이다.

4 한국에서 비슷한 재벌 가문이 나올 수 있는지

그렇다면, 한국에서 발렌베리 가문 같은 사례가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가져볼 수 있다. 또한 꼭 한국에도 이런 가문이 있어야 하는 지도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는 불가하고, 후자는 불필요하다..

4.1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

일단, 한국의 법금산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비금융지주회사는 금융자회사를,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자회사소유할 수 없다. 발렌베리 가문의 사령탑 인베스터가 버틸 수 있는 것도 금융기업이자 돈줄인 SEB로부터 받는 배당금 덕이라는 걸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재벌그룹들 중에서 SEB 같은 든든한 현금줄을 갖고 있는 건 SK 텔레콤을 보유한 SK그룹이 고작이다. 나머지 그룹들은 다들 경기에 민감한 사업군들로 구성되서 불경기를 맞으면 구조조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설사 금산분리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현재 대기업들이 오너의 지배권 강화와 이를 위한 비자금 조성에 열중하지, 공적사업에는 관심이 거의 전무한 상황으로 봐선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할 때 기업집단의 관련 계열사가 부실해져도 계열금융회사는 부실 계열기업에 계속 자금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고, 그로 인해 계열금융회사도 함께 부실해질 뿐 아니라 그 파급효과가 다른 금융회사는 물론 제조업, 나아가 경제전반에 미칠 수 있다.

산업자본 계열의 금융회사가 계열기업을 위해 보유자산을 운용함으로써 지배대주주와 소액주주, 고객간의 이해 상충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금융회사는 특성상 다양한 기업과 관계를 맺으며 해당 기업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데, 기업이 금융회사를 소유할 경우 정보의 독점을 통해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또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집단의 계열은행이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하면서 경쟁사보다 유리한 대출조건과 완화된 대출심사기준 등을 적용하여 계열기업을 지원할 경우 절대적 경쟁력 우위를 확보할 수 있고, 다른 경쟁기업들은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이런 예상은 IMF 당시의 삼성그룹과 2010년대의 동양그룹 사태라는 사례를 통해 증명됐다.[45][46][47]한국이 금산분리를 추구 하는 이유는 재벌기업들이 금융계열사를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재벌 1~20위 내의 오너 가문들은 LG나 SK, 한화, 두산, 한진을 제외[48][49]하면 지주회사가 아닌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가 대표적인 순환출자 기업집단으로, 두 그룹은 현재 차기 오너의 지배권 확보를 위한 경영승계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식 기부에 대한 과세 역시 문제가 된다. 한국에서는 편법적 경영승계나 경영권 대물림을 이유법제 개정 시도가 번번이 백지화됐다.

그 외에 한국 재벌들이 보여준 비윤리적인 모습 문제도 있다. 법인카드 남용, 비상장 주식 사전 매입 후 상장, 일감 몰아주기 등의 갖가지 배임/횡령 등.

4.1.1 참조 문서

4.2 국민정서법에 의한 불일치

설령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겠지만 대한민국 출신의, 수백, 수천억 달러를 가진 국제적인 투자전문가가 인수합병으로 재단 - 비금융지주회사와 금융지주회사의 양대 지주회사 - 비금융자회사와 금융자회사를 갖추고, 재단의 재무상황을 투명하게 공개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노동자 대표들과 주주 대표들을 이사회에 참여시키며, 지주회사를 제외한 전 자회사마다 독립적인 이사회를 운영한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국민정서법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50]에 애당초 한국의 발렌베리 가문이 탄생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시궁창에서 장미꽃이 피길 바라는 것이다.[51]

대개 오너 세습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너들의 독단과 무능력함을 근거로 두지만, 발렌베리 가문처럼 능력과 역량을 입증한 오너들이 각 회사별 이사회의 의견을 존중하는 체제를 갖춘다면 충분히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다.

4.3 반드시 필요한가?

