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1 개요
- 2 프로그램의 시작
- 3 1기 무(모)한 도전
- 4 2기 무(리)한 도전
- 5 무한도전/퀴즈의 달인
- 6 무한도전의 시작과 전성기 (2006.5~2008.2)
- 7 하하 하차 및 멤버 전진영입 (2008.2~2010.3)
- 8 7인 체제 전반기[9] (2010.3 ~ 2012.1)
- 9 장기 파업 사태(2012.2~2012.7.14)
- 10 7인 체제 후반기[15](2012.2~2014. 4. 23.)
- 11 멤버 두 명의 자진 출연 중단 (2014. 4. 23. ~ 2015. 11. 12. )
- 12 무한도전 식스맨 프로젝트(2015. 03. 05. ~ 2015. 04. 18. )
- 13 정형돈 출연 중단 이후(2015. 11. 12~ )
1 개요
무한도전의 역대 변천사를 기록해 놓은 문서.
2 프로그램의 시작
'토요일'이라는 주말 쇼프로그램의 코너인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하였으며, 본래는 주요 코너의 촬영이 어려워진 주에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자투리 코너에 불과하였고, 진행자인 유재석이 특유의 '못난이 형제들' 컨셉으로 시작하여 이전의 프로그램과 그다지 큰 차별점을 두지 못하였다.
3 1기 무(모)한 도전
무한도전의 1기에 해당 되는 부분. 상세 내용은 무모한 도전을 참고바람.
유재석과 쩌리들의 황당 도전을 주 내용으로 하였는데, SBS의 유재석과 감개무량, KBS의 천하제일외인구단의 아류 프로그램 같은 모습으로 출발했다. 사실 무엇보다 같은 방송사(MBC)에서 일요일에 하던 '대단한 도전'과 이름이나 형식상 가장 비슷하다. 지금은 없어진 대단한 도전은 무한도전 초창기처럼 주로 육체적 도전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게다가 대단한 도전의 조연출이 김태호!
- 유재석을 반장, 혹은 유반장으로 부르는것.
- 훈련때 붉은색 추리닝 착용, 도전에 쫄쫄이 의상 착용.
- 한바퀴 돌아~, 혹은 멤버들이 돌지 않아 유재석이 민망한 상황.
이 시기의 유재석은 반칙을 즐겨 사용하는 밉상 캐릭터였다.
이 시기부터 무한도전 시작지 남아있었던 멤버는 '유재석, 정형돈, 노홍철'이다. 원년멤버라고도 하고 노홍철이 칭하길 순혈멤버[1]라고. 방송에서 어쩌다가 이 세 멤버가 묶이면 가끔씩 농담으로 언급한다. 다른 명칭으로는 유돈노라고 이들을 특히 좋아하는 팬들을 유돈노빠라 칭한다.
이 당시 도전내용은 일본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철완DASH의 플롯을 사온건지 아니면 표절인건지 거의 동일한 포맷의 도전이 상당히 많았다. 대표적으로 지하철과 릴레이 대결 등.
2016년 9월 기준으로 유재석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4 2기 무(리)한 도전
무한도전의 2기에 해당 되는 부분. 상세 내용은 무리한 도전을 참고바람.[2] 무한도전 300회 특집에서 말하길 다 망해가는 무모한 도전 폐지를 놓고 김태호PD가 살려보겠다며 나섰고, MBC예능국에선 이미 폐지직전인데 망해도 상관없겠지 라고 생각하고[3] 이때부터 그에게 연출권을 넘겨주었다고 하였다.
멤버가 8인(!)[4]으로 늘어나고 에이스제도를 만드는 등 변화를 주었지만, 결국 이전과 비슷한 황당 도전이 주 내용이었다. 단 6회[5]만에 끝난 비운의 작품.
5 무한도전/퀴즈의 달인
(왼쪽부터 노홍철, 정형돈, 이윤석, 유재석, 박명수, 하하)
상세 내용은 무한도전/퀴즈의 달인을 참고 바람.
회수는 무리한 도전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야외에서 기상천외한 도전을 하던것에서 탈피하여 스튜디오에서 퀴즈대결을 하는것으로 내용이 바뀌었다.[6]
거꾸로 말해요 아하를 주력 코너로 해서 6인체제[7]와 마봉춘의 등장 등 지금의 무한도전의 형태를 만든 시기이다.
