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슈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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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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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
국적독일
생년월일1969년 1월 3일
출생휘르트
레이스308경기
월드 챔피언7회 (1994, 1995, 2000, 2001, 2002, 2003, 2004)
그랑프리 우승91회
포디움155회
폴포지션68회
패스티스트랩77회
첫 레이스1991년 벨기에 그랑프리
첫 그랑프리 우승1992년 벨기에 그랑프리
마지막 레이스2012년 브라질 그랑프리
마지막 그랑프리 우승2006년 중국 그랑프리
소속팀조던(1991)
베네통(1991~1995)
페라리(1996~2006)
메르세데스 GP(2010~2012)
가족동생 랄프 슈마허
부인 콜린느 슈마허
딸 마리아 슈마허
아들 믹 슈마허

1 개요

Michael Schumacher[1]

F1의 황제 [2] [3]

F1 역사상 역대 최다 우승을 한 드라이버, 존재 자체가 F1이었던 드라이버, F1의 전설

포뮬러 1을 제패했던 카 레이서. 1969년 독일(당시 서독) 출신.

누가 뭐래도 실존했던 먼치킨의 대열에 들어가는 레이서.

F1 공식 엔딩곡이 독일 국가가 된 이유

2 커리어

시즌 챔피언: 총 7회 (1994~1995년, 2000~2004년. 50년대의 전설, 후안 마누엘 판지오조차 5회. 현역 최다 챔피언 세바스찬 베텔은 4회.)

레이스 우승: 총 91회 (전체 2위인 알랭 프로스트가 51회. 현역 최다 우승자 루이스 해밀턴은 43회.)
포디움(시상대): 154회 오름 (전체 2위인 '서킷의 교수' 알랭 프로스트가 106회. 현역 최다 포디움 시상자 페르난도 알론소는 97회.)
폴 포지션(예선 1위): 총 68회 (나는 전설이다급인 아일톤 세나가 65회로 전체 2위. 현역 최다 폴 포지션 등극자 루이스 해밀턴은 52회.)
폴 투 윈(예선 1위->우승): 40회 (레전드 대우받던 아일톤 세나가 29회로 전체 2위. 현역 최다 폴 투 윈 드라이버 베텔은 28회.)
서킷 최고 랩타임: 총 76회 (전체 2위인 현역 키미 라이코넨은 42회.)

1994~95년 포뮬러 원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
1993 - 알랭 프로스트미하엘 슈마허1996 - 데이먼 힐
2000~04년 포뮬러 원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
1999 - 미카 하키넨미하엘 슈마허2005 - 페르난도 알론소

2.1 꼬꼬마 시절

4세 때 아버지가 만들어준 카트[4]에 탄 것을 시작으로 일찌감치 레이싱의 재능에 눈을 뜨고는[5] 1983년 독일의 카트 경기 라이센스를 획득(독일에서는 카트 라이센스가 14세부터)하고는 1984년 독일내 카트 챔피언쉽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에는 유럽 카트 챔피언이 되었고 1988년에는 포뮬러 포드와 포뮬러 쾨니히(포뮬러 레이스의 하위단계로 포뮬러3 아랫급)에 진출해 2위와 챔피언을 하나씩, 1989년에는 독일 포뮬러3로 진출해 3위. 이듬해인 1990년에 우승. 1991년에는 포뮬러 1에 진출하는 쾌속진격을 보인다(우승을 못한 해의 경우도 실은 이 레이스 저 레이스 문어발식으로 출전해 출전한 횟수가 적은 것들이 대다수).

1992년에는 시즌 3위, 1993년에는 시즌 4위를 차지하고 1994년에는 페널티를 먹어 두경기씩이나 출전이 금지당했음에도 우승(그의 포뮬러1 첫 우승)하는 괴력을 보여 아일톤 세나의 뒤를 이을 드라이버로 주목받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2위인 데이먼 힐30점이 넘는 점수차를 벌여놓는 괴력을 보였다.(94년에는 1점차)

2.2 사기 캐릭터 놀이

이후 1979년 이래로 순위권에 들기 위해 처절히 사투를 벌이던 페라리로 이적해서는 1996년에는 시즌 3위, 1997년에는 마지막 레이스에서 시즌 챔피언 자리(1위인 자크 빌르너브와 2점 차이)를 눈앞에 두고 경기중 자크 빌르너브가 자신을 추월하려는 순간 들이 받아버리고는 몰수패. 1998년에 다시 2위를 차지한 후 1999년에는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시즌의 1/3가까이를 날려먹었음에도 5위를 차지하고, 2000년이 되면서 그간의 눈물나는 투쟁을 마치고 2004년까지 5시즌 연속 챔피언을 기록했다.

특히나 2002년의 경우 전 경기 포디엄이라는 F1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을 작성했으며, 2004년은 13라운드 헝가리 GP까지 12승을 쓸어담으며 최종적으로는 18경기중 13승이라는 흠좀무스러운 기록을 냈다[6]. F1이 그 때문에 재미없어졌다는 평까지 받을 정도였다. 이 당시 F1의 각 규정변화는 거의 명백히 그와 페라리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05년에는 타이어 교체를 금지한 규정덕에 물을 먹고 챔프 자리를 르노 소속의 페르난도 알론소에게 넘기게 되었다.

2.2.1 마지막 콘서트(?)...형 왔다

06년 시즌에서는 개량된 페라리의 머신으로 새로운 팀동료 펠리페 마싸와 더불어 활약을 하며 선두를 유지하던 르노와 알론소를 추격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며 1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포디움 세러모니 후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은퇴선언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 바로 전 일본 그랑프리에서 그간 안정성으로는 알아주던 페라리 머신의 갑작스런 트러블로 리타이어. 챔피언 경쟁에서 실직적으로 멀어지는 불운을 겪는다.
최후의 브라질 그랑프리에서는 레이스 스타트 후 타이어 파열로 인해 황제의 마지막 레이스가 이리 허무하게 끝나나 싶었으나...

근성으로 피트 복귀후 이른바 슈마허 매직을 발동.(이른바 '형왔다' 모드... 타이어교환과 급유를 받고 다음랩에 패스티스트랩 작성)

레이스 만화에서나 존재할 법한 일인...
꼴찌서부터 앞의 드라이버들을 하나 하나 잡아먹으며 모조리 추월해 최후로는 4위로 골인하는 활약을 펼쳐 역시 '황제'라는 인식을 모든 F1팬들에게 각인시켰다.[7]
마지막에 추월한 키미 래이쾨넨과의 배틀은 손에 땀을 쥐게하는 명승부 중 하나.

