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1 개요
- 2 동군연합
- 2.1 칼마르 동맹
- 2.2 카스티야+아라곤
- 2.3 스페인+신성 로마 제국+저지대[4]+부르고뉴+나폴리 왕국
- 2.4 스페인+포르투갈+저지대
- 2.5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 2.6 잉글랜드+스코틀랜드
- 2.7 프랑스 왕국+나바르
- 2.8 영국+하노버 선제후국[8] (후에 하노버 왕국으로 격상)
- 2.9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 2.10 프로이센+스위스의 뇌샤텔 공국
- 2.11 오스트리아-헝가리
- 2.12 덴마크+노르웨이 → 스웨덴+노르웨이
- 2.13 포르투갈+브라질
- 2.14 네덜란드+룩셈부르크
- 2.15 러시아 제국+폴란드 입헌왕국
- 2.16 프랑스+안도라(부분적, 현재)
- 3 부부 동군연합
- 4 실제로는 동군연합이 아닌 경우
1 개요
同君聯合/personal union[1]
한 군주가 다른 나라의 왕위까지 차지하게 되어 두 국가가 한 연합이 되는 것이다.[2]
다른 문화권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지만 유럽에서는 혈통에 따라서 군주의 지위가 이리저리 옮겨다니기 때문에 때때로 발생한다. 다만 살리카법이 있는 프랑스 등의 경우 부계 혈통 또는 남계 혈통만 인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프랑스-나바르 동군연합의 경우 남계 혈통 소멸로 프랑스 카페 왕조가 멸망하자 카페 왕조의 방계 왕조인 발루아 왕조와 카페 왕조의 직계지만 여성이었던 나바르로 다시 분리되었다.
동군연합에 의한 정치적 통합의 정도는 다양하다. "어, 너희 나라랑 우리 나라랑 섬기는 왕이 같네?" 정도로 끝나는 경우('인적 동군연합')도 있고, 사실상 한 나라 처럼 움직이는 경우('물적 동군연합')도 있다.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물적 동군연합의 전형적인 예였으나, 현재는 없다. 어떤 형태의 동군연합이든 국민의 권리가 통합 전과 통합 후 모두 변동이 없다는 점은 같다.
역사적으로 발생한 대표적인 동군연합은 다음과 같다. 물론 이외에도 수많은 동군연합들이 있었으며 여기 있는게 다가 아니다. 단순히 왕위가 아니라 '왕위+공위', '공위+공위' 같은 식이면 정말 조합이 셀 수 없이 많다.
동군연합은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럽 국가 및 유럽 국가의 속령이었다가 독립한 나라들에서 주로 나타난다. 전근대 유럽에서는 각 나라/지역과 거기에 사는 신민들이 군주/영주의 상속 재산이라는 관념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각 군주/영주간 정략 결혼이 많았다. 따라서 주로 유럽 국가와 유럽 국가에서 독립한 나라에서만 동군연합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사의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인 크루세이더 킹즈 시리즈와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시리즈를 해보면 동군연합이라는 복잡한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냥 속국처럼 묘사되는 유로파와 달리 귀족 개개인 시점에서 진행되는 크킹의 구현도가 좋은 편. 외국의 왕위를 동군연합으로 물려받기 위해 친척들을 암살하거나 동군연합 상태에서 두 왕위의 계승법이 달라 플레이 캐릭터 사후에 다시 별개 국가로 쪼개지는 등 다양한 중세의 난장판을 겪어볼 수 있다.
2 동군연합
2.1 칼마르 동맹
1397년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왕위를 차지하면서 결성되었다. 하지만 1523년 구스타프 바사가 이끄는 스웨덴 독립군에 의해 스웨덴을 상실하면서 해체되었다.
2.2 카스티야+아라곤
중세 말 15세기 이베리아 반도는 과거 코르도바 칼리파국의 유산은 남쪽 끝자락에 있던 그라나다 밖에 안 남아 있었고, 나머지는 포르투갈,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던 상태였다. 이 와중 1469년, 당시 이베리아 반도 중부 지방과 북부 해안, 안달루시아의 레콘키스타 정복지를 다스리던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카탈루냐, 발렌시아와 발레아레스 제도, 그리고 이탈리아의 아라곤 왕실 영지를 다스리던 아라곤의 왕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하며 양국을 함께 다스림으로서 현대 스페인의 모태가 되었다. 이후 1492년 그라나다를 정복하여 레콘키스타를 완수하고, 또 아라곤 왕국이 별개로 나바라왕국을 공격해 상 나바라를 손에 얻으면서 현대 스페인의 영토가 완성 되었다.[3]. 즉, 현대 스페인이란 나라의 기원도 원래는 동군 연합에 있었던 셈이다.
