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olta 未能達
목차
1 개요
과거 일본에 존재하였던 광학기기 회사. 2003년 광학기기 업체인 코니카 주식회사에 흡수합병되어 코니카미놀타가 되었고, 2006년 1월 19일 카메라 및 사진 필름 사업부를 소니에 매각하여 74년간의 카메라 메이커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합병 이후의 회사에 대해선 해당 항목을 참조.
리즈시절인 1979년부터 1983년까지 분데스리가 구단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메인스폰서이기도 했다.
2 역사
2.1 창업
1928년 일본 오사카에서 日獨寫眞機商店(Nichi-Doku Shashinki Shoten)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독일의 광학산업은 세계최고수준이었으니. 나름대로 일본-독일의 합작회사 같은 뉘앙스를 품은 괴랄한 네이밍 센스.
1933년부터 미놀타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하였다. 이름의 유래는 창업지의 지역명인 稲る田(미노루다)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みのる(미노루)라는 단어가 '수확하다'의 뜻이고 'た(타, 田)는 '논, 밭을 의미하므로 카메라를 농부가 작물을 경작하는 마음으로 정성들여 만들어 보자는 의미라는 해석도있다.(農心???) Mechanism, INstruments, Optics, and Lenses from TAshima 의 이니셜이라는 일설도 있으며, 타시마는 창업주 田嶋一雄의 성씨이다. 니콘의 카메라 렌즈 브랜드가 Nikkor인 것 처럼 미놀타의 렌즈 브랜드는 Rokkor. 이것 역시 창업지 본사 뒷산의 이름이 六甲山인데 6(六)의 음차인ろく(로쿠)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1937년에는 회사 이름을 千代田光学精工株式会社(Chiyoda Kogaku Seiko, 치요다 광학)으로 변경.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통제경제상황으로 바뀌게 되었고, 군으로부터는 대포의 신관을 제작하도록 명령을 받게 되어 타시마 사장의 꿈은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군관계자들과 빈번하게 접촉하여 조금만이라도 더 광학에 관계가 있는 제품을 수주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고 해군으로부터 휴대용 쌍안경 제작을 수주 받는데 성공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하여 미놀타의 기술력이 군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놀타는 공장 여러 곳이 전소 혹은 파괴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지만, 종전 후 옛 일본 해군 시절의 도요카와 공장의 광학부를 양도받는 등 카메라 생산을 재개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고 이듬해 다시 카메라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2.2 리즈시절
미놀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건 1962년 미국의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미놀타의 하이매틱 카메라를 "Frieldship 7호" 우주선에 탑재하면서부터였다. 이 때 회사 이름도 "Minolta Camera Co.Ltd"로 변경. 그리고 1972년에는 무려 라이카(회사)와 카메라 및 렌즈 합작생산을 하였는데, 이 때 SLR 타입인 R시리즈 일부의 설계를 맡기도 하였다. 미놀타가 M마운트 렌즈를 사용하는 RF카메라인 CLE를 출시한 것도 이런 인연 때문.
올림푸스와 더불어 공돌이 정신으로 무장한 메이커로 유명했다. 합병 전까지 미놀타에서 보유했던, 카메라 관련 특허 혹은 세계 최초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아크로매틱 렌즈코팅 (2층피막 코팅으로 세계 최초의 렌즈 멀티코팅)
- 상하분할방식의 SLR 노출 측정방식(CLC 측광. SRT101 에 처음 채택.)
- 모터드라이브 일체식 SLR (SR-M)
- 필름되감기 노브를 위로 당겨서 카메라 뒤두껑이 열리는 장치.(SR-2)
- 렌즈셔터가 아닌 포칼-프레인셔터 최초로 카메라 상부에 핫-슈 장치.(Minolta 35)
- 셔터속도와 조리개치를 자동으로 조합하는 노출장치(프로그램 노출).(UNIOMAT)
- 레버를 이용하여 필름을 감는 장치(Minolta MEMO)
- 장노출시 파인더를 통해 수광되는 빛을 막는 파인더 아이피스 셔터(X-1)
- 파인더 접안창의 시도보정장치 (XD-s)
- 노출계 본체내장의 SLR (SR-7) [1]
- 전자유닛 방식의 메카니컬셔터[2] (XE)
- 세계최초 35mm TTL-AE 방식 AF 카메라 (α-7000)[3]
- 세계최초 동체예측 구동방식 액티브 AF. (α-7700i)
- 별매의 카드시스템을 채용하여 카메라 기본기능을 확장(α-7700i)
- 세계최초 1/12,000초 셔터 스피드구현 (α-9Xi)
- Eye Sensor방식의 AF구동 메카니즘.[4]
- 굴절식 광학렌즈 시스템 (Dimage-X) [5]
- 바디내장식 손떨림 보정 시스템. [6]
- 접착식 비구면 렌즈 (특허는 Tamron 먼저 획득.)