특히나 키미는 다음해에 바로 슈마허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올 드라이버였기에 여러모로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결국은 2006년 종합 2위를 차지하고는 머신에서 내렸다.

그해 말 Gala 행사장에서 틀어주는 그의 활약상을 다룬 트리뷰트 비디오도 한번 감상해보자. #

2.3 잠자는 사자

그러나, 이후 페라리의 어드바이저 역할과 머신의 개발에 참여하면서(카트에서 포뮬러 쾨니히로 넘어갈 무렵 미캐닉 역할도 함) 취미로 라이더 생활을 했으며 은퇴를 했어도 건재한지 2009년에는 페라리의 드라이버가 부상당한 동안 대타로 돌아올 뻔 했다.[8]

은퇴 이후의 일인데 공항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비행기 시간이 빠듯했는데,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택시기사에게 자신이 운전해도 되겠느냐고 정중하게 부탁한 이후, 자기가 택시기사를 공항까지 모셔다 드렸다. 관련기사. 심지어 이때 운전한 택시는 보통 승용차도 아닌 승합차인 미니밴 Opel Vivaro였는데 이 물건을 갖고 163km까지 밟았다고 한다. 택시기사 왈 "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코너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라고... 참고로 이후 슈마허는 택시비 60 유로에 더불어 100유로 팁까지 줬다고...기사가 돈 내야 할듯...

페라리에서 은퇴 선물로 페라리 FXX를 선물로 받았다.[9]

축구를 좋아하며[10] 축구선수들과도 친분이 있어 시간이 있으면 자국에서 열렸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나 월드컵을 참관했는가 하면, 세계올스타 자선축구경기에도 참가하여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11]

2.4 사기 캐릭터 전설

  • 슈마허가 첫 우승한 레이스는 1992년 12번째 레이스였던 벨기에GP. 1년 전 F1 대뷔전을 치렀던 스파 서킷에서 슈마허는 감격적인 첫 우승을 기록한다. 비가 내리다가 도중에 멈추는 tricky한 상황에서 슈마허는 적절한 피트스탑을 통해 선두 자리를 꿰차며 여유있는 우승을 차지한다. 레인마스터의 전설은 이 때부터 시작하였다.
  • 너무나 유명한 1994년 스페인 그랑프리. 경기가 절반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5단 기어 외에는 모든 기어가 작동이 안되는 치명적인 머신 트러블이 발생하였다.[12] 그런데 이 상태로 30랩 이상을 달려서 2등으로 골인해서 포디움에 섰다. 5단만으로도 피트인은 물론, 저속코너에서 재가속까지 하는데 시동 한 번 안꺼트리고 탑스피드로 돌았다는 이야기. 정말 인간인가?[13][14]
  • 슈마허는 전성기 동안 수많은 명경기를 연출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1998년 헝가리 GP다. 당시 멕라렌의 MP4-13은 베텔이 싹쓸이하던 시절의 레드불만큼이나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줬고, 페라리의 F300은 간신히 멕라렌 꽁무니를 쫓아가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당시 예선을 보면 멕라렌 듀오가 1-2위를 차지하고 슈마허가 3위를 기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이 경기도 마찬가지였고, 레이스 중반까지 슈마허는 3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킷 특성상 추월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당시 페라리의 테크니컬 디렉터였던 로스 브라운은 그 유명한 '3 stop 작전'을 만들었다. 두 번째 피트스탑을 짧게 가져가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머신으로 페이스를 확 끌어올리며 순위를 올린다음 다시 피트인 하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슈마허는 2번째 피트스탑 직후 18랩동안 멕라렌 듀오보다 25초나 더 빨리 달리면서(슈마허가 피트스탑을 하자 멕라렌도 곧바로 전략을 바꿔서 당시 2위로 달리던 쿨타드를 피트로 불러들였으나 슈마허에게 2위 자리를 뺏겼다) 선두 자리를 꿰찼다. 마지막 피트스탑을 하고도 하키넨과 쿨타드를 유유히 앞서면서 '재급유 시대'의 기념비적인 경기를 우승으로 장식했다. 로스 브라운의 탁월한 작전과 슈마허의 놀라운 작전 수행능력이 빛을 발했던 경기다.[15]
  • 2004년 프랑스 그랑프리.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4스탑 전략을 사용하고 우승했다...응?(로스브런 전 페라리,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F1 감독의 전략)[16]
  • 2003년 오스트리아 그랑프리. 피트스톱 주유중에 머신에 불이 붙었다. 불길이 펑 하고 붙어서 상당히 놀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슈마허는 가만히 있다가 소화기로 불끄자마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바로 출발.(...) 이 소동으로 인하여 약 15-20초 정도의 타임로스가 있었다. 결과는 우승.
  • 2003년 캐나다 GP에서는 브레이크 고장으로 경기 대부분을 오로지 '기어 조작'만으로 우승을 했다. 몬트리올 서킷 자체가 브레이크를 많이 써야하는 곳임을 생각하면 굉장히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 2002년 시즌. 총 17번의 GP가 있었는데 슈마허는 17번 포디움에 섰다.(...) 그 중 우승은 11회. 성적은 둘째치고 모든 레이스를 완주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F1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즌.[17]
  • 2006년 브라질 그랑프리. 은퇴를 선언하고 마지막 레이스였기 때문에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대회. 위에도 적혀있듯이 근성의 레이스. 선두 페르난도 알론소와는 포인트 10점차로 슈마허가 우승, 알론소가 리타이어 해야만 동점이 되고 우승횟수에서 앞서는 슈마허가 챔피언이 되는 산술적인 상황. 허나 전날 예선 Q3에서 기어박스 트러블로 예선 10위 알론소는 2위 사실상 챔피언은 물건너간셈. 그러나 황제는 10위에서 스타트해서 레이스 초반 많은 추월을 하는데 턴1 세나S 커브에서 피지켈라의 프런트윙과 접촉 펑쳐가 나고만다. 아래 사진 확인 _42227780_puncture_getty.jpg

너덜거리는 타이어로 리타이어를 해야 정상일 머신 상태에서 억지로 피트인을 하고는 꼴찌로 내려앉았는데 거기서부터 1.2에 언급한 형왔다쇼 시작. 레이스 중반부 투스탑째를 하고 나와서(경기 끝까지 달릴 연료가득 주입)는 바로 다음랩에 패스티스트랩을 찍었다. 레이스 종료 직후 멈춰선 슈마허의 머신을 카메라가 잡아주었었는데, 걸레를 넘어서 휠밖에 남지않았었다고 봐도 좋았을 정도. 많은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었다. 최종결과 4위

