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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보팔 : 현재진행형 비극. 1984~2004 |
1 개요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
보팔 참사, 보팔 대참사 등으로 불리는 20세기 최대의 산업 재해 중 하나. 인도의 보팔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유독가스가 대량으로 누출된 사건이다. 인명피해만큼은, 인류 최대의 환경 재앙이라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가뿐히 능가한다. 영문으로는 아예 Bhopal disaster라 하여 네임드 재앙으로 취급. 가스 누출 당시에만 3787명이 사망했으며, 이후 가스누출로 후유증을 얻은 사람들이 사망하며 1만 6천명 이상이 사망했다. 인재임에도 사망자가 자연재해와 맞먹는다. 부상자는 최소한 558,125명.
2 배경
전세계적인 굴지의 다국적 화학기업이자 부동액 프레스톤으로 유명한 유니온 카바이드(Union Carbide)의 인도 현지법인인 UCIL(Union Carbide India Ltd)은 인도 각지에 공장을 두고 있었으며, 보팔 공장은 1969년에 설립한 사고 당시 15년 된 화학 공장이었다. 유니온 카바이드는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 다수의 공장을 두고 있었으며,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도 이러한 투자를 매우 반겼다.
UCIL 보팔 공장은 위험물질의 유출 등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당시 기술로선 최첨단인 여러 안전 장치들을 두고 지속적으로 이를 개선해 나갔으며, 공장 입지 자체도 인구가 거의 살지 않는 황무지를 선정했다. 즉, 이러한 모습만 보면 설사 사고가 터지더라도 공장 근로자들만 좀 희생되겠지만… 왜 인명피해가 십만 단위를 찍는 지는 밑에서 서술한다.
3 전개
운명의 1984년 12월 3일 23시를 갓 넘겼을 무렵. 한 직원이 이상 현상을 발견했다. 농약 및 살충제 제조에 쓰이는 독성 화학물질인 아이소사이안화 메틸(methyl isocyanate; MIC)[1]을 저장하는 610번 탱크의 온도가 갑자기 미친 듯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2]
당황한 공장 측은 당장 사용 가능한 모든 안전대책을 총동원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하나도 작동하지 않거나 무위에 그쳤고, 시간만 흘러갔다. 이미 MIC의 유출이 시작되고 있었던 12월 4일 00시 30분, 610번 탱크의 콘크리트에 균열이 발생했고, 보팔 공장은 비상 사이렌을 울리는 것과 동시에 전 근로자 대피명령을 하달했다.
마침내 610번 탱크가 폭발했고, 저장되어 있던 42톤 규모의 MIC 가스가 본격적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도착한 현지 경찰은 주변 차단과 동시에, 새벽 1시를 기해 비상경보를 발령했으나 이미 가스는 퍼질대로 퍼진 뒤였고, 주변 마을에선 갑자기 숨쉬기가 어렵고 목과 눈이 따가운 증세가 발생하여 사람들이 단체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들 중에는 달리다가 쓰려진 사람도 있었고, 공장에서 일을 했던 직원들은 무슨 사건이 벌어진지 파악을 하고는 차를 타고 위험지역을 빠져나간 사람도 있었다. 첫 환자가 새벽 2시에 병원에 도착하는 것을 기점으로 단 몇십 분만에 주변의 모든 병원은 마비상태에 몰렸다. 2시 10분, 보팔 전 지역에 사이렌과 함께 대피 경보가 울렸으나.....
4 참사의 원인
4.1 직접적 원인
직접적인 원인은 610번 MIC 저장 탱크로 1,000~2,000갤런의 물이 유입되었다는 것이 지목되었다. 대량의 물과 MIC의 만남은 곧 화학적 작용을 통해 급격한 온도 상승을 일으키고, 여기에 탱크내부의 녹이 화학작용을 촉진시키며 탱크의 폭발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사측에서는 이 물의 유입에 대해서선 직원의 사보타주로 추정만 할 뿐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으나, 노동조합측에서는 MIC 탱크와 바로 근처에있는 처리시설과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였고, 설계상 존재하지 않는 파이프의 존재에 대한 현지 직원들의 증언을 증거로 제시하였다.
4.2 안전 시스템의 붕괴
그러나 이런 화학플랜트에는 이런 일에 대비해서 늘 견고한 안전 시스템을 갖추기 마련이며 UCIL 보팔 공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안전 시스템들이 그 날 무력화된 이유들을 살펴보면 누구나 다 어이가 가출하기 마련이다.
