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

1 개요

白衣從軍

조선 시대의 형벌의 하나. 장수를 제복인 철릭 없이 속에 입던 백의만 입고 근무케 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현대의 보직해임이나 마찬가지인 처벌이다. 조선판 형벌 부대.

2 대상

이순신 장군이 이 처벌을 두 번이나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첫번째는 조산보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 시절로 임무 수행 중에 여진족의 침략을 받아 다수의 병력을 상실하고 녹둔도의 백성들도 희생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실 상급자인 함경도 북병사 이일이 이순신의 병력 증원 요청을 거부한 것이 주 원인이었음에도 어쨌든 패전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조정에서는 이일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이순신이 패장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나왔다. 결국 이일의 증원군 파견 거부가 패전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 자체는 인정되어 그나마 사형에서 감형한 백의종군으로 결정되었다.

두번째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계략에 걸린 선조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왜적이 쳐들어 오는데도 막지 않는다며 이 처벌을 내렸다. 물론 후임자 원균칠천량 해전으로 조선수군을 모조리 개박살낸 다음에 다시 복직 시켰지만.

3 내용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게 원래의 계급이 삭직 또는 강등되어 일개 병졸로 근무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의 직책만 정지될 뿐 신분은 그대로 유지한 채 대장을 보좌할 수도 있고, 전투에서 공을 세워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면 복직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순신도 조산보 만호에서 파직되어 백의종군을 했으나 이후 여진족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워 새로운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 어차피 신분이 신분인 만큼, 병졸들은 물론 장수들도 병졸 대우하지 않고, 계급상 지휘관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것 이외의, 신분상 또는 짬밥상으로 상급자 대우해 주는 예우는 대부분 해 줬다.만약에 병졸 대우했다가 복직되면 데꿀멍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매우 유명해서 백의종군하면 이순신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수행했다. 이순신과 녹둔도에서 같이 싸웠고 임진왜란때 나주 목사였던 이경록, 용인 전투에서 패배해 공을 세웠어도 백의종군한 이광[1], 신미양요 때 어재연의 동생 어재순(스스로 백의종군했지만) 등등 매우 많으며 주로 조선시대 중후기때 많은 분포를 보인다.

하지만, 현대에는 왠지 이미지가 왜곡되어서 그냥 단순히 사죄하기 위해 직책이나 연봉등의 혜택을 포기하였지만 책임은 포기하지 않은 상태를 묘사하는 식으로 쓰게 되었다. 이를테면 박주영 백의종군 기사같은 경우.
  1. 사실 백의종군을 할 만했던 게 아무리 기습으로 무너졌고 실제 병력 손실은 많지 않았다지만 엄연히 1,600명의 일본군에게 5만의 대군이 박살난 전투다. 자세한 내용은 용인 전투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