2.5 논란

고의적인 충돌 의혹이 있어 90년대까지는 실력은 있으나 인성면에서는 농담으로도 좋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를 뒷받침하는게 두 번의 고의충돌 의혹인데, 첫번째는 1994년 최종전 애들레이드에서 열린 호주 GP의 당시 챔피언십 경쟁자였던 데이먼 힐과의 충돌이다.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 슈마허는 머신 컨트롤을 잃으며 트랙 밖으로 밀려났고, 슈마허와 차이가 갑자기 줄어든 힐은 다음 코너에서 추월을 시도하였으나 추월 공간이 충분치 않아 충돌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슈마허는 힐보다 1포인트를 앞서는 상황이었고, 둘 다 리타이어를 한다면 슈마허가 챔피언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슈마허가 고의로 충돌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었다. 이로 인해 F1의 유명한 잡지인 Autocourse 1994년판에선(해마다 Top 10 Drivers 리스트를 발표한다) 이 충돌사고 때문에 슈마허를 그 해 넘버 2 드라이버로 평가하기도 했다(Autocourse는 충돌 사고를 일으킨 드라이버의 순위를 항상 한 계단씩 깎는다. 같은 이유로 90년판에선 세나가 2위로 내려가고 프로스트가 1위로 평가됐다).

문제는 1997년 최종전인 유럽 GP에서 벌어진 자크 빌르너브와의 충돌사건이다. 예선에서 2위였던 슈마허는 스타트에서 빌르너브를 앞지르며 시종일관 선두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두번째 피트스탑 직후 바짝 뒤따르던 빌르너브가 갑작스레 추월을 시도하니 이를 막기 위해 '고의로' 스티어링 휠을 빌르너브 쪽으로 돌리며 충돌을 시도했다(이 때도 94년과 동일하게 슈마허가 빌르너브를 1포인트 앞서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슈마허의 머신은 튕겨져 나오며 리타이어했고, 빌르너브는 3위로 골인하면서 그 해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슈마허는 시즌 포인트를 몰수 당하며 챔피언십 2위 자격도 박탈당한다(포인트, 우승, 폴 포지션 등의 기록은 유지됐다). 당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윌리엄즈 르노 FW19를 상대적으로 떨어지던 페라리 F310B로 상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격적인 드라이빙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고 옹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사고만큼은 분명 슈마허의 잘못이다. 그리고 이 사건의 고의성으로 인해 94년의 사고도 고의로 유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이에 대해선 2010년 벨기에 GP를 앞두고 사건의 당사자이자 자칭 피해자인 데이먼 힐이 슈마허에게 고의성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많은 팬들도 이 사고에 대해서는 슈마허의 고의성보다는 힐에게 다소 안타까운 사고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다).

하지만, 슈마허가 타 드라이버들에 비해서 너무 과한 비난을 받은 측면도 크다. 90년 일본 GP에서도, 당시 챔피언십 선두이던 아이르톤 세나가 챔피언 타이틀 확정을 위해 오프닝 랩에서 프로스트를 고의로 들이받아 동반 리타이어 했으나, 슈마허처럼 큰 비난을 받진 않았다. 이 사건이 더 문제였던건, 폴 포지션을 차지한 세나가 출발 위치가 레코드 라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라인 변경을 요구하는 진상을 부려댔고, 그 진상이 먹히지 않자 고의로 출발하자마자 자신을 추월했던 프로스트를 들이받았다. 게다가 첫 코너 진입속도가 200km 정도 되는 상황에서 들이받은거라 사고의 위험성도 상당히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9년 일본 GP에서 프로스트가 세나에게 고의성 짙은 추돌을 유발한거에 대한 복수행위라는 이유 등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버렸다. 그에 비하면, 슈마허의 고의 충돌은 저속 코너에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세나의 그것보단 위험성도 상당히 적은 것이었다(위험성이 적다고 이 행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세나의 고의 충돌과 비교했을 때 세나가 받았던 비난보다 훨씬 많은 욕을 들은 것이 부당하다는 의미다).

다만 세나시절과의 차이가 있다면, 세나의 죽음 이후 F1 전반의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었다는 점이다. 세나의 죽음은 F1 머신의 안전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로 인해 각종 안전 장치가 머신에 상당히 장착되었으며, 사고에 대한 인식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언론과 여론의 비난을 짧게 받는 선에서 끝났을 일이 챔피언십 순위 박탈과 엄청난 안티 생성으로 이어졌다. 고의 충돌 자체가 문제인 것은 사실인데, 슈마허가 세나나 프로스트보다 지나치게 많은 비난을 받은 것은 슈마허의 성공에 대한 질투와 세나의 이른 죽음에 대한 아쉬움에 휩싸인 세나 팬들의(F1에서 세나 팬들만큼 타 드라이버를 깎아내리고 세나만을 치켜 세우는 부류도 없다) 광기 탓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최전성기에는 팀 동료인 루벤스 바리첼로를 팀오더로 지나치게 희생시켜 가며 혼자 독식했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팀오더는 포뮬러 1에서 많이 사용되는 전략의 수단이며 페라리는 특히 팀오더를 많이 내리는 편이긴 하나, 이 시기의 페라리는 도가 너무 지나쳤다는 이야기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팀 오더 때문에 슈마허가 득을 본 경기는 2001년, 2002년 오스트리아 GP 뿐이다. 하지만 두 해 모두 페라리 머신이 타 팀을 압도했기 때문에, 두 경기 모두 챔피언십 타이틀 경쟁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왜 굳이 시즌 중반에 팀오더를 내렸냐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한 경기라도 빨리 챔피언 타이틀 획득을 확정지으려는 페라리의 절박함 때문이라 보는게 맞다(00년대 초반 페라리-슈마허의 르네상스를 생각하면 잘 와닿지 않겠지만, 79년 조디 쉑터 이후 페라리는 21년 동안 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드라이버 챔피언 배출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강했었다).

