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웅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朴哲雄
1912년 ~ 1999년 1월 8일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인이다.

1912년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태어났다. 전주신흥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여 구류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본 메이지 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이후인 1946년 전라남도지사 서민호와 함께 조선대학교 설립을 주도하였다. 이후 조선대학교 1, 4, 7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점차 독단적으로 대학을 운영하여 마찰을 빚었다. 1980년 8월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시절 광주보안대에 부인 정애리시와 함께 끌려가 학교운영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1982년 11월에야 학교법인 조선대학교 이사장 복귀가 허락되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많은 사립대학들이 시위사태에 휘말릴때 조선대학도 NLPDR 계열의 운동권 학생들이 박철웅 총장 및 이사진의 퇴진을 요구하며 장기농성에 들어갔다. 결국 1987년 12월 박철웅은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한편 정치인이기도 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광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전라남도 고흥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참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3.15 부정선거 등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공민권이 제한되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