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1 잉글랜드의 도시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이름한글리버풀 - 해양 무역 도시
영어Liverpool – Maritime Mercantile City
프랑스어Liverpool – Port marchand
국가·위치영국 리버풀

등재유형문화유산
등재연도2004년
등재기준(ii)[1], (iii)[2], (iv)[3]
지정번호1150


(리버풀 시의 상징 리버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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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에 위치한 공업 도시이자 항구 도시. 일단 이 도시 하면 생각나는 건 비틀즈축구.

19세기 세계 물동량의 절반이 리버풀 항구를 거쳤을 만큼 세계적인 무역항을 갖춘 도시이다. 이 당시 리버풀은 런던보다 부유한 도시여서 “대영제국은 리버풀 덕에 가능했다”는 말까지 돌았을 정도로 찬란한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4]

인구는 1931년 84만 명을 찍었으나 이후 계속 줄어들어 2007년엔 44만 명까지 떨어졌다. 산업혁명 때부터 영국 공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공업의 대세가 석탄석유로 옮겨가는 20세기 중반부터 급속하게 쇠퇴했다. 공업물자의 수송을 담당한 것은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철도였는데, 이 노선은 세계 최초로 전 구간에 기관차를 이용한 여객 및 화물 운송을 수행, 근대적인 철도 운송 시스템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맨체스터에 운하가 파인 이후로는 운송이 중단.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두 도시간의 지역감정은 꽤나 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리버풀 FC가 잉글랜드 내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는 것도 그러한 지역감정에 기반한 것.[5]

현재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로도 꼽히는 도시. 잉글랜드 북쪽 도시들의 몰락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도시라 할 수 있다. 이 시기가 그리고 이런 상황을 주도한 것이 마가렛 대처 정부였기 때문에 리버풀 사람들은 마가렛 대처를 진심으로 싫어한다. 덤으로 힐스버러 참사도 이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에 리버풀 FC 팬덤은 독자적으로 마가렛 대처를 싫어한다.[6] 이 때문에 범죄율도 가장 높고 잉글랜드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몇개가 리버풀에 있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악동계의 끝판왕 조이 바튼이 회고하기를,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공격성이 있어야 된다고 했을 정도. 구단이 무너지고 도시가 무너지고 [7]

리버풀 억양은 괴이하기로 영국내에서도 유명하다(scouse). 외국인들은 거의 못 알아들으며 타지방 사람들도 그닥 못알아 듣는다. 심지어 리버풀 사투리는 영어가 아니라 리버풀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CNN의 대표 기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퀘스트(Richard Quest)가 그나마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사람들도 쉽게 알아들을 만한 리버풀 억양을 구사하는데, 미국인들에게는 굉장히 이질감이 심한 영어 취급받는다. 궁금하면 유투브에서 검색해보자.[8]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거나 혹은 영어가 익숙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스코틀랜드 억양[9] 수준의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현상 같은데??

비틀즈 멤버들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 멤버들도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고,[10] 함부르크와 여러 곳을 전전한 뒤 인기가 많아진 뒤에는 런던으로 진출하여 활동했으니...[11] 비틀즈가 최초로 라이브 공연을 했던 캐번 클럽 등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비틀즈 광팬을 대상으로 한 관광업이 현재 리버풀에서 제일 잘나가는 수익산업이다. 2009년 '리버풀 호프 대학' 석사과정에 비틀즈학과가 개설된 정도이다.

1980년대에 주로 활약했던 'Dead or Alive#s-2.1'라는 그룹이 이곳 리버풀 출신이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유명한 히트곡나름대로 유용한 용도로 사용되었으니... 그 외 에코 앤 더 버니멘,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 레이디트론, 더 라스, 주톤즈, 엘비스 코스텔로가 이곳 출신이다.

리버풀 FC에버튼 FC의 연고지이기도 하며, 두 구단간의 경기는 머지사이드 더비로 불리며 세계적인 더비를 형성한다.

공립대학인 '리버풀 대학교'가 있으며, 노벨상 수상자인 로널드 로스, 찰스 셰링턴 등이 주요 동문이다. 부근에는 유럽 최대의 가톨릭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리버풀 성당'이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테이트 리버풀'과, '안필드', '비틀즈 스토리','리버풀 박물관', '리버풀 대성당'[12] 등이 있다.

이곳을 본거지로 하는 관현악단인 왕립 리버풀 필하모니 관현악단 또한 유명하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도자기 제조업이 성행해 다소 무겁고 불투명한 연질자기를 생산하기도 했다.

또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세계 최초로 열대 지방의 의학을 연구하기 위해 창설된 'Liverpool School of Tropical Medicine'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타이타닉의 모항이기도하다. 다시 돌아오진 못했지만...

2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맥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에 있는 산맥. '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의 일부로, 길이는 약 140km, 평균 해발고도는 1000~1200m이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4. 물론 흑인 노예 무역의 메카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유럽~아메리카를 잇는 삼각무역의 성황에서 리버풀은 단언컨대 흑인 노예의 집결지 역할을 했다. 따라서 리버풀의 역사는 찬란한 영국 발전 역사이면서 동시에 영국의 추악한 역사이기도 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레트 버틀러는 자신의 재산의 대부분이 이 도시에 있다고 말한다.
  5. 물론 지역감정 뿐 아니라 타이틀을 놓고 경쟁했던 경험 또한 두 팀의 라이벌 의식에 한 몫 했다.
  6. 이 당시 경찰들이 이 참사를 관중들에게 책임전가를 하고,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공식 사과했을 정도이니 당시 정부에 책임이 없다는 소리는 못한다.
  7. 리버풀에서 자란 축구 선수들은 대부분 억세고 파워풀한 스타일을 가졌다. 리버풀 FC의 간판 스티븐 제라드는 아예 조이 바튼과 동네조차도 똑같은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역시 로컬 출신인 제이미 캐러거가 태어나고 자란 부틀 지역은 외진 곳에 주차를 하면 30분도 안 되어서 자동차가 더 이상 못 굴러가게 부서질 정도로 막장 치안을 자랑하며, 웨인 루니가 태어나고 자란 리버풀 교외 크록세스 지역은 총기사고가 이따금씩 일어난다.
  8. Nostalgia Critic은 배트맨과 로빈을 리뷰해면서 얼리샤 실버스톤이 극중에서 런던에서 대학 다니다온 배트걸 역할을 맡았는데, 억양이 너무 강해서 '리버풀 출신인게 틀림없군!' 이라고 깠다.
  9.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은 매력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뭐라하는지 알아듣는건 힘들어한다. 당장에 알렉스 퍼거슨의 인터뷰를 유심히 들어보자.
  10. 사실 비틀즈 멤버들이 모두 전형적인 리버풀 노동계급 가정 출신의 아이들이다. 그래서 깔끔한 외모와 달리 사실은 모두 성격이 거칠었다. 링고 스타의 경우 처음 밴드에 나타났을때, 리젠트머리의 테디 보이 패션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링고 스타 스스로가 말 하길, "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체구도 작고 싸움에도 별로여서 강하게 보이지 않으면 리버풀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라고...
  11. 근처의 맨체스터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음악이 생겨난 것에 비해 리버풀은 머시 비트라는 특유의 음악이 60년대 초반 ~ 중반 떴던 이후에는 별 새로운게 없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70년대 초반 근처의 랭커셔에서 소울 열풍이 불어 영국 특유의 노던 소울(Northern Soul) 무브먼트가 일어났을때, 조용히 손가락 빨고 있었다. 안습.
  12. 성공회 성당과 가톨릭 성당 두 곳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