오히려 바리첼로보다는 96~99년 까지 슈마허의 팀 메이트로 활약했던 에디 어바인이 팀오더 때문에 많은 희생을 했다. 바리첼로가 슈마허에게 '직접' 순위를 양보한 경기는 위에 언급한 두 경기 뿐이지만, 어바인은 97년 일본 GP에서 선두로 달리다 빌르너브와 치열한 챔피언십 경쟁을 하던 슈마허에게 1위 자리를 양보했고, 98년 오스트리아 GP에서도 슈마허에게 3위 자리를 넘겨줬다(98년 스페인 GP에선 페널티 때문에 순위가 훅 내려간 슈마허를 위해 3위로 달리던 중 피시켈라와 고의로 충돌했다는 의혹이 있었고, 99년 프랑스 GP에서도 전자계통에 문제가 생긴 슈마허를 일부러 추월하지 않고 경기 끝까지 6위 자리를 유지한 적도 있다). 어바인의 희생이 슈마허의 타이틀 경쟁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어바인은 페라리 특유의 팀오더에 대해 바리첼로처럼 징징거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슈마허는 다리 부상 후(99년 영국 GP 오프닝 랩에서 다리 부상을 당하며 시즌 중반 경기 대부분을 결장한다) 복귀한 99년 말레이시아 GP에서 당시 하키넨과 타이틀 경쟁을 하던 어바인을 위해 우승 자리를 기꺼이 양보해줬으며 이에 대해 어떤 투덜거림도 하지 않았다. 바리첼로와 상당히 대조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3 복귀

2010년 무성한 소문 끝에 결국 메르세데스GP 소속으로 복귀했다. 마이클 조던처럼 다른 팀들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을 것인지 아니면 "두번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 것인지...

은퇴할때도 본인은 은퇴하고 싶지 않았으나 페라리가 은퇴선언을 한거나 마찬가지라 복귀할거란 예상이 많았는데 결국 복귀.

3.1 2010년의 굴욕

2010년 3월 14일 1전인 바레인 그랑프리에서 6위를 기록했다. 그탓에 "이제 슈마허횽도 한물갔네"라는 반응과 은퇴한지 몇 년만인데 오자마자 저 등수를 냈다는 점에서 "실력은 여전하네"라는 반응이 나왔으나, 2010시즌 대부분 종합성적은 간신히 10위권에 턱걸이 하는 정도로 팀메이트인 니코 로스버그보다도 하위의 성적을 거뒀다.

2010년의 머신이 09년 브라운GP의 개량형이고 이 머신은 일단은 09년 챔프인 젠슨 버튼을 위해 개발된 것이어서 슈마허와는 잘 맞지를 않는다는 의견도 있고 아무래도 은퇴후 3년여만에 복귀라 아직 실력 발휘가 제대로 안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팀메이트인 니코도 타팀에서 이적한 해이기 때문에 머신에 대한 부적응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환 상황인데 전설급 기록을 세운 드라이버 치고는 많이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

팀을 슈마허의 개성으로 물들이고 성과를 거두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과거 베네통에서 페라리로 이적후 이른바 슈마허 사단이 완성되어 전대미문의 시즌 제패를 일군 2000-2004 까지는 좀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슈마허의 나이를 생각하면 유망주인 니코에게 그런 투자를 하는게 더 이득일지도 모른다(슈마허는 그 당시 현역 최고령...).

이래저래 좀 힘든 상황. 그러나 2010 영암 GP에서는 강우로 인해 세이프티 카가 4번이나 나오는 예측불허의 수중전중 탑랭커를 다투던 레드불의 마크 웨버가 코너중 스핀으로 리타이어, 세바스찬 베텔이 46랩중 엔진과열로 차체에 불이 나며 리타이어하는 등 이변이 속출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버티며 예선 9위로 시작해 4위로 영암GP를 마쳤다(2명을 잡았고, 나머지 앞 쪽 선수들은 리타이어). 아쉽게 포디엄 등극에는 실패했지만 1/3이상 리타이어한 난장판에서도 4위로 경기를 마쳤다는 점에선 왕년의 수중전 절대강자의 포스는 어느정도 보여준 듯.[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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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0년 19전인 아부 다비 GP에서는...예선 8위에 비교적 피치를 올려 달리는가 싶더니...스핀을 하는 망신을 당하고, 뒤에서 달려오던 비탄토니오 리우치(포스 인디아 소속)가 슈마허의 머신을 덮쳐 하마터면 삼도천을 건너갈뻔했다. 그래도 유명했던 성깔은 나이를 먹어 변했는지 자기 머신을 덮친 리우치를 챙겨주는등 상당히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줬다.(하긴 자기 스핀에 다른 선수가 말려든 셈이긴 하지만...)[19]

19전까지 72 포인트를 획득해 시즌 9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9위면 잘한 것 아니겠냐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8위로버트 쿠비차와 9위 사이가 나름 넘사벽(64점 차이)이라는 점과 과거에 압도적으로 다른 드라이버들을 발라버리던 슈마허라는 점에서 "다시 만나지 아니했음이 나았을..."이라는 말이 나올 상황.

3.2 소생의 2011년(?)

해가 지나 2011년이 되어 초반에는 역시나 했는데...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나아졌다.[20]

개최지예선경기결과누적 포인트
호주11리타이어0
말레이지아1192
중국1486
터키8126
스페인10614
모나코5리타이어14
캐나다8426
유럽81726
영국13928
독일10832
헝가리9리타이어32
벨기에24542
이탈리아8552
싱가포르8리타이어52
일본8660
한국12리타이어60
인도12570
아부다비8776
브라질101576

8전인 유럽 그랑프리까지의 종합 순위는 10위다...14전인 싱가포르 전까지 봐도 종합순위는 8위. OTL
하지만, 경기 중단을 고려할 정도의 엄청난 폭우 속에서 치뤄진 2011년 캐나다GP에서 경기 후반까지 2위를 지키면서 레인마스터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비가 개이고 노면이 마르면서 아 망했어요 별 저항도 못해보고 순식간에 4위로 주저 앉는 모습. 이 경기 이후로 다들 슈마허가 아니라 메르세데스 W02를 까기 시작했다. 각주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빗속의 경기는 머신의 스펙 차이보다는, 드라이버의 능력에 더 좌우된다. 아직 전성기 만큼은 아니지만 경쟁력있는 머신만 주어진다면 해볼만 할 듯.

그런데 2011시즌 후반기 슈마허가 살아나고 있다.

