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티 EB110


GT 모델.

SS(Super Sport)모델. GT모델보다 출력을 높이고 경량 소재를 사용한 고성능 모델이다.

1 개요

1992년 부가티에서 만든 슈퍼카이자 80년대 슈퍼카붐의 마지막 주자. 시판당시 가격은 58만 마르크정도로 한화 약 3억2천만원이었다.

2 상세

EB110과 이탈리아 부가티의 흥망성쇠를 다룬 짧은 다큐멘터리. 최고의 차를 만들기 위해 야근도 밥 먹듯이 했던 당시 직원들과, 점점 기울어져 가는 회사를 결국 살리지 못한 당시 사장 로마노 아르티올리의 인터뷰가 지금은 텅 빈 당시 공장 건물을 배경으로 진행되었다.

1947년 부가티의 창립자 에토레 부가티의 죽음과 경영난으로 프랑스의 최고급 자동차 메이커였던 부가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지만 80년대 재규어 XJ220, 페라리 F40등을 필두로한 슈퍼카붐이 일어나면서 1989년 이탈리아의 사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는 부가티의 판권을 사들여 "Automobili Bugatti SpA"라는 이름으로 부가티를 부활시켰다. 또한 로마노는 새 부가티의 공장을 페라리, 람보르기니 공장 근처인 이탈리아 모데나(Modena)의 캄포갈리아노(Campogalliano)에 건설했다.[1] 이 이탈리아의 신생 부가티는 곧 에토레 부가티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고 부가티의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1992년 EB110을 발표했다. 개발 당시 다수의 람보르기니 관련자들[2]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디자인은 초기에 마르첼로 간디니[3]가 했으며 간디니가 의견 불일치로 중간에 그만둬 건축가 장-파울로 베네디니가 마무리했다. 어쨌든, 초기 디자인 구성은 간디니가 잡아놓았기 때문에 람보르기니의 전매특허 취급을 받는 시저도어도 탑재되어 있었다. 또한 고급차답게 문 뒤쪽에 섀시 넘버와 오너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엔진은 V12 엔진의 마술사로 불리는, 람보르기니 기술감독 출신의 파울로 스탄자니가 설계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V12 3.5엔진은 V12 엔진 치고는 적은 배기량에 IHI사의 저압터보 4개가 설치되어 6단 수동변속기와 함께 550마력의 성능을 발휘했으며, 고성능 모델인 EB110SS의 경우 부스트압을 높여 612마력을 발휘한다. 파워트레인은 구성 배치가 특이한데 엔진을 미드쉽에 배치하고 엔진 앞쪽에 트렌스미션을 배치한뒤, 다시 뒤쪽에서 동력을 끌어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4] 주행 방식으로는 풀타입 4륜구동이 탑재되었으며, 프런트와 리어의 토크 배분율은 27:73으로 후륜에 토크를 더 배분해 주행감을 높이고자 했고, 거기에 휠 하나당 각각 4포트식 캘리퍼를 갖춘 대형 디스크를 장착한 브레이크 시스템을 탑재하여 당시 최고의 제동성능을 자랑했다. 또한, 람보르기니 출신 인사들이 많이 참여한 만큼 섀시는 람보르기니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초호화판 인사들을 불러와 온갖 성능향상을 한 결과, 0-100km/h은 4.5초, 최고속도는 341km/h였으며 잠시나마 당시 가장 빠른 양산차였다. 그러나 희대의 사기모델 맥라렌 F1 앞에서는 버로우


실내는 모델마다 구성이 다른데, GT 모델의 경우 시트를 비롯해 천장까지 천연가죽으로 꾸며졌고 자단나무를 사용해서 상당히 호사스럽게 꾸몄다.

SS 모델은 성능 위주의 모델이기 때문에 실내에 자단나무 대신 가볍고 견고한 카본파이버를 사용했다.

3 단점, 그리고 망했어요

세계 정상급의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이 뭉쳐 만든 당대 최고의 차 중 하나였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중량이 1600kg으로 경쟁차량들보다 상당히 무겁다는 것이었다. SS모델은 편의 장비를 대폭 제거하여 150kg정도를 경량화했으나 그래도 최대 라이벌인 맥라렌 F1보다 150kg 이상 무거웠기 때문에 맥라렌 F1의 380km/h가 넘는 사기적인 속도는 결국 따라잡지 못했다.