6 무한도전의 시작과 전성기 (2006.5~2008.2)
(왼쪽부터 정형돈, 정준하, 유재석, 박명수, 하하, 노홍철)
2006년 5월 6일 방송분(미쉘 위의 출연)을 기점으로 무한도전이란 이름을 내건 단독 프로그램으로 변경하고 무한도전이란 이름에 걸맞게 도전을 메인으로 내세웠다.
단독 프로그램으로 변경 된 후 첫방송에서 시청률이 갑자기 5% 하락해 단독코너로 어울리지 않다는 여론이 형성되었으나 다음 방송에서 18%로 반등에 성공하여 폐지론을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06년 8월의 뉴질랜드 아이스 원정대 편이 흥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고, 인터넷에서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이후 2006년 10월 모델특집에서 토요일 7시대의 시청률 1위 자리에 올라, 2005년부터 1년 가까이 토요일 7시 시청률 1위 자리를 지켜온 KBS의 스펀지를 누르게 된다. 하지만 2007년 초의 드라마 특집이 실패하면서 한동안 정체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6월부터 자막 글씨체가 바뀌고 2008년 새해때 우리가 아는 무한도전 자막이 최종적으로 확정된다.[8]
최고 전성기는 2007년 6월 모내기 특집과 티에리 앙리가 나온 특집을 기점으로 하여 2008년 초 박명수가 메인이 되어 3주간 진행된 투표편과 2월 하하 입대 콘서트까지로 이 시기에는 역대 최고인 30%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인도 특집이 실패하면서 2008~9년에 큰 위기를 맞게 되었고 거기다 앞 시간대였던 강호동의 스타킹이 같은 시간대로 옮겨오면서 치열한 시청률 전쟁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까지의 무한도전은 B급 정서를 지닌 '대한민국 평균 이하들의 도전' 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으나 2008년 전진의 투입 이후로 프로그램의 정서가 다소 달라지게 된다.
7 하하 하차 및 멤버 전진영입 (2008.2~2010.3)
(왼쪽부터 정형돈, 정준하, 전진, 유재석, 박명수, 노홍철)
입대한 하하의 공백으로 약 석달간 5인 체제로 진행 되었는데 이 기간 중 무도는 100회를 맞이 한다. 이 후 하하의 대체 멤버인 전진이 영입된다. 전진은 출연 초반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나 소속사와의 문제로 무리해서 활동해서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면서 갈수록 존재감이 줄어들었다. 이후 길이 합류 하나 무리수와 예능감 부족 그리고 외모에서 오는 비호감으로 인해 결국 공백을 제대로 메우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단조로운 구성을 바꾸기 위해 추격전 요소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 더불어 무한도전의 성향이 젊은 층 위주로 바뀌면서 장년층 시청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날유-찮은-중앙-항돈-찌롱-잔진 이런 별명들이 자막에서 지나치게 많이 노출되었다. 2009년 10월 전진이 입대로 자연스럽게 출연을 중단하였고 약 6개월간 다시 6인 체제로 환원되었다.