스파-프랑코샹 서킷에서 벌어진 벨기에 GP에서는 불운하게 시작하였다. 예선에서 정비불량으로 예선을 치루지 못해 꼴지인 24그리드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먼치킨급의 스타트로 시작하자마자 첫 랩에 15위까지 올라가는 위엄을 보이며 차근차근 다른 드라이버들을 추월해갔다. 레이스 후반엔 팀 동료인 니코 로즈베르크를 추월하며 5위로 골인하는데 성공! 남들 레이스할때 혼자 레이싱 만화 찍는 슈마허

몬짜 서킷에서 벌어진 이탈리아GP에서도 카메라는 슈마허를 비추기에 바빴다
슈마허는 8번 그리드에서 출발했는데, 스타트와 동시에 또 먼치킨급 스타트를 보이며 3위까지 치고 올라가 2위인 페르난도 알론소를 위협했다. 물론 MGP-W02의 퍼포먼스는 형편없었기에 알론소와의 차이는 벌어졌지만, 4위로 뒤따르는 루이스 해밀턴의 공격을 수없이 방어해 냈다. 스트레이트가 많은 몬짜 서킷의 특성상 뒤에 있는 해밀턴이 DRS+KERS로 수없이 공격했음에도 꿈쩍하지 않고 20랩 가량 블로킹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추월당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할 수 있지만, 머신 퍼포먼스의 차이가 분명한 가운데 정상급 드라이버를 막아내는 것은 슈마허의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해밀튼은 스파-프랑코샹에서도 똑같이 슈마허에게 꽤 많은 시간을 블로킹당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슈마허의 능력을 더더욱 돋보이게 만들 수 있었다.[21]

마리나 베이 서킷에서 열린 싱가폴GP에서는 사고를 당하며 리타이어했다. 9위로 달리던 중 앞서가던 세르히오 페레즈를 추월하려다가 페레즈의 리어와 슈마허의 프론트윙이 충돌하면서 노즈가 들리는 사고로 리타이어했다.
파일:Attachment/sch123 1.jpg [22]

스즈카 서킷에서 열린 일본GP에서는 Q3에서 플라잉 랩을 돌지 않았지만 아웃랩을 돌았기 때문에[23] 8그리드를 차지한다. 레이스에서는 다시 좋은 스타트를 보이며 6위로 점프하고 좋은 타이밍에 핏스탑한 결과[24] 잠시나마 선두에서 달려보기도 했고, 최종적으로는 페라리의 마싸를 막아내며 6위로 레이스를 마치고 8포인트를 얻었다.

그러나!

2011년 한국GP에서는 "작년에 있었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과는 별개로 2회차 예선 때 녹아웃을 당하고, 결승에서는 비탈리 페트로프 선수와 충돌하면서 리어 윙이 심각하게 파손, 결국 리타이어되는 불운을 겪는다. 이로서 그가 2년 연속 완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팬들은 아쉬움속에 눈물을 흘렸다. 이쯤되면 화가나서 인터뷰에서 소리를 꽥꽥지를만도 한데 한선육교를 건너면서 씨익 미소를 보이는 슈마허의 대인배스러움에 전 세계 모두가 '역시 경력은 그냥 먹는게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후 인터뷰에서도 '그럴 수도 있지. 신경 안쓴다' 같은 투로 말해서 대인배의 칭호를 획득했다.

그 후 인도 GP에서는 안정적인 레이스를 펼치며 팀메이트 니코 로스버그보다 앞서는 5위를 기록하고[25], 아부다비 GP에서는 작년에서의 안 좋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7위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였다.
최종전 브라질 GP에서는 아일톤 세나의 조카 브루노 세나와 컨택을 하며 타이어 펑쳐가 나는 손해를 봐 15위를 기록하며 슈마허의 2011 시즌이 마감되었다.

3.3 마가 낀 2012년

2011 시즌 후반부 상승세를 탄 슈마허의 2012 시즌은 기대되었고, 실제로 개막전 호주 GP 퀄리파잉에서 4위를 하며 드디어 지난 2년동안의 설움을 딛고 좋은 성적을 거둘수 있으리라는 설렘을 가지게 만들었으나, 정작 본 레이스에서는 10바퀴정도밖에 달리지 못하고 기어박스의 이상으로 리타이어하였다.

2전 말레이시아 GP에서는 복귀 후 첫 퀄리파잉 3위를 기록하며 또다시 설렘을 가져다 주었으나, 역시 본 레이스에서 한 바퀴도 돌기 전에 로터스의 그로쟝과 충돌해 순위의 손해를 엄청나게 보았고, 스콜로 레이스가 한번 중단됐다 다시 재개된 이후에도 포인트권 밖에서 레이스를 이어가다가 베텔의 타이어 펑쳐와 말도나도의 엔진 블로우로 겨우 10위까지 올라가 1포인트를 따낸다.

3전 중국 GP에서도 역시 3위를 차지하였으나, 퀄리파잉 2위 해밀턴이 기어박스를 바꿔 5그리드 패널티를 받으며 2위로 출발하게 되 적어도 포디움, 잘하면 우승 까지 기대되었으나, 스타트에서 팀메이트 니코 로즈버그가 로켓스타트로 치고 나가버렸고, 슈마허는 맥라렌,로터스 등을 방어해 내는 역할을 계속 수행하며 2위를 달리고 있던 도중 피트스톱을 했는데, 여기서 오른쪽 타이어의 휠넛을 제대로 조이지 못하고 보내버린 피트크루의 통한의 실수가 나오며 다시 리타이어.
그 뒤 니코 로즈버그의 F1 데뷔 이후 첫 우승을 쓴웃음을 지으며 지켜보았다.

4전 바레인 GP에서는 팀의 판단 착오와 차의 이상, 그리구 앵그리버드 헤이키 코발라이넨의 예상 외의 스피드로 슈마허가 Q1에서 탈락해버리게 된다. 게다가 기어박스를 바꿔 5순위 하락한 23위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레이스에서는 사건사고 없이 무난한 레이스 운영을 보여 13계단 상승해 10위로 1포인트를 얻었다.

