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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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84년 9월 19일
키/몸무게 : 179cm, 58kg
소속 : 한빛스타즈(현 웅진 스타즈) → IM
종족 : 저그
ID : Junwi_[saM]-> JunwiPrime -> IMJunwiPirme[1]
별명 : 공공의 적, 마사지 저그, 삼지안, 전지구적 재앙 , 스2 악연류 원조
조진락 | ||||
조용호 | 홍진호 | 박경락 |
대한민국의 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온게임넷 옵저버.
전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겸 게이머 협의회 회장.
전 GSL 코드 A 옵저버
2 주요 경력
2002년 파나소닉 온게임넷 스타리그 4위 (vs 홍진호 1:3)
2003년 올림푸스 온게임넷 스타리그 4위 (vs 임요환 1:3)
2003년 KT-KTF 프리미어리그 2003 초청
2003년 마이큐브 온게임넷 스타리그 3위 (vs 박정석 3:2)
2003년 NHN 한게임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2002년 ghemTV 스타리그 2차 2위
주목할 만한 것은 3시즌 연속 4강. 3시즌 연속 '4강 이상' 을 달성한 게이머는 어느 정도 있지만 '딱 4강' 에서 멈춘 게이머는 스타리그는 물론 MSL까지 합쳐도 한명도 없는 진기록.
이 때문에 락라인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관심을 못받는 라인
3 특징과 경력
2002년 등장하며 날렸던 저그 유저 중 한 명. 홍진호, 조용호 등과 함께 '조진락' 이라는 별칭으로 묶여 불리기도 한다.[2]
주특기는 정신 없을 정도로 곳곳에 떨어지는 드랍으로, 이름과 조합된 별명인 경락 마사지 드랍은 아직도 그를 떠올리게 하는 별명. 특히 당시 세군데에 동시에 떨어지는 럴커드랍으로 수 많은 테란을 압살했던 모습은 항상 테란들에게 무참히 짓밟혀온 저그들에게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박경락은 이처럼 역상성 종족인 테란전에서 공격적이고 화려한 플레이를 자주 선보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2년 갑작스럽게 등장해 굉장한 실력을 선보였고, 언급한대로 특히 테란 유저들을 압살하면서 그 이름을 날렸다. 파나소닉배 스타리그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그 포스가 엄청났는데, 특히 테란전에서 그 스타일리쉬하고 강력한 경기력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16강에서 테란 유저 베르트랑을 만나 특유의 동시 견제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더니 파나소닉배 스타리그 8강전에서 당대 저그전 최강자 중 한명이었던 임요환을 완벽하게 관광보냈다. 임요환 입장에서는 초반 [[치즈러쉬][ 이후 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패배했던 굴욕적인 경기였다. 김태형 해설에게 "지금까지 봤던 저그 중 가장 테란전이 완벽한 저그"라는 찬사를 받았다. 옆에서 엄옹이 이런 찬사에 수긍을 했을 정도.
물론 이는 이 선수가 테란전만 특출나게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프전도 수준급의 실력을 선보였으며, 이렇게 해서 얻은 별명이 공공의 적. 이처럼 박경락의 전성기 임팩트는 골수 저그유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오래 되지 않은 팬들은 갸우뚱하겠지만 조진락 트리오 중에서 순수 기량만큼은 박경락이 최고였다라고 꼽는 올드저그팬들도 생각보다 많다.[3] 이재균 감독도 "최초의 저그 우승자는 박경락이 될 것이다." 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부종족으로 테란을 자주 플레이했다. 마이큐브 스타리그 4강에서 박용욱을 만나 패러독스가 걸리자 테란을 선보이기도 했다. 결과는 패.[4]
문제는 저저전에 고질적인 약점을 안고 있었고[5], 그의 스타일이 어느정도 자원 활성화가 되어 물량을 뽑아낼 수 있는 시점이 되면 특유의 경락 마사지로 이곳저곳 몰아치는 스타일이라, 그 이전 타이밍에 약점이 있었다. 결국 파나소닉과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선 조진락의 다른 멤버인 조용호와 홍진호에게 4강에서 패퇴했고, 마이큐브 스타리그에서는 프로토스인 박용욱을 만나 드디어 결승에 오르는가 했지만 박용욱의 하드코어 질럿러쉬에 어처구니없이 무너지며[6] 3연속 4강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이런저런 이유[7]로 연습량이 떨어지면서 팀을 나가니마니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중간 프로리그에선 한빛스타즈의 광안리 우승 선봉장 역할까지 했으나, 개인리그에선 다시 저때의 포스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
2007년 후반 경부터 2008년까지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올드팬들을 설레게 했으나, 시간의 무게는 무거웠고 손목 부상까지 겹쳐 결국 조용히 프로게이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온게임넷의 옵저버로 활동했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2010년 8월 29일, GSL 시즌1 본선에 진출했다. 세팅 때문에 경기를 연기하고도 김경수[8] 선수에게 2:0으로 무난하게 발리고 탈락해서 까였다.
