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FC Liverpool FC | 에버튼 FC Everton FC |
머지사이드 더비 (Merseyside Derby) |
Merseyside derby
사방에 적들이야
- 최근 경기 결과 : 2016년 4월 21일, 리버풀 4 - 0 에버튼, EPL 33R, 안필드
- 다음 경기 예정 : 2016년 12월 17일, EPL 17R, 구디슨 파크
안필드의 첫 주인(에버튼 FC) VS 안필드의 지금 주인(리버풀 FC)
1 소개
잉글랜드의 축구 더비 경기.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명문 클럽인 에버튼 FC와 리버풀 FC간에 벌어지는 지역 라이벌 매치이다.
보통 머지사이드 더비는 프렌들리 더비(The Friendly Derby)라고 평가받는데, 가족끼리도 서로 에버튼 서포터와 리버풀 서포터로 나뉘기 때문에[1] 더비 매치 특유의 폭력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보통 알려졌지만 천만에. 프리미어 리그의 더비매치 중에서 옐로카드는 물론 레드카드가 제일 많이 나오는 더비가 머지사이드 더비이다.[2]
86-87년엔 에버튼이 리그우승을 하면서 유럽 대항전에 진출할수 있어야 했지만 이미 85년에 리버풀과 유벤투스간의 헤이젤 참사가 벌어지고 이후 UEFA에서
리버풀엔 7년, 잉글랜드 전 클럽들에 5년동안 유럽 대항전 경기 전체를 출전금지시키면서 에버튼은 유럽대항전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였기에 더욱더 반감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1985년 헤이젤 참사의 후폭풍을 결국 이 사건과 무관한 리그 우승팀 에버튼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상황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해 양 팀의 성적과 분위기가 썩 좋지 않은 최근 몇 년 간은 상호 비방과 욕설 등등이 난무하고 있다. '이 때부터 결정적으로 감정이 꼬이더니, 특히 닉 밤비가 에버튼에서 리버풀로 이적한 사건으로 아예 원수가 되었다.
2 역사
공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클럽 리버풀과 에버튼. 에버턴과 리버풀의 더비역사는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약 당시 존 하울딩이 자존심이 조금 적었다면 잉글랜드 축구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1884년, 안필드가 개장했을 때, 당시 소유주는 양조업자였던 존 오렐이었다. 오렐은 가까운 구단인 에버튼에게 안필드를 적은 임대료로 빌려주었다. (에버튼이 안필드를 홈구장으로 처음 사용한 것) 사건이 터진것은 에버튼이 3번째 리그 우승을 한 1891년. 바로 에버튼의 회장이자 존 오렐의 친구, 지역의회 의원이엇던 존 하울딩이 안필드를 산 것이다. 그 후 하울딩은 에버튼에게 안필드에 대한 임대료 인상을 비롯해 재정 운영에 대한 의견대립으로 마찰을 빚었다. 존 하울딩에 의해 안필드를 잃은 에버튼은 그 해 1892년에 지어진 미어그린(Mere Green/ 현재 구디슨 파크의 이전 이름)으로 옮겼다. 존 하울딩은 안필드에 직접 팀을 창단하는데, 당시 존 하울딩이 창단한 팀이 바로 리버풀 FC이다.
창단 당시 리버풀FC의 이름은 에버튼 F.C & 애슬레틱 그라운즈. 하지만 축구협회에서 에버턴과 비슷하게 이름을 가지고 창단할 수 없음을 통보하여 새록게 이름을 리버풀FC라고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2004~2005 시즌에도 두 팀의 악연은 계속됐다. 당시 에버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를 해 리그 4위까지 주어지는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따냈다. 그런데 프리미어리그에서 5위로 밀려나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놓친 리버풀이 하필이면 그 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자 "전 대회 우승팀을 탈락시킬 수는 없다"는 여론이 일었고 에버튼은 또 다시 리버풀 때문에 출전권을 놓칠 위기에 처했다. 리버풀이 출전하게 되면 4위를 한 에버튼은 리버풀에 밀려 출전할 수 없게 되기 때문. 그러나 양 팀에 다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부여한 유럽축구연맹의 배려로 에버턴은 어렵사리 꿈에 그리던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축구연맹은 챔피언스리그의 '전 대회 우승팀 자동 출전'이라는 규정을 새롭게 만들었다.
