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도테 왕조

House of Bernadotte


베르나도테 왕조의 문장.

1810년부터 현재까지 약 2백년간 스웨덴을 통치하고 있는 왕조.

1 개요

프랑스의 장군 장 밥티스트 베르나도트스웨덴 국왕 칼 13세의 양자로 들어가 스웨덴 국왕 칼 14세 요한으로 즉위하여 시작된 왕가이다.

2 신흥 왕가

스웨덴 왕가가 된 것이 나폴레옹 전쟁 무렵이며 그 전에는 프랑스의 평민 집안이었으니 그야말로 벼락 출세.[1] 미천한 가문 출신이 장군이 되었다가 다른 가문의 문장[2]을 계승하고 왕좌에 오르는 걸 보면 은영전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비슷한 케이스.

사실 나폴레옹은 전성기에 유럽 각지에 자신의 부하, 친척들을 왕으로 꽂아넣었는데 이렇게 분봉된 왕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후대까지 지속된 왕조이다.[3]

그러나 워낙 뜬금없이 갑툭튀한 왕실이었던 관계로 초기에는 기존 왕실과는 통혼하지 못하고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출세한 다른 신흥가문끼리 혼인을 맺었다.

노르웨이 왕위도 겸했으나 1905년에 노르웨이가 독립했기 때문에 동군연합이 끝나 현재는 스웨덴 왕위만 가지게 되었다.[4]

3 기타

영화 <몰락>에 등장하는 비스보리 백작 폴케 베르나도테가 바로 이 집안 출신이다. 다만 아버지 오스카르 왕자(오스카르 2세의 둘째 아들)가 소설가와 귀천상혼해서 낳은 자식(2남 3녀 중 막내)이었기 때문에 왕위 계승권은 없었다. 나중에 UN에서 일하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재하던 도중 1948년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과격파에게 암살당했다. 국제법을 공부할 때 UN의 국제법상 법인격과 관련하여 언급되는 베르나도테 사건이 이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차기 여왕으로 예정된 사람은 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씨리에 왕태녀이다. 계승법을 절대적 맏이 상속법으로 개정하면서 딸도 아들보다 먼저 태어나면 계승권이 앞서기 때문에 계승이 확정되었다는 의미로 왕태녀(Crown Princess of Sweden)라는 호칭이 등장했다.

4 역대 국왕

이름탄생사망나이즉위년일퇴위년일재위기간비고
칼 14세 요한1763년 1월 26일1844년 3월 8일81세1818년 2월 5일1844년 3월 8일26년 38일[5]
오스카르 1세1799년 7월 4일1859년 7월 8일60세1844년 3월 8일1859년 7월 8일15년 125일[6]
칼 15세1826년 5월 3일1872년 9월 18일46세1859년 7월 8일1872년 9월 18일13년 76일[7]
오스카르 2세1829년 1월 21일1907년 12월 8일78세1872년 9월 18일1907년 12월 8일35년 88일[8]
구스타프 5세1858년 6월 16일1950년 10월 29일92세1907년 12월 8일1950년 10월 29일42년 336일[9]
구스타프 6세 아돌프1882년 11월 11일1973년 9월 15일90세1950년 10월 29일1973년 9월 15일22년 327일[10]
칼 16세 구스타프1946년 4월 30일(현재)69세1973년 9월 15일(현재)(42년째)[11]
  1. 참고로 기존의 스웨덴 왕가였던 홀슈타인-고토로프 왕가는 스웨덴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계속 자신들의 계승권을 주장했으나 남계후손이 끊기고 여계후손만 남은 상태에서 계승권 1위였던 바덴의 빅토리아가 베르나도테 왕조의 구스타프 5세와 결혼하면서 그 이후의 왕들은 기존의 스웨덴 왕가 혈통도 계승하게 되었다.
  2. 베르나도테는 스웨덴의 예전 왕조인 바사 왕조의 문장을 계승했다.
  3. 칼 14세 요한은 스웨덴 귀족들의 반 나폴레옹 움직임에 동조하여, 결국 자기를 임명한 나폴레옹을 퇴위시키는데 일조했다. 친인척이 오히려 등을 돌리기 쉽다.
  4. 대신 타협책으로 베르나도테 왕조의 칼 15세의 외손자이자 덴마크 왕자였던 호콘 7세를 국왕으로 추대했다. 이때 프리드쇼프 난센이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를 설득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5. 노르웨이 국왕으로서는 칼 3세 요한.
  6. 나폴레옹의 대자이다. 나폴레옹 왕조?
  7. 노르웨이 국왕으로서는 칼 4세.
  8. 칼 15세의 동생. 1905년 6월 7일, 노르웨이 왕위를 상실했다.
  9. 오랫동안 스웨덴을 통치하면서 양차대전의 위기에서 스웨덴이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하였다. 그러나 은근슬쩍 나치에 협력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독일 출신인 아내 바덴의 빅토리아가 친독 성향이라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사생활적으로도 동성애 스캔들에 휘말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10.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왕세자였던 1926년에 경주를 방문해 서봉총 발굴을 참관했다. 당시 발굴 작업을 도왔던 일제가 "전하의 이름을 이 무덤에 붙이는 게 어떻냐?"고 하자, "그렇게 하면 천년 왕국을 욕보이게 된다."고 거절했고, 스웨덴의 한자 음차인 서전의 앞 글자와 무덤에서 발견된 금관에 장식되어 있던 새(봉황)를 합쳐 서봉총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11.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손자로, 아버지인 구스타프 아돌프 왕태자는 그가 1살 때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80년에는 왕위계승법을 절대적 맏이 상속제로 바꿨고, 이에 따라 칼 16세 구스타프의 맏딸인 왕태녀가 현재 스웨덴 왕위계승서열 1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