시즌2에서는 아예 예선도 못뚫었다. 예선을 광탈시켜준게 참고로 김경수[9].
결국 아예 포모스 인터뷰에서...
- 본인의 발목을 두 번이나 잡았던 ‘리갈마인드’ 김경수는 예선 탈락했던데
▲ 복수고 뭐고, 그냥 안 만나는게 편할 것 같다. 신경 쓰고 싶지 않다(웃음).
악연류 최강1[10]
스2갤에서는 박경락 개그를 시전했다.
뭐? 김경수가 예선에서 떨어졌다고?!
뭐? 김경수랑 나랑 볼일이 없다고!?
2011년 1월 31일, 스타크래프트2 게이머 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
GSTL Feb. 결승에서 나도현 선수에게 패했다. 하여튼 팀은 이겼으니 야! 신난다~
2011년 가을 스타크래프트2 협의회가 해체되면서 게이머 협의회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코드A 예선을 뚫는 것도 시원치 않자 2012년 조용히 은퇴를 하였다. 그리고 곰TV에 입사해 HOT6 GSL Season 1부터 코드A 게임연출(옵저버)을 맡고 있다. 13년 8월 현재 코드A옵저버를 하고 있지 않다.
4 기타
한빛스타즈의 올드게이머인만큼, 이재균 감독이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후반기부터의 재기에도 이재균 감독의 힘이 많이 보태졌다고 하며, 온게임넷 옵저버 자리에 들어갈 때도 이재균 감독의 주선이 있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나무위키에 등록이 너무 늦었다. 락라인 항목 개설 이후 박경락 문서 개설까지 연 단위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고대 저그에 큰 영향을 끼친 선수 중 하나이건만.[11]
어렸을적에 배틀넷에서 채팅으로 어그로를 많이 끌었다가, 한 번 현피를 당한 적이 있다고.
- ↑ 프라임을 치려 했는데 오타로 피르메가 돼버렸다. 결국 별명까지 피르메가 돼버림. 13년8월 현재까지 피르메아이디를 사용 중
- ↑ 이후 '양박' 시대로 일컬어지는 저그의 전성기는 '변태준( ?변은종 + ?박태민 + ?박성준 )'의 시기, 최근까지 이어지는 저그의 부흥은 '마준동(마모씨 + ?김준영 + ?이제동 )'의 시기로 일컬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세 시기 모두 한 명이 상대적으로 커리어가 달린다...
- ↑ 조용호의 기량에 대한 재평가가 너무 먼 훗날에 이루어 져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은 감안할 필요가 있지만.
- ↑ 패러독스 맵을 보면 알겠지만, 저그로는 이길 수가 없다.
- ↑ 통산 저그전으로 보자면 그리 약한 건 아니었지만, 당대에 같이 경쟁했던 최상위급 저그, 즉 홍진호와 조용호에게는 천적 수준으로 한없이 약했다.
- ↑ 3경기가 그 유명한 패러독스인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그걸 감안하고라도 1,2경기에서 힘 한번 못써보고 무너졌다. 특히나 2경기는 박용욱이 박경락의 본진 입구를 질럿으로 봉쇄하고 거의 감금조교하다시피 하며 관광...
- ↑ 카더라에 의하면 3번이나 결승 문턱에서 좌절한 이 성적때문에 벽을 느낀 나머지 자존심과 자신감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 ↑ 리갈마인드
- ↑ 위의 그 김경수 맞다.
- ↑ 2는 김성제와 이형주. 이형주는 김성제에게 한 겜도 못따면서 좋은 승수 셔틀이 되어버렸다.
- ↑ 홍진호가 초기 '가난한 저그'와 레어까지의 운영을, 조용호가 현대까지 계승되는 '부자 저그'와 하이브 운영을 사실상 정립하기까지 한 반면, 박경락은 하나의 전략을 개발하는 선에서 멈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드랍은 분명히 후대 저그의 레어 운영에 큰 영향을 끼쳤으나 두 선수의 후광에는 미치지 못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