1894년 10월 13일에 첫 더비 매치가 있었으니, 그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총 214경기가 있었으며 에버튼이 66승, 리버풀이 85승, 무승부가 63번 있었다. 치열한 더비 경기답게 무승부 경기가 여러차례 발생한 것을 알 수 있다. 양 팀의 통산 득점 수는 에버튼이 247점, 리버풀이 293점이다. 최근에 벌어진 5경기만 따지면 양팀이 2승 1무 2패로 동률을 이루고 있다.
3 동향
- 에버튼의 경우 머니 게임이 되어 가고 있는 축구판에서 제대로된
돈줄구단주 및 운영진을 찾지못해 성적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리버풀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
한국시각으로 2010년 10월 17일에 구디슨 파크에서 벌어질 214번째 더비 매치는 어떤 명경기와 스코어가 나올지 혹은 어떤 팀이 강등권에서 계속 헤매게 될지 기대하는 축구팬이 많다.
그리고 양팀은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홈팀 에버턴은 팀 케이힐과 미켈 아르테타의 골로 2-0 완승을 거두며 4년만의 머지사이드 더비 승리(2009년 2월 4일에 FA컵 4라운드 재경기에서 연장승부 끝에 에버튼이 1-0으로 이긴 기록이 있지만 연장전으로 경기가 넘어갈시 경기 기록은 무승부로 된다.)와 순위가 급상승,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고 리버풀은 새 구단주가 보는 앞에서 19위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경기를 관람하는 리버풀의 새 구단주 존 헨리의 표정이 아주 재미있었다.
2011년 1월 16일 리버풀은 로이 호지슨 감독을 경질하고 팀의 레전드인 '킹' 케니 달글리시를 임시대행으로 임명하며 홈인 안필드에서 설욕을 노렸지만 결과는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2011년 10월 1일에 구디슨 파크에서 벌어진 2011-12시즌 첫 번째 머지사이드 더비에서는 오심에 의한 잭 로드웰의 다이렉트 퇴장[4] 이후 수적 열세에 빠진 에버튼이 어려운 경기를 펼친 끝에 리버풀이 0-2로 승리, 지난 시즌 구디슨 파크에서 당한 2-0 패배를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2012년 3월 13일 안필드에서 펼쳐진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스티븐 제라드의 해트트릭으로 리버풀이 승리하였다. 그리고 11~12 시즌 FA컵 4강에서 에버튼과 리버풀이 또 만나게 되었다. 올 시즌 풋볼 리그 컵인 칼링컵을 9시즌만에 우승하여 오랫만에 무관을 벗어난 리버풀과 대조적으로 1994~5시즌 FA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무관인 에버튼의 맞대결이다.그리고 2:1로 리버풀이 역전승을 거두며 FA컵 결승에 올라갔다. 첼시에게 패하여 준우승
2013년 11월 23일 구디슨 극장구디슨 파크에서의 대결에서 올 시즌 상반기 EPL 최고의 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명경기를 보여주며 3대 3 무승부를 기록했다. 특히 에버튼에 임대온 로멜루 루카쿠가 멀티골을 터뜨리며 역전하고, 교체투입된 다니엘 스터리지 가 후반 80분 동점골을 터뜨리고 양 팀 골키퍼의 미친 활약까지 더해져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쫄깃쫄깃했던 경기.
다만 경기 중 미랄라스의 태클에 석연찮은 판정이 들어가 논란이 있었는데, 누가 봐도 엄연한 살인 태클임에도 불구하고 퇴장되지 않았기 때문. 이후 미랄라스가 직접 사과함으로써 해결되었다.
2014년 1월 28일 안필드에서의 더비 매치는 리버풀의 4-0 대승으로 끝났다. 제라드의 헤딩 선제골로 분위기를 완전히 탄 리버풀은 SAS라인의 주력을 활용한 역습 전술로 에버튼을 압도했다. 3-0으로 밀리는 상황이 되자 어떻게든 흐름을 반전시키려는 에버튼이었으나, 수아레스의 카운터 역습 골로 자기엘카마저 무너지는 처참한 패배를 기록했다. 스터리지의 페널티 실축만 없었어도 5-0은 되었다.