- 가장 근원적으로, MIC 탱크와 연결되는 일부 파이프를 화학처리시설에서 끌어와서 쓰고 있었다. 그리고 화학처리시설에선 폭발의 원인인 물을 이용해 막힌 부분을 뚫어주는 작업을 자주하였는데,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해당 파이프라인엔 물과 MIC의 혼입을 막아줄 방지장치가 달려있지 않았다. 원인은 담당자가 파이프 부설이 있기 1주전 해고되었고, 대체인력이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
- MIC 저장 탱크의 내부온도를 0도로 유지시켜야 하는 냉각 시스템이 무려 5개월동안 가동되지 않았으나, 공장 근로자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
- 또한 MIC 저장 탱크를 만약에 대비해 질소로 충전시켜 보호하는 장비가 있었으나,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 압이 새고 있었음에도, 보고는 경영진 선에서 지속적으로 무시되고 있었다.
- 냉각 시스템을 재가동하지 않으면서 610번 탱크의 온도 경보기도 리셋시켜 버렸다. 그래서 온도가 미칠듯이 오르는 급박한 와중에도 멀쩡한 온도 경보기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 냉각 시스템과 온도 경보기의 무력화에 대비하여, 유독가스가 배출될 경우 이를 자동으로 세정시켜 주는 세정기(공학명칭:Scrubber)도 있었으나, 1달 넘게 고장나 있었다.
- 세정기까지 고장나는 막장 사태에 대비해 유출된 가스를 즉각 태워버리는 강력한 소각 시스템(공학명칭 : Flare stack)이 대비하고 있었으나, 파이프가 고장나는 바람에 당시에는 작동이 불가능했었다. 이에 따라 실무진 측에서는 누누히 신규 파이프를 요구했으나 역시 묵살당했다.
- 가스 유출+세정기 무력화+소각장비 무력화라는 최악의 최악, 그리고 최후의 최후를 대비하여 MIC 증기를 수용액화 시켜 확산을 막도록 소방호스를 비롯한 방수장치가 있었고 다행히 이 장치는 제대로 작동했으나, 장치가 제대로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와 수압이 작아 앞서 말한 소각 시스템 굴뚝까지 물이 닿지 못했다. 이 역시 경영진 선까지 보고가 되었고, 본사에서도 더 큰 방수 설비가 필요함을 권고하였으나, 실질적 예산 투입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차라리 체르노빌 사고는 양반인 '예고된 인재' 수준.
그리고 이 막강한 안전 시스템이 연쇄적으로 붕괴된 이유로는, 본사 측에선 '현지 인도인 직원들이 영어로 된 기기 매뉴얼을 몰라서 혹은 너무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주장했으며 그럼 힌두어로 번역해주면 되잖아, 노동자조합측에서는 '본사측의 운영비용 감축 압박으로 인하여 위험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안전비용을 삭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4.3 사고 당시의 불운
하필이면 사고가 터질 당시, 보팔 지역은 바람이 안 부는 무풍 상태였었다. 그래서 가스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거나 혹은 마을 방향으로 날아갔지만 바람에 전부 휩쓸려 얼마 뒤 약화되거나 하지 않고 수십 톤의 유독가스가 전부 마을에 눌러앉아버렸다
4.4 대규모 인명피해
그래도 분명 공장을 설립할 때만 하더라도 보팔은 작은 도시였으며, 주변에 인구밀집지역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 설사 이런 막장 사고가 터지더라도 절대 최대 50만 명이라는 인명피해가 날 수 없다. 없어야 하는데….
공장 : 여러분, 공장 세웠습니다. 일하러 오세여~~
근로자 1 : 오오, 저기 가서 일하며 가족들 먹여살려야겠다.
근로자 2 : 그런데 이 많은 가족 냅두고 나 혼자 가긴 싫은데….
근로자 3 : 그래! 가족들 다 데리고 가자!
근로자 4 : 어, 공장 근처에 집이 없네? 판자집이라도 만들자.
이렇게 지방 듣보잡 중소도시가 인구 70만을 찍는, 중국과 인도만이 가능한 스케일에 이런 대형 재해가 결합되니 피해가 더 심각해졌다.
5 결과
결국 직접 사망자가 최소 3,787명, 주장되기로는 16,000명 이상,[3] 그리고 부상자는 50만 명 이상에 달하는 충격적인 인명 피해를 내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사망자와 부상자 중에는 특히 어린이들과 노인 등의 노약자가 많았는데 이는 이들이 잠자고 있다가 미처 대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상자 중 상당수는 실명 등의 중상을 입어야 했으며, 가임여성들은 이후 유산 및 기형아 출생 등으로 고생해야 했다. 인도 정부는 유가족 1가구당 835달러(...), 835'만' 달러가 아니라 835달러를 지급했다. 이걸로 뭐 어쩌라고. 거기에 골때리게도 이 돈마저도 몇 년이나 지급이 미뤄졌다.