5전 스페인 GP에서는 Q3 진출에는 성공했으나 Q3에서 랩타임을 기록하지 않으며 9위에서 출발하였다. 레이스 스타트를 잘 했고, 5위였던 페레즈가 타이어 펑쳐가 나 스타트 상황에서 6위로 치고 올라갔으나, 첫 피트스톱을 하고 난 몇 바퀴 뒤 피트스톱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던 브루노 세나를 추월하려 DRS를 쓰고 달리던 중 브루노 세나의 리어윙을 박고 슈마허와 세나 둘다 리타이어해 버렸다. 최근 리타이어를 하더라도 어지간해선 화를 내지 않던 슈마허도 이때만은 팀 라디오로 "Idiot!"이라는 말을 남기고 스티어링을 집어던졌다. 결국 이 사고로 슈마허에게 내려진 처분은 모나코 GP에서 5순위 강등이었다. 이 사건은 세나의 애매한 방어행동과[26] 슈마허의 브레이킹 타이밍 미스가 맞물려 팬덤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6전 모나코 GP 퀄리파잉에서 슈마허가 대 사고를 하나 치는데, 그것은 바로 폴 포지션의 차지(!!!)이다. 복귀 후 첫 폴포지션은 물론, 햇수로는 6년만의 폴 포지션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황제의 재림을 만천하에 보여주었지만, 스페인 GP에서의 5순위 하락 패널티로 아쉽게 출발은 6위에서 하게 된다. 그런데 레이스가 시작하자마자 출발 과정에서 5위 알론소에게 밀린 4위 그로쟝과 말레이시아에서의 충돌을 반복했고, 슈마허는 계속 진행해 2계단 하락한 8위에서 키미 라이코넨의 뒤꽁무니를 계속 쫓았지만 여유치 않은 도중 슈마허는 피트 스톱 타이밍을 늦게 가져가 타이어의 문제로 고전하던 키미 라이코넨 등을 제끼고 슈마허가 7위가 된 와중 레이스 중후반에 연료 계통의 문제로 슈마허의 페이스가 상당히 처지고, 결국 토로로소의 베르뉴와 포스인디아의 디레스타와 헐켄버그에게 추월당하였다. 그리고 피트로 돌아와 또다시 리타이어...

7전 캐나다 그랑프리에서는 9그리드에서 출발했으나 그 이상 치고 나가지 못하다가 40랩 이후에 리어윙에 문제가 발생, DRS가 전개된 상태에서 윙이 닫히지 않아 시케인에서 숏컷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27] 결국 피트인을 하였는데 피트 크루들이 여러명이 붙어 안간힘을 썼으나 열려있는 리어윙은 꿈적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리타이어.

8전 유럽 그랑프리에서는 2번째 퀄리파잉에서 아쉽게 12그리드를 차지했다.[28] 발렌시아 서킷은 시가지 서킷인데다 마땅한 추월포인트도 거의 없어 별 다른 성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게 웬걸, 베르뉴와 코발라이넨의 충돌로 인해 세이프티 카가 나오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선두에서 달리던 베텔과 그로장이 연달아 리타이어하고 슈마허는 레이스 후반부터 앞선 차량을 차례차례 추월하기 시작해 5위까지 올라왔는데 56랩에서 3위 싸움을 벌이던 해밀턴 마저 말도나도의 무리한 주행으로 인해 사고로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최종순위는 3위. 인터뷰에서 말하길 슈마허 본인은 레이스에 집중하느라 자신이 몇위인지 조차 몰랐다고 한다. 게다가 복귀후 사상 최악의 시즌을 보내던 와중에 오랜만에 포디움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슈마허의 팬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

8전 유럽 GP 시점에서 17포인트로 13위에 오른 후 계속해서 포인트 짤짤이를 거둬 13전인 이탈리아 GP(43포인트로 11위를 기록. 만년 하위권인 신생 3팀[29]과 부대끼고 있던 상황은 벗어났으나 아직까진 갈 길이 멀기만 하다[30]. 2010 시즌과 2011 시즌에서 부진했던 퀄리파잉의 성적을 레이스 운영으로 메우던 상황이었는데 2012 시즌에서는 본인의 실수보다 차량의 결함으로 인한 리타이어가 대부분이라 더욱 아쉬움이 남고 있다. 이러한 불운[31]을 딛고 재기할 것인가, 아니면 이후로도 하락세가 지속되는가를 지켜보는 것이 2012 시즌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일본 GP를 앞두고 소속팀 메르세데스 GP가 루이스 해밀턴과 2013시즌 계약을 맺으면서, 결국 슈마허는 2012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012시즌 최종전인 브라질 GP가 레전드의 마지막 경기가 될 예정.

코리아 그랑프리에서는 Q2에서 0.05초 차이로 젠슨 버튼의 Q3 진출을 막았고, 10위로 출발하게 되었다. 하지만 레이스에서는 메르세데스의 머신의 한계를 드러내며 레이스가 진행되며 점점 순위가 하락하여 13위로 노포인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2년 11월 26일을 브라질 F1을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은퇴한다. 당시 3연챔을 눈앞에 둔 페텔을 앞으로 보내주는 장면은 '황위 계승식'이라며 회자되기도.

4 사고

은퇴한 뒤 가족들과 스위스에서 조용히 살고 있던 2013년 12월 30일 (현지시각 29일 밤) 프랑스알프스에서 가족[32] 들과 스키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헬멧을 쓴 채로 바위에 부딪혔는데, 사고 직후에는 의식이 있었고 헬리콥터로 인근 병원에 옮겨졌으나 그런대로 멀쩡한 줄 알았는데 결국 중태에 빠져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검사 결과 두개골 외상으로 인한 뇌출혈이 있어 바로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수개월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33]

이후 슈마허는 3월 11일에 겨우 산소호흡기를 떼고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사고 후 약 6개월 만인 6월 16일[34]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의식을 되찾았다. 목소리와 접촉 등에 반응을 보인다는 자비네 켐 슈마허 매니저의 공식성명으로 보아서는 완전히 회복되진 않은 모양. 향후 재활치료에 전념하겠지만 평생 휠체어를 타고 일상생활에 항상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의식이 깨어난 후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주치의에 따르면 언어장애나 기억장애 등이 올 수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살아남아서 다행이라는 반응. 2015년 1월 소식에 따르면 가족의 목소리에 눈으로 반응을 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나 치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듯 한데, 불행히도 점점 안 좋은 소식들만 들리고 있다.

5 가족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동생 랄프 슈마허 가 있다. 형과의 비교만 아니면 제법 우수한 레이서였지만 형이 너무 넘사벽이어서...
1995년 부인 콜린느와 결혼해 딸 마리아와 아들 믹을 낳았다.

최근 아들 믹이 독일 F4[35]에 데뷔, 데뷔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여담으로 헬멧 디자인이 아빠의 것과 색깔과 스폰서 로고 몇가지를 제외하면 똑같다.

6 기타

드라이빙 스타일 자체는 매우 스무스하다. 하지만 90년대에 배틀할 당시 고의충돌등에 의하여 거칠다고 하는분들이 있는데 고의충돌 몇 가지 빼고는 대체적으로 부드럽다. 스티어링을 자주 조작하면 타임로스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의 주행.