2.3 스페인+신성 로마 제국+저지대[4]+부르고뉴+나폴리 왕국
선대의 결혼동맹 후광+막강한 조력자들+5개 국어를 구사하던 국제적 감각의 엄친아 버프를 보유한 카를 5세가 구축한 합스부르크 제국의 최고 판도. 카를 5세는 재위 중에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 프랑스령을 포함하는 밀라노 공국의 영토까지 손에 넣지만, 대신 부르고뉴 일부를 프랑스에 넘겨주었다. 말년에 카를 5세는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저지대+나폴리를,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신성 로마 제국 제위와 오스트리아 본령을 분할시켜 물려주어 두 합스부르크 통치령은 각각의 역사를 걷는다. 참고로 밀라노 공국과 나폴리 왕국은 1714년까지 스페인에 귀속되었으며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 이후 오스트리아에게 넘어간다.
2.4 스페인+포르투갈+저지대
펠리페 2세가 아버지 카를 5세 뒤를 이어 스페인의 국왕이 된 후, 공석이 된 포르투갈의 왕위를 계승하면서[5] 형성된 동군연합. 이른바 이베리아 연합. 하지만 펠리페 2세 재위 중에 저지대 북부의 네덜란드가 스페인에서 이탈하고, 포르투갈도 흡수된지 60년만에 다시 독립한다.
펠리페 2세의 최초 병합 당시만 해도 포르투갈은 어느 정도의 독자적인 체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국왕만 에스파냐의 국왕을 같이 모시는 것에 가까웠는데, 후대로 가면서 중앙집권 정책에 따라 포르투갈을 억압하자 결국 포르투갈 왕정복고전쟁을 통해 다시 독립국이 되었다.
2.5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1386년 폴란드 여왕 야드비가와 리투아니아 대공 요가일라(폴란드어: 야기에우워) 합동으로 탄생한 동군연합. 이후 아예 연합왕국으로 발전하여 16세기 말엽과 17세기 초엽에는 동유럽 일대를 주름잡는 깡패국가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 프랑스? ㅋㅅㅋ왕위계승을 놓고 내분중이던 러시아도 털어먹고 오스만 투르크의 공세를 좌절시키는 등 그 이름을 널리 떨쳤다. 이 전쟁들에서 활약한 것이 그 유명한 윙드 후사르. 하지만 과두정 의회의 태생적인 한계 탓에, 이후 코사크 대반란이나 대홍수 같은 여러 사건에 휘말려 비틀대다가 결국 망했다. 여담으로 결혼 당시 두 부부는 한국나이로 각각 요가일라 36세, 야드비가 14세였다. 철컹철컹 또한 당시 리투아니아는 토속 다신교를 믿고 있었기에 야드비가는 리투아니아의 가톨릭 개종을 결혼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야드비가가 마음에 들었는지 요가일라는 이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당시 주변국들은 이들의 거짓개종을 의심하였으나, 리투아니아는 그 후부터 골수 가톨릭 국가로 거듭났고 연합왕국은 중부유럽의 패권국이 된다. 로리콤의 힘
2.6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하면서 발생했다. 이 사건 이래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사실상 한 국가가 되지만, 법적으로도 한 나라가 된 것은 앤 여왕 때다.
2.7 프랑스 왕국+나바르
이 동군연합은 역사상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1308년 프랑스 카페 왕조의 필리프 4세가 나바르 여왕 후아나 1세와 결혼하여 성립하였는데 1328년 카페 왕조의 마지막 왕 샤를 4세가 적자 없이 사망하여 동군연합이 단절되었다. 뒤이어 발루아 왕조를 연 필리프 6세는 나바르와는 아무 관계도 없었는데[6] 프랑스와 달리 나바르는 살리카법이 없어서 필리프 4세의 장남 루이 10세의 딸 잔느가 후아나 2세로 즉위했다.