슈퍼카붐의 막차를 탄 EB110은 다른 슈퍼카들과 마찬가지로 90년대 유럽과 일본의 경제 악화로 판매량이 급감했고, 사장 로마노 아르티올리의 무리한 사업 확장과 타기업 인수 시도로 재정상태가 나빠진 부가티 오토모빌리는 EB112 등 미래 모델의 컨셉카만 내놓고 결국 1996년 문을 닫게 되었다[5]. 그동안 한 시대를 풍미한 슈퍼카 EB110은 140여대가 생산되었고 100여대가 판매되었다. 이후 1997년의 공매에서 몇대의 완성차와 5대의 미완성 차량을 비롯한 각종 부품들은 독일의 회사인 다우어(Dauer Sportwagen GmbH)에게 매각되었고, 다우어 사는 차체를 카본차이어로 재설계하고 출력을 700마력으로 높여 재조립하여 '다우어 EB110'[6]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 가격은 47만 달러정도였다. 이후 다우어 사는 2008년 파산했고, 현재 EB110의 부품들은 Toscana-Motors GmbH 에게로 넘어갔다.

옛날 프랑스의 세계 최고 명차 회사였던 부가티의 명성을 이어받기 위해 출시한 모델이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평은 좋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 성능은 몰라도 이탈리아 느낌이 지나치게 강했던 디자인은 당시에도 상당수 존재했던 클래식 부가티의 매니아들의 마음을 잡는데 실패했으며, 실내는 안락한 편이었고 운전도 쉬웠지만 거꾸로 그 "운전이 쉽다"는 점은 "운전의 스릴이 없다"라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에, 슈퍼카 매니아들에게도 외면을 받아 결국 부가티의 이름을 회생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부가티 상표는 독일의 초거대기업 폭스바겐 그룹이 인수해가 그나마 클래식 부가티를 좀 더 잘 이어받은 차를 만들었다.

4 기타


참고로 F1의 영웅 미하엘 슈마허가 노란색 모델을 구입한것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판지 오래다. 사고를 내고 팔았는데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가격이 9억(...)이상이었다. 흔한 사고차량의 판매가

현재 30~40대 정도가 남은 것으로 추정되며 해외에서는 SS모델 기준 대당 40만 달러(한화 약 4억 500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으며, GT 모델은 그보다 저렴하다. 클래식 부가티의 가격이 수백만에서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고, 베이론도 100만 달러 이상은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차의 안습한 취급이 그대로 반영된 가격이라 할수 있다. 그래도 취향 차이인지, 베이론보다 EB110을 더 좋아하는 부가티 매니아도 종종 있다.

일본에로 동인지상업지 작가인 EB110SS가 자신의 필명을 이 차의 이름에서 따왔다.

국내에도 EB110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직전 삼풍백화점에 EB110이 전시되어 있었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7] 다만 이 EB110이 백화점 붕괴에 휘말려 파괴되었는지 아니면 그 전에 빠져나갔는지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하여 소문 정도로만 돌고 있었는데 2015년 9월 7일 주간조선에서 국토교통부 자료를 인용 보도한 이건희 회장 소유 차량 목록에 부가티 EB110이 있어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물론 이 차량이 삼풍백화점에 전시되었던 그 차량인지 아니면 다른 차량인지는 확인 불가. 여담으로 이건희 회장의 EB110 취득가액은 490,094,000원.천단위 위로 데칼코마니 돋네
  1. 사실 쇼맨쉽적인 성격이 다분한 결정이었다. 로마노는 신차발표회에 정치인, 기업가, 연예인등 유명 인물들을 다수 초청하고 공장도 마치 미술관을 연상케할 정도로 예술적으로 지었는데 이 모두가 투자 유치를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모데나에 공장을 건설한것도 투자유치 노력의 연장선이다.
  2. 대표적으로 마르첼로 간디니와 파울로 스탄자니 등
  3. 람보르기니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 치제타 V16T등을 디자인, 설계한 당대 최고의 자동차 디자이너중 한명이다.
  4. 이는 람보르기니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와 동일한 구조인데 이유는 이들 모두 마르첼로 간디니가 설계했기 때문이다.
  5. 이 EB112의 디자인은 폭스바겐이 부가티 브랜드를 인수한 후 EB118, EB218 등의 컨셉카에 써먹었으며 후에 유명한 부가티 베이론에 일부 쓰였다.
  6. 다우어 상표로 판매한 이유는 부가티의 상표는 폭스바겐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7. 혹자의 말에 따르면 삼풍백화점에 가서 EB110을 구경한 뒤 보름 후에 백화점이 주저앉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