- 세계최초 가변식 AF-SOFT렌즈(100mm/2.8 soft)
- 유일한 AF매크로 줌렌즈 (1x-3x)
- 아큐트매트 광학식 초점스크린(핫셀블래드의 스크린도 미놀타에서 납품)
- 가변식 주변 이미지 조절기구 부착 렌즈 (STF 135mm/2.8)
- 유일한 AF 반사망원렌즈 (AF Reflex 500mm f/8)
- 포베온보다 10년 앞선 3CCD방식의 디지탈카메라 (RD-175)
- 카메라 일부를 교환하여 기본기능을 확장하는 시스템(α-9000 슈퍼프로그램백)
1985년 세계 최초의 35mm AF SLR카메라인 알파 시스템을 만들어내며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미놀타가 몰락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2.3 미놀타의 몰락
압도적인 기술혁신과 높은 고객충성도로 리즈시절에는 관동의 캐논, 관서의 미놀타로 양분된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던 미놀타의 몰락은 다음과 같은 행보를 걸었다.
- Honeywell사와의 특허관련 소송에서 패소
미놀타가 맞은 직격탄 1호.
앞서 미놀타가 출시하였던 35mm AF SLR카메라의 핵심은 위상차 초점으로 일컬어지는 AF방식이었는데, 미놀타는 1991년 미국 Honeywell사의 특허침해 소송을 받게되었고 이듬해 최종 패소, 피해배상 및 기술 사용료 등을 포함하여 총 $127,500,000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되었다. 이는 미놀타에게 있어서 치명타였고 이후 기업의 몰락에 일조하게 된다.
잘못된 상식은 "니콘, 캐논, 리코, 올림푸스, 후지카등의 회사는 Honeywell사에 특허를 인정했는데 미놀타는 배짱을 튕겼다"는 것인데 사실 Honeywell사가 미놀타에 본보기로 소송을 건 것이고 미놀타의 패소 이후 로열티 계약을 맺은 것이다. 지못미 미놀타
- 프레스 시장의 외면
예나 지금이나 사진기자를 비롯한 언론 관련 종사자나 출판 종사자들은 카메라 업체에게 있어서 최고의 고객이다. 사진 기자들은 일반 사진작가들과는 다르게 고비용의 렌즈들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한 번 구매한 카메라와 렌즈를 통한 높은 고객충성도는 물론 빠른 입소문으로 인해 수많은 고객으로 범위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캐논과 니콘은 고속 연사를 기반으로 기자들을 위한 최상위 모델을 개발해왔고, 프레스 시장에 대응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강화해 나갔다.
반면 미놀타는 사진작가들과 일반 소비자 시장을 위한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프레스 시장과는 달리 그 크기와 잠재력의 차이가 분명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니콘과 캐논과의 격차는 현저하게 벌어졌고, 미놀타는 비주류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 Advanced Photo System규격의 대실패
미놀타가 맞은 직격탄 2호.
미놀타는 캐논과 니콘에게 빼앗긴 카메라 시장의 판도를 뒤집기 위해 독일 광학기업들과 손을 잡아 기술력을 쌓는 등 반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135 필름은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끊임없이 발생하는 필름 가격이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압박이었고, 작은 사진을 뽑아 앨범에 꽂아놓는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지나치게 큰 촬상면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기본적으로 카드리지는 외부 노출에 취약하여 관리하기 까다로운 등의 문제가 있었는데, 마침 미놀타의 눈에 새로운 규격인 APS 포맷이 포착되었고 결국 APS에 올인하게 된다. (APS포맷 필름에 대해선 항목 참조.)
1996년 당시 APS에 공동으로 투자했던 기업은 코닥, 후지필름, 캐논, 니콘, 미놀타 5개사였지만 APS는 어느 정도 정착하려는 찰나에 디지털 카메라가 뜨는 바람에 오래 버티지 못하였다. 게다가 코닥은 이미 CCD 생산기술을 확보하고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근본을 점령해버렸고[7], 캐논은 질세라 CMOS 생산기술을 확보했으며, 니콘은 COOLPIX라는 걸출한 브랜드를 통해 로우엔드부터 하이엔드까지 다양한 시장을 다 점령해버렸다. 후지필름 또한 APS 상용화 시점에 이미 니콘에 찰싹 달라붙어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를 착실히 개발하고 있었고.