두 번째 동군연합은 이로부터 261년 후인 1589년 카페 왕조의 방계 후손인 방돔 공작 앙투안 드 부르봉(Antoine de Bourbon, duc de Vendôme)과 나바르의 여왕 잔 달브레(Jeanne d'Albret)의 차남이었던 나바르 왕 앙리 4세가 발루아 왕조의 단절 후 아버지의 혈통으로 프랑스 왕위를 계승하면서 발생하였다. 사실 나바르는 당시엔 이미 스페인에 의해 영토 대부분을 잃고 프랑스의 일부나 마찬가지인 상태였고 부르봉 가문 이전에도 1234년부터 프랑스 대귀족 가문[7]이 나바르 왕위를 겸하고 있었다. 앙리 4세의 손자 루이 14세 떄 나바르 왕국은 프랑스 왕국에 편입되어 '프랑스와 나바르의 왕'이라는 부가적인 호칭으로만 남게 된다.
2.8 영국+하노버 선제후국[8] (후에 하노버 왕국으로 격상)
앤 여왕 사후 왕위 계승법에 따라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가 영국의 조지 1세로 즉위했다. 그러나 하노버는 살리카법에 의해 여성계승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후에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고, 하노버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즉위하면서 동군연합은 해체된다.
이러한 점 덕에 허셜 남매가 영국으로 넘어와 천왕성을 발견하게 되고, 발견한 나라가 영국이 되게 하였다.
2.9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프로이센은 원래 튜튼기사단의 정복지로 튜튼기사단이 폴란드에 굴복하면서 폴란드의 종주권을 인정했다. 그후 기사단 국가로 이어지다가 16세기 종교개혁여파로 1525년 튜튼기사단장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이 개신교 루터파로 개종하면서 영지를 세습군주정으로 변경했고, 1619년 프로이센 공작의 대가 끊기자 마지막 공작의 맏사위이자 초대 프로이센 공작 알브레히트 폰 호엔촐레른의 증손자인 같은 가문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選諸侯)가 프로이센 공작으로서는 폴란드의 봉신이 된다는 조건으로 프로이센 공국을 상속받는 것을 허용해주었다. 이로써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프로이센 공국의 동군연합이 되었다.
17세기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시절 스웨덴과 동맹을 맺고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형식적인 종주권을 청산하고 실제 중심지였던 브란덴부르크를 중심으로 호엔촐레른 가문의 십수개의 영지내 의회와 정부들을 통합해서 사실상 프로이센 공국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에 흡수된다. 그러나 나중에 프리드리히 1세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허가를 받아 제국밖의 독립영지인 프로이센명을 사용하여 왕국이름으로 삼는다.
2.10 프로이센+스위스의 뇌샤텔 공국
뇌샤텔은 비록 스위스에 가맹해 있었으나, 다른 주와는 달리 영주가 지배하는 공국이었다. 원래는 프랑스 오를레앙 가문의 방계가 뇌샤텔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1707년에 그 대가 끊기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가 뇌샤텔 공위를 이어받게 된다. 나폴레옹에게 털리기도 하는 등 몇 차례 곡절을 겪으며 내려오다가, 1848년 혁명이 일어나자 뇌샤텔에서는 스위스의 다른 주들처럼 사실상 공화제가 시행되었다. 결국 1857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정식으로 퇴위하였다.
2.11 오스트리아-헝가리
1867년 성립. 근원은 보헤미아-헝가리 동군연합이다. 보헤미아와 헝가리는 14세기 야기에우워 왕조 아래 동군연합을 이루지만, 이후 여러 왕조들이 단명하면서 동군연합이 해체되었다가 다시 성립되는 등 혼란상태에 있었다. 1490년부터 헝가리 왕국이 보헤미아 왕국과의 동군연합이 됐고, 1526년부터는 이 헝가리-보헤미아 동군연합을 헝가리 국왕의 사위였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상속받아 오스트리아-보헤미아-헝가리 동군연합[9]이 만들어졌다. 보헤미아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원래 보헤미아 왕을 겸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 역시 동군연합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 신성 로마 제국이 1806년에 멸망하고 1867년에 헝가리 독립내각이 탄생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만들어졌고, 체코(구 보헤미아 왕국) 독립 내각이 출범하기 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후 해체되지만 당시 오스트리아 왕에서 폐위된 카를 1세는 아직 가지고 있던 헝가리 왕이라는 직위에 복귀하려 했지만 헝가리 의회에서 그의 폐위를 선언했고 섭정인 호르티가 집권. 이후 헝가리를 왕국으로서 존재하다가 2차대전 이후 공화국으로 바뀐다.
