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풋볼 클럽

(멜버른 디몬즈에서 넘어옴)
오스트레일리안 풋볼 리그
AFL

골드 코스트
(Gold Coast Suns)

GWS
(GWS Giants)

노스 멜버른
(North Melbourne Kangaroos)

리치몬드
(Richmond Tigers)

멜버른
(Melbourne Demons)

브리즈번
(Brisbane Lions)

세인트 킬다
(St. Kilda Saints)

시드니
(Sydney Swans)

애들레이드
(Adelaide Crows)

에센던
(Essendon Bombers)

웨스턴 불독스
(Western Bulldogs)

웨스트 코스트 이글즈
(West Coast Eagles)

질롱
(Geelong Cats)

칼튼
(Carlton Blues)

콜링우드
(Collingwood Magpies)

포트 애들레이드
(Port Adelaide Power)

프리맨틀
(Fremantle Dockers)

호손
(Hawthorn Hawks)
멜버른 FC
Melbourne Football Club
정식 명칭Melbourne Football Club
별칭악마들(Demons), 디즈(Dees), 레드렉즈(Redlegs)[1]
창단1858년
연고지빅토리아멜버른[2]
회장글렌 바틀렛(Glen Bartlett)
CEO피터 잭슨(Peter Jackson)
감독사이몬 굿윈(Simon Goodwin)
주장네이슨 존스(Nathan Jones)
우승
(12회)
1900, 1926, 1939, 1940, 1941, 1948, 1955, 1956, 1957, 1959, 1960, 1964
홈구장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MCG)
(100,024명 수용)[3]
연습구장멜버른 렉탱귤러 스타디움 [4]
공식 홈 페이지[1]

클럽 테마송. [5]

Its a grand old flag

Its a high flying flag
Its the emblem for me and for you
Its the emblem of the team we love
The team of the red and the blue
Ev'ryheart beats true
For the red and the blue
And we sing this song to you
Should auld acquaintance be forgot
Keep your eye on the red and the blue

1 개요

오스트레일리안 풋볼AFL 팀. 멜버른 시 중앙근에 위치한 클럽. 별명인 악마(Demons)는 멜버른 명감독 프랭크 체커 휴즈의 연설에서 비롯한다.[6] 또한 크리켓 위주 시절은 무적의 백색군단(Invisible Whites).

현재 세계 프로 스포츠 구단중 가장 오래된 구단중 하나로 오스트레일리안 풋볼과 MCG[7]와 같이 한, 말그대로 전통과 12번의 우승기록이 있는 전통강호.[8] 하지만 이것은 옛날 이야기.

2 역사

2.1 창단

호식축구의 시작부터 함께해왔다. 클럽도 호식축구의 아버지 톰 윌스(Tom Wills)가 창단.

영국 럭비학교[9] 출신이자, 스포츠 천재에 크리켓 선수에 감독이였던 윌스는 귀국한 후 자신이 만든 풋볼을 실행해보고, 1년뒤 아일랜드인 토마스 스미스랑 호텔에서 풋볼 클럽을 창단한다. 스미스는 스코치 콜레지[10]의 선생이였고 윌즈를 자신의 풋볼을 처음 실행한 경기에서 알게 되었는데, 스카치 학생들이 멜버른 그래머[11] 학생들을 상대로 참가했기 때문. 이미 전에 윌스는 "멜버른"이라는 클럽 이름으로 몇경기를 실행했다는 설이 있긴 하다.

크리켓을 위해 만들어진 풋볼이였지만, 정작 윌스가 비서로 소속된 MCC[12]랑은 별도로 운영했는데, 구장 아래 있던 목장에서 경기하고 호텔에서 모임을 하였다.

2.2 초기 시절/VFA 시절

1880년대의 멜버른-질롱 경기를 그림으로 묘사.

멜버른은 칼튼과 나란히 빅토리아 주의 강호였다. 나란히 관중도 많았고 빅토리아 주 대회도 6번 우승하였다. 이러한 우세를 가지고 있던 멜버른은 1889년에 새로 창설된 VFA에 참가한다. 그러나 MCG는 경기를 했다간 상할 우려가 있어 사용이 불가능.

그러나 새로운 팀들이 강해지면서 입지를 잃자 MCC에게 부탁하면서 MCC는 클럽을 인수하면서 실력이 다시 올라가게 된다. 대신 부유층, 설립 클럽 이미지를 지킬려고 했기 때문에 회원은 적었다. 태즈미니아에서 데려온 천재 프레드 맥기니스(Fred McGinis) 중심으로 한 강호였으나 4번 준우승. 특히 2번은 에센던한테 내주게 되었고 이 둘은 리그내 강호였기 때문에 관중도 많이 동원하면서 이 둘은 나중에 VFL에서 라이벌이 된다.