8 7인 체제 전반기[9] (2010.3 ~ 2012.1)
(왼쪽부터 정형돈, 하하, 유재석, 박명수, 손스타[10], 길, 노홍철, 정준하)
2010년 들어서 무한도전은 몇 가지 소소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계속되는 태클에 몇몇 출연자들의 인신공격성 별명이 포함된 자막이 봉인되었으며, 자막 글자체도 상당히 바뀌었고 3월에 하하가 돌아오면서 길의 출연 중단 전까지 4년간 7인 체제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천안함 사태와 뒤이어 일어난 파업으로 인해 기획한 프로젝트 몇몇이 미뤄지거나 취소되었으며, 레슬링 특집이나 달력모델 특집은 그다지 평이 좋지 않았고 2010년 말의 부진으로 인해 스타킹에게 1위 자리를 내준 적도 있었다. 이렇게 되자 2011년에는 장기 프로젝트를 줄이고 소소한 웃음을 주는 특집으로 노선을 변경하면서 다시 전성기를 되찾게 되었고 You&me 콘서트나 몇몇 특집에서나 했던 HD방송을 2월말부터는 HD방송으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MBC에서 가지는 위상은 점점 줄어들었고 연말 시상식에서는 그야말로 찬밥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2012년 2월 파업에 들어가자 무한도전은 본방송 장기 중단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9 장기 파업 사태(2012.2~2012.7.14)
9.1 무한도전 파업 특별편
MBC 파업으로 장기간 제대로 방영하지 못하게 되자, 무한도전 멤버들과 제작진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특별 방송이다. 2012년 4월 5일 밤늦게 공개했다. 무한뉴스 스페셜[11]
특징이라면 MBC 방송국의 어떠한 협조 없이 자체적인 인력과 장비만으로 촬영하였다는 점인데, 출연진들도 출연료를 한푼도 안받고 무상으로 출연하였고, 촬영 장비도 그동안 사용해오던 방송국의 카메라, 조명, 오디오 등이 아닌 아닌 자체적으로 구한 대체 장비들을 사용하였으며(일례로 카메라는 방송국의 커다란 카메라가 아닌 6mm 카메라를 사용했다), 그마저도 갯수가 한정적인지라 원래의 무한도전보다는 음성 효과 같은게 많이 빈약하다. 일례로 카메라가 4개 뿐이라 모든 멤버들을 일일히 다 따로 원샷을 잡아줄 수 없었던 관계로 하나는 풀샷, 하나는 유재석 원샷, 하나는 유재석의 왼쪽에 위치한 멤버들 풀샷, 마지막 하나는 유재석의 오른쪽에 위치한 멤버들 풀샷을 잡고 있었다(...). 촬영 장소도 무한도전 멤버들이 사비로 구입 후 유지하고 있는 연습실을 사용했다. 그리고 영상 공개 장소도 TV가 아닌 유투브로 하였고. 이렇듯 굉장히 짤막한 분량에 방송 자체도 상당히 스케일 다운 되었지만 무한도전 멤버들과 제작진들이 무한도전스럽게 촬영에 임하여서 분위기만은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
이 영상의 의의라면 무한도전이 이제는 단순한 방송국의 프로그램 중 하나가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독자적인 문화 컨텐츠 중 하나로 아이덴티티화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당시 파업에 들어간 방송이 무한도전 뿐만은 아니였지만, 이런식으로 애청자들과 방송으로 소통을 시도한 예는 무한도전이 유일했다. 그만큼 제작진이나 출연진이나 애청자들이나 무한도전을 단순히 한번 보고 마는 TV쇼가 아닌 독립적인 문화 컨텐츠의 하나로 인식할 정도로 무한도전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 영상이 화제가 되어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자 김태호 PD는 "단지 시청자들께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 제작한거니 <파업 특별편> 같은 명칭은 쓰지 말아달라"고 언론에 요청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막상 방송재개 후의 무한도전에서 이 영상을 파업 특별편이라고 칭하는 모습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줬다. 이런 모습을 봤을때 파업 특별편이라는 명칭에 큰 거부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9.2 무도 외주제작 검토
2012년 6월 11일 임원회의서 MBC 김재철 사장이 말하길 김태호 PD를 빼고 외주제작을 검토할 수도 있다고 한다.MBC가 망하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관련기사 그런데 기사에서는 "오히려 팬들이 합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작진을 바꾼다고 해서 팬들이 원하는 무한도전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하여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기자도 무도빠 우리가 원하는 건 바로~? 이틀 뒤인 2012년 6월 13일 김태호 PD없이는 무한도전 제작이 안된다 판단했는지 임원회의에서 무한도전 폐지방안에 중점을 두고있다. 바라면 현실이 됩니다. MBC 자멸!
심지어 이를 주도한 김재철 사장에 대한 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네이버에서는 검색어 목록에 김재철 암살이라는 말까지 떴다.