2.4 결국 사라진 미놀타
상대적으로 규모에서부터 밀리는 미놀타는 APS의 실패로 인한 손해를 쉽게 떨쳐내지 못했고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진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디지털 시장은 니콘, 캐논, 올림푸스, 소니, 캐논이 대부분을 점유하게 되었다. 뒤늦게 Dimage라는 브랜드로 시장에 진입하고 미놀타 특유의 강력한 기술력과 혁신적인 설계를 통해 코니카와의 합병 직후 DSLR라인업을 구축하며 재기에 성공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브랜드 인지도나 충성도 면에서 캐논과 니콘을 뒤쫒기에는 이미 넘사벽의 차이가 있었다.
결국 470억엔(!!)이라는 막대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코니카미놀타는 2006년 소니에 카메라 사업부를 매각하였다. 이로써 20세기 후반 SLR의 역사에 큰 획을 그어 온 미놀타 카메라의 역사는 막을 내렸으나, 코니카미놀타 항목에 나와있듯 회사 자체는 다른 영역의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3 미놀타의 카메라
3.1 필름 SLR 카메라
MF SLR 시리즈 [8]
SR 시리즈 - SR-1 / SR-2 / SR-3 / SR-7 / SR-T 101 / SR-1s / SR-M / SR-T super / SR505 / SR101
X 시리즈 - X-1 / X-1 Motor / XE, XE11, XE7 / XE5 / XEb / XD, XD11, XD7[9] / XD5 / XDs / XG-E / XG-S, XG7, XG9 / X-7 / X-7A / XG-M, X-70 / X-300, X-370 / X-700 / X570 / X-600 / X-370s
400px
(X-300)
AF SLR 알파 시리즈[10]
- 1세대 : the 1st impression - α7000/9000
- 2세대 : intelligence system - α7700i/8700i
- 3세대 : eXpert Intelligence - α7xi/9xi
- 4세대 : Stable Intelligence - α707si/807si
- 5세대 : Single digit - α7/9
벡티스
3.2 렌즈고정식 RF 카메라
Minolta A 시리즈
Hi-Matic 시리즈
3.3 DSLR 카메라
Dynax 7D/5D가 있음.
소니/DSLR 항목에 통합.
4 삼성미놀타
1970년대 후반부터 삼성정밀(이후 한화테크윈)에서 미놀타의 SLR, 컴팩트 카메라들을 수입하여 "삼성미놀타" 브랜드로 판매한 적이 있다. 당시 카메라가 수입사치품 제한품목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카메라 회사들은 한국의 재벌들과 합작해서 시장에 진출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LG(금성)에서 캐논의 카메라를, 그리고 동원그룹에서는 펜탁스의 제품을, 아남그룹은 니콘을, 현대는 올림푸스사의 카메라를 수입[11]하여 판매한 것. 이후 삼성은 미놀타와의 합작 종료후 롤라이를 인수했다가 내뱉어버리고 00년대 중반부터는 펜탁스와 같이 놀았다.
5 기타 참고항목
소니 알파- ↑ TTL방식의 내장노출계는 PENTAX SP가 최초, 발매는 TOPCON RE-super가 세계최초
- ↑ 특허는 Copal과 Leica camera AG가 갖고 있음
- ↑ AF의 특허는 미국의 Honeywell co.가 갖고있음
- ↑ 반셔터를 누를필요없이, 뷰파인더에 눈을 대면 알아서 반셔터를 잡아준다.
- ↑ 최초 탑재모델은 소니의 8mm 캠코더 CCD-TR555
- ↑ 광학식 손떨림보정 특허는 Canon이 최초
- ↑ 물론 코닥 역시 디지털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 ↑ Rokkor렌즈로 유명한 MC/MD 마운트, MD는 Minolta Design의 약자.
- ↑ 발매 지역에 따라 이름만 다르고 같은 모델이다. 다른 녀석들도 그렇다
- ↑ 홀수 세대에는 플래그쉽 9넘버가 있고, 짝수에는 프로슈머 업그레이드버전인 8넘버가 있다.
- ↑ 당시에 팔린 물건에 대한 대부분의 사후 지원은 한국지사에서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