VFL 전 시즌인 1896년은 4위였으나 리그 내 최고의 선수단을 보유하던 멜버른한테는 실망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강호였던 멜버른은 VFL로 이전하게 된다.

2.3 VFL 시절

첫 시즌은 3위로 마쳐 파이널 조별리그로 진출하나 3경기 다 패하면서 총합 성적은 4위. 다음 두 시즌동안 조용하다가 1900년에 처음으로 우승하게 된다. 시즌 성적은 6위였으나 당대 모든 팀이 파이널에 진출했기 때문에 승리하여 지난 두 시즌 우승했던 핏즈로이[13]을 넘어 우승을 차지할수 있었다.

다음 시즌에는 도중에 맥기니스가 돌아왔긴 했으나 겨우 파이널 진출에 실패하고 다음 시즌에 진출했으나 그 후에는 팀 전력이 약해져 최하위도 몇번 하면서 1925년까지 파이널 진출을 1번하였고 큰 임팩트를 못남기게 되었으나 다음 시즌에 우승하게 된다.

2.4 전성기

멜버른의 리즈 시절. 이 기간동안 10번의 우승의 빛나던 강팀.

1933년에는 리치몬드에서 온 레전드 감독 프랭크 "체커" 휴즈(Frank "Checker" Hughes)가 감독으로 부임한다. 체커는 첫 시즌의 한 경기의 연설을 하였는데,

"니네들은 꽃들처럼 경기하고 있다. 고개를 들어 악마처럼 싸우라고!"

푸치아꽃에서 따온 푸치아에서 악마들로 별명을 바꾸면서 지금까지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1939년부터 3연패를 하게 되면서 정상에 오르게 되고, 돈 코드너와 최고 골키커 프레드 패닝등 많은 스타들을 보유한 멜버른은 1948년 결승에서 에센던을 상대하는데, 에센던이 삽질하면서 무승부. 그리고 재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우승하게 된다.

그리고 1952년에는 전 선수이자 레전드 붉은 혜성여우 놈 스미스(Norm Smith)[14] 감독 부임과 함께 론 바라시(Ron Barassi)[15]가 데뷔하게 된다.

스미스의 스타일은 닥치고 빠르게 뛰는 것이였고, 스미스 지도 아래 선수들은 말 잘듣고 요구를 받을수 있었다. 이 둘은 멜버른을 언급할때 까먹을수 없는 이름들이며, 스미스와 바라시 아래 멜버른은 황금기의 주역이 된다. 첫 부임 후 결승은 풋스크레이에서 내주지만, 1955년에서 1960년까지 5번의 우승을 경험하면서 멜버른을 정상에 올려논다.[16]


다음 세 시즌은 결승은 못 진출했지만 꾸준히 결과는 낸다음 1964년에 전 결승에서 상대한 콜링우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12번째 우승을 기록한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은 바라시는 칼튼으로 넘어가게 되어 다음 시즌에는 파이널 진출을 실패한다. 게다가 놈 스미스를 경질[17]하면서 멜버른은 이후 우승을 못하고 있고, 23년동안 파이널 진출을 실패한다.[18]

2.5 암흑기

디몬즈는 어떻게 약팀이 되었나?

23년 동안은 멜버른의 암흑기였다. 먼저 선수 영입을 위한 지역 배정이 멜버른한테 불리한 편이였고, 13시즌 동안 5번의 감독을 교체하는등 하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1976년에는 파이널에 진출할수 있었는데...풋스크레이랑 칼튼이 생각을 못한 무승부을 하면서 엄청난 점수차를 기록한 멜버른은 파이널 진출의 실패. 한마디로 안습.

65541_0.jpg 1975년 컬러 TV 도입 후 멜버른은 연하게 팀 컬러를 바꿨지만...흑역사. 1987년에 다시 군청으로 돌아온다.

또한 이 기간동한 최하위를 5번 기록하였고, 아직도 최고의 점수차 패배(190점)를 1979년에 기록하였다. 웃기게도 2011년에 2번째 최고의 점수차 패배(186점)도 멜버른이 기록(...)

먼저 다음 시즌 오랫동안 클럽을 운영하고 있던 MCC랑 결별[19]을 하면서 칼튼과 노스 멜버른에서 날던 레전드 론 바라시를 대려왔지만...파이널로 도약하는데 실패하였으나 기초는 지었기 때문에 암흑기를 벗어날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후임은 리치몬드이 전 선수였던 존 노디.