2.12 덴마크+노르웨이 → 스웨덴+노르웨이
원래 덴마크는 노르웨이를 영토로 삼고 있었지만, 1814년 나폴레옹 전쟁 와중 스웨덴에게 대패한 후 노르웨이의 왕위를 스웨덴에 양도했다. 이후 성립된 스웨덴 연합왕국은 1905년 해체했다.
2.13 포르투갈+브라질
포르투갈의 왕세자였던 동 페드루 왕자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을 독립시킨 뒤 자기가 페드루 1세라는 이름으로 브라질의 황제에 오르고, 부왕인 주앙 6세가 죽자 페드루 4세라는 이름으로 포르투갈의 왕에 오르면서 잠시 형성된 2개월짜리 동군연합. 당시 브라간사 왕실은 나폴레옹 전쟁의 영향으로 임시 수도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길 정도로 허약해졌기 때문에 브라질을 동군연합으로 계속 유지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페드루1세 & 4세는 브라질 황제는 아들인 페드루 2세에게, 포르투갈 왕은 딸인 마리아 2세에게 물려주면서 동군연합은 2개월만에 해체되었다.
다만 브라간사 왕실이 브라질로 피난가던 시절을 동군연합으로 친다면 이 동군연합은 10년이 넘는 꽤 오래된 동군연합이다.[10]
2.14 네덜란드+룩셈부르크
1815년 빈 회의에 의해 네덜란드 왕국이 성립되면서 프랑스가 점령했던 룩셈부르크 지역에 대한 처분 과정에서 룩셈부르크를 공작령에서 대공국으로 승격시키고, 네덜란드의 왕이 룩셈부르크 대공을 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동군 연합. 이 때 네덜란드의 왕가인 나사우 가문 전체에서 협약을 맺었는데, 룩셈부르크는 살리카법을 적용해서 남계후손이 끊기면 나사우 방계가문으로 대공위가 넘어가게 하는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빌럼 3세의 아들들이 모두 요절하고 외동딸 빌헬미나가 유일한 자녀가 되면서 빌럼 3세 사후 동군연합은 해체되고 네덜란드 왕위는 빌헬미나가 계승하고 룩셈부르크 대공위는 남계로 먼 친척인 아돌프[11]가 계승하였다.
2.15 러시아 제국+폴란드 입헌왕국
1815년 빈 회의에 결과 바르샤바 공국이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삼국에게 분할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폴란드 지역에 폴란드 입헌왕국을 수립하고 러시아 차르가 폴란드 왕국을 겸하게 하는 동군연합이 성립되었다. 이후 폴란드 입헌왕국이 러시아의 직할령이 되면서 동군연합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2.16 프랑스+안도라(부분적, 현재)
안도라는 두 명의 공동 공작을 두고 있는 양두제(diarchy) 국가이다. 안도라의 공동 공작 중 한 명은 로마 가톨릭교 우르헬(Urgell) 교구(스페인 안에 위치함)의 주교가, 다른 한 명은 프랑스의 국가원수(현재는 대통령)가 자동으로 맡게 되어 있다.
사실 이 사례는 personal union을 동'군' 연합으로 번역한 것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군주는 아니지만 국가원수이고, 그가 동시에 맡는 안도라 공동 공작은 군주이면서 국가원수이다. 영어권에서 personal union은 '군주'로 한정하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와 안도라는 부분적인 personal union 상태에 있다고 분류된다. '부분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안도라의 국가원수가 2명인데 그 중 한 명만 프랑스와 공유하기 때문이다.
3 부부 동군연합
부부가 각각 별개의 왕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혼을 통하여 동군연합이 형성된 예.
3.1 나바르+프랑스
상술했듯이 1308년 나바르 여왕 후아나 1세와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결혼으로 성립되었으나, 1328년 샤를 4세 사망 후 카페 왕조의 혈통이 끊어지고 발루아 왕조로 교체되면서 해체되었다.
3.2 오스트리아 + 부르고뉴 공국
당시 신성 로마 제국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장남인 오스트리아 대공 막시밀리안(훗날의 막시밀리안 1세)과 부르고뉴 여공작 마리 1세의 결혼으로 성립된 부부 동군연합. 부르고뉴 뿐 아니라 훗날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되는 저지대 영토 거의 전부가 마리 1세의 영지였기 때문에 그녀의 손자인 카를 5세가 저지대 영토를 상속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3.3 카스티야+아라곤
현대 스페인의 기초가 된다.
