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에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합니다. 불법적이거나 따라하면 위험한 내용도 포함할 수 있으며, 일부 이용자들이 불쾌할 수 있으니 열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실제 사건·사고를 설명하므로 충분히 검토 후 사실에 맞게 수정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틀을 적용하시려면 적용한 문서의 최하단에 해당 사건·사고에 맞는 분류도 함께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분류 목록은 분류:사건사고 문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500px
태풍 매미의 최전성기의 모습. 이때 매미는 최저기압 910hPa, 최대풍속 77.8m/s, 사피어-심슨 CATEGORY 5 급의 괴물이었다.
← 2002년 | 2003년 태풍 목록 | 2004년 → | ||
야냔 | 구지라 | 찬홈 | 린파 | 낭카 |
소델로 | 임부도 | 고니 | 모라콧 | 이타우 |
밤코 | 크로반 | 두지앤 | 매미 | 초이완 |
곳푸 | 켓사나 | 파마 | 멀로 | 니파탁 |
루핏 | - | - | - | - |
1 개요
매미의 진로도. 최전성기 힘의 상당 부분을 남해 연안까지 유지하면서 한반도에 내습했기에 더욱 피해가 컸다.
태풍 매미가 상륙할 때의 상황을 보여주는 동영상
2003년 9월 12일 대한민국을 강타한 태풍 이름. 추석연휴에 강타했기 때문에 명절 분위기를 다 망쳐놓았다. 매미란 이름은 북한이 제시한 이름으로, 쎌마, 프라피룬, 루사만큼이나 크나큰 피해를 입혔다. 북한의 대남 도발사 특히 2001년 프라피룬이 흑산도쪽에 강풍으로, 2002년 루사가 영동지방에 집중호우로 피해를 큰 피해를 입혔다면 매미는 부산/경남 해안지역에 강풍과 해일로 큰 피해를 입혔다. 특히 강풍은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정도 였는데, 50m/s까지 견디게 설계된 부산항의 크레인[1]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제주에서는 순간 최대 풍속 60m/s[2]를 기록하면서 2년 전 프라피룬이 세운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워버리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풍속계의 측정 상한이 60m/s이었기 때문에…실제로는 더욱 강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매미가 우리나라를 강타한 게 상대적으로 약한 왼손 펀치인 가항반원이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힌 나머지, 결국 두번 다시 태풍 이름으로 쓰이지 못하게 되었다. 대체명은 무지개이다.
2 피해
매미의 위력을 잘 보여준 부산항의 무너진 크레인들.
이 태풍 때문에 한때 대한민국의 경제가 마비될 뻔 했다.
매미로 인해 부산 해운대구 모 초등학교의 옥상 위에 임시로 설치해둔 가건물 2층이 날아가면서 1, 2학년 아이들의 교실이 사라졌다... 결국 1, 2학년 아이들은 건물이 증축될 때까지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거나 오후 1시에 등교를 하여 다른 학년의 교실을 빌려 수업을 했다.
광안리 수변공원에 매우 큰 바위덩어리가 바닷속에서 날아왔다... 현재는 태풍 매미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그대로 놔두어 전시(?)하고 있다. #
부산 낙동강에 있는 다리, 구포교의 일부 구간이 증발하였다. #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의 일부 지붕이 날아깄다. #
거제로 들어오는 송전탑이 죄다 쓰러지며 거제 전역에 3일간 정전이 일어났다. 삼성, 대우 두 곳의 조선소도 개판이 된 것은 덤. 바닷가 인근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는 바닷물이 마구 들어와 자동차들이 죄다 침수되기도 했다.
