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클라바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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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크림 전쟁 중이던 1854년 10월 25일, 크림 반도발라클라바에서 영국군러시아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크림 전쟁 당시에는 연합군이나 러시아군이나 다들 머리 텅텅 빈 귀족 출신 장군들이 지휘권을 잡은 것과 그로 인해 결국 말단 장교와 병사들만 죽어 나갔던 것도 똑같았으나, 이 전투가 특히 유명한 이유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적의 포대가 방열한 사선으로 걸어들어간 영국 기병대의 왠지 병신 같지만 멋있는(?) 작전 때문이다. 냉정히 따지면 이 정도로 명백히 불합리한 명령은 일선 지휘관의 재량으로라도 거부했어야 옳다. 대전차총검술이 된 거나 다름없잖아 그러나 현대 군법에는 대부분 명백히 불합리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지만,[1] 그 당시의 군법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결국 러시아 포대에서 불을 뿜기 시작하자 기병대가 진격이 아닌 돌격을 시작한 시점에선, 하술될 잘못된 명령서에 적힌 진격(Advance)을 하지 않은것이 되기에 결과적으론 어느쪽을 택하건 명령 불복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재연영화에서 자발적으로 사선에 들어가는 격임에도 기병대가 초반엔 갤롭이 아닌 트롯으로 전진하는 이유가 바로 그 명령서에 적힌 진격이라는 한 단어 때문.

2 잘못된 편지, 그리고 우유부단한 지휘관

발라클라바 전투 당시, 영불 연합군 사령관은 레글런 경, 기병 부대의 지휘관은 루컨 백작이었다. 러시아군은 오스만군을 기습해 탈취한 대포로 연합군의 발라클라바 요새를 노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스칼렛 장군의 믿지 못할 선전으로 영국 중기병대가 러시아 기병대를 격파, 코스웨이 고지와 대포를 탈환할 기회가 생겼다. 그 때 그가 급하게 갈겨 쓰느라 마지막 문장이 어긋난 세 번째 명령서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 원래 전하려 했던 내용
Cavalry to advance and take advantage of any opportunity to recover the Heights. They will be supported by infantry, which has been ordered to advance on two fronts.

기병대는 코스웨이 고지로 진격하라. 이미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하라는 명령을 받은 보병대가 지원할 것이다.

  • 잘못 전달된 내용
Cavalry to advance and take advantage of any opportunity to recover the Heights. They will be supported by infantry, which has been ordered. Advance on two fronts.

기병대는 코스웨이 고지로 진격하라. 그 후 보병대가 전열을 갖추어 지원할 것이다. 두 개의 전선으로 진격하라.

원문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to 부정사 하나와 점 하나 잘못 찍어 이 사태가 터졌다.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한 보병의 지원을 받으며 진격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병대 두 곳으로 진군, 보병이 지원할 것이다로 전달된 것.

레글런 경보다 저지대에 있어 전장을 전혀 살필 수 없었던 루컨 경이 우유부단한 태도로 일관하자, 연락을 맡은 에드워드 놀란 대위가 화를 참지 못한 채 탈환하라는 대포가 있는 쪽이 아니라 러시아 포병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계곡을 가리키며 "저기에 작전 목표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른 루컨 백작은 그대로 경기병대를 이끄는 카디건 경을 비롯한 부하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고, 700여 기의 영국 기병대는 포병대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계곡으로 진군했다.

무자비한 포격에 기병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 기병대의 모리스 대위가 직속 상관 카디건 경에게 "돌격하면 모두 죽은 목숨입니다!"라고 진언하자, 카디건 경은 "그렇다. 나도 귀관의 조언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루컨 경은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계속 진군하라. 부하들에게 진열을 잘 지키라고 전하라"라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프랑스 장군은 "장관이로군. 하지만 저건 전쟁이 아니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말리기라도 했어야지

결국 보다 못한 프랑스군이 러시아군 포대의 우측을 습격한 덕분에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생존자들이 조지 패짓 경이 이끄는 제 11드라군대대와 모리스 대위가 이끄는 제 17경기병연대, 그리고 스칼렛 장군이 이끄는 중기병연대의 부대원들이었는데, 이들은 죽기살기 식으로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러시아 기병대를 박살내고 간신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3 전투 결과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기병들은 700여 명 중 194명이었고, 그 중 상처가 악화되어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제11드라군대대에서는 14명, 제17경기병대대에서는 17명이 살아남았을 정도로 커다란 병크·팀킬이었으나, 이 지휘관들은 그 뒤로도 군직을 유지했다고 한다. 재판이 열렸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상이었고, 죄질은 모두 지워졌다.

지휘관이었던 레글런은 "전쟁에선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라는 뻔뻔한 말을 남겼다. 사건의 장본인 중 한 명인 놀란 대위는 진격을 개시한 직후 갑자기 전열의 맨 앞으로 달려가다 포탄을 맞고 전사했다.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진격을 말리려다 전사한 것으로 추정.

