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항목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s-2, 뮌헨 참사, 항공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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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에서 헤이젤 참사, 힐스버러 참사와 함께 최대의 비극으로 손꼽히는 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비극
올드 트래포드에 있는 추모 시계. 당시 사고 시각인 3시 30여분경에서 멈춰 있다.
목차
Munich air disaster
1 사건 개요
당시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거만함에 빠져 자국 리그 우승팀의 유로피언컵의 출전을 막아왔다. 이전 리그 우승팀이었던 첼시 FC 등은 그런 협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출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맨유의 감독 맷 버스비는 세계적인 팀들과 겨루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축협을 무시하고 유러피언컵에 참가한다. 당시 유러피언컵 원정은 리그와 일정이 촉박해 버스비는 협회에 리그 일정을 미뤄 줄 것을 부탁하지만 버스비가 자신들을 무시했다는 것에 앙심을 품어 일정에 맞춰 돌아오지 못하면 승점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는 엄포를 놓는다. 결국 일정에 쫓겨 서둘러 비행기로 향한 선수단.
참사의 시작은 1958년 2월 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유고슬라비아의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유러피언 컵(現 챔피언스 리그) 8강 원정경기를 치르고 선수단 비행기로 귀국하는 중에 일어났다.
소련에서 잉글랜드로 돌아오던 영국 유러피언 항공 609편(British European Airways Flight 609) 비행기가[1]경유지 뮌헨 공항에서 이륙하던 도중에 기체가 전복되고 말았다
이 사고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 중 8명을 포함하여 구단 스태프, 취재기자단을 통틀어 23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맷 버스비 감독 체제 아래 구단의 첫 번째 화양연화를 맞이하면서 당시 최강이라 불리던 레알 마드리드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를 듣던 절정기였다. 그야말로 "하필이면..."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치명적인 타이밍에 벌어진 치명적인 참사였다.
당연하겠지만 팀의 주축 멤버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맨유의 전력은 그야말로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선수들 역시 회복을 위해 긴 시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당시 잉글랜드 1부 리그를 호령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야말로 암흑기로 빠지게 되었다. 사건 이후 당시의 전력을 회복하는 데에는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잉글랜드 전체가 비통함에 빠졌던 사건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손실이자 비극이다. 영국 현지에서는 사건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년 희생자들의 추도 묵념의 시간을 가진다.
당시 잉글랜드 팀의 유럽 대회 참여를 못마땅히 여긴 FA의 비협조로 경기 일정이 촉박해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비행기를 선택했던 탓에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 중에서는 FA를 비난하는 의견도 있다.
2 생존자
2.1 항공사 직원
로즈마리 체버튼 (스튜어디스)
마가렛 벨리스 (스튜어디스)
조지 윌리엄스 로드리게스 (통신담당)
제임스 테인 (기장)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
조니 베리 (FW. 사고 후유증으로 다시는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잭키 블란치플라워 (MF. 사고후유증으로 은퇴)
보비 찰튼 (MF)
빌 포크스 (FW)
해리 그랙 (GK) [2]
케니 모건 (FW)
알버트 스케논 (FW)
데니스 바이올렛 (FW)
레이 우드 (GK)
맷 버스비 (감독)[3]
3 사망자
3.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
600px
사진 속 붉게 칠해진 선수들이 사고 희생자이다.