재벌에 대한 비판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대체 왜 발렌베리 가문이 나오길 기대해야 하는지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궤를 함께 한다. 딱 잘라 말해서, 윗사람들이 먼저 나서길 기대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면 애초에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 안 한다. 애초에 "전근대적인 왕가"와 같은 존재들을 갈망하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전 나무위키 문서에서는 발렌베리 가문을 진정한 로열 패밀리라고 추켜세워주는 서술이 있었는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적 사실처럼 모든 로열 패밀리가 타락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그도 당연한 것이 힘이 한쪽으로 몰리는 순간 계급이 고착화되는건 아주 가능성이 높은 얘기이기 때문이다. 윗사람들이 항상 유능하기만을 기대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면 현재 이렇게 국민들이 나서서 참정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는 성립하지 않았다.

게다가 발렌베리 가문처럼 한 재벌 가문이 오랫동안 독식하는 체제가 바람직한지 그 자체에 대한 의문도 들 수 있다. 실제로 스웨덴은 저런 식의 경제정책의 결과로 인해[52] 자산구조가 상당히 막장이다. 계층 유동성이 심각하게 낮은 것은 덤. 이는 어떤 의미로 '균등한 소득분배가 늘상 유지되는 게 좋은지 아니면 계층 유동성이 활발한 게 좋은지'에 대한 의문과도 직결된다. 재벌은 근본적으로 동족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계급 고착화를 더욱 가속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물론 한가닥씩 하는 선진국들은 계층 유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워낙에 국가가 크기에 눈에 안 띄는 거지 미국 또한 계층 고착화는 심각한 편이다. 독일, 영국, 스위스 등의 선진국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차라리 크게 성공하겠다는 야망이 있다면 계층 유동성이 활발한, 체제가 불안정한 나라로 가던지, 그게 싫다면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잡아 경력을 쌓고 독립해서 자기 사업을 하던지 둘 중 하나 뿐이다.

이와 반대로, 프랑스나 싱가포르처럼 국가가 전 산업계에 대해 강력한 통제를 해야 하는 등 아예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재벌 위주의 한국의 현실에는 적용하기 힘들다. 발렌베리 가문으로부터 한국의 재벌들이 뭔가를 "배울 순" 있겠지만, 이걸 기대하는 건 어렵다.
결국 답은 시민들의 감시인 민주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사실, 발렌베리 가문이 "Esse, Non Videri(존재하나 드러내지 않는다.)"를 가훈으로 삼고, 스스로 엄격한 후계자 선발 프로그램을 통해 경영을 승계하는 건 스웨덴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발전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기업이나 기득권층이 날고 긴다 해도 민심을 등에 업은 정부가 작심하고 합법적으로 손대면[53]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게 역사를 통해 증명됐다. 즉, "지속성장이 가능하고 누구나 출세할 수 있는 선진경제대국""빈부격차와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서로 상반된 개념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고민이 오늘날의 인류, 그리고 그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 기업가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해기 위해 근본적인 개념의 노블리스 오블리제[54]가 사회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발렌베리 가문"을 칭송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기득권층을 지속적으로 감시, 견제할 수 있는 힘의 구조를 만들어낸 스웨덴 사회로부터 뭔가를 배워오는 것이 될 것이다.[55][56]

5 관련 링크

(the free encyclopedia)Wallenberg family
삼성, 발렌베리 가문을 꿈꾸긴 했을까?
스웨덴 157년금융名家 발렌베리가문