4 기타

  • 1968년 영화인 경기병대의 돌격에서 이 돌격의 과정이 잘 묘사되어있다.


연락 담당을 맡았던 놀란 대위가 장교들의 태도에 열받은 나머지 잘못된 돌격 목표를 가리켜버리는 만행과 같이 가다 실수했음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 말릴려고 했으나 결국 유탄에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경기병대는 그대로 돌격해버리고 참혹한 광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러시아 기병대까지 맞돌격에 들어가면서 대혈투가 벌어지고 소수의 생존자들만이 생환한다.

  • 루컨과 카디건은 처남-매제 관계였다. 루컨의 매제가 카디건이었다고.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대화도 나누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 윗대가리들을 잘못 만난 군인들에게 닥친 비극이지만,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경기병대의 돌격>이라는 시를 써 용기를 기리고 그들을 추모했다. 이 시는 90년 후 한 해전에서 한 제독의 뚜껑이 열리게 만든,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은 시이기도 하다.
"경기병 여단 전진!"
당혹해하는 자가 있었을까?
비록 병사들은 몰랐지만
머뭇거린 자들이 있긴 했다.
그들은 항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명령대로 나아가 죽었다.
죽음의 계곡으로
600명은 달려갔다.[2]
  •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발라클라바 전투 당시 경기병대의 사상자 수가 실제보다 과장되었다는 내용[3]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나온 적이 있다. 러시아에까지 가서 유물 발굴까지 한 뒤, 이 다큐멘터리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첫째 오스만군은 당대의 인식처럼 무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대포가 탈취된 사건만 해도 영국군의 시각으로는 러시아군이 공격하자마자 무너진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당시의 실제 기록들이나 유물 측정 등으로 봐서 적어도 3시간 이상 오스만군은 외부의 도움 없이 버텼고 영국군은 방심과 무지로 인해서 근처에 있음에도 늦게 출동하였다는 것(…). 하필이면 무너질때 도착한 영국군은 바로 오스만군의 비겁성을 개탄해서 이후 세바스토폴 점령을 제외하면 오스만군을 전력에 투입하지 않고 노동부대로만 이용했다.

두번째로 실제 경기병대의 돌격 이후에 귀환한 사람들의 명부, 그것도 현장에서 체크한 인원수와 명단을 비교하면 적어도 그 작전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수는 발표보다는 적었고 부상후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한 사람들이 현장에서 전사로 기록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외로 삽질이면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작전이었다는 것이 결론이다. 진짜로 병신같지만 멋있어(?)

  • 상단에서 언급된 카디건경의 이름이 이유없이 낯익을 것인데, 이 카디건 백작 제임스 토머스 브루데넬이 바로 옷 카디건의 명명이유가 된 인물이다. 이 옷 자체의 발명가라는 이야기도 있는 카디건 백작은 매관매직[4] [5]과 인맥으로 해당 지위에 오른 인물로 멀쩡하게 살아돌아가서 영웅 취급을 받았는데, 이 사람의 취미중 하나가 부하들에게 자기 돈으로 옷 입히는 것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옷이 카디건으로,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투복 아래에 이 옷을 받쳐 입었다. 이후 경기병대의 돌격이 유명해지면서, 이 옷도 같이 유명해지게 된다.
  1.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이 져야 한다.
  2. 전체 6연 중 2번째 연
  3. 그 돌격이 삽질이라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4. 당시 영국 육군은 매관매직(purchase system)이 기본적인 승진 시스템이었으므로 특별하게 불법을 저지른건 아니다. 장교들은 기본적인 기간만 근무하면 그후에는 상위 계급을 돈을 주고 사서 진급해야 했었다.
  5. 장교 임관이나 승진이 군사 훈련을 받고 리더쉽 자질을 갖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돈 많은 집 아들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런 매관매직이 영국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당시 엄연히 사회 계층이 나누어진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점도 있는 제도인 것은 맞았으나, 확실히 이런 제도하에서는 실력 있는 장교들이 지휘권을 잡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프로이센 같은 전통적인 군사 강국에서는 한 번도 매관매직에 의해 장교를 임명한 적이 없었고, 혁명 프랑스가 개전 초기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것도 출생 신분이나 소유 재산의 대소 여부에 상관없이 그저 실력 있는 사람을 장교로 임관시키고 승진시킨 것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에 비해 영국은 구시대의 잔재인 매관매직이라는 악습을 태연하게 이어가고 있었고, 게다가 변변한 전투를 치를 기회조차도 별로 없었으니, 그 지휘관들이 아무런 전문 지식이나 경험도 없이 그저 신사인 척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재주를 갖추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결국 영국육군은 크림전쟁이후 시대에 뒤떨어진 매관매직 제도를 폐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