사실 굳이 이것 아니더라도 애초에 2010년 말부터 무한도전에 대한 꾸준한 견제가 들어왔다. 가령 제작진을 1년마다 바꾸겠다는 개드립을 치며 무한도전 작가들과 PD들과 감독들을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버렸다. 무한도전 죄와 길 특집에서 무도 멤버들과 친한 모습을 보이며 길의 소변에 비싸게 주고 산 지갑이 희생된 제영재 PD와 무한도전에 신입으로 들어와서 성우 역할까지 하며 활약한 장승민 PD도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제영재 PD는 2013년 다시 돌아왔고, 2014년 말 극한알바 특집에서 해외 극한알바를 소개할 때 장승민 PD도 돌아온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2013년 4월 들어서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바이탈 사인(심장 박동 및 체온과 혈압을 나타내는 그래프)으로 비춰지는 연출이 나오거나, 무한상사에서 난데없이 정리해고 이야기가 나오는 등 정말 없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주말예능 시청률은 나락으로 다행히 무한도전이 토요일 예능 타임 시청률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자기 밥줄 자기가 차버리긴 영 그랬던지 이런 이야기들은 들어갔다. 그러다가 아예 무한도전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이젠 시청률마저 없자 저런 극단적인 발언까지 나온 것.
불행 중 다행히도 이후 무한도전이 돌아오고 다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앞으로도 이런 위협(?)은 많이 줄어들을 전망이다. 적어도 경쟁사나 같은 MBC 내에서 무한도전을 압도할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을까? 안될거야 아마...
9.3 무한걸스의 지상파 진출
2012년 6월 2일 무한도전의 장기파업 중 무한걸스의 지상파 진출이 알려졌다. 본래 케이블 방송이 지상파로 진출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기에 주목받는 것이 이상한 상황만은 아니지만, 무한도전의 성별을 역전시킨 케이블 버전이 무한걸스라는 점을 공공연히 이야기해 왔기에 좋지 않은 의미에서 바라보는 관점도 존재하기 때문. 실제로 무한걸스는 무한도전에서 사용했던 방송 아이템과 연출을 적극적으로 재활용해 온 바 있다(특히 그 패러디 행위가 하필이면 파업 기간 도중 더 잦은 빈도로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에 시선은 더욱 안좋아졌다...).
두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달라 보여줄 수 있는 재미가 다르고, 방송 날짜[12]가 다르기에 확언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김태호PD의 대기발령 소식과 무한도전의 외주제작 소식에 이어 이런 소식까지 들려오니, 진짜 의도가 무었이였던간에 아무래도 무한도전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13] 무한걸스의 메인MC 송은이도 당연히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무한걸스 녹화 마치고 집에 옴! 즐겁고 재미나게 녹화했지만... 뭔가 무거운 마음... 또 괜히 미안한 마음..."이라는 트윗을 남긴 바 있다.
사실 폐지설, PD대기발령설, 외주제작설, 대체편성 등이 터져나온 직후 성별만 역전시킨 완전히 동일한 컨셉의 케이블 프로그램을 지상파로 진출시킨 것은 "말 안 듣는 아이는 제쳐두고 말 잘 듣는 아이만 키우겠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무한걸스 입장에서도 케이블에서 잘 나가는 상황에서 시작도 하지 않은 채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결국, 무한걸스는 일밤 방송 시간대에서 절때 깨지지 않는2~3%대의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상파에서 퇴출이 확정되면서 본가인 케이블로 돌아가게 됐다. 후속 프로그램은 결투특집 하하 VS 홍철에서 포맷을 따온 승부의 신[14]. MBC의 높으신 분들이 파업으로 인한 무한도전 대체제가 필요한 시점에서 결국 희생양이 된 듯.
10 7인 체제 후반기[15](2012.2~2014. 4. 23.)
2012년 1월 말에 방영하였던 홍철 vs 하하 방송 이후로 MBC 노동조합의 장기파업 돌입으로 인하여 2012년 7월까지 후속방영 소식이 없어서 시청자들로부터 의문을 낳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MBC 현직 사장인 김재철 사장이 무한도전을 혐오하여 사장 명의로 폐지시킨다거나 폐지 절차에 들어갔다는 일설도 있었고 김재철 사장이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MBC 노동조합이 무한도전 방영을 무기한 연기하였다는 일설이 있는 등 여러가지 다설과 루머가 나돌았다. 시청자 일각에서는 김재철 사장이 무한도전을 혐오하여 자기 명의로 폐지시키겠다면 시청자의 이름으로 김재철 사장 강제퇴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히게 된 상황. 국회의원 이재오 등도 무한도전 휴방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등 무한도전 휴방이 최근들어 방송가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었다. 한때 무한도전이 본방을 재개하겠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하였다.