또한 바라시는 아일랜드겔릭 풋볼와 관계를 만들어 선수들을 멜버른으로 데려왔는데...그 중 한명의 청년의 이름은 故 짐 스타인스(Jim Stynes).[20]

2.6 도약

주장이였던 故 로비 플라워(Robbie Flower)[21]는 클럽에서 14년간 있었고 꾸준히 출장했으나...파이널 경험이 없던 선수였다. 그래서 팬들은 플라워를 위해 모금운동까지 하였고 모금은 기대 이하였으나 노디 감독 아래 극적인 마지막 라운드에서 23년만에 파이널에 드디어 진출하였다. 멜버른 팬들이 원하던것이였기 때문에 천만이였다.

준결승 상대는 호손. 젊은 선수 위주에 리빌딩하던 멜버른은 강호였던 호손을 경기 내내 앞섰으나...신입 스타인즈가 패널티를 내주며 버카나라는 결승골을 넣어 슬프게 결승 진출을 실패하였다. 플라워는 이 시즌 이후 은퇴.

다음 시즌에는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호손한테 압도당하여 떡실신당하면서 운없게 준우승. 또한 다음 3시즌동안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결승 진출은 못하였다. 그리고 초보자라고 불렸던 스타인즈가 5년만에 브라운로를 수상하였다.

3년 후 8강으로 늘리면서 준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웨스트 코스트한테 패배. 다음 시즌에는 진격의 브리즈번을 못막아 진출 실패하면서 브리즈번에게 파이널행을 내준다.

다음해에는 성적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AFL호손과 결합을 추진했다. 이유는 같았는데, 재정이 좋아던 멜버른과 달리 호손은 우승의 빛나고도 제대로 된 스폰서가 없었고, 시설이 좋았던 호손과 달리 멜버른은 떠돌아 다녔을 뿐재정이 좋은데 시설은 없다?만이 아니라, 최근 몇십년 동안 성적은 극과 극이였는데다가 호손과 멜버른은 중산층 클럽이였기 때문.

멜버른 회원들은 겨우 찬성했으나, 호손 팬들이 결사 반대를 하여 무산되었다. 게다가 많은 멜버른의 레전드들이 결합에 찬성하여 흑역사.
http://demonwiki.org/image4550 물론 멜버른도 반대파도 있었는데, 전성기의 선수 딕슨은 유대인 상업인이자 멜버른의 팬이였던 조 거트닉을 대려왔고, 또한 거트닉은 무산될 경우 투자에 약속하였다.

게다가 1996년 시즌 마지막 경기가 이 두팀 사이였다. 팀이 사라질지 모르는 사이에서 경기한 두 팀이였고, 결과는 호손이 1점차로 이기면서 파이널에 진출하였다. [22]

다음 시즌 두 팀 뒤에서 1, 2위로 끝냈다. 최하위는 멜버른이 차이했고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를 이기는 이뭐병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당연히 밤 감독은 경질당했고, 후임은 닐 대니허가 맞게 된다.

2.7 대니허 시절

닐 대니허 아래 멜버른은 최하위에서 4강내로 진출하였다. 작년 결승팀 애들레이드세인트 킬다를 꺾어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1위이자 시대 최강 노스 멜버른한테 패배하여 진출에 실패. 그러나 다음 시즌은 9연패를 기록해 파이널에서 탈락하였다.

2000년에는 니츠, 로버트슨, 파머, 슈바르츠, 우오딘과 우제 등이 3위로 이끌면서 먼저 준우승 팀 칼튼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준결승에 올라가 지난 시즌 우승팀 캥거루즈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여 오랫만에 우승할수 있을까 생각했지만...상대가 에센던. 작년에 어이없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번 시즌은 사실상 무적이였던 지구방위대 에센던이였고 1패만 기록하던 팀이였다. 그나마 첫 점수를 얻긴 했지만 에센던은 멜버른 상대로 압도하면서 또 다시 운없는 결승에 진출해 준우승. 게다가 다음 시즌은 11위하면서 앞뒤가 안맞던 시절이였다.

2002년에는 6위로 끝내며 먼저 캥거루즈를 이기고 애들레이드 상대로 MCG버프[23]를 받아 준결승에 올라갈수 있었는데 막판에 어이없는 역전을 당한 다음 또 압도적으로 파이널 탈락.