3.4 프랑스+스코틀랜드
프랑스 왕 프랑수아 2세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결혼으로 생겨난 동맹. 하지만 프랑수아 2세가 요절하고 후계자가 없어서 1년 남짓 만에 소멸하였다. 메리 스튜어트가 두 번째 남편 단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연합 왕국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한 것을 보면 만약 프랑수아 2세와 자손을 낳았더라면 다아시 경 시리즈 영불제국의 축소판인 잉글랜드+스코틀랜드+프랑스 동군연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3.5 잉글랜드+스페인
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잉글랜드의 메리 1세의 결혼으로 발생한 동맹. 이 때문에 1598년은 잉글랜드+스페인의 결혼 동맹과 프랑스+스코틀랜드의 결혼 동맹이 대립하는 상태였다.(…) 자못 볼만했지만 둘 사이에서 후계자가 없어서 메리 1세 사망 후 소멸되었다.
3.6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네덜란드
명예 혁명 이 후, 메리 2세가 남편인 네덜란드의 빌럼(윌리엄) 3세와 공동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이 부부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이 모두 요절했기 때문에 1대 만에 메리 2세의 동생 앤 여왕이 계승하면서 네덜란드와의 관계가 끊어지고 소멸되었다.
참고로 메리 2세가 살아 있던 시절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는 네덜란드와 부분적 동군연합이었다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메리 2세가 지배자가 아니었기 때문. 메리 2세가 죽고 윌리엄이 단독 군주가 된 뒤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네덜란드가 완전한 동군연합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윌리엄은 잉글랜드, 아일랜드, 네덜란드에서는 빌럼/윌리엄 3세였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윌리엄 2세라고 썼다. 잉글랜드는 이전까지 윌리엄이란 이름을 쓴 왕이 윌리엄 1세 이래로 2명 뿐이었고(노르만 왕조 이전은 안 따짐), 아일랜드 국왕 칭호는 잉글랜드 국왕의 이름과 똑같이 썼으니 달라질 수 없었다. 네덜란드는 그 전에 빌럼이 2명 있었기 때문에 빌럼 3세이므로 잉글랜드, 아일랜드와 대수가 일치했다. 하지만 역대 스코틀랜드 국왕 중에 윌리엄은 이전에 한 명밖에 없었으므로 따로 윌리엄 2세라고 표기해야 했다. 메리의 경우, 잉글랜드(더불어 아일랜드도)와 스코틀랜드 모두 여태까지 메리가 한 명씩(블러디 메리와 메리 스튜어트) 있었으므로 자연히 잉글랜드·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메리 2세로 일치했다.
일반적으로 두 나라의 군주가 결혼을 하면서 공동군주가 돼 성립되는 동군연합의 경우, 부부 중 원래의 계승자가 죽으면 배우자도 자동으로 공동 군주 지위를 잃게 되거나 다음 후계자와 공동군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 시기에는 예외였다. 윌리엄이 잉글랜드 의회가 주도한 명예혁명을 수락할 당시 요구했던 게 "만약 아내가 나보다 먼저 뜨면 내가 단독 군주로 남게 해달라"는 것이어서 잉글랜드의 의원들이 이에 동의했고 혁명 성공 뒤 이 내용을 담은 법을 만들었기 때문. 이 조치가 없었다면 메리 2세가 사망한 직후 윌리엄 3세는 즉시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왕위를 잃고 처제 앤이 단독 군주로 즉위하게 되거나, 윌리엄 3세와 앤 여왕의 공동 군주 체제가 들어서게 됐을 것이다. 이러면 권력의 안정성에 문제가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근데 어차피 명예혁명 이후로 왕권이 약화된 건 함정 메리가 먼저 죽으면 윌리엄이 계속 단독 군주로 남게 조치한 것이다. 그래서 메리 2세가 사망한 뒤 윌리엄 3세가 단독 군주로 남아 있다가 그도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처제인 앤 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다.
한편 잉글랜드 국왕은 백년전쟁 이래로 오랫동안 프랑스 왕을 사칭하고 있었고, 당시 네덜란드의 지배자들은 명목상 프랑스 남부 오랑주(오라녀, 오렌지) 공의 칭호를 쓰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명목상의 칭호까지 따지면 이 시기 동군연합의 양상이 훨씬 복잡해진다(...).