집중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특히 재급유 시대(1994~2006년)에 전성기를 보낸만큼 연료 적재량이 많이 소모된 상황에서 급격히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하위 드라이버와의 격차를 줄이거나 상위 드라이버를 따라잡는 일이 많았다. 특히 앞서가는 드라이버보다 핏스탑을 한 번 더 하는 대신 가벼운 머신으로 Fastest Lap을 경신하며 핏스탑 작전으로 추월하거나(대표적으로 94년 프랑스-유럽 GP, 95년 패시픽 GP, 98년 헝가리 GP, 99년 산 마리노 GP, 04년 프랑스 GP), 핏스탑 횟수는 동일하게 가져가되 핏스탑 즈음해서 페이스를 끌어올려 순위를 역전시키는 경우(슈마허의 우승 경기 중 절반 정도가 이에 해당할 정도인데 대표적인 예로 00년 산 마리노 GP, 06년 중국 GP 등이 있다)가 꽤 많았다. 다만 타이어의 마모가 타 드라이버들보다 약간 심한 편인데, 슈마허의 장점은 바로 그러한 부분까지도 자신의 실력으로 커버한다는 점이다. 08년에 타이어 마모가 심한 편인 해밀튼이 슈마허의 이런 스타일을 몇 번 따라하여 핏스탑을 한 번 더 가져가는 방식을 종종 취했으나 이 방식으로 우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런 점에서 '재급유 시대'에 가장 최적화된 드라이버는 슈마허 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은퇴 후 복귀한 10~12년 동안엔 재급유 금지, 폭이 좁아진 프론트 타이어에 대한 적응 부족, 무엇보다 나이로 인한 실력 감퇴로 인해 자신의 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 했다. 특히 경기가 진행될수록 랩 타임이 계속 떨어죠 노화로 인한 집중력 부족이 상당히 심해진 것으로 보였다.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나이트 슈마허가 바로 이 슈미허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혼자 포뮬러1의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운 이쪽이 더 사기캐릭터 레벨이다. 당시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자료 수집차 서킷을 방문한 제작진들이 그 날 인상적인 주행을 보여준 F-3 드라이버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사이버 포뮬러 TV나 더블원이 나온 1991년이나 1992년에 슈마허는 F-1에서 시즌 12위와 3위를 차지한 (F-3 시절 맹활약한) 매우 유망한 신인 정도의 취급이었는데, 사실 TV판의 슈마허도 강자로 취급되긴 했지만 '어? 저 고글 쓴 드라이버 누구지? → 님 좀 짱인듯' 정도의 취급이라 이러한 묘사도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어쨌든 제작진들도 슈마허의 F-1 데뷔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이루어진 것에는 놀랐다고 전해진다.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일을 해냈다.

전성기의 세나 vs 전성기의 슈마허 떡밥은 레이싱 팬들에게는 좋은 설정놀음 거리. 덤으로 자동차 씹어대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믿으면 골룸)

전설적인 F1 레이서 아일톤 세나를 제외하면 분야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WRC를 6년 연속으로 제패한 세바스티앙 뢰브가 간접적인 비교대상으로나 가능할 정도.(뢰브는 9년 연속으로 혼자 다 해쳐먹고 이젠 의욕이 떨어졌는지 2013년부턴 서폿참전했다. 우승횟수로나 연속 우승 기록으로나 슈마허 그 이상) 슈마허가 서킷의 제왕이라면 이쪽은 서킷을 제외한 모든 도로의 제왕이니(…).

이렇게 먼치킨인데도 문제점이 존재하는데 경기를 독점하고 나서 사람들이 너무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2위부터 꼴찌까지만 우왕좌왕 하는 것 때문에 개최주가 5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항상 1등만 하니까 오히려 개최하는 입장에서는 독이 된 셈.

탑기어에서 2대 스티그의 등장후 일부에서 스티그의 정체를 알아내겠다며 사립탐정을 고용하는등 여러가지 루머가 많았는데, 시즌13에서 Stig의 정체를 까발리겠다며 합리적인 가격의 찰 코너에 게스트로 초대하여 헬멧을 벗긴적이 있었는데,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건...


무려 미하엘 슈마허였다 충공깽(...) 체격이 기존의 Stig보다 더 큰 것도 그렇고, 스케줄상 도저히 출연이 불가능한 것도 그렇고, Stig의 정체 루머에 BBC가 나름 센스있게 대처한듯하다. 그렇다 쳐도 슈마허를 섭외하는 탑기어의 위력은...사실이건 아니건 과연 탑기어.