6 관련 문서

  1. 한국에서는 '법인세 85%'로 환원한다고 퍼졌지만 스웨덴에는 법인세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2. 스웨덴 GDP의 30% 규모만한 세계시장 매출(절대 스웨덴 경제의 30%를 지탱하는 게 아니다. 액수만 그 정도 규모라는 거다.), 주식시장의 약 50%를 차지하는 금융-비금융 기업집단을 5대 150년에 걸쳐 계승하는, 정말로 뼈대 있는 대(大) 명문가(名文家)라고 할 수 있다.
  3. 당시 스웨덴 해군은 해군에 소속을 두면서도 다른 일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 앙드레는 이 배에서 청소를 담당하던 미나 앤더슨과 결혼하여 5명의 자녀를 뒀는데, 그녀가 죽자 어린 조카들을 돌봐줬던 처형 로 비사 사이에서 2명의 자녀를 봤다.이거 참...
  5. 로 비사와는 정식 혼인을 안 해서 발렌베리 가문을 힐난하는 소재가 됐는데, 이런 사생활과는 달리 SEB의 전신인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은 세계 최초로 여성을 정식 직원으로 고용한 은행이라고 한다.
  6. 그 전에도 은행이 있긴 했지만 지주들의 수요나 만족시키는 보수적이고 낙후된 시스템이어서 산업혁명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7. 첫 고객이 부유한 상인집안 출신으로 유산관리에 애를 먹던 자기 모친이었는데, 유산을 맡아 관리하는 대신 매 분기마다 5.35%씩 총 21.4%의 이자를 지급했다고 한다.
  8. 여기에 해군 동기들을 고객으로 유치했다고 한다.역시 인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하다.
  9. 스웨덴 최초로 자금시장 거래, 채권발행, 해외차입 등을 도입했고, 다른 은행들과 달리 예금유치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10. 영국, 프랑스 등의 선진 공업국으로부터 수요가 증가되던 철광석과 목재가 끝내주게 많은 스웨덴이라 광업과 목재가공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했고, 덕분에 은행업도 탄력을 받았다고 한다.
  11. 얼마나 많은 부를 쌓았는지 북유럽의 메디치, 스웨덴 제 2의 군주라는 별명을 들었다고 한다.
  12. 금산분리법이 해제된, 그야말로 충공깽스러운 사건;;;
  13. 사실 이 법안은 은행권의 로비에 의해 통과됐는데, 1934년에 집권한 사회민주당에서 ‘스웨덴판 글래스-스티걸법’, 다시 말해 금산분리를 다시 입법화하면서 은행권에게 빅엿을 먹였다. 그러나 몇 년 후 은행들에 대해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대신 기존 소유주식을 양도할 수 있도록 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발렌베리 그룹의 구조가 3개의 가문 소유 재단을 정점으로 지주회사 인베스터 밑에 금융업체인 SEB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있는 형태로 갖춰진 것이다. 금융업체라는 캐시카우가 자회사로 있으니 발렌베리 그룹으로서는 절대로 망할 일이 없는 셈.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주회사법에 의해 비금융지주회사는 금융업체를,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업체를 지배할 수 없다.
  14.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웁살라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15. 오늘날로 치면 사시에 합격해서 판사 임용을 앞두던 재벌 2세가 2대 회장이 된 이복형에게 코 꿰여서 법복을 포기하고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된 것이다.
  16. 2000년대 후반 몇 년 동안 지분변동이 생기면서 2008년에 이르면 발렌베리가 남은 지분까지 폭스바겐에게 매각하면서 폭스바겐이 70.94%의 주식을 보유, 스카니아의 최대주주가 됐다.역시 자동차계의 레알 마드리드;;;
  17. 스톡홀름 시청사 신축자금을 지원(주로 골든홀 건축에 투입됐는데, 이곳에서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했고, 유럽최초의 경영대학인 스톡홀름경제대학의 설립을 주도했다.
  18. 그 당시 바다의 조폭 넘버원이었던영국의 해상봉쇄 때문에 영국과의 무역협상이 유일한 살 길이었는데, 스웨덴에 방문한 영국 측 협상 대표단의 대표였던 에릭 햄브로(현재 투자운영 부분은 JO 햄브로로 떨어져나갔고, 나머지는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에 인수되어 SG햄브로 은행이 돼버린 햄브로 은행의 오너가문 출신이라고 한다.)가 크누트의 친구여서 잘 해결됐다고 한다.이 정도면 정말 미친 인맥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 발렌베리 가문의 오너들은 야콥, 마르쿠스라는 이름을 많이 쓰는데, 이는 선대 오너들의 이름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위대한 업적과 가문의 장대한 역사를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을 쓰는 거라고 한다.