그와 별개로 유니온 카바이드는 제대로 망했다. 아니 망해야만 했다. 저렇게 개판으로 대참극을 벌여놓고도 당시 현장 책임자는 "인도인에게 800달러가 넘는 돈이라면 너무나도 과한 보상이다. 한 450달러만으로도 충분하다." 는 망언을 하여 전 인도를 분노하게 만들었는데, 이 말은 인도 전역으로 대문짝만하게 보도되었고, 힌두 극우파들까지 이 말 한 사람을 죽여버리겠다고 분노하여 극우파가 아니어도 그랬겠지만... 그는 미국으로 서둘러 달아났지만 결국 해고됐다. 자업자득 하여튼 이 망언 덕에 이 업체는 인도 전역에서 비난 대상이 되었던 터. 사고 소식을 들은 CEO가 황급히 날아왔으나 공항에서 바로 체포, 구금되었다가 강제출국당했고, 유니온 카바이드의 주가는 제대로 폭락 크리. 거기다 엄청난 이미지 추락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매출이 떨어졌다. 결국 초거대기업이던 유니온 카바이드는 결국 2001년, 다우 케미컬에 인수되었다.
참고로, 다우 케미컬은 아직까지도 인도 정부와 배상 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며 참사 당시 유니온 카바이드의 경영자들은 여전히 인도 정부로부터 형사소송법에 따른 고소를 당한 상태이다. 하지만 인도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정부 요인들이 뇌물을 받아먹고 여러가지 악재들을 나 몰라라 했다는 주장도 끈질기게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당시 보도를 은폐하려던 것이 드러나기까지 했다. 물론 피해가 워낙 컸기에 은폐할 수가 없었지만. 여하튼 다우 케미컬 측은 이 사건은 인도 정부 측도 잘못이 크니 공동으로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공장 내에 독극물은 여전히 방치되어 있으며 시설에 녹까지 슬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으며, 심지어 예산 문제로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아이들이 공장을 놀이터 삼아 노는 형편. 흠좀무. 드디어 2012년 인도는 독일의 독극물 처리업체와 계약을 체결했으며 독극물을 선박으로 독일까지 실어나른 다음 독일에서 소각하여 처리한다고 한다.
2년 뒤 터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함께 대표적인 산업 재해이자 환경 재앙으로 각인받고 있으나 체르노빌 사고가 원자력 사고라는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묻히고 있다.
이 사고의 영향인지 인도에 건설되는 화학플랜트에 들어가는 기기는 EN 10204 Type 3.2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4]
2012 런던 올림픽 후원사 중 하나가 다우 케미컬인데, 인도 공화국 정부 및 선수들은 다우 케미컬의 스폰을 철회할 것으로 요구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올림픽 보이콧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6 행정학에의 영향
행정학적인 측면에서 전 세계 환경정책의 기조 자체를 바꿔버린 사건으로 인식된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1970~80년대는 신자유주의를 행정에 받아들인 소위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의 영향이 절대적인 시기였다. 환경정책 역시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기존의 CAC (Comand & Control)[5] 방식 환경정책의 비효율성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가해졌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MBR (Market Based Regulation) 방식의 환경정책이 제안되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MBR 방식의 환경정책은 환경문제의 해결을 시장원리(수요와 공급)에 맡기자는 것이었다. 시장경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추앙되던 시기였기에 지금도 그렇지만 MBR 방식을 주장한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정부와 시민의 역할을 축소하고 오염물질의 관리를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MBR 정책 중 대표적인 것이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오염물질 배출권 거래[6]' 이다. 많은 행정, 경영 이론이 그렇듯이 MBR 정책이 효과가 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MBR 방식의 환경정책을 주장한 학자들은 환경이나 인간의 생명에 무관심한 거대 기업이 부패한 정부와 결탁할 경우 MBR 방식의 환경정책은 환경문제를 극도로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으며, 그 최악의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 보팔 가스 누출 사고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이 사고 이후, 행정학에서의 환경정책은 CAC로의 회귀와 함께 정부와 시민의 적극적인 개입을 전제로 하는 IBR (Information Based Regulation) 으로 변화하게 된다.
7 참고자료
- 로버트 F. 하틀리. 윤리경영 - 고객이 존중하는 기업 만들기(2006) 21세기북스
- ↑ 들이키면 체내의 수분과 반응해 폐에 출혈을 일으킨다.
- ↑ 목격자 말에 따르면 온도를 표시하는 바늘이 한바퀴 돌았다.
- ↑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2만 명까지 늘어난다.
- ↑ EN 10204는 자재인증에 대한 유럽규격으로 Type 3.2는 철판이나 파이프를 제작할 때부터 OWNER의 감독관이 파견되어서 쇳물 단계부터 검증하는 가장 까다로운 등급이다. 유럽에 설치되는 기기라도 Type 3.2가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인도는 반대다. 그만큼 충격적인 참사였다는 것.
- ↑ 정부에서 오염물질 배출 제한을 설정하고 직접 감시하는 것
- ↑ 각 국가나 회사별로 오염물질 배출량의 한계를 정해 놓고, 남는 배출량을 국가나 회사들이 '거래'할 수 있게 한 것. 국가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거래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