2014년 9월 27일 안필드에서 1-1 무승부를 거뒀다. 마리오 발로텔리가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공을 뺏은 뒤 다시 공을 받아 드리블을 하는 과정에서 프리킥을 얻었고, 리버풀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가 기가 막히게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흐름을 탄 리버풀의 공격이 이어졌으나 발로댈리발로텔리가 골대를 맞추는 등 추가득점에 실패했다. 추가시간이 3분이 주어진 가운데 92분 필 자기엘카가 하프발리슛으로 인생골을 기록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1분 뒤 얄짤없이 경기는 무승부로 종료됐다.두 골 다 멋지게 들어간 골이어서 먹히고도 각 팀의 팬들은 별 말 못했다 카더라
2015년 2월 8일 구디슨 파크에서의 더비 매치는 0-0 무승부를 거뒀다. 이 경기는 제라드의 마지막 머지사이드 더비여서 많은 팬 들의 기대를 모았으나...두 팀 다 수비적인 전술을 들고나와 상당히 조심스럽고 느린 템포의 경기운영이 지속되었고, 리버풀에서는 조던 아이브와 제라드의 슈팅외에는 인상깊은 공격적인 장면이 없었으며 에버튼은 선수개인의 속공으로 리버풀의 수비진을 뚫을려고 했으나 에버튼도 딱히 득점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2015년 10월 4일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더비 매치 또한 1-1 무승부로 끝났다. 이로서 더비 3연무. 대니 잉스가 41분 골을 넣으면서 앞서갔으나, 콥들은 마냥 기뻐하지는 못했다. 전반 추가시간에 루카쿠가 골을 넣고 전반을 마쳤다. 후반에도 치고 받는 흐름은 있었으나 양 팀은 모두 골을 성공시키지 못하며 경기가 그대로 끝났다. 그 와중 한 화백의 흥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랜든 로저스 감독의 경질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후 후임으로 발표된 감독은 바로...
2016년 2월 28일 원래는 안필드에서 더비 매치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리버풀의 캐피털 원 컵 참가로 연기되게 되었다.
2016년 4월 21일 안필드에서 열린 더비 매치는 리버풀이 4:0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 리버풀의 레전드 로비 파울러, 제이미 캐러거는 어린 시절 에버튼 팬이었고 스티븐 제라드의 사촌인 앤서니 제라드는 에버튼에서 뛴 적이 있다. 마이클 오언같은 경우 아버지가 에버튼 선수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에버튼의 팬이였다.
- ↑ 프렌들리 더비라는 이름은 양 팀의 서포터들이 여러모로 엮어 있어서 속칭 훌리건으로 대표되는 잉글랜드의 팬문화와는 이질적으로 친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것도 80년대 후반부터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만. 즉, 어디까지나 서포터들끼리 프렌들리했던 거지 팀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전혀 프렌들리하지 않았다. 양 구단 간의 갈등의 골은 리버풀과 맨유의 라이벌 관계보다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요 근래에 카드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에버튼의 브로콜리 머리를한 팔꿈치장인 덕분이다.
- ↑ 이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리버풀 FC측의 농담이 하나 있다. "리버풀에는 두 개의 훌륭한 축구 팀이 있지. 리버풀 FC, 그리고 리버풀 B팀.. 그러나 이 농담 자체는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 감독이 자신의 재임 시절에 한 말로 그 당시의 에버튼은 딱히 돈없이 빌빌대는 이미지가 아닌 오히려 리그 상위권에서 같이 우승을 다투는 관계였다. 애초에 저 농담이 나온게 50~60년대로 아직 축구가 머니 게임이 되기 한참 전이고 빌 샹클리 감독이 저런 말을 한 것도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에버튼을 도발하면서 팀원들에게 투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
- ↑ 경기 종료 이후 며칠 뒤에 FA가 로드웰의 퇴장 징계를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