  20. 다만 당시의 시대상을 보면 스웨덴 자체가 중립국으로서 연합국과 독일 사이에서 양면 외교를 취하고 있었고, 발렌베리는 독일만이 아닌 연합국과도 교류하고 있었으며, 이런 문제로 발렌베리 외의 다른 스웨덴 기업들 역시 독일과 교류하고 있었다.
  21. 그가 일하면서 유대인들을 구한 곳이 헝가리였기 때문이다.
  22. 이 때문에 가문 사람들 중 학교 교재를 저당잡혀 용돈을 구한 이도 있다고 한다;;;
  23. 군대는 석연찮은 이유로 면제, 타 기업에서 실무자로 근무한 경력 없이 바로 부장급 입사, 20대 후반에 하급 임원이 되는 한국 재벌 3세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24. 스웨덴어로 'Esse, Non videri'
  25. SKF, 스토라엔소 등
  26. 스웨덴 2위의 거대금융기업으로, 스웨덴 왕실과 거래하는 로열 뱅커(royal banker)이자 발트해 연안권에서 잘 나가는 금융그룹이다. 상술한 대로 발렌베리 가문의 뿌리이자 든든한 돈줄.
  27. 기지국에서 쓰는 교환기 등의 통신설비를 만들고 소프트웨어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2012년 기준 매출350억 달러라고 한다;;; 한때는 소니와 손잡고 소니에릭슨 엑스페리아 스마트폰을 내놓기도 해서 알 사람은 아는 회사... 인데 에릭슨 손 뗀지 꽤 됐다. 지금 소니의 신세를 보면 잘 한 것일지도.
  28. 한국에서는 청소기로 유명세를 치렀지만, TV를 제외한 나머지 가전제품만으로 2013년에 전세계에서 20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29. KFX사업에 참여하겠다고 했던, 3차 FX 사업에 JAS-39 그리펜을 내세웠던 그 사브다. 자동차 회사와는 갈라진 사이이다.
  30. 광산채굴용 소형 착암기와 공기압축기 시장 세계 1위라고 한다.
  31. 상술한 각주대로 2008년부로 발렌베리 가문이 완전히 손을 털고 나왔기 때문에 폭스바겐이 의결권과 주식비율 모두 최고주주이다.
  32. 발렌베리 재단 직속으로, 베어링 분야에서의 매출로 10조 단위를 찍는 세계구급 기업이다.
  33.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3개국이 2 : 2 : 3의 비율로 출자했고, 민간 : 국가의 비율이 1 : 1인 민관합작항공사다. SAS의 설립을 계기로 세 나라를 호구로 취급했던 타국의 대형항공사들이 서비스를 강화했다카더라.
  34. 지멘스, GE와 더불어 세계 3대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꼽히고, 매출은 2012년 기준으로 50조 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서울특별시 도시철도공사 5000호대 전동차에 지상용 인버터를 납품해서 5호선을 소음철로 만든 회사이다.
  35. 전기톱과 모터사이클에서 유명한 회사다.
  36. 이쪽은 투자한 지 얼마 안 된 신생업체라 잘은 모르겠다.
  37.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장약 로섹(Losec, 성분명 omeprazole. 개발만 20년이 넘게 걸렸는데, 발렌베리 가문 오너들의 지지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덕분에 개발에 성공하여 출시하자마자 10년간 세계 1위를 지켰고, 2001년에는 단독 매출 55억 달러를 찍었다고 한다;;;)을 출시한 아스트라(발렌베리 가문의 기업)와 영국의 제네카(원래는 화학회사였는데, 제약부문을 분할하면서 출범)가 합병(발렌베리 가문의 주식비율은 4%에 못 미치지만 많은 연구센터들이 스웨덴에 있다고 한다.)하면서 탄생한 거대제약회사로, 매출이 40조 원 이상이라고 한다.
  38. 발렌베리 재단 직속으로, 발렌베리 가문에서 소유했던 스토라(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라고 한다.)와 핀란드 정부가 최대주주인 엔소를 합병하면서 세계 1위의 펄프-제지업체가 됐다. 합병시 발렌베리 가문이 2대주주로 밀려남에도 추진했다고 하니 엄청난 뚝심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39. 산하에 있던 OMX(북유럽증권거래소)가 고점이었을 때 두바이에게 팔았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OMX와 나스닥 거래소를 합병한 나스닥OMX의 주식을 시장에서 사들였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신의 한 수.빌리장석도 울고 갈 호구잡기ㅎㄷㄷ
  40. 발렌베리 가문 소유긴 하지만 여기 놓기는 급이 너무 떨어진다.
  41. 인베스터는 주력기업 외에도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꾸준히 포트폴리오를 관리한다고 한다. 100여 개 기업 지분을 소유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비롯된 거다.