이후 7월 17일 MBC 노조가 파업 잠정중단을 선언하고 19일부터 정상활동에 들어가면서 드디어 무한도전도 녹화 재개를 결정해 18일날 압구정 연습실서 첫 촬영에 들어갔고 2012/07/21에 방영 하다만 결투 특집 하하VS홍철을 시작으로 본방을 재개했다.[16]
재방송 당시 시청률이 4~5%까지 하락했었으나 [17] 21일 본방송의 시청률은 14%[18]가 나왔다. 전주 방송의 시청률은 6.3%에서 2배가 넘게 상승한 수치로 역시 무한도전이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길의 출연 중단 논란이 있었고 2012년 전체로 보면 파업 때문에 전반기를 날려먹은 것이 컸으며, 못친소 특집 말고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시청률 경쟁에서도 불후의 명곡이 파업기간 도중 급부상했고, 강호동 출연 중단 이후에도 스타킹이 건재하여 다시금 치열한 경쟁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2013년에도 여전히 토요일 예능 시청률 1위는 무한도전이 기록하였다. 2월까지 하더라도 동시간대 프로그램이랑 치열하게 경쟁을 했지만 하와이 특집을 기점으로 다시 치고 올라갔으며, 부활한 일밤과 같이 MBC 주말 예능을 이끌었다. 사장이 교체되고 광고 수익도 많이 벌어들이는 만큼 해당 시점에선 폐지 여론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여전히 강호동의 스타킹과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인바 있다.
11 멤버 두 명의 자진 출연 중단 (2014. 4. 23. ~ 2015. 11. 12. )
(왼쪽부터 정준하, 하하, 유재석, 박명수, 정형돈)
2014년에는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2주동안 방송을 중단했으며, 이 기간 중 길의 음주운전으로 인한 자진 출연 중단으로 4년 만에 다시 6인 체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무한도전 응원단 편이 9.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10% 벽이 무너진 적도 있었지만 곧바로 회복하여 여전히 토요 예능 1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약 6개월뒤 무한도전 원년 멤버인 노홍철 역시 음주운전으로 인해 출연 중단하게 되어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5인 체제로 들어간 후 1달간 시청률이 14%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오히려 상승했고 토토가의 대박으로 8년만에 시청률 22%를 돌파하며 위기를 이겨냈다. 2015년 새해가 들어서도 부동의 시청률 1위 자리를 지켜나갔다.
12 무한도전 식스맨 프로젝트(2015. 03. 05. ~ 2015. 04. 18. )
무한도전이 계획한 5대 프로젝트중 하나로 길과 노홍철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3월 5일에 시청자들이 새로운 멤버를 추천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장동민, 홍진호여기서도 2번째다, 김영철, 전현무, 황광희, 주상욱, 홍진경 주머니!!,이서진, 헨리, 노을(보컬그룹)의 강균성, 김지석, 서장훈, 유병재, 김지훈, 이기광, 박진영, 개그맨 병풍이자 효과류정남, 최시원 등의 후보들이 추천되었다.
이 중 전현무, 시원, 홍진경, 광희, 유병재, 서장훈, 강균성, 장동민 8명이 2차 후보가 되었다. 이어서 후보 8명이 자기를 제외한 다른 후보에게 투표를 해 최종 후보는 광희, 시원, 강균성, 홍진경, 장동민이 되었고 여러 검증을 거친 후 무한도전 멤버들과 각자 파트너를 맺어 후보자들이 준비한 아이템으로 특집을 진행하였다. 최종적으로 모든 후보들의 검증이 끝난 뒤[19] 멤버들의 비밀투표로 총 3표를 받은 황광희가 무한도전의 새로운 멤버가 되었다.
하지만 식스맨 특집부터 존재했던 아이돌 영입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과 더불어 스타제국의 한 가수 겸 배우에 대한 논란으로 덩달아 황광희의 대한 평가도 안 좋아진 상태에서 첫 촬영을 나서면서 그의 영입 반대를 하는 1인 시위자까지 나타나자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었다.[20] 하지만 다행히도 그 뒤로 광희는 멤버들의 도움으로 무도에 잘 녹아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녹아드는 거에 비해 점점 불만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광희가 초반엔 굉장히 녹아드는 모습을 보였다가 회를 거듭하면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고 공식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게스트에 비해 많이 안 보인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13 정형돈 출연 중단 이후(2015. 11. 12~ )
정형돈이 불안장애를 이유로 갑작스럽게 활동을 일시 중단하였다.기사에 따르면 목요일 무한도전 녹화 촬영장에서 이야기를 전달하였다고 하며, 이날 촬영은 정형돈 없이 진행되었다.