  1. 영미권에서는 영어식 발음인 마이클 슈마커로도 불린다. 주로 BBC의 중계에서 이러한 발음을 많이 들을 수 있다.
  2. 축구하면 펠레, 농구하면 마이클 조던이 연상되듯, F1에서의 그의 위치는 최고 그 이상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3. 하지만 펠레나 조던과는 달리 슈마허에게는 일반적으로 더 높이 평가되는 사람이 있다.
  4. 아버지가 카트수리공으로 집안이 가난했었지만 아들이 레이싱하는걸 말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집을 카트장 옆으로 이사까지 했으며 슈마허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샌드위치를 팔았다고 한다. 게다가 독일의 카트 라이센스 규정때문 연령 제한이 낮은 나라로 가기까지...
  5. "나는 다른 애들이 쓰다가 쓰레기통에 버린 타이어들을 다시 모아서 그걸 가지고 카트를 탔다. 그 애들은 그대신 이탈리아에서 타이어를 사다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보다 빨랐고 그애들은 내 모습을 보면서 어리둥절했다." 다른사람이 말했다면 "이게 어디서 약을 팔어?" 거짓말이라고 했겠지만, 슈마허 본인이 직접 말하였으며,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6. 2013년 베텔이 시즌 13승을 차지하면서 타이기록을 작성했다.
  7. 2011년 벨기에 레이스에서 꼴찌에서 5위로 들어오는 일을 또 저질렀다...
  8. 모터사이클 경주에서 입은 목부상이 낫지 않아 결국 무산되었지만...
  9. 미하엘 슈마허가 요구했다는 이야기도있다, 참고로 저 FXX 제작에 슈마허도 참여했다.
  10. FC 쾰른 팬이며 쾰른이 이적자금이 부족해 루카스 포돌스키 영입에 어려움을 격자 팬들이 이적료 일부를 모금해 부담했을 때에도 참가했다.
  11. 2002년 피구재단 vs 세계 올스타 자선경기에서 뛰어난 패싱을 보여주며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구석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킥으로 득점도 했다. 골 포스트를 맞추는 강한 오른발 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득점은 하지 못했다. 직접 봐서 기억한다.LUIS FIGO FOUNDATION 5-5 UNICEF ALL STARS
  12.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5단 기어가 고장났다고 알려져있는데 5단 기어가 고장난게 아니라 5단 기어만 사용가능한 상황이었다.
  13. 참고로 1991년 브라질 그랑프리 당시 아일톤 세나는 6단 기어만 되고 나머지는 다 안 되던 상황에서 순전히 6단 기어만으로 남은 구간을 완수했다. 그나마 당시 세나는 6~7바퀴 남았으니 망정이지, 슈마허는 진짜 최악이었다!
  14. 당시 슈마허는 개막전인 브라질 GP의 우승을 시작으로 파죽의 4연승을 기록하고 있었다.만약에 스페인 GP에서 기어 트러블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슈마허는 F1 역사상 전무후무한 개막전부터의 7연승을 기록했을지도 모른다(뒤이은 캐나다, 프랑스 GP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15. 이런 패턴으로 슈마허가 우승한 경기는 베네통 시절부터 있었는데 94년 프랑스 GP-유럽 GP, 95년 패시픽 GP, 99년 산 마리노 GP 등이 있다. 과거 재급유가 허용되던 시절에 해밀튼이 이를 따라한 적이 있었으나 한번도 우승에 성공한 적은 없었다. 오로지 슈마허만이 가능했던 일이다. 가히 '재급유 시대'의 황제라 부를만 하다.
  16. 2~3회 피트 스톱이 정상;
  17. 슈미는 완주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드라이버다.
  18. 일단 영암 서킷이 테크니컬 코스의 성격을 가진데다가 비까지 온 상황이기에 정줄놓고 밟았다간 '저 하늘의 별'이 되는 상황까지 갈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는 코너링시 엑셀조작에서 약간만 실수를 저질러도 머신이 멋대로 미끄러져 나가는 불상사가 터지기 쉽다. 그런탓에 비에 강한 드라이버 = 드라이빙 테크닉의 본좌로 여겨지게 된다.(그런데 앞에 3명이 더 있잖아;)
  19. 이 사고를 계기로 머신의 노즈 높이에 제한이 생겨 2012시즌부터는 대부분 계단식 스텝노즈를 사용하고 있다.
  20. 호주~영국 GP까지는 5위 안에 1번밖에 못 들었지만, 독일~브라질 GP까지는 5위를 3번이나 기록했다. 하지만 리타이어도 2번 더 많다
  21. 조금 자세한 이야기를 적자면, 스파와 몬짜에서 메르세데스의 MGP-W02는 다운포스를 거의 포기하고 직선에서의 스피드만을 극단적으로 중시한 세팅으로 나섰다. 따라서 탑스피드는 맥라렌과 거의 비슷했거나 우위에 있었고, 해밀튼의 DRS+KERS 공격에 KERS로 대항하며 라인을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이런 세팅은 다운포스가 부족하기 때문에 머신의 안정성이 낮고, 코너에서 조금의 실수만 있어도 탈출 속도 차이로 인해 추월당할 수 있다. 하지만 슈마허는 그 불안정한 머신을 가지고도 절대 실수하지 않았다. 현실이 이니셜D보다 더한 세상
  22. 2010시즌 발렌시아에서 웨버가 당한 사고와 비슷한 느낌이다.
  23. 플라잉 랩을 도는 것만 랩타임으로 인정된다. 피트를 나와서 한 랩을 도는 것을 아웃랩이라고 하고, 플라잉 랩 후 피트로 들어가기 위해 도는 랩을 인랩이라고 한다.
  24. 피트스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세이프티 카가 선언되었다.
  25. 사실 슈마허의 인도 GP 5위는 해밀턴과 마싸의 컨택의 영향이 더 컸다.
  26. 규정상 방어를 위한 움직임은 1회로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세나의 경우 확실하게 움직이지 않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27. DRS는 리어윙을 열어 차체의 다운포스를 줄여 속력을 얻는다. 속력을 위해 안전성을 맞바꾸는 방식이라 만약 DRS를 사용한 상태에서 코너를 돌 경우 그대로 스핀하게 된다... 는 당시 퀄리파잉에서 DRS열고 코너 공략하던 레드불에게는 안통하는 이야기라서 결국 예선에서도 DRS는 DRS구간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까지 바뀌었다
  28. 유럽 GP 퀄리파잉은 Q2가 가장 치열했는데 1위부터 10위까지의 격차가 0.2초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29. 케이터햄, 마루시아, HRT. 그나마 케이터햄의 경우 2012시즌에 단1포인트라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만반의 준비를 했으며 이를 위한 헤이키 코발라이넨의 노력 또한 가장 두드러졌으나...베르뉴 ㅅㅂㄹㅁ
  30. 일단 팀메이트인 로스버그조차 13전 기준으로 슈마허보다 40점이 앞서있고, 13전 시점으로 1위가 179점(알론소), 142점(해밀턴), 141점(라이코넨), 140점(베텔), 132점(웨버), 101점(버튼), ...
  31. 1전 기어박스 이상으로 리타이어, 2전 충돌로 고생, 3전 타이어 문제로 리타이어, 4전 맹구 기어박스로 고생, 5전 충돌로 리타이어, 6전 연료계 이상으로 리타이어, 7전 DRS 이상으로 리타이어 작가의 농간으로 머신이 ㅂㅅ되어 시즌 말아먹던 어느 주인공도 아니고
  32. 사고 당시 14살짜리 아들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33. 영국 옥스퍼드대의 신경외과 교수 티푸 아지즈는 이후 의식을 회복하더라도 완치가 힘들 것이란 소견을 밝혔다.
  34. 마침 그 날은 2014년 월드컵 독일전 첫 경기였다. 슈마허는 축빠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독일 국대 루카스 포돌스키"슈마허를 위해 우승하겠다"는 소감을 밝힌 날이었기에 축구 보려고 깨어났다는 개드립이 작렬했다. 그리고 독일은 조별리그 첫경기에서 포르투갈을 만나 4:0으로 완파했고, 4강경기에서 브라질을 1:7로 압승, 결국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오오 슈마허 버프 슈마허가 스스로를 희생해 펠레의 저주를 막았다고 카드라
  35. F1을 지망하는 어린 선수들을 위한 레이스 카테고리이다. 이 시리즈에는 후견인 제도가 있어서 멘토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올해 독일 시리즈에는 슈마허의 멘티였던 세바스찬 베텔 이 지정되어 있다. 베텔은 이와 관련한 인터뷰를 하며 믹과 마이클을 언급했다고 한다. 아빠의 멘티가 아들의 멘토로