롤러코스터를 타던 멜버른은 언론 사이에서 욕을 많이 먹었는데 대니허의 연설과 반박으로 그의 자리까지 지켜내었고 연설이 목사같아서 목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다음 시즌은 4라운드 남겨놓고 1위였으나 남은 경기를 져 4강 탈락 후 파이널 경기까지 지면서 실망스럽게 시즌을 마쳤으나...

팀메이트 트로이 브로드브리지가 남아시아 대지진에서 사망했다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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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즌 2005년에는 그를 추모하면서 에센던을 상대로 복수하면서 첫 3경기를 승리했으나 중반에 위험에서 탈락했을 뻔했으나 질롱을 가까스럽게 어렵다는 질롱 원정에서 승리하면서 7위로 마쳤다. 상대는 질롱. 이미 두번 상대로 다 승리했으나 파이널에는 그게 따르지 않았다. 제프 화이트의 코뼈가 부셔지는 등 악몽을 겪으며 시즌을 마감하였다.

2006년에는 3패로 시작하였으나 극복하면서 다시 7위에 않게 된다. 상대는 세인트 킬다. 지난 두 시즌에 비하면 약해진 편이였으나, 어려운 편이였고 경기 초반에는 내내 밀리고 있었으나...

막판에 역전에 승리를 가져가면서 퍼스로 가게 되어 프리맨틀를 상대했으나 패하면서 시즌을 마감하였다. 이게 아직도 멜버른의 마지막 파이널 진출이라 마지막 환희였다.

2.8 추락

다음 시즌은 먼저 세인트 킬다 상대로 지면서 같은 동네북 리치몬드에게도 패하면서 10연패를 하면서 부진하자 대니허는 책임지고 팀을 떠나게 된다. 후임은 故 딘 베일리.[24]

2008년은 클럽의 150년 기념이자 악몽. 재정에 문제까지 생기면서 최하위를 못벗어 났다.

3 팀 상징

=== 유니폼 ===
  1. 가끔 쓰이는 이명. 멜버른의 양말로부터 유래.
  2. 정확히는 멜버른 중앙 주변이지만, 멜버른의 첫 클럽이라는 의미로 딱 확실한 연고지는 없다.
  3. 가끔씩 도클랜드 스타디움을 사용한다.
  4. 축구구단 멜버른 빅토리, 멜버른 시티와 럭비리그 구단 멜버른 스톰도 같이 쓴다.
  5. AFL의 원조 클럽들의 테마송은 자작이 아니기 때문에 원곡이 있다. 원곡은 You're a Grand Old Flag.
  6. 원래는 푸치아꽃에서 따온 푸치아(Fuchsias).
  7. 멜버른과 MCG의 멜버른 크리켓 클럽과 창설부터 관계가 많이 있다.
  8. 멜버른이 부족한게 있자면 응원수.
  9. 럭비의 고향.
  10. 동부 호손에 있는 장로교사립학교.
  11. 동남부 코필드에 있는 성공회사립학교. 2008년호식축구 150주년을 기념하여 두 학교끼리 경기하였다.
  12. 멜버른 크리켓 클럽(Melbourne Cricket Club). 지금은 MCG의 프리미엄 회원들로 통하는 단어. 회원 되기고 시간과 돈이 많이 소모된다.
  13. 브리즈번 라이온즈의 전신.
  14. 현 호식축구 코칭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결승에서 최고의 선수가 수상하는 놈 스미스 메달이 이 분께서 따왔다. 참고로 첫 수상자는 스미스의 7촌 함즈.
  15. 호식축구 레전드 선수이자 감독이자 10번의 우승을 하였으며, 풋볼 코드를 나누는 바라시 라인이 이 분께서 따왔다.
  16. 단 1958년 우승은 콜링우드한테 내주는 바람에 4관왕을 실패하였다.
  17. 다시 불러오긴 했으나 건강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사임.
  18. 가끔식 이것을 놈 스미스의 저주라고 불린다.
  19. 아직도 관계가 깊고, 많은 멜버른 팬들이 MCC 회원.
  20. 2012년에 암으로 별세하였다.
  21. 멜버른에서 272경기 출장의 레전드. 2014년에 별세.
  22. 아이러니하게 호손의 감독 클라크슨은 당시 멜버른 소속이였다.
  23. 2004년까지는 최소한 한 파이널 경기를 MCG에서 취뤄야 한다는 계약이 있어서 빅토리아 외+ 홈팀중 최하위일 경우에는 MCG에서 파이널 경기를 취뤄야 했다.
  24. 에센던 선수였고 4년간 멜버른 감독. 2014년에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