2015년 11월 25일 김태호 PD는 한 강연에서 현재 무한도전의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한도전의 시즌제 변경 및 영화나 인터넷방송 등 공중파TV외의 다른 매체로의 영역 확대가 필요하다고 발언하여, 조만간 포맷의 변경이 예상되는 상태다.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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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혈통멤버의 줄임말
- ↑ 무한도전 20회 특집 편으로 계산에 보면 무리한 도전 1회(그네야구 편)가 시작임을 알수 있다.
- ↑ 20회 특집에서 멤버들은 무리한 도전은 5주만에 접을 예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 ↑ 게스트로 봉태규가 출연하였을 때는 9인이 방송했다.
세바퀴도 아니고... - ↑ 불끄기 대결의 경우 상/하편으로 나누어 2주간 방송 하였기때문에 에피소드로 보면 5회만에 종료.
- ↑ 다만 실제 퀴즈코너는 6회만에 종료.
- ↑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다. 김성수 출연 중단 후 하하 투입, 이윤석 출연 중단 후 게스트(이효리, 이경규) 초대, 정준하 투입 등.
- ↑ 무모한 도전 당시에는 윤고딕 200을 주로 썼으며, 무리한 도전부터 2007년 6월까지는 보라색+노란색 조합의 윤체 자막, HY헤드라인체+하늘색 배경의 대사, 구름체의 소리칠 때와 표정자막이었다. 2007년 6월부터 밝은 자막, 윤고딕 200의 대사로 바뀌었고, 동년 10월부터는 짙은초록색+노란색 자막으로 바뀌었고, 2008년 초부터 검은색+노란색 자막으로 바뀌었다. 무모한 도전부터 2009년까지는 대사 자막 우측 하단에 무모한 도전 로고가 쓰였으나, 2009년 이후로는 무도리로 바뀌었다. 이후 2010년 레슬링 특집 때 소리칠 때의 자막이 윤고딕 300대체로 바뀌었고(2011년부터 정식 사용), 2011년 중반부터 자막 디자인도 바뀌고, 상황 자막과 대사 자막도 윤고딕 300대로 바뀌었다. 또한 매 특집마다 자막 디자인이 바뀌기도 한다. 또한 때때로 2008년판 자막도 쓰였다. 2014년 3월부터는 2008년판 자막으로 돌아왔지만, 대사자막 배경은 대체로 검은 색을 사용하며, 소리칠 때의 자막은 2011년판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 ↑ 2012년 장기 본방송 중단 이전
- ↑ 손스타는 레슬링 특집에만 게스트로 출연.
- ↑ 현재는 MBC측에서 저작권 문제를 제기하였기 때문에 볼 수 없다.
- ↑ 무한걸스는 일밤 1부에 편성되었다.
- ↑ 과거 이경규가 MBC에 무한도전과 비슷한 컨셉의 프로그램을 하자 요청했다 거부당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데 사실여부 확인바람.
- ↑ 하지만 이 프로그램도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 ↑ 2012년 장기 본방송 중단 이후
- ↑ 결국 2012년에는 52주 중 28회밖에 방영되지 못한 셈이다.
- ↑ 4~5%라고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 재방송 시청률이 4~5% 정도 나오는 방송은 무한도전 외 1박2일 (강호동이 진행하던 시즌 1) 정도를 제외하면 범접할 수 없는 국민예능의 시청률이다. 당장에 2012년 초중반 파업 기간에 MBC 일요예능이 본방송임에도 3~4%는 기본이였고 정말 망한건 1%대까지도 떨어질 정도였다는 기록을 보면 답이 나온다.
- ↑ AGB기준, 덤으로 tnms에서는 15.9%였다.
- ↑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장동민이 타 프로그램에서 말한 발언이 논란이 되자 후보 사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 ↑ 사실은 제작진중 한명이 변장한 것으로, 이는 제작진과 무도 멤버들의 깜짝 몰래카메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