이 거대한 태풍의 강력한 풍속과 낮은 기압은 창원(당시는 마산시) 해안가에 괴멸적인 상처를 남겼다. 기압 때문에 부풀어오른 바닷물이 만조와 강풍이 겹쳐 5미터짜리 해일을 몰고왔던 것. 해일은 부두를 넘어 해안가에 있는 아파트단지와 상가의 지하주차장들을 휩쓸었다. 바닷가에 붙어 있는 아파트는 2층까지 물이 차올랐으며,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경남대학교 앞 댓거리는 부두로부터 1.2km나 내륙인 곳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마산 문서를 보자. 마산은 이 해일 때문에 수십명이 사망하는 등 당시 가장 처참하게 박살났던 도시다. 심지어 이 이후 마산(현 창원 마산합포구)에서는 터돋움집이 21세기에 부활했고(…) 마산항 제1부두 인근에는 당시의 피해와 사망자를 기리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당시 강풍의 습격으로 쓰러진 마산 야구장 조명탑.
마산 서항 부두에 쌓여있던 통나무들이 댓거리로 밀려 들어왔다. 이것들이 빌딩의 지하도 입구를 막는 바람에 피해를 키웠다. #
당시 마산의 괴멸적인 피해로 인해 군부대에서는 마산을 고향으로 하는 병사를 특별 휴가를 보내주는 등 전국적으로 피해 복원에 힘썼다. 당시 만조와 함께 마산합포구 일대는 물이 들어차면서 지하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들이 시신으로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다. 경남대학교 앞 사거리에는 배가 떠 밀려와 올라와있을 정도였다고 한다.[3]
대구 수성구는 물고기를 닮은 대형 수석[4]을 신천 가운데 전시했는데, 이 바위는 태풍으로 인해 불어난 물 때문에 북구 칠성동까지 떠내려 가기도 했다.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또 대구에 많이 심어져 있던 개잎갈나무(히말라야시더)가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는데 이 나무가 뿌리가 얕고 바람에 약해 강풍에 모두 넘어지거나 쓰러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북대와 계명대의 개잎갈나무는 전멸했고, 동대구로의 상징인 개잎갈나무 가로수는 복구하니 마니 갑론을박이 일었다가 지금은 강전정된 채 지지대에 의존하고 있다.
신천 고수부지 축대도 곳곳에 피해를 입어 재정비를 해야만 했다.
고층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도 수재를 겪었는데, 창틀에 스며든 빗물이 넘칠 정도로 흘러들어왔다고. 여기에 유리창이 깨진 집들도 꽤 많이 나왔다.
남해안 상륙-동해안 탈출이라는 강원 동해안 및 전남 동부,영남지역 입장에서는 최악의 코스를 그리며 올라온 전형적인 케이스이다. 태풍 전방의 동풍이 부는 지역에 백두대간이 떡 막고 있으면서 비구름이 산맥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대량의 집중호우가 내린 것. 특히 바로 전년도에 비슷한 경로를 그린 루사에 이어서 매미를 얻어맞은 강원 영동지방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5] 루사 피해를 채 복구도 하지 못한 동해안 지역의 인적, 물적 피해가 매우 막심했었다.
3 결과
공식 피해 집계에 따르면 사망·실종자만 132명, 재산 피해는 4조 7천억여원에 이르렀다. 그리고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수많은 지역이 정전피해를 입었다. 또 2003년전에 심은 가로수, 특히 메타세콰이어, 히말라야시더, 소나무같은 나무들은 이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기울어진 뒤 강전정을 당해 볼품없게 변해버렸다.
마산 서항 부두 부근에 세워진 <태풍 매미 희생자 위령비>. 1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매미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 나중에 쓰러진 크레인들을 조사해보니 부실 시공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긴 했지만.
- ↑ 전날 오키나와에 상륙했을때는 74.1m/s였다고 한다.
- ↑ 이 항목을 편집한 위키러의 지인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는데, 이유가 "육지에서 배에 치어서"였다.(...) 댓거리에는 그나마 어선이 떠내려온 정도였지만 진동 앞바다는 섬 위에 5천톤급 쇳덩어리 선박이 걸려 있었을 정도.
- ↑ 시가 10억은 된다고 한다.
- ↑ 사실 영동 동해안은 어지간한 비가 와도 물이 바로 바다로 빠져나가는 지형 특성으로 인해 홍수피해가 잘 나지 않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강릉, 동해, 삼척 등지가 모두 홍수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당시 뿌린 비의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