  42. 대략 2~3조 원 정도가 매년 스웨덴 학술계에 들어가는데, 스웨덴 국적으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탄 이들은 거의 다 발렌베리 재단의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43. 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가의 신화, 87p.
  4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847257&cid=43667&categoryId=43667
  45. 첫 에피소드는 IMF 당시 이야기다. 차덕후로 소문난 이건희 회장이 직접 추진해 설립한 삼성자동차가 IMF 크리를 맞아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면서 삼성그룹 전체 계열사를 연쇄파탄시킬 수 있을 정도의 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도 국내 최대 보험사였던 삼성생명삼성화재의 자금력 덕분에 그 상황에서 역으로 기아자동차를 먹어 빅딜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다. 그렇지만, 정부의 압력으로 삼성자동차를 그룹에서 분리시켜 위기를 넘겼다.
  46. 이 이야기에 대해 '이건희 스토리'라는 평전에서는 삼성 그룹이 정치권의 압박 때문에 신호공단으로 들어가면서 생산시설 건설, 특히 지반 강화 비용 때문에 부실이 심해졌다며 삼성그룹을 두둔한다. 그렇지만, 정부는 그 당시의 국내 자동차산업이 포화상태여서 신규 진출을 제한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동차사업에 진출하려고 무리하면서까지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의 신호공단에 설립하기로 했으니 자업자득인 셈.
  47. 두번째 에피소드는 삼성그룹의 출자구조다. 삼성그룹 오너가문은 삼성전자라는 회사의 주식에 대한 직접 보유분이 4%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건 오너일가가 직/간접적으로 압도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의 7%를 소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렌베리 가문과는 태생부터 완전히 다르다. 이쪽은 원래 은행 가문으로 시작해서 산업계에 진출했고, 지배력 또한 확고했기 때문.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권 주도 하에 발전한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역사를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48. 정확히 말하자면 순수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한 건 LG와 SK이고, 한진은 순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중이며, 한화와 두산은 사업지주회사 체제이다. 그나마 확실하게 완성된 건 LG밖에 없는데, SK 그룹은 지주회사 SK 위에 SK C&C가 있기 때문이다.
  49. 그렇지만 SK그룹도 2015년 8월부로 지주회사 SK와 SK C&C를 합병하면서 사업지주회사로 출범했다.
  50. 정부와 언론의 인색함도 문제가 있다.
  51. 우리나라에서 발렌베리 가문처럼 노동조합 대표들에게 이사회 자리를 배당해도 지금까지 노조가 보여준 모습을 보면 그들이 잘 할 지에 대해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아무리 판을 만들어도 그 판의 수준에 맞출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말짱 황이다.
  52. 복지를 허용하는 대신 기존 기득권층의 위치를 보장하는
  53. 경찰, 검찰, 국세청, 감사원, 국정원을 모두 동원한 합법적 조치 (다만, 국정원은 특성상 양지 활동 불가.)앞에서는 정주영, 이병철이 살아돌아와도 무릎꿇을 수밖에 없다.
  54. 부귀영화를 맛본 사람으로서 이타심을 발휘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물질적-정신적 행복을 얻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
  55.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재벌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지속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56. 스웨덴은 소위 좌파정권이 반백년 넘게 집권했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과 타협하는 동시에 현실의 굴복하지 않았고 그게 발렌베리의 현재모습이다. 단순히 발렌베리 가문이 대단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발렌베리 가문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