제프 벤트 (DF)
로저 바인 (DF)
에디 콜먼 (MF)
마크 존슨 (MF)
데이비드 펙 (MF)
던컨 에드워즈 (MF)[4]
토미 테일러 (FW)
빌리 휄란 (FW)
3.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스탭
월터 크리그머 (클럽 비서)
톰 커리 (트레이너)
버트 월리 (수석코치)
3.3 취재기자단
알프 클락 (맨체스터 이브닝)
돈 데이비스 (맨체스터 가디언)
조지 팔로우스 (데일리 헤럴드)
톰 잭슨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
아치 레드브룩 (데일리 미러)
헨리 로즈 (데일리 익스프레스)
에릭 톰슨 (데일리 메일)
프랭크 스위프트 (뉴스 오브 더 월드 /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15일 후 사망)[5]
3.4 기타
케네스 레이먼트 (공동기장. 후송되었으나 3주 후 사망)
톰 케이블 (스튜어드)
벨라 미클로스 (여행 대행사 직원)
윌리 사티노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서포터)
4 사고의 원인
원인은 활주로에 쌓인 슬러시였다. 슬러시는 따뜻한 기온이나 화학적 처리로 인해 눈의 성질이 변한 혼합물로 당시 눈이 적당히 녹아서 질퍽해진 점성을 띈 상태의 슬러시가 된 상태였다. 막 이륙속도에 도달한 항공기가 이 슬러시를 통과하면서 속도가 느려져 이륙을 중단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이륙하기에는 너무 느린 속도에서 기수를 들게 되었다. 결국 이륙에 충분한 속도를 받지 못하고 이륙한 항공기는 실속하면서 인근 민가에 추락, 주차된 트럭과 충돌하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초기 독일의 조사에 의하면 날개 위에 쌓인 눈에 대하여 방빙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으로 지목되었다. (영국 조종사 과실). 하지만 기장 제임스 테인은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당하면서 11년간 끈질기게 결백을 주장한 끝에 영국에서는 재조사가 2차례 이루어졌고, 여러 실험을 통한 입증 끝에 활주로에 5cm 이상 쌓인 슬러시가 원인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독일 비행장 과실). 결정적으로, 사고 직후 공항에서 항공기로 달려온 독일인 파일럿이 날개를 확인했을 때 날개 위에 눈은 없었다는 증언을 독일 조사위원회에서 누락한 것이 밝혀졌으며, 이에 대하여 독일 조사위원장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공식적으로 조종사가 방빙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는 기존의 입장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공항들은 609편에 대한 영국의 발표에 따라 활주로 슬러시에 조치를 취하여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최강의 인기선수단을 사망케 했다는 누명을 쓰고도 11년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한 테인 기장은 "The difference between the impossible and the possible is merely a measure of man's determination."이라는 말을 남겼다. 해석하면 "굳은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정도의 뜻.
5 기타
당시의 사고를 바탕으로 2011년, 영화 유나이티드(원제: United. 감독 제임스 스트롱) 가 개봉하였다.
국내 스포츠 웹툰에서 이 사건을 짤막하게 연재한 작품이 있다. 1편 2편 3편
EPL 07/08 26라운드에 50주기에 맞춰 당시 참사당시의 유니폼을 재현해 선수들이 경기를 뛰었었다.
당시 기사 [1]
이와 유사한 사건으로, 1970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 헌팅턴 시에 있는 마셜(Marshall) 대학의 미식축구팀 선더링 허드(Thundering Herd)의 선수들이 비행기 사고로 탑승한 75명 전원이 사망하여, 대학과 지역 주민들은 엄청난 슬픔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데드몬 총장은 미식축구팀을 재건하기로 결정하고, 2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선더링 허드는 다시 강팀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이를 소재로 영화 "We are Marshall"이 제작되었다.
- ↑ 기종 : Airspeed AS.57 앰배서더 (기체 등록번호 : G-ALZU)
- ↑ 사고 당시 맷 버스비 감독을 비롯하여 여러 명을 구조하였다. 팀의 주전 골리로써 야신의 라이벌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 ↑ 맨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쌍벽을 이루며 축구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명장이다. 이후, 회복되어 팀의 재건에 매진하여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성공했고 맨유 회장도 역임했다. 팀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후 세상을 떠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타디움 앞에 버스비 감독을 기리는 동상이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
- ↑ 장래가 대단히 유망한 선수였다. 이 사고가 없었다면 축구 황제의 칭호는 펠레가 아닌 에드워즈의 것이 됐을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대 최고 재능은 조지 베스트도, 라이언 긱스도 아닌 던컨 에드워즈였다는 말이 있다. 사고 직후에는 살아있었으나 보름 만에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 ↑ 여담으로 맨시티에서 뛰기도 한 은퇴 선수이다.1938년(19세)때는 경기 도중 아무 이유없이 기절해버리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동명이인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수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