4 실제로는 동군연합이 아닌 경우
4.1 고려+심양
원 간섭기에 고려국왕 충선왕이 심양왕에 봉해졌고 두 작위를 합쳐 고려심왕이라고도 한다. 심양왕은 후에 심왕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동군연합은 별개의 두 국가가 먼저 존재하고, 그 후 두 국가의 군주를 같은 사람이 겸하게 되어 탄생하는데 반해 고려심왕의 경우, 심왕은 작위로서의 왕일뿐 실제로 나라를 다스리는 작위가 아니었으므로 이를 동군연합이라 볼 수는 없다. 참고로 충선왕 이후에는 고려국왕과 심왕의 작위가 각기 다른 사람에게 주어졌으므로 이를 함께 겸한 것도 충선왕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4.2 영연방 왕국[12]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국가원수로 하는 총 16개의 나라들이다.[13]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가 한 나라를 이루는 영국과 달리, 이들 16개국은 평등한 주권국가들이다. 단, 영국 이외의 나라들에서는 여왕을 대리해 총독이 국가원수대리 역할을 한다.[14] 이들이 동군연합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영국이 다른 국가에 간섭 할 수 없는데다 다른 국가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탈퇴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들을 동군연합이 아닌 그저 상징적인 연합체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자세한 내용은 영연방 참고.- ↑ 좀 더 명확하게는 personal union을 인적(人的) 동군연합이라고 번역하고 real union이라는 용어를 물적(物的) 동군연합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본문을 참고.
- ↑ 한자 문화권에서는 동'군'연합이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군주'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영어 personal union이나 real union의 정의로는 그보다 범위가 넓은 '국가원수(head of state)'의 공유를 통한 국가 간의 연합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드물긴 하지만 대통령 같은 공화정의 국가원수를 복수의 국가가 공유하는 것도 personal union이나 real union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프랑스와 안도라는 부분적인 personal union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분류되는데 안도라의 공동 공작 중 한 명은 프랑스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personal union이 군주만 해당된다면 절대 이렇게 분류할 수 없을텐데(안도라의 공동 공작은 군주이지만 동일인이 가지는 프랑스 대통령 직위는 군주가 아니므로), '국가원수'를 가지고 정의하니 자연스럽게 부분적 personal union으로 분류되는 것.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동'군'연합은 영어 personal union이나 real union에 완벽히 대응되는 번역어는 아닌 셈...
- ↑ 이 와중 피레네 산맥 위로 삐져나와있던 로세요, 세르다냐 같은 카탈루냐의 일부는 훗날 17세기 중반에 프랑스에게 빼앗긴다
- ↑ 당시 이 지역은 여러 공국과 백국들이 카를 5세라는 한 명의 군주를 두고 있는 상태였다. 현재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포함한다.
- ↑ 정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나, 펠리페 2세는 애초에 포르투갈 왕국의 제1왕위계승권자였다.
- ↑ 필리프 6세는 필리프 4세의 조카로 나바르의 핏줄이 전혀 없었다. 다만 필리프 6세는 후아나 2세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였던 잔느와 결혼했다.
- ↑ 상파뉴, 카페, 에브뢰, 알브레 가문
- ↑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 ↑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선출직이므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령인 오스트리아가 대표가 된다.
- ↑ 사실 포르투갈의 정식 명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처럼 포르투갈-알가르브 연합왕국이었고,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왕국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본토가 탈탈 털리던 시기에 식민지였던 브라질은 국력이 커지면서 식민지가 본토보다 더 힘이 셌던 주객전도 시기가 있었기 때문. 참고로 알가르브는 현재 포르투갈의 남부지방의 지명이다. 원래 포르투갈은 지금의 포르투갈 북부만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 ↑ 하지만 여계를 따지면 빌럼 3세의 조카뻘
- ↑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바하마, 그레나다,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투발루, 세인트루시아,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벨리즈, 앤티가바부다, 세인트키츠네비스.
- ↑ 영연방 회원국 중에선 영국 여왕을 국가원수로 모시지 않는 나라도 많기 때문에 영연방과 정확히 겹치는 개념은 아니다.
- ↑ 물론 총독은 상징적인 존재일 뿐 실질적인 권력은 그 나라에서 뽑은 총리 등에게 있는 것이 보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